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 대재앙 경고”
“지구 구할 시간 8년 남았다.”
“1℃만 올라도 아시아 12억 물 부족”
“온난화 지속 땐 뉴욕 등 해안 도시 70% 바다 속으로”
“아열대 한반도…벼 생산 15% 줄고 홍수 피해 3배 늘어”
“6℃ 오르면 한반도 산림생물 거의 멸종”
“5월 초여름 날씨는 `지구온난화’ 탓”
정부간 기후변화협의체(IPCC)의 발표내용을 전하는 국내 매스컴의 기사 제목들이다. IPCC 제2작업반은 2007년 4월 초의 보고에서 지구가 온난화되어 평균 기온이 섭씨 1.5~2.5도 상승하면 동식물의 20~30%가 멸종될 것으로 예측했다. 한반도 역시 아열대 지역으로 변해, 벼 생산이 줄고, 홍수피해가 늘며, 산림 생물이 사라진다는 것이 환경부의 예측이다.
2월초 제1작업반(WGI)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 기온이 섭씨 0.74도 올랐다. 21세기 말까지는 최고 6.4도가 더 오르고, 해수면은 최대 59cm가 상승한다. 화석연료의 연소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탄산가스)를 비롯한 온실효과가스의 대기 중 농도 증가가 주원인이다. 이어서 5월 초의 제3작업반의 보고에서는 단기 대책과 장기 대책의 비용을 분석했다. 2030년까지 기온상승을 2.4도로 억제하려면 세계 GDP의 3%(약 2,000조 원)가 들 것으로 예측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007년 3월 1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 총회장에서 열린 유엔 국제학교 기후변화 토론 콘퍼런스에서, “지구온난화가 전쟁만큼이나 인류에게 심각한 위험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온상승으로 인해 극지방 얼음과 만년설이 녹으면, 해수면이 올라가, 몰디브, 투발루를 비롯한 섬나라와 곳곳의 저지대가 물에 잠긴다. 이상기후가 발생해 홍수와 가뭄이 빈발하며, 생태계가 파괴돼 사막이 확대되고, 농업 생산성이 줄며, 멸종되는 생물종이 늘어나고, 전염병이 빈발하는 등 인류의 종말적 위기가 다가올 것이라 한다.
그런가하면, 컴퓨터 시뮬레이션 연산에 기초한 이러한 시나리오가 과연 인류가 직면하게 될 위기의 실체인지를 의심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바람이 불면 나무통 장수가 돈을 번다”는 식의 과장된 이야기가 아닌가?
실제로 2006~2007년의 한국의 겨울은 따뜻했다. 소한도 따사했고, 쌍춘년 개띠 해의 두 번째 입춘에도 봄샘 추위는 찾아오지 않았다. 지난 100년 동안 세 번째로 따뜻한 겨울이라 했다. 돼지띠 해의 설날은 유사 이래로 따뜻한 설날이라 했지만, 예년보다 한참 늦은 양력 2월 18일이 설날이었다.
3월 초에는 어김없이 봄샘 추위가 찾아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36년만의 경칩추위라 했다. 이미 36년 전에도 경험했던 추위, 100년 동안 두 번이나 경험했던 더위인데도 불구하고, 매스컴은 `이상기후’, `지구온난화’와 연관시키기를 잊지 않는다. 4월 초에는 극심한 황사 현상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다시 영하권으로 내려갔다.
기후변동에 대해 아주 민감해진 탓일까? 원래 변덕이 심한 것이 날씨라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만 춥거나 더워도 이상기후를 들먹인다. 따사한 겨울 덕에 연탄 걱정도 덜고 감기에 덜 시달리게 된 서민들조차 덩달아 이상기후를 걱정한다. 북유럽의 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도 마치 세뇌를 당한 듯 지구온난화를 걱정한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지구한랭화를 주장하던 전문가들조차 전향하여 지구온난화를 주장하는 대열에 앞장선다.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는 마치 국제적 포퓰리즘처럼 번지고 있다.
