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문재인 대통령은 혁신성장을 위해선 적기조례 철폐가 필요하다고 발언한 적이 있었다. 또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도 공석에서 적기조례 사례를 예로 들며 불합리한 규제가 우리나라 경제의 역동성을 저해하지 않도록 꼼꼼히 살펴보겠다고 했다. 이처럼 공통적으로 규제 개혁을 강조할 때 적기조례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등장하는 적기조례란 대체 무엇일까?
적기조례(Red Flag Act)는 일명 '기관차량 조례’로도 불리는데, 19세기 중엽(1861년) 영국에서 시행된 법이었다. 이 법은 당시 영국 내 도로에서 자동차를 다루는 방법에 대한 것을 규정했다.1)
그런데 문제는 이 법에서 규제하는 대상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었다. 우선 차량의 무게(12톤)와 속도(16km /h, 시가지의 경우 8km /h)를 제한했으며 운전수, 기관원, 붉은 기를 갖고 차량의 60야드(약 55미터) 전방을 걷는 사람 등 총 3명으로 자동차를 운용해야만 됐다. 게다가 붉은 기를 지닌 사람은 걷는 속도를 유지하고 기수나 말에게 자동차의 접근을 미리 알릴 의무가 있었다.
심지어 1878년 개정된 법에 따르면, 붉은 기의 필요성은 사라졌지만 말들을 우연히 만나면 차량은 정지해야만 했으며 말이 놀라지 않기 위해 연기나 증기를 낼 수 없도록 조치했다. 이에 따라 아무리 성능 좋은 차량을 개발한다 해도 제한된 중량과 속도 그리고 각종 규제들로 인해 더 이상 질 좋은 자동차를 생산하는 게 어려워졌고 결국 영국의 자동차 산업 발전은 상당히 지체되었다.
그 결과 영국의 자동차 산업은 프랑스나 독일에 비해 뒤쳐지고 말았다. 뒤늦게 1896년에이르러 적기조례가 폐지되었지만 이미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격에 불과했다. 오늘날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영국의 유명 자동차 브랜드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이러한 배경이 일정 부분 작용했다.
이 사례는 산업이 온전히 시장경제와 자생적 질서에 맡겨지지 못한 채 정부의 황당한 개입과 간섭으로 경제적인 비극을 초래했던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 지금의 우리나라 역시 '적기조례'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법이나 규제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제 완화는커 녕 오히려 일부 부처에선 여전히 새로운 적기조례를 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대착오적인 규제를 되풀이해서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매우 불투명하다. 경제성장과 혁신을 달성하기 위해선 불필요한 규제를 혁파하고 나아가 시장을 가능한 자유롭게하는 것이 최선의 대책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허울만 좋은 빈껍데기 정책을 지양 하고 심도 있게 이 부분을 다뤄야 할 것이다.
1) 당시 대다수의 차량은 증기 자동차였으며 가솔린 자동차는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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