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마저 감 놔라 배 놔라…사학의 정체성과 자율성 잠식하는 사립학교법
▪ 사립학교 교원 채용, 시도교육청에 필기시험 위탁 의무화하고 교육청이 교원 징계요구권까지 가져가
▪ 재정지원 받는다는 이유로 과도하게 개입…사학의 존립 이유와 정체성에 대한 정면 침해
▪ 점차 외면 당하는 학교, '공교육 위기’ 해결책은 사학 자율성 보장 통한 다양성과 경쟁 활성화
■ 들어가며
21대 국회는 사립학교의 교직원의 채용과 징계 등 학교 운영 사항과 관련해 교육청의 관할권을 더욱 강화하고 사학의 자율성을 제약하는 「사립학교법 일부개정법률안」(이하 '개정 사학법’)을 통과시켰다. 법 개정을 주도한 더불어민주당 등은 사학의 부정·비리가 구조적, 반복적으로 발생하여 교육 전체의 신뢰를 훼손하고 있다며 그 이유를 밝혔지만, 당시 야당인 국민의힘과 사학에서는 사실상 사학을 탄압하고 억압하는 법안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사학은 말 그대로, 사인인 개인 또는 법인에 의해 설립된 학교법인을 말한다. 따라서 사학 운영에 대한 1차적 권리는 당연히 사학을 소유한 학교법인과 그 이사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한국 사학은 법에 의해 높은 수준의 공공성이 요구되고 있으며, 정부로부터 폭넓은 지원과 관리를 받고 있고, 사실상 공교육과 다름 없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늘 사학에 대한 정부의 개입 범위를 두고 갈등이 반복돼 왔다.
다만, 21대 국회에서 통과된 개정 사학법은, 교원 채용과 징계라는 사립학교의 '인사권’을 정면으로 통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사학에 대한 소유권에 기반한 자율적 권리를 중대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법은 엄밀히 말해 경제 질서에 관한 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한국사회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사학에 대한 소유권 및 운영 권한에 관한 논쟁은, 우리 헌법상 사유재산권과 사적 자치의 원칙에 있어 중요한 함의점을 갖는다. 학교법인 역시 일정한 목적을 위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으며, 재산을 획득하거나 처분하는 등 경제활동을 영위할 수 있다. 이러한 학교법인에 대해 공공성을 이유로 정부가 어느 수준까지 의사결정에 개입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인지 따져보는 것은, 민간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 규제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 주요 내용
개정 사학법에 반영된 벌률 개정 내용은 총 20가지 사항으로, 전반적으로 학교 운영에 대한 규제와 감시 기구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 전 사학법과 개정 사학법을 비교함으로써 그 내용을 살펴보자.
전반적으로 법안 개정의 내용을 분류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다.
① 관할청의 인사 관련 권한 대폭 확대
기존의 사학법은 관할청의 인사권 관할 범위가 주로 학교의 장을 대상으로 하였던 것과 달리, 개정 사학법은 관할청이 직접 교직원과 사무직원 등 사학의 구성원에 대해서도 직접적으로 징계 요구 등을 통해 인사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학교법인 차원에서 일부 교직원이나 사무직원의 비위를 눈감아주거나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기존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한 입법 의도로 보인다.
② 채용절차의 자율성 제한
개정 사학법은 공개전형으로 실시되는 고등학교 이하 각급 학교 교원(교장 제외)의 신규채용에 반드시 필기시험을 포함하도록 하고 있으며, 필기시험은 시도 교육감에게 위탁하여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시도 교육감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는 필기시험을 포함하지 아니하거나 시도 교육감에게 위탁하지 아니할 수 있다.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지 않은 일부 특수한 학교의 경우는 제외된다.
이처럼 필기시험과 교육청 위탁 실시를 의무화한 것은, 사립학교 교원 채용에서 불거지는 부정 청탁, 불공정 채용, 낙하산 공채 등을 원천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③ 학교운영위원회, 학내 구성원 등의 참여 확대 및 성평등 제고
회계 예결산 관련 자문구 기였던 학교운영위원회를 심의기구로 격상한 점, 사립대학 기금운용심의회의에 교원·직원·학생이 각각 2명 이상 참여하도록 한 점, 교원징계위원회에 학부모가 반드시 1명 이상 참여하도록 한 점 등은 모두 사립학교 운영과 관련한 의사결정에 법인의 임원 외 인사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입법 사항에 해당된다.
