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계 걸림돌 탄소감축 40% 재고해야

윤주진 / 2023-08-24 / 조회: 2,143


탄소중립기본법_230824_경제법안리뷰(v3).pdf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 감축”, 정치권이 떨어뜨린 폭탄에 산업계 비상

▪ 에너지 수요 많은 제조업 비중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 산업에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 전망

▪ '미국‧일본‧영국도 안 하는데…’ 일찌감치 온실가스 감축 시작한 유럽 따라한 '성급한 결정'

▪ 연 평균 4.17% 온실가스 감축,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더러 에너지 대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 못해


■ 들어가며

2022년 3월 25일부터 시행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ㆍ녹색성장 기본법」 (이하 '탄소중립기본법’)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국내 온실가스 배출을 대폭 줄이고,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각종 정책 추진 및 제도적 지원을 위해 마련된 제정법이다. 이 법이 제정됨에 따라 기존 관련 법인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은 폐지됐다. 탄소중립기본법 통과와 함께 한국은 세계에서 14번째로 탄소중립을 법제화한 국가가 됐다.


이 법이 통과되자 경제계는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내며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 설정에 대한 정부의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조기 대응과 탄소배출 감축의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현실적으로 2030년까지 제시한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준비가 부족하다는 반응을 내놨다. 하지만 정부는 경제계 우려에도 불구하고 세부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이 법에서 제시한 기준보다도 더 높은 감축 목표를 설정해,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가중시켰다. 제조업 비중이 높고 주요 선진국 대비 온실가스 감축 추진이 늦은 한국의 현실을 외면한 법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 주요내용

탄소중립기본법 제정 논의 과정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쟁점은 '중장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수치다. 관련 내용은 이 법 8조 1항에 명시돼 있다.



2018년도 국내 탄소배출량은 약 727,600,000 톤이었다. 이 수치 대비 40% 감축량은 약 291,000,000 톤이다. 2030년 목표 배출량은 436,600,000톤이다. 기준연도에서 목표연도까지 연 평균 4.17%씩 줄여야 하는 셈이다.


2018년을 배출량 대비 시점으로 잡은 이유는, 2019년부터 국내 탄소배출량이 감소하기 시작해 사실상 2018년을 '탄소배출정점’ 시기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내 여건을 고려할 때 쉽지 않은 목표이나, 탄소중립 실현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우리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며 이유를 밝혔고, 다음과 같이 부문별 감축 목표를 상세히 제시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세부 목표치는 일부 수정됐다. 그러나 총량 40% 감축 목표치는 그대로다.


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 주로 '전환’과 '산업’ 부문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대폭 줄여야 하는 실정이다. 전환이란 전기나 열을 만들어내는 이른바 '발전시설’을 의미하고,, 산업은 제조‧생산시설을 일컫는다. 


그 밖에도 이 법은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여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설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서 지방자치단체별로도 2050 탄소중립녹생성장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다. 


아울러 기후변화영향평가,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도, 배출권거래제, 목표관리제, 탄소중립 도시, 지역 에너지 전환 지원, 녹색건축물, 녹색교통, 탄소흡수원 확충, 탄소포집 이용 저장기술, 국제감축사업, 온실가스 종합정보관리체계 구축에 필요한 제도, 시책을 담고 있다. 기후위기 취약시설에 대한 관리책과 기후변화 대응에 따른 사회부작용에 대비한 각종 단체와 기구 설립 근거를 명시했다.


■ 법률안 개정 과정과 처리 현황

이 법은 2021년 8월 31일, 총 167인 의원이 출석한 가운데 109인 찬성, 42인 반대, 16인의 기권에 따라 가결됐다.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대부분 찬성표를 던졌으며, 국민의힘과 기타 진보성향 야당이 반대와 기권에 각각 표를 보탰다. 


본회의와 달리 소관 상임위원회인 환경노동위원회와 체계자구심사가 진행되는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모두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표결 처리하였다. 2022년 8월 19일 밤 11시, 민주당이 단독으로 환노위 안건조정위원회를 열어 의결하고 한 시간 뒤인 자정에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어 같은 달 25일 열린 법사위에서 마찬가지로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민주당이 단독으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을 반대하는 입장은 두 부류로 갈린다. 이른바 'NDC 35%’를 두고 과도하다는 입장과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홍석준 의원은 환노위 법안소위에서 온실가스의 획기적인 감축을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대폭 늘려야 할 수밖에 없는데 현실적으로 국내 에너지 수요를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만으로는 감당하지 못한다면서 “실현 가능성이 현재 제로(0)”라고 지적했다. 또 신재생에너지 의존도가 증가하면 에너지 공급 간헐성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필수적으로 필요하지만 그에 따른 비용 증가 부담이 커질 것임을 강조했다. 


한편 정의당의 강은미 의원은 본회의 반대토론에 나서서 “이 대안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면서 “2030년 NDC는 2010년 배출량 대비 45% 이상을 감축해야 국제 권고기준에 부합한다. 이 기준을 우리나라에 적용해 2018년 기준으로 다시 환산하면 50.4% 감축이라는 수치가 나온다. 탄소중립법 대안은 고작 2018년 대비 35% 이상이다. 무려 15% 이상 차이가 난다. 이런 감축량을 가지고 자라나는 아이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겠는가”라며 법안을 반대했다. 


