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다단계(네트워크 마케팅)라 불리는 폰지 사기는 처음 빠져들 땐 부자가 되는 '혁명적인’ 방법처럼 보인다. 실제 그 방법으로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보이고, 그들을 따라서 하면 틀림없이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폰지 사기에 동참하는 순간 그 사기는 끝나고 틀림없이 망한다. 내가 마지막이기 때문이다. 폰지 사기는 언뜻 보면 성공할 것처럼 보이지만 네트워크 확장속도가 인류의 숫자보다 더 빠르게 늘어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실패하게 돼 있다.
사실 이 폰지 사기는 우리 경제가 성장하는 방식과 기묘하게 닮아있다. 폰지 사기가 파는 것은 '물건’이 아니다, 노력 없는 성공이라는 '환상’이다. 이 성공은 영구엔진을 향한 인간의 환상과 기묘하게 닮아서 아무리 불가능하다는 증명이 있어도 그 꿈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런데 자연계를 조작해야 할 '영구동력’과 달리 '영구성장’은 인간이 실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꿨다. 인류가 20c에서 본 것은 그런 천국을 지상에 건설하려할수록 실제로 만들어지는 것은 '지옥’이라는 현실이었다. 경험을 통해 인류는 공산당이라는 영구동력의 꿈을 포기했다. 그리고 다시 다른 영구동력의 꿈을 꿨다.
이번에는 시장경제 속에서 그런 망상이 살아났다. 진짜 엔진을 만들어서 에너지를 공급하면 '영구동력 에너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이었다. 국가를 통해서 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믿는 이들이 '중앙은행’이라는 엔진을 만들어 시장의 자생적 에너지원을 중앙은행으로 돌렸다. 이제 시장을 움직이는 힘은 그 자생적 힘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공급된 중앙은행의 힘이다. 중앙은행이 에너지를 공급하기 시작하자 거짓말처럼 사회가 활기를 띠었다. 자유 시장경제를 모욕하는 것처럼 중앙은행은 무차별적으로 통화를 공급했다. 시장이 어려울수록 중앙은행은 더욱 더 힘과 정당성을 얻었다. 그러면 최소한 잠깐은, 죽어가던 시장이 살아나는 것처럼 보이곤 했다.
코로나로 경제상황이 침체된 지금도 중앙은행은 마치 '발칸포’처럼 시장에 화폐를 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상황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시장은 죽어가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연일 전 세대의 자살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가장 희망적일 20대의 자살이 눈에 띈다. 그간 정부는 노후를 대비해주고, 실업을 준비해주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단 하나도 빠짐없이 책임지고 돌보겠다고 국민의 소득을 상납 받았다.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직면하는 결과는 모든 지표의 악화, 전 세대의 자살, 특히 꿈과 희망이 가득한 젊은이들의 자살이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세상이 음양이라는 대변과 차변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그간 중앙은행이 이자율을 낮추면서 돈을 전 세대에 뿌려가며 성장한 그 돈은 무엇을 에너지원으로 했을지 따져봐야 한다. 경제는 정부가 말하는 대로 화폐제조기에서 돈을 찍기만 하면 자동으로 성장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경제는 오직 '피, 땀, 눈물’로만 성장한다. 우리 경제는 그간 '피, 땀, 눈물’을 대신해 희망을 연료로 넣었다. 그리고 전 세대에서 가장 꿈 많고 희망을 많이 품은 젊은 세대에게 강탈해서 그 연료로 주입했다. 우리 사회는 그들의 희망을 약탈해 성장해왔다. 그리고 더 이상 빼앗길 희망이 없는 그들이, 전 세대에 걸쳐 희망을 빼앗긴 이들이 절망사(deaths of despair)1하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는 더 이상 '판타지’ 영화가 아니다.
뒤르켐은 '자살론’에서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라고 말한다. 개인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는 것은 쉽고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복잡한 사회현상이 그 결정에 녹아있다. 지금 죽어가고 있는 이들은 단순한 자살이 아니다. 국가에 의한 타살이고, 절망사한 것이다. 나는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국가에 깊은 분노를 느낀다. 지금 정부는 저강도(低强度)로 광의(廣義)의 경제적 학살을 하고 있다. 연일 자살하는 청년들과 자영업자를 보며, 직장에서 쫓겨나 스쿠터로 배달하다 교통사고로 죽은 이들을 보며, 나는 도저히 그들의 가난이 그들의 책임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J'accuse... 나는 고발한다. 원인도 모른 채 온갖 불행을 자기 탓으로 돌리며 죽어갔을 이들을 위로하며.
1 절망의 죽음과 자본주의의 미래, 앵거스 디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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