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중개정법률안에 대한 검토의견

정호열 / 2003-06-23 / 조회: 3,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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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24
No.02
 
I. 개정안의 초점과 그 취지

자배법 개정안은 여러 가지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나, 이 곳에서 검토하는 것은 다음의 사항에 한한다.

개정안은 첫째, 건설교통부장관의 고시의 형태로 ‘자동차보험정비수가에관한기준’을 도입하고(안 제19조의2 제1항), 둘째 수가기준 심의를 위해 자동차보험정비수가심의회를 둔다(안 제19조의3). 심의회의 구성은 총 18인으로 구성하되 보험사 추천 6인, 정비업자 추천 6인, 시민단체 또는 소비자단체 추천 6인으로 구성하되, 위원장은 시민단체 등의 추천위원 중에서 호선으로 정하고, 정비수가기준에 대해서는 시민단체 혹은 소비자단체에서 추천한 위원 중 4인 이상의 찬성을 요하도록 되어 있다.

개정의 취지로는 두 가지 사유가 제시된다. 첫째, 사고자동차에 대한 적절한 정비보장(안 제19조의2 제1항 전단), 둘째, 정비요금에 관한 분쟁예방(안 제19조의2 제1항 전단)이다. 정비요금에 관한 분쟁과 관련해서는 보험사의 우월적 지위가 전제되고 있다.

II. 쟁점과 검토

1. 고시의 형태로 수가기준을 도입하는 방안의 타당성

1.1. 지금까지의 관행

지금까지 자동차보험 정비수가는 각 보험회사와 정비업체가 개별적 흥정을 통한 합의의 형태로 자율적으로 결정되어 왔다. 개정안은 이러한 시장기능에 의한 자율적 가격형성 대신에, 건교부 고시의 형태로 일률적인 가격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1.2. 가격규제의 문제점

개정안상의 ‘자동차정비수가기준’은 특이한 유형의 가격규제에 해당된다. 우리나라는 경제운용의 기조를 정부주도에서 민간주도로 바꾸면서(자율화와 개방화), 각종의 행정규제, 특히 가격규제를 철폐하기 위해 입법적 그리고 행정적 차원의 국가적 노력을 펼쳐오고 있다(경쟁제한적 법령의 철폐와 정비, 규제개혁점검단과 위원회, 규제 50% 줄이기, sun set rule의 도입 등). 즉 자배법 개정을 통한 정비수가기준 고시의 도입은 지금까지의 국회의 입법적 노력과는 달리, 자율화와 시장화 그리고 규제개혁의 흐름에서 벗어난다.

보통 가격규제는 자연독점 혹은 시장실패가 예상되는 산업에서 정부가 적정요율을 산정하고, 지나친 가격인상을 직접 통제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개정안은 건교부를 대표로 하는 정부가 적극적인 조정자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심의회에서 결정된 사항을 소극적으로 고시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정비수가기준에 관한 규제가 통상적인 가격규제와는 그 예가 다르다.

1.3. 가격카르텔 유사의 성격

보험사나 정비업체의 이익대변인들이 참여하여 정비수가기준을 정립하고 이를 고시의 형태로 정립하고 손해보험협회 또는 전국정비연합회 등이 개입할 경우, 이는 공정거래법이 규제하는 가격카르텔로 평가될 소지가 있다.

물론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의 개정을 통해 법률에 근거를 둔 가격협정체제를 도입하는 것은 일종의 법정카르텔로서 현행 공정거래법 제58조의 규정상 법령에 따른 정당한 행위로 위법성이 조각되어 형식상 적법성을 취득한다.

그러나 가격협정체제는 자유경쟁에 배치됨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강력하게 규제된다. 1998.4.18. OECD의 ‘경성카르텔금지를 위한 권고’에 따라, 우리나라도 1999년 “부당한공동행위의정비에관한법률”을 제정하여 종래 18개의 법률에 근거한 많은 수의 법정카르텔, 예컨대 변호사나 공인회계사 등의 보수기준 등을 일괄하여 폐지한 바 있다.

3. 보험회사가 공정거래법 소정의 우월적 지위를 가지는지 여부

입법이유가 논하는 보험사의 우월적 지위는 시장지배적 지위가 아니라, 불공정거래행위에서 말하는 우월적 지위(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제4호)를 지칭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제4호 소정의 ‘거래상의 지위’란 시장지배적 지위와 같은 정도의 강한 지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상대방의 거래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소위 폭넓은 개념이다.

정비업체는 보험사와의 지속적 거래를 원하는 것이 보통이고, 경제력의 규모나 동원가능한 인력과 전문지식의 수준을 놓고 살펴 볼 때, 보험사는 일반적 의미에서 정비업체에 대해 상대적 우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보험사가 아니라 자동차운전자 혹은 견인업체가 정비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일반적 관행이며, 정비업체들이 보험사의 정비수가기준에 불만이 있을 경우 자동차운전자에게 직접 결제할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보험사가 일정한 경우 차량을 뽑아가는 등 사실상 우월한 지위를 가진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바로 공정위가 인정하는 ‘거래상의 지위’ 혹은 우월적 지위에 해당되는 것으로 바로 판단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또한 보험사의 정비업체에 대한 우월적 지위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수가지급과 관련된 보험사의 영업행태가 ‘부당성’이 인정되어야 규제의 대상이 된다. 보험사가 부당하게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였을 경우 이는 공정위의 시정조치의 대상이 되고, 또 금융감독원의 감독조치의 대상이 된다.

