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대 국회를 향한 제안] 월급루팡 방지법

윤주진 / 2024-01-30 / 조회: 2,940


vol 13 월급루팡 방지법_22대 자유 입법 과제.pdf



노동개혁 1순위는 노동시장 유연화, 저성과자 통상해고 규정 마련해

• 근로기준법 23조가 말하는 해고의 '정당한 이유'는 추상적으고 모호해서 예측가능성 부족

 '해고는 살인' 감정적 구호에 묻혀, 경직된 고용시장 해소하는 해고 유연화 개혁 지연

 징계해고 외 통상해고 통한 저성과자 해고 가능해야 기업의 일자리 창출도 활성화


◈ 자유기업원은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경제·기업 분야를 비롯해 정치·사회·교육·문화·외교안보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22대 국회가 자유주의 가치에 입각하여 추진해야 할 22대 입법 과제를 선정해 제안합니다.


■ 들어가며

노동계에서는 흔히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구호를 외치곤 한다. 실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외환위기 당시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에 대한 기억 등이 '해고=살인’ 정서를 강하게 뒷받침한다. 반면, '누구에 대한 해고인가’라는 질문을 붙였을 때는 반응이 엇갈린다. 노동개혁 논의가 한창이던 2016년 2월, <매일경제>와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성과가 낮은 직원에 대한 해고에 대해 찬성 48.3%, 반대 42.5%로 찬성 측이 다소 우세했다. 응답 기업 70%가 저성과자 일반해고 지침 시행을 지지한다는 조사도 있었다.


2010년대 초반, 한국 사회에 '월급루팡’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직무 태만, 근무 중 딴짓을 하면서 회사에 기여 없이 월급만 받아가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 말에는 이미, 불량 직원에 대한 제재 조치가 쉽지 않음을 내포한다. 해고나 징계가 어려워 결과적으로 아르센 뤼팽처럼 월급을 훔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월급루팡에 대한 해고는 현실적으로 어려울까? 이른바 '저성과자 일반해고’가 바로 이 문제와 관련된 노동개혁 주제다. 현행 법 제도의 내용과 문제점, 입법 대안을 살펴보도록 하자.


■ 주요 현황과 현행 제도의 문제점

해고는 법리적으로 크게 다음과 같이 세 유형으로 나뉜다.

정리해고는 그 적용 기준과 적절성 여부에 대한 판단이 비교적 객관적이다. 반드시 도산과 같은 급박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인원삭감이 경영 여건상 합리적이라고 판단되는 경우 정리해고를 인정하는 것이 사법부의 입장이다. 경영상 필요성의 범위를 비교적 넓게 해석하는 편이다. 다만, 사전 해고 회피 노력과 합리적인 해고 대상자 선정, 정리해고 50일 전 노동조합 대표자에게 통보 이행 등이 인정 요건이다.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 문제는 주로 통상해고와 징계해고의 불분명한 경계와 구별 기준에서 비롯되는 사안이다. 관련 조항인 근로기준법 23조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근로기준법은 통상해고와 징계해고의 정확한 개념을 법조문을 통해 명시하지 않고 있다. 해고를 할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통상해고와 징계해고를 모두 실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저성과는 정당한 이유에 해당할 수 있을까? 취업규칙과 단체협약 상에서 저성과 근로자에 대한 징계 실시 근거 조항이 마련돼 있으며, 저성과의 수준이 매우 중대하여 해고 외에는 별다른 수단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에 비로소 저성과에 대한 징계해고가 가능하다.


하지만 단순히 취업규칙 상에 저성과자에 대한 징계해고 규정을 마련했다고 해서 그 효력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먼저 해당 직원이 업무 능력을 개선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여야 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통념상 도저히 고용관계를 지속하기 어려울 정도로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돼야만 비로소 법원은 저성과 징계해고 정당성을 인정한다. 교육 및 상담 프로그램 실시, 업무 재배치 등 사측의 노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저성과 해고는 대부분 인정받지 못한다. 저성과로 인정되는 기간 역시 3년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입장이다. 2년 연속, 연 2회 진행되는 근무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은 근로자에 대한 해고는 부당하다는 판례가 있다.


취업규칙상 저성과 징계 규정이 없는 경우에는 통상해고에 의존해야 한다. 직무능력이 현저히 부족하거나, 동료 직원과의 잦은 불화, 협업이 어려운 성품 등을 이유로 기업은 해고를 실시할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사유가 근로기준법 23조가 의미하는 '정당한 이유’에 해당하는지는 별도의 문제다. 무엇보다도 '정당한 이유’의 입증 책임은 사용자 측에 있다. 따라서 평상시 해당 근로자의 저성과 실상을 파악하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 자료와 기록 등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그리고 징계해고와 마찬가지로 근로자에게 충분한 근로 능력 개선의 기회를 부여해야 할 의무도 존재한다.


문제는 결국 근로기준법 23조상 '정당한 이유’의 기준이 모호하며, 대부분 판례에 의존해 개별적으로 판단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객관적 판단 기준이 부재하므로, 해고를 당한 근로자가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내거나 기업을 상대로 해고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하여 해고 결정이 뒤집히고 밀린 급여와 위자료를 지급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저성과의 원인은 다양하다. 절대적인 역량 부족도 작용할 수 있지만, 근로자의 의도적 태만에 따른 저성과의 경우에도 기업이 마땅한 조치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점을 간파한 일부 근로자는 근로 역량 개선에 비협조적으로 임한다.


