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결권, 11월 시행 예정...발행요건 완화하고 경영자 배제 문턱 낮춰야
▪ 국내 '복수의결권주식’ 발행 최초 도입…34개월 진통 끝에 가까스로 국회 통과, 벤처업계 '환영’
▪ 이미 지분이 현저히 희석된 창업주는 제도 활용 불가능, 제도 취지 안 맞는 미비점 보완 필요
▪ 향후 경영권 방어 수단 확대 마중물 역할 기대, '실보다는 득 많다’ 공감대 형성 돼야
■ 법률 개정안 내용
2023년 4월, 21대 국회는 비상장 기업 창업주 주식 1주에 최대 10개 의결권을 부여하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켰다. 이른바 '복수의결권’ 도입 법안이다. 2020년 6월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초 법안을 발의하고, 같은 해 8월 이영 미통합당(現 국민의힘) 의원, 12월 문재인 정부가 법안을 발의한 후로 약 34개월 만에 국회 문턱을 넘었다. 20대 국회가 미처 풀지 못한 숙제를 21대 들어 풀었다. 이 법이 복수의결권을 인정하는 대상, 범위, 조건은 비교적 엄격하다. Q&A 형식을 빌어 내용을 살펴보자.
Q. 이 법은 왜 필요한가?
벤처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창업자의 철학, 경험, 회사에 대한 애정이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외부의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창업자가 대주주로서의 권리를 상실해 경영권이 흔들릴 위험이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창업자 보유 주식에 대해 보다 많은 의결권을 인정해줄 필요가 있다. 벤처기업 성공과 외부 자본과의 시너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벤처 투자는 장려돼야 한다. 지분 희석에 따른 지배권 상실을 방지하면서, 동시에 대규모 투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복수의결권주식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Q. 누구에게 복수의결궈주식을 발행할 수 있는가?
주식회사인 벤처기업의 설립 당시, 상법이 정한 규정에 따라 작성된 정관에 기재된 발기인이어야 한다. 즉, 창업주를 의미한다. 아울러 복수의결권주식을 발행하는 시점에 회사의 상무에 종사하는 이사여야 한다. 만약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았다면 형의 집행이 끝나거나 면제된 날로부터 2년이 지나야 한다. 주식회사 설립 당시부터 가장 최근의 투자를 받기 전까지 30% 이상의 지분을 계속 보유한 최대주주여야 한다. 단, 다수의 창업주가 '공동창업’을 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지분 합산 50% 이상을 설립 당시부터 가장 최근의 투자 시점까지 계속 보유하고 있으면, 각각의 창업주에게도 복수의결권주식을 발행할 수 있다. 가장 나중에 받은 투자로 인해서 더 이상 3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가 아니어야 한다. 즉, 투자유치로 지분율이 30% 미만으로 떨어졌을 때 복수의결권주식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Q. 외부 투자를 받은 모든 벤처기업이 해당 되는가?
특수관계인으로부터 투자를 받은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 아울러 일정 금액 이상을 투자 받은 기업이어야 한다. 특수관계인의 범위와 투자액 기준은 대통령령을 따른다. 이 기준을 둘러싸고 벤처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오는 11월 시행 전까지 시행령이 마련될 예정이다.
Q. 최대 얼마나 많은 의결권이 인정되는가?
복수의결권주식의 의결권의 수는 1주마다 1개 초과 10개 이하로 정관을 통해 정할 수 있다. 단, 복수의결권주식의 존속기관을 변경하기 위한 정관개정, 이사의 보수와 책임 감면 사항, 감사(감사위원회위원)의 선임 및 해임, 자본금 감소 결의, 이익배당과 상법상 회사의 해산을 결정하는 경우에는 복수의결권주식도 1주당 1개의 의결권만 행사할 수 있다.
Q. 한 번 인정된 복수의결권주식은 계속 유효한가?
① 복수의결권주식의 존속기간이 지난 다음날 보통주식으로 전환된다. 법규상 최대 존속기간은 10년이다.
② 상속하거나 양도한 경우에는 더 이상 복수의결권주식이 아니다.
③ 창업주가 이사의 직을 상실한 경우에 보통주식으로 전환된다.
④ 증권시장에 상장이 된 날로부터 3년이 지난 날 보통주식이 된다.
⑤ 공정거래법상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되거나 그 계열회사로 편입되면 보통주식이 된다.
✓ 여기서 주목할 점은, 존속기간의 만료일 다음날과 증권시장 상장일로부터 3년이 지난 날 중 더 가까운 시점에 복수의결권주식은 보통주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Q. 창업주는 어떻게 복수의결권주식을 취득하는가?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주주총회에서 복수의결권을 창업주를 대상으로 발행한다. 만약 주주총회에서 총주주의 동의를 얻으면 창업주는 본인이 보유한 보통주식을 납입하고 대신 복수의결권주식을 취득할 수 있다. 1명의 주주라도 반대하면, 창업주는 부득이 금전을 납입해야 한다.
■ 법률안 개정 과정과 처리 현황
이 법은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 체계자구심사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한 차례 '계류’ 결정이 난 바 있다. 2023년 3월 27일 여당인 국민의힘과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법안 처리에 합의했으나 시대전환 소속 조정훈 의원이 '나홀로 반대’를 해 결국 법안 처리에 실패했다. 합의제를 중시하는 상임위의 관행에 따른 결과다. 법사위 법안 처리가 불발되자 벤처기업협회, 코라이스타트업포럼 등이 소속된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이튿날, 유감 표명에 나서며 법안의 시급성과 필요성을 강변했다. 당시 협회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내놨다.