아울러, 교원징계위원회 구성 시 특정 성별을 가진 위원이 10분의 6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가급적 징계위원회의 남녀비율을 동등하게 해야 된다는 일종의 '성평등’ 가치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전교조 측에서 이러한 개정 내용과 관련해 “학교 내 성비위사안 징계의 경우 특정 성별의 목소리만 지나치게 반영되어 가해 행위자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등 제대로 된 징계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지적한 점에 비춰봤을 때, 주로 남성으로 구성된 징계위가 남성 교직원의 성비위 사건에 대해서 미온적인 징계를 내린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개정 사항으로 풀이된다.
■ 법률안 개정 과정과 처리 현황
본 개정 사학법 처리 과정에서 여야는 극심한 대립 양상을 보였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본 법안이 사학의 자율성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이른바 '학교의 정치화’가 우려된다며 반대 입장을 보였다. 2021년 8월 19일 소관상임위원회인 교육위원회에서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은 사립학교법의 일방 처리를 반대한다며 안건조정위원회 회부와 공청회 개최를 요청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유기홍 교육위원장은 공청회 개최 필요성은 인정하지 않았으며, 국회법상 안건조정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했다. 이날 오전에 교육위원회 회의는 잠시 중지됐고, 같은 날 저녁에 바로 안건조정위원회가 구성돼 국민의힘 소속 안건조정위원들은 퇴장한 상태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사립학교법을 처리했다.
국회법상 제1교섭단체 소속 의원과 그 외 교섭단체 소속 의원의 숫자를 동수로 하도록 돼 있지만, 당시 야당 소속으로 분류된 강민정 의원의 소속은 열린민주당으로 사실상 더불어민주당과 정치적 행보를 맞추는 당이었다. 즉, 여야 비율은 3:3이었으나 사실상 4:2의 구도에서 법안이 통과된 것이다. 안건조정위원회를 통과한 개정 사학법안은 같은 날 밤 9시 경에 교육위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의원은 출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법안이 통과됐다.
2021년 8월 25일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앞서 「사회서비스 지원 및 사회서비스원 설립․ 운영에 관한 법률안」과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야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해 역시 더불어민주당 등이 출석한 상태에서 개정 사학법을 처리했다.
2021년 8월 31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개정 사학법을 최종 처리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이 국회법 제63조의 2에 따라 전원위원회를 구성, 법사위를 통과한 사학법에 대한 수정안을 제출했다. 수정안은 주로 개정 전 기존의 사학법 내용을 재반영하고 있으며 개정 사학법에서 신설한 여러 규제 및 감시장치 조항들을 삭제했다. 또한 필기시험 실시 및 시도교육청 위탁을 의무가 아닌 임의 사항으로 바꿨다. 이 수정안에 대한 정경희 의원은 다음과 같은 제안설명을 하였다.
수정안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자유토론을 신청해, 수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국회법에 따라 먼저 수정안에 대한 표결이 진행됐고, 재석 206인 중 찬성 67인, 반대 139인으로 부결됐다. 이어 개정 사학법(원안)이 표결에 부쳐졌고, 재석 212인 중 찬성 139인, 반대 73인으로 가결됐다.
