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혼돈과 질서로 이루어져 있다. 거대한 우주 속에서 먼지만한 지구처럼, 99.9...9%의 혼돈과 0.0...1%의 질서로 이루어져있다. 혼돈은 질서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그 규칙성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우주를 대우주로 보고 사람을 소우주로 본다면, 우리 마음도 대부분의 혼돈과 극소수의 질서로 이루어져 있다. 그 혼돈 속에서 우주가 멸망하지 않는 것처럼 인간들도 멸망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인간은 바람이 불면 눕는 풀처럼 연약한 존재인데, 어떻게 이런 혼돈 속에서 문명을 이룰 수 있었을까. 인간 속의 우주, 시장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혼돈과 질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간략하게나마 양자역학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양자역학은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으로 유명한데, 왜 그런지는 다음의 실험을 보면 알 수 있다. 양자역학에서 가장 유명한 실험은 이중슬릿실험인데, 이 실험을 통해 '어떤 것’이 입자인지, 파동인지를 판단한다. 네모난 판에 구멍을 두개 뚫어 거기에 어떤 것을 보냈을 때 흔적이 구멍의 모양을 따라 두 가지로 남으면 입자, 여러 가지로 남으면 파동으로 판단한다. 입자는 공처럼 이동할 때 한 물체가 한 곳으로만 이동하지만, 파동은 물장구처럼 물에 닿는 순간 전 범위로 동시에 이동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성질을 다 갖는 경우가 있는데, 전자가 그렇다. 설명하자면 이중슬릿에 전자총으로 전자를 보냈을 때 대량으로 보내자 파동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하나씩만 발사하자 입자현상이 나타났다. 이것이 입자인지 파동인지 분명히 하기 위해 이번에는 전자총을 하나씩 연속적으로 쏘았다. 그러자 다시 파동현상이 나타났다. 도대체 이중슬릿을 지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찰하기 위해 관찰 장비를 갖다놓자 기묘하게도 다시 입자현상이 나타났다. 단지 누군가 들여다 보기만 했을 뿐인데 결과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관찰이라는 행위 자체가 결과에 영향을 준 것이다. 그것도 파동을 입자로 바꿀만큼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
인간의 마음도 이런 파동과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느끼는 어떤 욕망이나 관심들은 모두 파동이다.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내가 진정으로 욕망하고 있는 것인지 다른 사람에 의한 욕망인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저 마음속에서 그런 욕망이 일어날 뿐이다. 하지만 내가 그 욕망을 들여다보면 무한했던 파동들은 어느 순간 하나의 실체가 된다. 그러면 내가 이것을 선택해야 하는 것인지 그만둬야 하는 것인지 분명해진다. 그런 선택의 과정을 통해 내 마음의 욕망은 차차로 분명해지고, 나의 욕망이 투영된 세계는 보다 분명해진다.
사람들의 관심으로 이루어져 있는 시장도 그렇다. 시장은 아주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관심이 모여 충돌하고 간섭을 이루면서 흔적을 남긴다. 다만 아무리 많은 사람이 참여해도 여기에는 실체가 없다. 사람들의 욕망일 뿐이기에 이리저리 부딪히고 깨어지다가 어느 순간 사라진다. 그러나 이런 욕망이라는 파동이 분명한 실체를 가지게 되는 때가 있다. 기업가라는 관찰자가 그 파동을 분명하게 들여다보면 이 욕망은 구체적인 실체가 된다. 분별할 수 없었던 수많은 파동들은 구별 가능해지고, 그 많던 파동들은 각각의 위치에 입자로 모이게 된다.
아무리 많은 수요가 시장에 생겨도 그 자체로 거래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반드시 그에 대응하는 공급자가 존재해야 거래가 일어난다. 이때 공급자는 시장이 보내는 그 무수한 파동을 계속해서 관찰해야한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파동은 입자가 되고 그것은 구체적인 거래가 된다. 모든 기업들은 그러한 파동을 관찰하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고 그 관찰에 실패하면 기업도 그 파동에 휩쓸려가게 된다.
진리가 이 세상에 빛이며 질서를 만들어가는 것처럼, 기업가의 관찰은 시장의 빛이며 질서다. 사람들의 욕망이 빚어내는 혼돈은 기업가의 관찰에 의해서 구체적인 실체가 되며 그 실체들은 다시 질서가 된다. 우리는 영원히 파동의 비밀을 알지 못하겠지만 기업가는 말할 수 없는 지식으로 시장을 만들어 낼 것이다. 기업가들이 계속해서 시장을 관찰해 내는 한 시장은 파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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