필자가 이 글에서 경제학이 연역과학임을 구체적으로 논증하려는 것은 아니다. 만약 경제학이 (오스트리아학파의 주장대로) ‘선험적 공리에 입각한 연역적 추론을 통해 개발되는 학문’임을 받아들인다면, 어떤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가장 ‘수행 모순(performative contradiction)’과 무관한지를 고찰해보고 싶을 뿐이다.
‘인간행동학(praxeology)’과 그것의 가장 발전된 세부 분야인 경제학은 공리-연역적 논증(axiomatic-deductive arguments)'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오스트리아학파는 '인간 존재에 관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irrefutable facts about human existence)'과 몇 가지 보조적 가정에서부터 출발하여 전체 이론체계를 도출해낼 수 믿는다. 연역적 추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만약 그것이 근본적 가정에서부터 올바르게 수행된다면, 그 추론 결과 역시 시작점과 동등한 위상의 필연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올바르게 수행된 연역적 추론의 타당성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만약 오스트리아학파의 전제와 추론이 타당하다면, 그것의 모든 논리적 결론, 예컨대 “생산요소 가운데 사유재산이 없다면 가격요소는 있을 수 없으며, 가격요소가 없다면 비용계산은 불가능하다.”, “민주주의는 사유재산과 양립할 수 없다.”, “중앙은행은 경제를 비효율적으로 재구성한다.” 등은, “삼각형 내각의 합은 180°이다.”, “100은 99보다 큰 수이다.”, “1 + 1 = 2 라면, 2 + 2 = 4 다.”와 같은 기하학 명제와 마찬가지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언제나 절대적•보편적으로 타당한 진리로 작용한다.
연역적 추론은 전제가 진리라면 결론도 진리라는 특징 때문에, 적절한 사안에서 논리적 결점 없이 행해진다면 매우 파괴적인 효과를 가진다. 수학에서 대표적으로 그러하다. “1 + 1 = 2” 라는 명제를 공리에 기초하여 도출하는 것은 사실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논리전개 과정의 복잡함과 난해함이 “1 + 1 = 2” 이 절대적으로 진리라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만약 오스트리아학파의 주장대로 사회과학에서 연역적 추론이 가능하다면, 그리고 가장 논리적으로 무결한 연역적 추론을 전개한 학파가 오스트리아학파라면, 오스트리아학파의 사상을 인간행동과 그 결과인 사회현상에 대한 절대적 진리로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다.
상술한 연역적 추론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적어도 다음 세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 즉 “(1) 오스트리아학파가 옳다고 여기며, (2) 오스트리아학파를 지지하며, (3) 인간사회가 보다 번영하길 원하거나, ‘그리고/아니면(and/or)’, ‘수행모순’을 피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가 있음을 지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오스트리아학파의 결론에 대한 비타협적•일관적 수용”이다.
오스트리아학파의 과학체계는 물론 가치중립적이다. 인간행동학은 우리에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말해줄 뿐, 어떻게 행동하라는 지침을 내려주진 않는다. 그러나 대체로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추구하기 때문에 학문을 공부한다. 오스트리아학파 이론이 가치중립적으로 기술하는 인간 세상에 대한 진리에, 단 하나의 보조적 가정, 즉 “우리는 번영하는 삶을 추구한다.”를 덧붙인다면, 오스트리아학파에 기초한 정책제언이나 사회비판이 가능해진다.
상술한 보조가정을 곁들인 오스트리아학파의 정책제언은 급진적이고 파괴적이다. 만약 시장경제가 정부보다 효율적이라는 연역적 추론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모든 영역에서 정부보다 더 나은 기능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중앙은행은 폐지되고 화폐를 전적으로 민영화해야 하며, 국방과 사회간접자본을 포함한 모든 재화는 시장에서 더 효율적으로 공급될 수 있으며, 오직 정부가 형성한 독과점만이 사악한 결과를 가져오며, 시장실패의 근본은 정부실패이며, 정부는 완전히 백해무익한 조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전용덕 교수가 2014년에 자유기업원에서 행한 [자유주의 시민강좌]에서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주류경제학과 작금의 사회체제는 궁극적으로 문명의 몰락을 초래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가?
오늘날 오스트리아학파 학계의 절대적 주류 의견에 따른다면, 완전한 ‘무정부-자본주의(anarcho-capitalism)’가 해답이다. 오스트리아학파에는 크게 두 개의 조류가 있다. 하이에크의 전통을 따르는 ‘조지메이슨 대학교-케이토 연구소’ 학파와 미제스와 라스바드의 전통을 따르는 ‘론 폴-미제스 연구소’ 학파이다. 전자는 상대적으로 주류영합적이고, 온건하며, 후자는 상대적으로 급진적이고, 비타협적이다. 그러나 두 학파 모두 하나의 이상사회가 있다는 의견에는 동의하고 있다. 바로 ‘무정부-자본주의’가 오스트리아학파의 종착점이라는 점이다. 과거 미제스와 하이에크는 최소한의 국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제자는 국가를 완전히 부정하는 방향으로 스승의 이론을 수정했다. 정부가 해롭다는 연역적 추론을 수행모순 없이 일관적으로 고수하기 위해서는, 정부에게 그 어떤 예외도 허용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담이지만, 제자들의 연구에 대한 하이에크와 미제스의 대응은 흥미롭다. 노년의 하이에크는, 화폐이론을 제외하고는 오스트리아학파에서 점차 이탈하여 사회민주주의가 연상될 정도로 국가의 권력을 옹호하는 성향을 보였다. 반면, 미제스는 라스바드의 무정부-자본주의 논증이 완전히 옳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과도기 역시 허용될 수 없다. 현실적으로 무정부-자본주의가 단번에 도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무정부-자본주의가 특정 시공간대에서는 국가 통제하의 여타 사회체제보다 덜 효율적임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무정부-자본주의는 언제, 어디서나 가장 효율적인 체제로 작동한다. 국가 통제하의 여타 사회체제에서 무정부-자본주의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이나 비효율을 우려하는, 즉 수 년 동안 휠체어에서 생활하던 신체장애인에게 단번에 홀로 걸으라 요구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은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자정작용일 뿐이다. 오스트리아학파는 경제위기가 닥쳐도 불황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어떤 행동도 해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과정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전환과정에서 발생한 혼란을 우려하며 무정부-자본주의에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오스트리아학파를 지지하며 동시에 인간사회의 번영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오스트리아학파는 더 많은 정부통제가 언제나 추후에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무정부-자본주의에 반대하거나, 최소한 천천히 단계적으로 이행해야 한다는 오스트리아학파 지지자”는, “경제위기에서 양적완화를 옹호하는 오스트리아학파 지지자”와 같은 논리적 오류를 공유한다.
오스트리아학파를 지지한다는 것은 연역적 추론이 옳고, 그 결과 역시 옳다고 생각함을 의미한다. 연역적 추론의 전제가 절대적으로 옳다면, 논리적 결함없이 도출된 결론도 절대적으로 옳다. 이에 대한 타협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판단 유보는 오직 귀납적 추론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오스트리아학파에 반대하거나, 다른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적어도, 오스트리아학파를 지지한다면, 그리고 인간사회의 번영을 꿈꾼다면, 오스트리아학파의 논리적 결론 역시 철저하게 비타협적으로, 또 모든 영역에서 일관적으로 옹호하길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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