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정안의 배경과 초점
법무부는 급여소득자 등 정기적 수입이 있는 채무자에 대하여는 파산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도 채무를 조정할 수 있는 개인회생제도를 도입하는 것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안 (이하 “통합도산법”)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동 법률안은 처음에는 IMF경제위기 이후 양산된 부실기업을 정부가 주도적으로 효율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할 목적으로 제정하고자 노력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개인신용불량자들이 급증하면서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채무자들에게도 경제활동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국가경제를 위하여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법무부가 금년 9월 동법안을 제출하게 된 것이다.
물론 우리 정부는 그동안 부실기업의 회생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고자 관련법인 회사정리절차법, 화의법, 파산법 등을 1998년, 1999년, 2001년 등 3차례에 걸쳐 개정한 바 있다. 그리고 개인신용불량자들의 경제활동을 돕기 위하여는 신용불량자와 금융기관들이 사적인 합의를 통해 신용불량자의 채무상환기간을 연장하거나 연체이자를 감하여 주는 개별금융기관신용회복지원, 배드뱅크, 개인워크아웃 제도가 있는데 이러한 사적해결이 불가능할 경우 법원이 처리할 수 있는 개인회생제도와 개인파산제도를 운영하여 온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채무자회생 및 파산제도가 해당 법률들 간의 적용대상이 다르고, 회생절차도 회사정리절차와 화의절차로 이원화되어 있는 등 형평성이나 효율성의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평가에 따라 이들 법률들을 단일 법률로 통합하고, 회생절차 중에 있는 기업에 대한 감독강화방안 등을 마련한 일명 통합도산법을 제정하고자 하고 있다.
개인신용불량자와 관련하여서는 급여소득자 등 정기적 수입이 있는 채무자에 대하여는 파산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도 채무를 조정할 수 있는 개인회생제도를 도입하여 파산선고로 인한 사회적?경제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고, 국제화 시대에 부응하도록 국제도산에 관한 규정을 신설하며, 기타 현행 도산법제의 운영상의 문제점을 시정하려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논란의 소지가 있는 것은 채무자의 채무를 탕감해주는 것은 결국 채권자가 재산권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채무자의 채무탕감만큼 채권자의 재산상의 손실이 있거나 당해 손실분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이루어 져야 한다는 점이다. 결국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현상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는가 하는 점이 동법안의 타당성 여부의 검토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II. 법안의 주요내용 및 검토
1. 논점
금번 통합도산법안의 주요내용은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화의제도를 폐지하고 기업의 회생 및 파산절차로 이원화하고자 하는 것과, 봉급생활자와 자영업자 등과 같은 계속적?반복적 수입이 있는 채무자의 파산을 방지하고 경제적 회복을 위하여 개인채무자회생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법무부는 동 법안이 UN협약 등을 모델로 하고 있어 국제정합성 차원에서 볼 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채무자회생 및 파산은 결국 채권자의 재산권포기를 통한 채무자의 회생이라는 점에서 국가경제와 채권자의 재산권이라는 양자의 이익을 형평하게 고려하여 다룰 필요성이 있다. 지나치게 국가경제만을 고려하면 국민의 기본권인 재산권의 침해가 발생할 수 있으며 또한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반면에 채무자의 회생 및 파산을 허용하지 않는 경우 경제활동인구와 회생가능성이 높은 기업이 사장되게 되어 장기적인 안목에서 볼 때 우리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번 통합도산법안은 이러한 양자의 이익을 충분히 고려하여 제정되어야 할 것이다.
2. 회생절차개시신청
우선 동법안의 내용 중 회생절차개시 신청과 관련하여 개인뿐만 아니라 법인도 변제불능 또는 파산의 원인인 사실이 생길 염려가 있는 때에 할 수 있도록 하고, 또 염려시 자본의 10% 이상에 해당하는 채권을 가진 채권자 또는 10% 이상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주주 또는 지분권자에게도 신청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주식회사나 유한회사가 아닌 채무자의 경우에는 3,000만원 이상의 채권자도 회생절차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안 제35조).
이와 관련하여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동 법안은 종래의 과태파산죄에 해당하는 행위 중에서 “낭비”와 “현저하게 불이익한 조건으로 채무를 부담하는 행위”는 개념이 모호하고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가 있으므로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는 이유로 삭제하는 등 채무자의 회생절차개시에 관한 판단의 범위를 대폭 축소한 반면, 상기와 같이 자본의 10%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채권자나 주주, 그리고 개인채무자에 대한 3000만원 이상의 채권자도 회생절차개시를 신청토록 하여 채무자의 회생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안 제661조).
또한 채무자가 면책을 받고자 하는 경우 종래 파산선고 후 별도로 면책신청을 하도록 하던 것을 파산신청 시부터 면책의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여 파산자가 신속히 면책결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안 제556조).