■ 기존 입법 논의 및 대안

저성과자의 통상해고를 보다 유연하게 하기 위한 노력은 박근헤 정부 당시 노동개혁 일환으로 발표한 '양대지침’이라는 것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2016년 1월 고용노동부는 《공정인사 지침》을 발표한다. 근로기준법은 현행 그대로이나, 현장 적용에 대한 정부 가이드라인을 변경해 발표한 것이다. 이 지침은 징계사유가 없는 경우에도 통상해고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당시 정부는 이 지침을 통해 기존에 존재하지 않은 통상해고가 새롭게 도입된 것이 아니며, 단지 기준과 유형을 명확히 하여 현장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사실상 이 지침은 통상해고 요건을 보다 넓게 인정하자는 노동개혁의 상징적인 조치로 평가 받았다. 하지만 결국 기본법인 근로기준법의 개정까지 이어지지 않아 사법부 다툼으로 가게 되면 해당 지침이 인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다수에 의해 제기됐다.


해당 지침은 1년 8개월 뒤인 2017년 9월, 문재인 정부에서 공식 폐기됐다. 취업규칙 작성・변경 심사 및 절차 위반에 대한 수사 시 근거 지침이 되어온 「'16년도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도 함께 폐기되면서 고용노동부가 공식 채택하는 기준은 2009년도에 마련된 지침으로 회귀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과 함께 3대 개혁과제 중 하나로 노동개혁을 전면으로 내세우면서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에 관심이 집중됐다. 하지만 해고 이슈는 여론 민감도를 고려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지 않는 상황이다. 국정 과제 전반을 관장하는 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에서 2022년 7월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고용·노동 분야 덩어리과제(규제)》는 '해고 사유 확대’를 담고 있으나,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논의 사항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사용자 측을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022년 12월 67건 규제 혁신과제 중 하나로 '해고 사유 명확화 및 경영상 해고 요건 완화’를 제안한 바 있다. 자유기업원은 2023년 3월 김형동 국회의원 등과 공동 개최한 세미나를 통해 '이직과 해고를 쉽게’하는 것이 윤석열 정부가 당면한 시급한 노동개혁 과제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국회 차원의 근로기준법 개정 움직임은 해고 가능 사유를 더 엄격하게 하는 '규제 강화’에 주로 집중돼 있으며, 저성과자 등에 대한 통상해고를 보다 유연하고 용이하게 하는 법 개정 움직임은 18대 이후 국회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 22대 국회를 향한 제안

'해고를 쉽게 한다’는 것은 일견 노동자의 권익과 직업 안정성을 해치는 조치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해고가 용이할수록 오히려 일자리 기회가 많아지고 기업의 역동성이 늘어나 결과적으로 노동자에게 유리한 결과로 이어진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근로자수 100인 이상의 외국인 투자 기업 200개사를 상대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본사가 위치한 국가에 비해 한국의 노동시장이 경직적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는 답변이 그렇지 않다는 답변에 비해 2.7배 많았다. 아울러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에 있어 가장 큰 리스크 요인에 대해서는 '고용유연성 부족(해고·파견규제 등)’이라는 답변이 34.%로 1위를 차지했다. 국내외적으로 경직된 고용 법제에 대한 우려가 팽배하다.

무차별적 해고 남용은 당연히 사회적으로 부적절하다. 사용자와 근로자 간 신뢰관계를 떨어뜨리고 국민 경제 기반이 불안정질 우려가 있다. 다만 기존과 같이 근로기준법 23조의 '정당한 이유’라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에 기대어 통상해고와 징계해고가 이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근로기준법 23조를 보다 명확히 하여 불필요한 법적 분쟁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기업의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객관적으로 사회통념 위반의 정도가 분명한 각종 비위, 일탈, 반사회적 행위가 아닌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 규정을 신설함으로써 명확성의 원칙을 제고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예컨대 근로기준법 23조의 2를 신설하여,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 근거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다. 저성과자 판단의 기준, 대상자 선정 절차, 근로능력 개선을 위한 기업과 근로자의 노력 의무 등을 담은 시행령을 운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현재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결과 실효성이 부족한 정부 지침이나 판례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실질적으로 업무 기여도가 없거나, 근로 개선의 의지가 없는 월급루팡은 기업에만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다. 동료 근로자의 업무를 가중시키며, 역량과 의지를 갖춘 근로 희망자의 기회를 가로막아 사회 전체 효율을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세계경제포럼(WEF) 기준 노동시장 유연성 평가 부문에서 한국은 OECD 37개국 중 35위를 차지했다. 한국경제학회가 2022년 3월 실시한 경제토론 설문 결과에 참여한 경제학자 31명 중 25명(80%)이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 필요성에 공감했다.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의 가장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수단은, 해고를 용이하게 함으로써 채용 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기업은 결국 근로자를 필요로 한다. 해고가 어려워질수록, 기업은 비정규직 채용을 선호하게 돼 양질의 일자리도 위축될 우려가 있다. 22대 국회는 해고에 대한 선입견을 극복하고, 자유로운 노동시장 확보를 위해 근로기준법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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