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 나이라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철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모두들 ‘따분한 것을 왜 이야기하냐’며 대화의 주제를 바꾸어 버리곤 합니다. 사실, 철학을 탁상공론으로만 보는 시선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습니다. 유명 인터넷 서점, Yes 24의 상위 30 베스트셀러 목록에 철학 도서가 없는 것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의 철학에 대한 부족한 관심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철학은 한 개인과 집단, 더 나아가서는 국가의 모든 활동의 기본 논리를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활동에 일관성을 부여해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하게 하며, 해당 개인이나 집단의 발전을 가능케 합니다.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철학자인 최진석 교수님은 우리도 이제는 우리 사회에 맞는 철학을 가진, ‘진리 생산자’가 되어야 한다 말씀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철학자 최진석의 ‘주체적인 삶’, 연합뉴스). 우리나라 역시 이제는 우리도 수입한 철학 대신, 자체적인 철학을 갖추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철학이 없는 국가는 뿌리가 얕은 나무처럼 크게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우리 사회 역시 최근 큰 사회 혼란을 많이 겪고 있습니다. 최근 코로나 19로 인해 다른 사회 현안들이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이 와중에도 우리 사회의 뿌리가 되는 자유시장주의를 무시하는 정책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최근,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는 수리비 상한제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습니다. 해당 방안으로, 단말기 모델별 주요 부품 AS 가격을 공시해야 한다고도 하였습니다 (‘휴대폰 수리비 상한제 도입되나’, 파이낸셜뉴스). 이들 정책들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고, 악영향만을 끼쳤던 분양가 상한제와 분양가 원가공개제도와 상당히 유사합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수많은 부동산 규제를 통해 주택 가격을 낮추려 하였지만, 결국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비민주적 시장 교란 행위 시도는 이들이 우리 사회의 근본 철학을 알지 못하거나,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현 여권이 사유재산권을 심히 침해하는 토지공개념을 들고 나온 것, 그리고 이들이 자신만만하게 이러한 정책을 추진할 수 있던 배경이 만들어 졌다는 것 역시 우리 사회의 철학의 부재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나라를 이끄는 철학을 정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과제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는 권리 장전 이후 수백 년 동안 철학을 발전시켜 왔고, 일본 역시 난학을 접하고 수 세기 동안 자신들 나름대로 이를 변형시키며 일본 고유의 철학을 만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는 철학에 투자했던 시기가 없습니다. 철학을 발전시켰다 하는 조선시대에도 철저한 중화사상에 입각해 이미 낡아버린 그들의 철학을 가지고 다투었을 뿐, 우리만의 철학을 발전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이후, 일제 강점기와 경제 발전기에는 철학에 투자할 사회적 자본이 부족했기에 투자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정할 철학을 정해야 합니다. 수많은 논쟁이 있을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입니다. 주 52시간제처럼, 국민 대다수가 원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정책이 계속해서 나올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입니다. 우리가 100년, 1000년이 가는 강국이 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입니다.
다만, 우리 사회의 학습 비용은 최대한 줄여야 합니다. 이미 실패한 사회주의 실험을 다시 한번 더 해볼 필요는 없습니다. 시장의 절대적 우월성이 드러났음에도, 다시금 정부의 영향력을 확대해 볼 필요는 없습니다. 헌법에 명시된 자유 시장주의와 자유 민주주의의 원칙을 존중하며 우리에게 맞는 방향으로 이를 조금씩 바꿔보면 됩니다.
조선 개국의 정당성을 노래한 작품, ‘용비어천가’에는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철학은 우리 사회의 뿌리를 더욱 깊게 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우리도 이제는 자유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주의를 우리 철학의 뿌리로 삼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국가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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