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줄 같은 규제는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와 다름없죠
정부가 일관된 기준없이 규제하면 경제활동 못해요"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그리스 아티카의 강도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을 붙 잡아 자기 집으로 끌고 간 다음 철로 만든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침대보다 키가 크면 남는 부분 을 잘라내 죽였다. 반대로 침대보다 키가 작은 사람은 침대 길이에 맞게 억지로 키를 늘려 죽였다. 심지어 침대와 키가 딱 맞는 사람조차 죽어야 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는 길이를 조 절하는 장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침대에 오르면 살아날 수 없었다.
그리스 신화의 강도
물론 침대와 키가 같으면 살 수 있다는 조건이 있지만, 침대 길이는 프로크루스테스 마음대로다. 따라서 세상 그 누구도 프로크루스테스의 제멋대로 기준에 맞출 수는 없었다.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뚜렷한 기준이 없거나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자기 기준에 억지로 맞추려고 하는 것을 뜻한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함께 비판의 대상이 되는 주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정부다. 정부가 막강한 정치권력을 앞세워 자의적인 기준, 즉 규제를 들이댈 때 시장은 혼란에 빠진다. 정치 실패의 전형적인 유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정부의 막무가내 규제를 제지하고 명확한 기준에 따라 시장의 자율성을 보호하고 성장을 이끌 수 있을까.
그 해법은 자유와 시장원리를 지키는 법치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11조 1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돼 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자의적 기준이 많으면?
법은 행동의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된다. 특히 경우에 따라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은 제멋대로 잣대가 아니라 법이 정하는 테두리 안에서 합리적이고 명료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따라서 정부는 법에 근거해 어떤 경우에라도 일관된 기준을 적용하고, 집행하며 법의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법치주의다.
정부가 법치주의를 따르지 않고, 경우에 따라 자의적인 기준을 적용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 어떤 기준이 적용될지 몰라 혼란스러워할 테고, 정정당당한 노력과 경쟁보다는 정치싸움, 꼼수와 눈치싸움, 줄타기에 열을 올릴 것이다.
정부가 누군가를 위하거나 벌주기 위해 자의적인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하면, 합법적으로 인정받던 경제 활동이 느닷없이 규제 행위로 제재당할 수 있다. 정부가 새로이 규정을 만들어 유난히 특정 분야에만 터무니없이 엄격하고 강도 높은 제재를 가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너무 기업이 크다는 이유로, 또는 소비자가 너무 많이 선택한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 심지어 다른 분야에서는 똑같은 일을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이처럼 원칙 없이 규정이 만들어지고 그로써 어떤 때는 합법이고, 어떤 때는 불법이 된다면 마음 놓고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렵다. 이는 치열하게 노력하는 기업들을 발목 잡는 일이 된다.
소비자로부터 많은 선택을 받은 기업이 수익이 많이 나면, 다른 기업이 시장에 진입해 그 기업을 따라하고 수익을 빼앗아 간다. 그렇게 시장에서는 자생적 질서가 만들어진다.
기업은 고무줄 잣대를 싫어해
기업은 본래 경쟁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과 기술 개발에 매진해야 하는데, 임의적인 규제로 묶어놓으면 자유로운 경쟁과 발전이 가능할 리 없다. 이는 결국 소비자 후생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진다.
뚜렷한 법적 기준도 없이 마구잡이로 만든 규제를 들이대는 것은 결코 공정하지도 합리적이지도 못하다. 규제를 적용할 때는 명확한 기준을 갖고 일관되게 적용해야 한다. 고무줄 잣대에 따른 규제는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고, 혼란을 야기한다.
사실 어떤 기업이 생산할지는 궁극적으로 소비자가 구매를 통해 결정한다. 제3자가 이를 간섭하고 나서는 것은 소비자 선택을 제한하는 것이며 경제원리를 벗어난 정치적 선택을 강요하는 일이다.
■기억해주세요
정부는 법에 근거해 어떤 경우에라도 일관된 기준을 적용하고, 집행하며 법의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법치주의다.
최승노 자유기업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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