일찍이 1997년 일본의 교토에 모인 선진국들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온실효과가스를 1990년 대비 평균 5.2% 삭감하기로 한 교토의정서를 채택했다. 그러나 앨 고어가 부통령일 당시 앞장섰던 미국이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하고 호주가 비준을 거부했다. 하지만 다른 속셈이 있는 러시아가 비준함으로써 교토의정서는 채택된 지 7년 이상 지난 2005년 2월 마침내 발효됐다. 다행이라 할까, 당시에 선진국 축에 끼지 못한 우리나라는 온실효과가스의 의무 감축국에 끼지 못했다.
미국이 탈퇴한 교토의정서가 어느 정도 지켜질까? 선진국의 온실효과가스의 배출량은 오히려 증가 일로에 있다. 경제적 타격을 불사하고 도덕을 앞세우면서 엄청난 비용을 들이더라도 목표달성은 극히 어렵지 않겠나? 지구를 살리자는 선의의 목적이, 오히려 인류의 생활수준을 저하시키며, 선진국보다는 후진국에게 더욱 큰 타격을 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온실효과가스 배출을 억제하기 위해 후진국의 발전을 막아야 하나?
교토의정서의 효과 자체에 회의적인 전문가도 많다. 온실효과가스 5.2% 삭감이란, 가령 100년 만에 올 영향을 105.2년 만에 나타나도록 5.2년 지연시키는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게다가 중국이나 인도처럼 신흥 산업국의 온실효과가스 발생량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선진국의 5.2% 삭감이 얼마나 유의적인가?
IPCC의 시나리오가 적중해 해수면이 정말 59cm나 상승하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100년 동안에 올라가는 것이다. 산술적으로 1년 평균 0.59cm에 불과한 아주 미미한 변화이기 때문에 이러한 해수면 상승을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고 멀거니 바라보고만 있을까? 지난 한 세기 동안의 기술 발전을 되돌아보면, 앞으로 100년 동안의 기술발전은 이런 정도의 리스크에는 쉽게 대처할 수 있지 않겠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인공적 이산화탄소 농도와 기온 변화 사이의 인과관계가 재검토 대상이다. 최근의 지구온난화 추세 자체는 부정하지 않지만, 이산화탄소의 인공적 방출량 증가로 인해 기온이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는 정반대로 자연적 기온상승으로 인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했다고 해석하는 전문가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산화탄소 농도와 기온상승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한 해석이 환경위기론자와 정반대인 것이다. 지금의 기온상승은 전적으로 인공적 현상이라기보다는, 태양 활동 등의 변화로 인한 자연현상의 영향이 더 크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7년에 들어와 유럽은 경쟁이라도 하듯 한층 강화된 감축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2050년까지 온실효과가스를 60%까지 삭감하겠다고 장담하기도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닐 수도 있다. 2050년이면 석탄을 비롯한 화석연료는 아직 남아있겠지만, 지금 실험장치를 건설 중인 `핵융합 발전’이 상용화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환경위기론자들이 `아니면 말고’ 식의 과장된 위기 제기로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지금 위기를 조장하는 환경론자의 대부분은 2050년이나 2100년에는 이미 존재하지 않을 것이므로, 지금의 발언에 대해 살아서 책임질 일이 없다. 그러면서도 슈나이더의 말대로, 지금 더욱 활발한 환경운동을 펼치려면, “극단적 표현을 사용해 공포의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정치적으로도 이용하고, 투자의 기회로도 활용하며, 더 많은 연구비를 챙길 수도 있다.
“기후변화는 가장 중요한 지구 정치의제가 됐다.” 코니 헤디가드 덴마크 환경장관이 2007년 4월 24일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3차 아셈 환경장관회의 개막연설에서 한 말이다. `불편한 진실’이란 영화를 만들어 아카데미상까지 받은 앨 고어는 환경 문제가 도덕 문제라면서도, 자산운용회사를 설립해 돈을 버는 동시에, 정치적 입지의 강화에도 활용한다.