법이 통과되자 사학에서는 즉각 반발의 목소리를 냈다. <대한사립학교장회>는 2021년 9월 1일 성명서를 발표, “국가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칠 이러한 반헌법적 위법적 법안이 한시적 정치세력의 편향된 인식으로 졸속처리된 것에 심각한 우려와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앞서 교육위에서 법안이 통과됐을 당시에는 “학교법인 이사회 기능을 무시하는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기구화 강제, 신규교원 채용의 교육청 강제 위탁, 교원의 인사권과 징계권까지 교육청이 관여케 하는 사태에 직면한 것에 참담한 심정과 우려를 금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 법안 평가
1. 사학 정체성 부정하는 과도한 정부 개입
한국의 공교육은 학습권자인 학생과 학부모가 학교 및 교사를 온전히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체제가 아니며, 사실상 사립학교 학생들도 공립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은 환경에서 유사한 교육과정을 밟는다. 따라서 한국의 초중등교육에서 사립학교는 사립과 공립의 어중간한 중간 지대에서 불분명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사학에서 벌어지는 여러 부정부패와 비리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와 처벌이 환영 받는 이유 역시 이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학은 엄연히 개인 또는 법인이 직접 재산을 출연해 설립한 학교로서, 운영의 주체는 이사장을 포함한 학교 이사회이다. 본래는 학생의 선발과 교육과정 편성, 재정 운용 및 수익·장학 사업, 교원의 채용과 인사 등에 대해서 자율적 권한을 갖고 학교를 운영하도록 하는 것이 사립학교 설립의 취지에 맞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적용된 '평준화’로 인해 학생 선발권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졌고, 정부의 강력한 통제 하에 교육과정 편성이나 재정 운용도 모두 자율성이 퇴색됐다.
그런 가운데, 그나마 사학이 행사할 수 있었던 '인사권’까지 이번 개정 사학법에 의해 심각히 위축된 것이다. 사학에 소속된 교원은 어디까지나 법인 소속의 '직원’일 뿐이며, 공립학교 교원의 공무원에 해당되지 않는다. 사학 설립 정신과 교육 철학에 따라 얼마든지 차별화 된 교원을 채용하고 양성할 권한이 사학에 주어져야만, 비로소 사학이 공립학교와 교육의 질 차원에서 경쟁을 할 수 있게 된다.
필기시험을 의무화하고, 시도교육청에 반드시 필기시험을 위탁하도록 한 점은, 교원의 채용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인사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징계와 재심의 등에 있어서도 교육청의 개입 범위를 확대해 학교법인 자체적인 교원 평가권이 후퇴했다. 시도교육청이 징계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 사학 교직원이 학교의 장이나 이사회 외 외부 교육청에 더 의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사실상 민간 기관인 사학 내에서의 각종 갈등과 불신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사학의 자율성 강화는 물론 교육 시장의 경쟁 활성화 필요
최근 급격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기술 혁신과 사회 다변화에 따라, 공교육이 제공할 수 있는 지식의 범위와 양은 절대적인 한계를 맞이하고, 국민의 공교육에 대한 불신 역시 커지고 있다. 20세기부터 지속된 획일화 된 교육과정 내에서는 창의적 인재를 길러낼 수 없다는 '공교육 위기론’은 이미 팽배해 있다.
본래 사학은, 공교육을 대체하는 별도의 교육 기관으로서 출발한 것이며, 심지어 공교육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던 시대에 사학이 사실상의 공교육 기능을 수행한 적도 있다그런 의미에서 사학은, 다시 강력히 요구되는 교육의 다양성, 자율성, 역동성을 충족할 수 있는 매우 매력적이며 적합한 기관이다학생과 교원의 선발과 교육과정 편성 등 사학이 보다 자유롭게 운영될 수 있도록 여건을 제공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 교육을 다변화시킬 수 있는 방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철웅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7년 3월 <월간교육>에 기고한 글에서 “4차 산업혁명이 전개되는 오늘날 더 이상 획일적 사고방식을 양산하는 공교육을 유지해서는 안 된다. 대량생산이 아니라 개별화된 맞춤형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도 국가 주도가 아니라, 국가와 사적 주체인 학교법인이 경쟁하는 체제로 가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공교육이 국민과 기업의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근본 이유는, 바로 교육 기관 간에 경쟁 질서가 존재하지 않아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할 유인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사학에 자율성을 부여해, 사학이 다양한 수단을 통해 공교육과 경쟁을 벌이고, 사학 간에도 뛰어난 학생과 교원 유치, 우수한 인재 배출을 두고 경쟁을 벌이면 결국 그 혜택은 교육 소비자인 일반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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