공은 다시 국회로 넘어왔다. 한 달 뒤인 4월 26일 법사위는 다시 전체회의를 열어 이 법을 가결했다. 그 날 조정훈 의원은 출장 관계로 불참했다. 다음 날,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이 법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계속됐다. 8명에 달하는 의원이 이 법의 토론에 나섰다.
격렬한 찬반토론 결과, 이 법은 173인의 찬성, 44인의 반대, 43인의 기권 끝에 본회의를 통과했다. 다른 쟁점법안과 달리, 이 법은 더불어민주당 당내 의견 대립이 더 부각됐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 법안 평가
1. 경영권 방어 수단 확대 마중물 상징성
복수의결권주식은 차등의결권주식의 한 종류다. 주식 1개에 2개 이상의 의결권을 인정하는 복수의결권주식과 반대로, 1개 미만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부분의결권주식'이 있으며, 지분율에 관계 없이 거부권이 부여된 황금주, 보유 기간에 따라서 의결권을 차등적으로ㅜ여하는 테뉴어 보팅 등이 있다. 의결권이 부여되지 않는 '무의결주식'도 존재한다.
차등의결주식 제도는 개방된 자본시장 속에서 공격적 투기 자본의 경영권 위협과 적대적 M&A로부터 기업 경영권과 지배주주의 회사 지배력을 방어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폭넓게 도입돼 있다. 미국의 구글, 페이스북, 링크드인, 드롭박스, 버크셔 해서웨이 등 유수의 기업들이 차등의결권주식을 발행했다. 중국의
알리바바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샤오미는 홍콩증권거래소 사장 시 복수의결권주식을 발행했다.
OECD 36개 가입국 중 17개 국가에서 차등의결권주식을 인정하고 있다. 자본시장이 발달한 나라일수록 차등의결권주식의 종류가 더욱 다양하다.
한국의 상법은 “의결권은 1주마다 1개로 한다.”는 제369조 1항을 통해 '주주평등의 원칙’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으며 이는 1962년 최초 도입된 이래 계속 유지돼 오고 있다. 경제계와 일부 정치권에서 차등의결권 도입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으나 이른바 '재벌 지배력 강화 우려’ 목소리에 가로막혀 진전이 없었다. 그러던 중 한국의 유명 유통 회사 '쿠팡’이 한국이 아닌 미국의 증시 시장에 상장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국내 차등의결권 도입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쿠팡은 상장과 함께 1주당 1표 의결권이 부여된 클래스A 보통주보다 29배의 의결권이 부여된 클래스B 복수의결권주식을 발행했다. 클래스B 복수의결권주식은 창업주인 김범석 의장에게만 발행했다. 이를테면 지분 1%로 29%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 밖에도 클래스C부터 클래스J에 이르는 8개의 다른 종류의 주식도 발행했다. 비상장 벤처 기업을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복수의결권주식을 인정한 것은, 향후 국내 차등의결권주식 제도 확대의 물꼬를 텄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상장 비벤처 기업’(예컨대 대기업)의 복수의결권주식 발행 반대의 벽은 여전히 높다. 재벌 특혜, 꼼수 상속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높다. 다만 복수의결권 도입 후 그 효능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됨에 따라 '확대론’이 힘을 받을 가능성 역시 점쳐진다.
2. 현실과의 괴리 한계, 명확한 시행령과 추가 법개정으로 보완해야
① 이미 지분이 많이 희석된 창업주에게는 '그림의 떡’
이 법은 마지막 투자 전까지 창업주가 3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인 경우에만 복수의결권주식을 취득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미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30% 미만으로 지분율이 떨어진 경우에는 복수의결권 제도를 활용할 수 없다. 지분 희석이 이미 진행 돼버린 벤처기업 창업주는 복수의결권주식의 효과를 누리지 못하는 제도의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규정에 따라 복수의결권 제도에서 배제되는 대표 기업이 바로 '컬리’다. 창업주 김슬아 대표의 보유 지분은 6.25%이기 때문이다. 유니콘 대열에 합류한 팹리스 반도체 기업 '파두’, 핀테크 스타트업 '토스’도 마찬가지다. 복수의결권주식을 발행 요건 완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② 상장 시 3년 후 보통주로 전환… 지배구조 혼란, 창업주 경영권 리스크 증대
정부는 벤처기업의 상장 회피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3년의 보통주 전환 유예 기간을 뒀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3년 후 창업주의 의결권은 축소되고, 복수의결권주식의 비중에 따라 지배구조의 근본적 변화가 닥칠 수 있다. 또 창업주는 증시 상장에 대비해 틈틈이 보통주를 매입해 경영권 방어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창업주가 자체 자본금을 추가로 납입해야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창업주의 사업 자금 '돈맥경화’를 풀어주고자 하는 법안 취지에 맞지 않다. 벤처업계는 이 부분에 대한 법 개정을 희망하는 분위기다.
③ 설립 후 인수합병‧투자 등으로 실질적으로 기여한 경영자 배제 아쉬움
이 법은 설립 당시 발기인에 한해 복수의결권주식을 발행하도록 제한한다. 따라서 설립 이후의 실질적 경영자에게는 복수의결권주식을 발행할 수 없다. 경영 악화로 인해 다른 기업인에 의해 인수합병 되는 경우, 창업주의 갑작스러운 유고로 상속‧양도에 의해 지배구조가 바뀌는 경우는 모두 해당되지 않는다. 기업을 성장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방어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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