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와 밀레이 혁명

라이너 지텔만 / 2025-02-21 / 조회: 82

2022, 2023 그리고 2024년 아르헨티나에 대한 나의 방문들 동안, 나는 대통령 선거들에서 무정부 자본주의자 하비에르 밀레이를 승리로 몰아댄 운동을 직접 볼 기회를 지녔다. 밀레이의 대통령직은 그 이후 좌익 반자본주의자들과 리버테리언들 양쪽 다에서 같이 많은 관심을 끌었다. 어떤 사람들은 밀레이의 정책들이 사람들을 빈곤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시도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를 희망의 등대로 본다.


아르헨티나는 슬픈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100년에 아르헨티나만큼 그렇게 극적으로 내려앉은 나라는 세계에 없을 것이다. 20세기 초에는, 그 주민의 평균 1인당 소득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축에 속했다. “아르헨티나 사람처럼 부유한(riche comme un argentin)”이라는 표현은 그 당시 흔히 듣던 표현이었다.


19세기 후기와 20세기 초기에, 아르헨티나의 1인당 소득은 이탈리아, 일본 혹은 프랑스의 그것을 능가했다. 1895년에, 어떤 추정치들에 따르면, 그것은 심지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1인당 소득을 달성하기조차 했다. 게다가, 제1차 세계 대전 전 43년간 아르헨티나의 6퍼센트 연간 GDP 증가는 기록된 역사에서 가장 크다. 아르헨티나의 인상적인 경제 성과는 원자재 수출에만 기초하지 않았다: 1900년과 1914년 사이, 그 나라의 산업 생산은 세 배로 되어서, 독일과 일본의 그것과 비슷한 산업 성장 수준에 도달했다. 이 모든 것은 선례 없는 사회적 진보를 동반했다. 1869년에, 아르헨티나 경제 활동 인구의 12와 15퍼센트 사이가 중산층에 속했다; 1914년까지는, 이 숫자는 40퍼센트에 도달했었다. 동시에, 문맹률은 인구의 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 성공 이야기는 백 년의 선례 없는 퇴보가 뒤를 이었다. 2018년 1인당 실질 GDP와 1913년 그 숫자 사이 비율은 아르헨티나의 비율이 거의 증가하지 않았고 양쪽 해에 대해 자료를 이용할 수 있는 모든 나라 중 가장 낮다는 점을 보여준다.


나는 자문 회사 OJF의 경제 연구 센터(Centro de Estudios Económicos) 수석 경제학자 파우스토 스포토르노(Fausto Spotorno)를 만났다. 그는 나에게 인상적인 통계를 보여주었는데, 그것에 따르면 아르헨티나가 1945년 이래로 거의 변함없이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율들을 경험했다−1990년대가 예외인데, 그때 카를로스 메넴은 통화를 달러에 연동시켰고, 그리하여 인플레이션을 십 년간 제거했지만, 아르헨티나 상품들이 더는 경쟁적이지 않았으므로 수출들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수십 년간, 아르헨티나는 국가에 대한 신뢰가 확고한 나라였다. 페론주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는 국가 종교였다. 그러나 2022년까지는, 나는 분위기가 변했었다는 점을 이미 볼 수 있었다. 나는 코리엔테스(Corrientes)시 같은 다양한 도시를 방문했는데, 코리엔테스시는 내게 프랑스 남부를 생각나게 했고, 야자나무들과 세계에서 가장 큰 강 중 하나의 본거지이다. 나는 그 시의 시장, 에두아르도 타사노(Eduardo Tassano)를 만났다. 자신을 더 사회 민주주의자로 여기는 타사노에게 그가 아르헨티나에서 무엇을 바꿀지 질문했고 그가 즉각 노동 시장 규제 철폐와 감세들을 언급했을 때 나는 리버테리언 사람들이 상승세에 있다는 점을 말할 수 있었다.