■ 법안 평가

1. 제조업 비중 높은 산업구조 특성상 더 큰 부담으로 작용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5% 수준이다. (법 제정 당시에는 28.4%) 대표적인 제조업 강국인 독일‧일본의 경우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이 각각 19%, 20% 가량이다. 미국(11%)에 비해서는 2배 이상 비중이 높고 OECD 가입국 평균 13%에 비해서도 2배 가량 높다. 영국, 프랑스는 모두 한자리대 숫자로 제조업 비율이 떨어졌다.


업의 특성상 온실가스 배출과 에너지, 특히 전력 사용량이 많을 수밖에 없는 제조업을 주력산업으로 삼고 있는 한국의 경우, 무리한 탄소배출 감축 규제는 당장 기업 비용 부담 증가와 생산 위축, 수출 부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에너지 사용량이 더 많고 화석에너지를 원료로 직접 사용하는 철강, 화학, 세라믹 등 '기초 소재 산업’이 제조업 내에서도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점은 탄소배출 감축 실현을 어렵게 만든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와 같은 업종 역시 공정상 온실가스 배출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탄소배출 감축의 직접적 영향권 안에 든다.


에너지 효율 개선을 통한 온실가스 배출 저감도 한계가 있다. <전기저널>이 2021년 1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온실가스 총 배출량의 17%를 차지하고 있는 철강 산업의 경우, 해외 주요 철강사에 비해 약 15% 높은 효율성을 보이고 있다. 정유산업 역시 세계 평균 대비 24% 효율이 높다. 이미 에너지를 집약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022년 11월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NDC 2030 목표치 상향안 달성 가능성'을 조사한 결과, NDC 2030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이 48%로 절반을 차지했다. 그리고 56% 응답 기업이 40%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유지할 경우 기업 경쟁력이 하락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탄소중립 시나리오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무려 82%에 달했다. 기업의 부담은 당장 눈 앞의 현실이다.


2. 2030 온실가스 감축 수치의 법제화는 성급한 결정


'NDC 법제화’는 다양한 차원으로 분류될 수 있다. 탄소중립에 대한 청사진과 비전을 담은 수준의 법제화가 있는 반면, 구체적으로 감축해야 할 온실가스의 양까지 명기하는 법제화도 있다. 탄소중립기본법은 ’35% 이상’이라는 구체적 비율을 조항에 포함시켰으므로 후자에 해당된다.


수치 유무에 따른 영향 차이는 크다. 수치가 법에 반영된 이상, 상당한 강제성과 구속력 갖게 된다. 법 개정을 통해서만 수치의 조정이 가능하므로 대외환경 변화, 주변국의 탄소배출 실천 여부에 따른 대응 유연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탄소배출 감축 목소리가 점차 커지는 추세에서 목표치 하향 조정에 대한 시민사회 저항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법제화 된 이상 수정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2030년 중장기 NDC 수치를 법제화한 국가는 어느 곳이 있을까? 주요국 현황을 살펴보면, 한국이 지나치게 성급하게 NDC 수치 법제화를 했다는 평가를 피하기가 어렵다.

대체적으로 수치를 법제화한 국가는 대부분 EU에 소속돼, 일찌감치 탄소배출 저감을 시작해 온 국가들이다.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는 2030 온실가스 감축 수치는 법제화했으나 정작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법제화하지는 않았다.


한편, 일본과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는 감축 목표치를 법제화하지 않았으며, 미국은 심지어 2050 탄소중립 목표 역시 법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우리와 수출 업종이 겹치는 중국은 2030년을 탄소배출 정점으로 천명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줄일 의지가 없다는 뜻이다.


이런 여건에서 과연 한국이 선제적으로 2030년도까지 감축해야 할 온실가스를 법으로 까지 규정해야 할 시급성이 있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3. 2018년을 비교 시점으로 잡은 것 역시 '셀프 불이익'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감축하기로 한 기준이 되는 2018년이 과연 적절한 비교 시점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비판이 많다. 정부 설명대로 2019년, 2020년을 지나면서 탄소배출이 감소했지만 2021년에 다시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했다. 코로나19 위기 국면이 해제되면서 산업계 생산이 활발해진 데에 따른 결과다. 2022년도의 온실가스 배출 잠정치는 전년도에 비해 3.5% 가량 감소했지만 여전히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앞서 온실가스 감축을 실천해 온 주요 국과 비교했을 때 2018년을 비교 시점으로 잡은 것은 스스로 불리한 기준을 적용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온실가스 감축 실천에 적극적인 EU만 하더라도 이미 1990년에 탄소배출 정점을 찍고 그 후로 줄곧 온실가스 배출량이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미국의 탄소배출 정점은 2007년이었고, 일본 역시 2013년 이후부터 탄소 배출이 줄었다. 모두 우리보다 탄소배출 정점이 일렀다.


최종적인 탄소중립 목표 시점을 2050년으로 잡았을 때 EU는 60년에 걸쳐 해야 할 숙제를, 한국은 법이 시행된 2022년을 기준으로 38년 만에 해내야 하는 극명한 차이가 발생한다. 중장기 NDC 목표 시점인 2030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한국은 연 평균 4.17%씩 온실가스를 줄여야 하는 반면, 영국과 미국은 연 평균 2.81%씩, EU는 연 평균 1.98%씩 줄여 나가도 된다. 선진국들은 여유가 있는 반면, 우리는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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