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계 숙원인 납품단가 연동제가 이달부터 시범운영 계획이 확정되었음에도 정책 실효성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코로나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훼손과 경제 쇼크에 따른 고물가로 중소기업계의 해당 제도 도입 요구는 커지고 있다.
'납품단가 연동제’란 원자재 등의 가격이 변동할 경우, 이를 납품단가에 반영하도록 하는 납품단가의 조정을 위한 제도를 말한다. 언뜻 보면 원재료 가격 상승에 따른 중소기업이 단독적인 부담을 지는 것을 방지하는 ‘유토피아’와 같은 정책 같아 보인다. 그러나 납품단가 연동제는 장기적인 측면에서의 부작용이 만만찮다.
그보다 우선 정책당국의 가격결정 개입에 따른 시장원리가 훼손되는 것이 우려된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납품단가가 법에 의해 원자재가격의 상승분만큼 강제적으로 인상하는 특성을 가지는 만큼, 원사업자의 독단적인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을 막는다. 그러나 동시에 수급사업자의 경쟁적 효과도 약화된다.
정책당국의 가격결정 개입은 그렇기에 필요최소한이며 최후적인 수단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다른 수단을 통해서 경쟁제한적 시장의 개선이 가능하지 않는 경우에만 개입하여야 하고, 개입하더라도 과도한 국가개입은 허용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그러한 측면에서 기존 납품단가 조정제도의 최후의ㆍ최소의 개선책인가에 대한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납품단계에서 기업의 특성이나 해당 시장의 수급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법에 의한 강제적이고 일률적인 가격결정은 경쟁 조건의 개선보다 경쟁의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에 가까운 과도한 국가개입의 결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원자재 가격 변동성 대응에 따른 거래 비용 상승 또한 우려된다. 납품단가 연동제에 의해 수급사업자에 해당하는 중소기업이 납품단가를 올리면 인상분만큼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해외기업에 대한 역차별 논란도 존재한다. 자본과 투자는 가장 효율적인 곳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정부의 가격 통제가 거칠어지면 원 사업자의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의 해외 기업으로의 ‘아웃소싱’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국내 협력업체에 더 큰 손실을 불러오는 꼴이다.
결국, 납품단가 연동제를 도입하면 국내 산업생태계가 오히려 취약해진다는 것이다. 시장가격에 대해 정부가 개입하면 보호하려는 대상이 오히려 피해를 본다는 사실이 납품단가 연동제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납품업체 간 가격이나 품질 경쟁 가능성이나 기술 혁신의 저해에 대한 우려도 피해갈 수 없다. 가격을 거래의 당사자인 시장에 맡기지 않고 정부가 직접 관여하게 되면 혁신 기업이 성장할 수 없다. 납품업체 입장에서 연동제가 시행될 경우 원가 절감 유인이 줄어들어 중소기업 혁신에 저해된다는 것이다. 정부가 적정 이윤을 보장해주겠다면 누가 원가 절감에 나서고, 혁신을 고민하겠는가. 이는 결국 납품업체 간 카르텔 형성을 부추겨 오히려 공정 거래로부터 거리가 멀어질 기회를 제공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코로나 쇼크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따른 공급망 이상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급등이 중소기업에게 큰 고통임은 부정할 수 없다. 산업 생태계에서 비교적 열위에 속하는 중소기업 차원의 납품가 인상 요구가 어려울 것이라는 사정도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그런 사유로 무리하게 법제화로써 적정 가격을 일률적으로 강제한다면 여러 부작용들이 터져 나올 것이며 정책 실효성은 더더욱 기대할 수 없다.
정부의 가격 개입이나 제도를 통한 강제가 아니라,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 간의 ‘표준 하도급계약서’을 합의 하에 작성하여 자발적으로 부응하는 기업에 혜택을 수여하는 것이 해답일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미 '하도급법 제3조의2'에 따라 표준하도급계약서를 마련하여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그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강제성이 없고 조정 신청을 할 경우,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업체에 대한 거래 단절을 우려하는 분위기로 인해 실효성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실제 협의제가 도입된 2009년 이후로 협동조합을 통한 납품단가 조정 신청 건수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그렇기에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에 대한 의견이 거세지고 있는 것도 이해가 간다.
반대로 이는 인센티브가 그만큼 매력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급사업자의 입장에서는 치솟는 납품단가를 감수하면서도 표준하도급계약서를 쓸 이유가 전혀 없다. 원사업자로부터의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원사업자로부터 먼저 표준하도급계약서를 작성하게 유도하도록 제도를 수정하지 않는가? 제도 수정도 전에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 뻔히 보이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수순이 잘못되었다.
수급사업자에게만 부당한 처우를 지우는 기존의 제도에서 한 차원 더 발전된 제도를 도입해야 할 시점이다. 원가 연동제를 스스로 시행하는 원청기업에 세제 등으로 파격적 지원을 해준다면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강제법’보다 ‘자율적 상생 노력’이 해답에 가깝다.
신유정 자유기업원 인턴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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