공정위의 심결사례를 보면, 보험사가 정비업체에 대한 우월적 지위남용 등과 관련된 사례는 거의 보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반대의 사례들이 발견된다.1)

4. 고시체제와 보험소비자의 후생

개정안의 입법이유는 정비수가기준 고시 체제를 통해 보험사와 정비업체 사이의 분쟁을 예방하고 보험소비자의 후생을 증대시키기 위한 것임을 밝힌다.

고시체제가 일단 도입되면, 단기적으로는 보험사와 정비업체 사이의 개별적 분쟁을 억지하는 효과가 있고 수가기준의 현실화 혹은 적정화에 기여할 것이다. 그러나 고시체제의 도입은 수가기준의 결정을 둘러싸고 보험업계와 정비업계 사이의 규모가 큰 협상을 예정하는 것이고, 인플레나 공임의 인상에 따른 수가기준의 개정을 둘러싸고 연례적으로 이 협상이 되풀이될 수도 있다. 이러한 요구는 물론 대정부(對政府)의 집단분쟁의 성격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고시체제의 도입의 핵심은 정비업계가 주장하는 정비수가의 현실화 혹은 적정화에 있다. 정비수가가 인상될 경우 자동차사고차량의 정비와 관련된 보험소비자의 후생증대가 기대된다. 그렇지만 근원적인 소비자의 후생은 보험료지출과 관련된 것이다. 정비수가의 인상은 보험금지출의 증대를 가져오고, 보험사는 이를 보험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과정을 밟게 된다.

특히 경직적인 수가기준체계가 도입되고, 개별 당사자 사이의 수가흥정이 아니라 고시체제내의 교섭의 경우 정비업계의 교섭력은 제고될 것이다. 경쟁체제가 아니라 법정가격체제로 이행할 경우 가장 큰 수가인상요인이 되는 것은 바로 이 점이 될 것이다. 수가기준에 관한 고시체제, 즉 가격규제가 소비자의 후생을 장기적으로 침해하는 것은 경쟁법상 일반적으로 논증된다.

III. 결론

1. 가격고시제의 전체적 평가

의료업은 비영리 혹은 공익적 성격을 지닌 분야로서 의료윤리가 지배하는 영역으로서, 전통적으로 시장으로 분류되지 아니한다. 의료업에 관해서는 소위 직업법이 통용될 뿐, 경쟁법의 적용은 제한되었다. 이에 비해 자동차정비시장은 지금까지 시장기능이 지배해 온 거래분야로서, 종래의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뀌어 시장에의 진입과 퇴출이 자유로운 영리시장이다. 의료업 분야와는 달리, 자동차정비시장에서의 수가기준 고시체제가 국민 일반에게 친숙하게 다가오지 아니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속적인 가격고시체제는 보험사와 정비업체 사이의 경쟁의 여지를 근본적으로 제거한다. 정비업체는 효율적인 수선을 통해 정비요금을 인하하려는 동기를 상실하고, 보험사는 좋은 정비업체를 찾아 보험금 지출을 줄이려는 동기를 잃게 되는 것이다. 이 경우 보험사에 대한 로비와 청탁이 가격과 서비스에 의한 경쟁을 대체하여 로비역량에서 열세인 군소 정비업체가 불이익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요컨대, 정비수가에 관한 고시체제의 도입은 일종의 가격규제로서, 규제개혁의 큰 흐름에 배치되며, 국회의 90년대 이후의 일련의 입법동향과 모순된다. 그리고 이 안은 과잉금지나 목적과 수단의 정당성 등 헌법적합성에 관한 논란의 대상이 될 소지도 있다고 사료된다.

2. 시장정합적인 대안

정비업계의 정비수가에 대한 불만은 누적되어 있고, 이것이 집단적 시위의 형태로 분출된 바도 있다. 현재 보험차량에 대해 정비수가는 현대, 기아, 혹은 대우자동차의 AS 수가기준에 비해 현저하게 낮고, 96년 이후 정비수가의 부분적 상향조정이 있었으나 정비 소요시간 수를 감축하여 실질적인 공임의 인상이 없었다는 주장이 거듭되고 있다. 이러한 정비업계의 사정과 현실정치의 어려움을 감안할 때, 구속적인 가격고시체제에 갈음하여 가능한 한 시장정합적이고 입법저항이 적은 규제방법을 대안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

첫번째 대안은 자배법 그 자체에 일정한 폭을 설정한 권장가격기준을 도입하는 것이다. 의료보험수가와는 달리 자동차정비요금 수가는 시장기능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므로 비구속적인 권장가격체제가 바람직하다. 또 획일적이고 일률적인 수가기준의 제시에 갈음하여 상당한 가격폭을 설정하여 그 범위 내에서 가격경쟁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주무관청의 행정지도를 통해 가격폭 하한에서 일률적인 가격형성이 되는 것을 지양시켜야 한다.

두 번째 방안은 보험사 상호간의 상호협정 형태로 정비수가기준을 도입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가기준은 가격카르텔로서 공정거래법 위반을 구성하지만, 현행 보험업법 제17조에 의거하여 금감위의 인가를 받을 경우 위법성이 조각된다. 현행법상의 제도로서 자배법 개정 없이도 원용할 수 있는 방안이지만, 이 안은 일종의 가격카르텔을 도입하는 것이어서 98년의 OECD 권고에도 배치될 뿐만 아니라 금감위가 이러한 카르텔을 인가하지 않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점이 있다.

정호열 (성균관대학교 법대 교수)




1)1998.1.30., 공정위 의결 제9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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