시장 경제의 인상에 관한 나의 설문 조사가 2022년 아르헨티나에서 집행되었을 때, 그것은 감정에서 현저한 이동을 드러냈다: 밀레이의 선거 승리 1년 이상 전에, 아르헨티나인 다수는 전 세계 대부분 다른 나라에서 사람들보다 더 긍정적인 시장 경제 의견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또한 2022년에 처음으로 밀레이 운동의 지도적인 정치인 몇몇을 만나기도 했고 그들의 혁신적인 마케팅 접근법에 감명받기도 했다. 밀레이는 복권을 발행함으로써 많은 관심을 끌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등록한 누구든지 밀레이의 마지막 달 의원 봉급을 탈 수 있었다. 그것은 350,000페소였고, 2022년 5월에 약 1,800 미국 달러에 해당하였다. 아르헨티나에서 평균 소득이 약 60,000페소라는 점을 고려하면, 그것은 매력적인 금액이었다. 자기가 자기의 마지막 급료 지급 수표를 복권 식으로 팔고 있다고 그가 선언한 석 달 동안, 200만 아르헨티나인이 복권을 신청했다. 밀레이는 증명하기를 원했다: “나는 돈을 보고 정치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밀레이의 당선 직후에 아르헨티나로 돌아왔다. 내가 2023년 11월 19일에 라틴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내 전화기에 왓츠앱(WhatsApp) 메시지 두 개가 와 있었다. “우리가 이겼습니다,”라고 하비에르 밀레이 당의 한 하원 의원이 썼었다. 나는 약 1년 반 동안 밀레이에 관해 많이 이야기해 오고 있었고 그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었다. 두 번째 왓츠앱 메시지는 지도적인 브라질 신문 상파울루 상태(O Estado de S. Paulo)의 선임 기자, 호세 푹스(José Fucs)에게서 온 것이었다: “당신은 나에게 그가, 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아르헨티나에서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고 선거에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아르헨티나 국민이 밀레이를 지지할지, 설사 그의 자유 시장 경제 개혁들의 결과로 상황이 일시적으로 악화할지라도 그렇게 할지 궁금했다. 나는 초기 곤경의 기간이 있을 것임을 알고 있었는데, 다른 성공적인 자본주의 개혁들(예를 들면, 영국에서 대처와 폴란드에서 발체로비치 아래에서)도 역시 사정이 훨씬 더 좋아지기 전에 사정이 약 2년간 더 나빠지는 것을 목격했던 것과 같다. 사람들이 이 건기를 참을 인내심과 탄력을 지니고 있을까?


2024년 8월에, 나는 세 번째로 아르헨티나에 있었다. 지배적인 감정은 여전히 친()밀레이였고, 여론 조사들은 인구의 50퍼센트 이상이 그를 지지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아르헨티나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코르도바(Córdoba)에서, 나는 알프레도 코르네호(Alfredo Cornejo) 시장과 긴 대화를 가졌다. 그는 급진당(Radical Party)에 속하고 처음에는 밀레이에 관해 의구심을 가졌다. 그의 회의론은, 그는 나에게 말했다, 그 이후 신뢰로 바뀌었었다. 코르네호 시장에 따르면, 아르헨티나는 지금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나는 리버테리언 싱크 탱크 자유와 진보(Libertad y progreso)의 사무총장 아구스틴 에트체바르네(Agustin Etchebarne)를 만났다. 그는 말했다: “젊은이들과 가난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밀레이를 지지합니다. 그들 대부분은 그에게 투표했고 그들은 자기들의 지지가 여전히 확고부동합니다.” 만약 그들이 하여간 그를 비판한다면, 에트체바르네는 설명했다, 그것은 기껏해야 그들이 그가 충분히 급진적으로 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라에 그러한 파멸을 가져온 혐오받는 “카스타 계급 체계(Casta; 인종이나 혈통 등에 근거하여 구별되는 옛 스페인의 계급)”에 대해 그가 더욱더 강경한 조치를 취해 주기를 원했다.


그동안, 아르헨티나에서 인플레이션은, 밀레이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한 달에 거의 26퍼센트(!)로 달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2.3퍼센트로 떨어졌다. 내가 예상했었듯이, 빈곤율은 처음에는 상승했지만, 2024년 말에는 그것은 밀레이가 취임했을 때 그것이 있었었던 수준 이하로 떨어졌었다.


밀레이 치하에서 하나의 주요 변경은,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한다고 주장하지만 대부분 돈을 자신들에게 빼돌린 중개자들, 좌경 정치 조직들을 우회하여, 자금들이 지금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직접 배분되는 것이다. “밀레이는,” 에트체바르네는 말했다,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접 주지만, 좌익 조직들은 빈손으로 남겨집니다.”


그것은 밀레이와 보수파 마크리(Macri) 사이 큰 차이점인데, 후자는 부주의로 자기의 재직기에 자기의 좌익 정치 상대들을 대량의 현금 지급으로 후원했다. 중개자들을 잘라냄으로써, 가장 가난한 아르헨티나인들은 이제 그들이 과거에 얻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도움을 받는다.


우리는 아르헨티나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1970년대 영국과 비슷하게, 대처나 밀레이 같은 자본주의 개혁가들이 기회를 가지기 전에 상황은 틀림없이 극적으로 악화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충분하지 않다. 어떤 의미 있는 개혁도 여론 변동이 선행해야 한다. 대처의 지도력 전에, 애덤 스미스 연구소(Adam Smith Institute)와 경제 문제 연구소(Institute of Economic Affairs) 같은 영향력 있는 싱크 탱크들이 공개 담론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아르헨티나에서, 리버테리언 싱크 탱크들도 역시 밀레이를 위한 길을 닦았고, 밀레이는 이제 그들이 이전에 뿌렸었던 것을 수확할 수 있다.



라이너 지텔만(Rainer Zitelmann), ≪빈곤과 부의 기원: 나의 세계 여행 그리고 세계적 리버테리언 운동으로부터의 통찰들(The Origins of Poverty and Wealth: My world tour and insights from the global libertarian movement)≫에서 발췌.


라이너 지텔만(Rainer Zitelmann)은 역사학자이자 사회학자이고, 위 책에 대한 소개는 https://origins-poverty-wealth.com/에서 볼 수 있다.

번역: 황수연(전 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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