그러나 회생절차란 근본적으로 채무를 면해주는 것이 핵심인 점을 고려하여 볼 때에, 결국 채권자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법제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재산권은 경제질서의 유지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제한할 수 있다. 그러나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현상을 예방할 수 있는 장치를 폐지하고 오히려 회생절차의 기회를 많이 부여하고자 하는 동법안은 형평성차원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결국, 회생절차개시는 제반사항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법원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법원이 현재까지는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현상을 차단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원의 역할이 법안 제661조에 의하여 제한될 것으로 보여 누가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현상을 막을 수 있을 것 인가하는 점이 우려되며, 오히려 금융기관들이 대출을 꺼리는 결과가 되어 산업발전의 원동력이었던 은행의 산업자본조달창구로서의 기능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3. 법정관리시 부실기업주의 경영권 인정
현행법상으로는 법정관리를 받는 기업의 경우 법원이 관리인을 선임하도록 되어 있어 부실기업의 대표자가 경영에 참여할 수 없도록 되어 있으나, 동 법안에서는 원칙적으로 채무자 또는 법인대표자가 관리인으로 선임되도록 하고, 예외적으로 (1)회생채무자 자신이나 개인이 아닌 회생채무자의 대표자의 재산 유용, 은닉 또는 중대한 책임이 있는 부실경영에 의하여 재정적 파탄에 이르게 된 경우 (2)채권자협의회의 요청이 있는 경우로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3)회생채무자의 부채가 자산보다 현저히 많은 경우 등에는 제3자를 관리인으로 임명하도록 하고자 하고 있다 (안 제75조).
이러한 안은 일시적인 자금압박 등으로 인하여 부실화된 중소기업의 회생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나 상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예외조항을 보면 그 요건이 매우 추상적이어서 그 실효성여부가 불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즉, 부실을 초래한 기업주는 법정관리를 통하는 경우 본인이 부담하는 리스크는 매우 작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이는 경영권시장에서 형성된 시장질서를 혼란에 빠트릴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실기업주가 경영권을 유지하는 경우 이에 대한 의무와 책임규정을 엄격히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본다.
4. 개인회생제도
개인회생제도는 개인의 전체채무가 15억원 이하 (담보채무 10억원+무담보채무 5억원) 이면서 매달 최저생계비 이상의 일정한 수입을 올리는 봉급생활자나 자영업자에게 적용된다 (안 제579조). 그리고 채무변제기간은 최장 8년으로써 채무자는 수입에서 최저생계비와 세금을 제외한 금액을 매달 납부해야 하고, 변제기간이 끝난 후 법원은 면책결정을 통해 채무를 탕감시켜준다(안 제634조, 제635조). 그리고 개인채무자의 신속한 회생을 위하여 채권의 확정절차를 간이하게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별도의 채권신고·조사절차를 두지 않고, 다만 채권에 대한 이의진술기간을 두어 이의있는 채권에 대하여는 법원의 채권확정결정에 의하여 채권이 확정되도록 할 예정이다 (안 제614조 내지 제616조).
이러한 개인 회생제도는 금융기관과 개인채무자간의 개인워크아웃이나, 배드뱅크 등 사적 해결이 불가능할 경우 법원에서 처리하는 제도이다. 그리고 개인회생제도와 현행 개인파산제도와 비교하여 볼 때에 양자 공히 법원이 채무자 재산에 대하여 강제집행을 금지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개인파산의 경우에는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피선거권과 시험응시자격까지 상실하는 반면에 개인회생제도는 직업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채무를 탕감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개인채무자에게는 매우 유리한 제도라고 할 수있다.
그러나 동 제도는 15억원 이하라는 큰 금액을 8년간 성실하기만 하면 면책받도록 한다는 점에서 악덕채무자의 남용이 우려된다. 동제도의 근본취지는 근면하지만 일시적인 경제적 곤란으로 불가피하게 파산에 처한 자를 경제활동인구로 유인하도록 하고자 하는데 있는 것이지, 채무자의 책임을 단순히 면제하여 주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볼 때에 전체채무액 15억원은 상당성을 결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5억원을 넘는 채무자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볼 때에 상기 금액은 동제도의 근본취지에 부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채권의 확정절차를 간이하게 할 목적으로 별도의 채권신고·조사절차를 두지 않도록 한 것은 채무자들의 악용여부를 충분히 조사할 수 있는 절차를 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채무자들의 동제도 남용을 막기 위하여는 무엇보다도 15억원이라는 상한선을 하향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또한 채무자가 동제도를 악용하고자 하는지 여부를 조사할 수 있는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것이 동제도의 근본취지에 부합하는 입법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III. 결론
금년 9월 공고된 채무자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안은 근면하고 성실하게 기업을 경영하였거나, 개인적 생활을 영위한 자들이 경제위기의 희생양이 되어 경제주체로서의 그 일임을 다할 수 없는 자들을 구제하여 국가경제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하는 근본 취지에 동감할 수 있다.
그러나 채권과 채무란 사적 경제활동으로 인하여 발생한 법률효과라는 점에서 볼 때 금번 통합도산법안은 채권법 체계의 기본틀에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금번 통합도산법안은 좀더 현행 사법체계의 틀 내에서 검토하고 심도깊은 논의를 거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금번 통합도산법안이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현상을 부추길 우려는 없는가 재검토하여보아야 한다. 만약 이에 대한 재검토 없이 현행법안대로 입법이 되는 경우 사적 자치 및 재산권 보장이 전제되는 자본주의의 근간이 위태로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삼현(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 기업소송연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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