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선거에 나선 후버는 수입 농산물에 대한 관세는 높이고 수입 공산물에 대한 관세는 낮추어 농업을 보호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대통령이 된 후버는 공약을 실천하려 했으나 제조업자들의 극렬한 반대로 무산되었죠. 그런데 한 번 도마 위에 오른 보호무역은 그 시행 범위가 농산물뿐만 아니라 제조업까지 확장되어 의회 내에서 논의되었습니다.
1929년 10월 24일, 주가가 대폭락하고 기업들이 줄도산하며 실업자가 1,500만 명이 넘는 대공황이 닥쳤습니다. 그러자 미국 상원의원 리드 스무트와 하원의원 윌리스 할리가 수입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법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들은 관세를 올릴 경우, 정부의 수입은 증가하고 외국과의 통상을 규제할 수 있으며, 미국 내 산업을 장려하면서 동시에 일자리도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했죠. 이 법안은 국민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으며 상원과 하원을 통과하였습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1,028명은 후버 대통령에게 스무트-할리 법안에 거부권 행사를 청원하였습니다. 자동차 왕 헨리 포드나 J.P 모건의 토마스 라몬트를 포함한 기업인들 역시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죠.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불만이 가득한 국민들의 민심을 달래기에 급급했던 정치인들이 전문가들의 조언을 외면하고 통과시킨 이 법안을 후버 대통령 역시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1930년 6월, 스무트-할리 법안이 통과되면서 2만여 개의 수입품에 평균 59%, 최대 400%의 관세가 부과되었습니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서 수입품의 가격이 오르자 미국산 제품들의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기업의 수익도 높아지고 실업도 해소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미국과 교역을 하던 나라들이 잇달아 보복관세를 시행하자 상황은 급속도로 악화되었죠. 1929년부터 1933년 사이 미국의 수입과 수출 모두 60% 이상 감소하였고 그 여파로 세계무역은 66% 감소하였습니다. 미국 내 실업률은 7.8%에서 25.1%로 급상승하였습니다.
스무트-할리 관세법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실업을 줄이겠다는 보호무역이 오히려 어려운 경제를 더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이 법안을 발의한 스무트와 할리는 1932년 의원 선거에서 국민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죠. 이렇게 보호무역의 해독은 역사적 사실로 입증되었지만, 특정 산업이 어려워지거나 경기가 침체되면 표에 집착하는 정치인들에게 보호무역은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곤 합니다. 우리는 스무트-할리 관세법의 사례를 눈여겨보아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