`환경의 21세기’답게 지구환경 이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 수몰의 위기를 활용하는 섬나라 투발루는 국제적 원조에 의존해 부를 챙기고, 몰디브는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한다. 교토의정서에 비준했으면서도, 러시아는 시베리아 동토가 해동되기를 은근히 기대한다. 앞선 기술을 후진국에 수출해 온실효과가스 배출권을 확보하기도 하고, 배출권 시장을 만들어 일자리를 창출하기도 한다. 온실효과가스 배출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자동차의 공회전을 줄이고, 연비를 개선하며, 에너지 사용효율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사막이 확대되는 곳도 있겠지만, 농업생산량이 증가하고, 에너지 사용량이 줄어드는 지역도 있다. 환경이슈는 리스크와 함께 기회를 제공하는 양면성을 가진다.
지금 지구상에는 지구 규모의 환경이슈보다 시급한 지역환경 문제에 시달리는 후진 사회가 많다. 식량과 안전한 식수의 부족, 위생 불량, 말라리아와 에이즈 등 재래적 전염병과 신종 질병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효과가 불분명한 온실효과가스 감축에 쓸 돈이 2,000조 원이나 된다면, 후진 사회의 위생 개선, 경제 발전과 소득수준 향상을 위해 쓰는 편이 친인간적이고 친환경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선진국들은 문제의 우선순위를 망각하고 도덕을 빙자한 에코테러리즘(Eco-Terrorism)으로 패권 다툼에 몰두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은 생명활동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생물이 살기에 알맞은 수준으로 지구 기온을 유지해주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식물의 광합성 반응의 기본 재료인 이산화탄소를 느닷없이 `환경오염물질’로 지목해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지구환경 이슈를 핑계로 국제기구가 세계를 지배하고 국가가 에너지 이용에 시시콜콜 간섭하는 체제를 구축하고자 하는 책동이 과연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에 긍정적이라 할 수 있나? 무슨 일이나 억지로는 안된다는 것을 이미 구소련의 사회주의 붕괴가 극명하게 입증하지 않았던가? 2006년 말 영국의 과학잡지 <뉴사이언티스트>가 세계의 저명한 과학자 70명에게 2050년의 중요 문제를 물어본 일이 있지만, 지구온난화나 기후변화 문제는 언급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
지구온난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는 아주 다양하다. ① 지구는 온난화되고 있지 않다. ② 지구는 온난화되고 있지만 원인은 불명이다. ③ 지구는 온난화되고 있지만 원인의 태반은 자연현상이다. 또한 ④ 지구 대기현상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의해 예측할 수는 없다. ⑤ 지구온난화는 인간에게 바람직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 소책자에서는 지금 세계적 포퓰리즘처럼 번지고 있는 지구온난화 이슈의 실체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최근 발표된 많은 문헌과 서적을 참고해, 환경이슈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살펴보고자 한다.
세상에는 환경이슈를 과장해 활동의 근거를 마련하는 자도 있고, 국가 권력의 기생자로서 국가 연구비만 챙기는 자도 있으며,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내세워 겁을 주면서 이득을 챙기는 자도 있고, 문제를 기회로 활용해 해결함으로써 더욱 살기 좋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창의적인 자도 있다. 지구온난화를 비롯해 환경이슈를 도덕적 정치적 문제로 이용하는 자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경제문제에 속한다. 지금까지의 인간사회의 발전과정을 보면 가장 경제적인 수법이 가장 친환경적인 수법임을 알 수 있다. 경제가 발전한 자유사회일수록 환경이 깨끗하고, 에너지 사용 효율이 좋으며, 편리하고 편안한 삶을 더욱 오래 산다.
“인류가 직면한 최대의 도전은, 가상과 현실을 구분하고, 진실과 선전을 구별하는 일이다.” 작가 마이클 크리치톤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