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2월 22일, 서울에 위치한 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흥미로운 강연회가 열렸다. 이 강연회의 주제는 ‘자유연애’였으며 연사는 기자·문인·승려인 일엽(一葉) 김원주(金元周, 1896~1971년)였다. 그녀는 ‘수덕사의 여승’의 모델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당시 강연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쳤다.
“결혼은 자기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며 부모 집안에서 함부로 간섭하거나 개입할 수 없습니다. 또한 결혼은 남녀가 만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제3자)이 개입할 이유가 전혀 없지요.”
이를 들은 청년들은 환호했다. 반면,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불만스러운 나머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봉건 사회의 영향과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감안하면 당연한 현상이었다. 김원주는 서울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일본 닛신학교(日新學校)로 유학까지 다녀온 이른바 ‘신여성’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당시 조선과 일본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남녀평등론’까지 주장했다. 그녀는 자유연애를 부르짖고 여성의 자유와 개방을 추구하기 위해 여성 지위향상운동을 이끌었다.
이처럼 국내 여성 운동은 일제강점기 근대성과 계몽 의식을 수용한 ‘신여성’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신여성’에는 김원주 외에도 나혜석(羅蕙錫, 1896~1948년)·김명순(金明淳, 1896년∼미상) 등이 있었는데, 특히 나혜석은 삼천리 잡지에 ‘이혼고백서’를 게재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지금 관점에서 이혼은 자연스럽고 흔하지만 그 시절엔 다소 충격적인 일이었다.
다시 말해, 그녀들은 스스로를 근대적 ‘개인’으로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 무렵 한반도에서 ‘개인’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만큼 그녀들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유교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손가락질 받으며 고통과 모욕을 감수해야만 했다.
1945년 8.15 해방 이후에도 가부장적인 풍습의 영향으로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차별 받기 일쑤였으며 시대적 고정관념에 갇힌 특정 역할을 강요받았다. 가령, 교육의 기회가 적거나 사회 진출에 있어 여러 가지 제약이 따랐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와 같은 불평등은 산업화·민주화를 거친 후에야 상당부분 해소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신여성’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의미하는 바는 적지 않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여성을 일종의 ‘계급’이 아닌 ‘개인’으로 인식했고, 그 바탕에서 성 평등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무려 한 세기 전에 이러한 주장들이 나왔다는 점에서 그녀들은 탁월한 ‘개인’들이었다. 오늘날 반드시 되돌아봐야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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