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연금 개혁에 대한 논의가 다시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보도를 보면, 여야가 연금 개혁 중 모수개혁―보험료율 및 소득대체율 조정―을 처리하는 방안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국회에 여야가 발의한 모수개혁 법안은 모두 9건인데, 이들 개정안 모두 '내는 돈’인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인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야간 이견이 없는 셈이다.
한편, 소득대체율과 관련해서는 여야간 이견이 존재하고, 이것의 처리를 위해 특별위원회를 구성해서 다른 관련 사안과 함께 논의해야 하느니 또는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처리가 가능하느니 하며 다투고 있는 것이다. 여야간 이견이 있어 티격태격한다고 하지만, 눈에 띌만한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 40%로 되어 있는 소득대체율을 42%로 올리느냐 아니면 44%(혹은 45%)로 올리느냐를 두고 여야가 다투고 있는 것이다.
결론이 어떻게 나든 이런 식의 개혁이라면 '개혁’이라 불리는 것이 민망할 것이다. 현행 소득대체율 40%를 42%로 올리든 44%로 올리든 연금이 '용돈 연금’이라는 것에는별다른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또한, 내는 돈을 9%에서 13%로 올리고, 동시에 받는 돈을 40%에서 42% 혹은 44%로 올리는 이런 개혁으로는 연금의 기금 고갈 문제는 전혀 해소되지 않고 단지 살짝 뒤로 미루어질 뿐이기 때문이다.
많은 연금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우리 연금 제도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애초 '조금 내고 많이 받는 식’으로 설계를 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절대 유지될 수 없는 제도로 탄생되었다. 여기에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문제가 겹치면서 기금 고갈 시기가 더욱 앞당겨졌다. 결국, 연금 기금의 고갈을 막고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는 돈인 보험료율을 높이거나, 받는 돈인 소득대체율을 낮추거나, 아니면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방안이 되었든 모두 다 정치적으로는 '표 떨어지는’ 방안들이다.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이 연금 개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는 사이, 문제가 심각해지면 어쩔 수 없이 개혁에 나서지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근본적인 개혁이 아닌 땜질식 처방에 그치면서 상처는 점점 곪아가고 폭발 시기만 뒤로 조금씩 미루고 있을 뿐이다. 이른바 '연금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근본적인 개혁을 멀리하고 땜질식 처방에만 그치게 하는 데 일조하는 것 중의 하나는 '연금의 지속성’ 논리이다. 작금의 국회에서의 연금 개혁 논의와 관련해서 한 미디어 매체가 내린 결론도 '중요한 개혁의 기준은 국민연금의 항구적인 존속’이라고 하고 있다. 만약 국민연금과 관련된 숙제가 '항구적인 존속’이라면, 그것을 위한 해법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어떤 비용을 치르던 항구적으로 존속시키면 되는 간단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 후폭풍이야 어찌 되든 보험료율을 대폭 올리든가 아니면 세금으로 메꾸면 연금 제도만은 '항구적으로 존속’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런 관점은, 첫째, 연금 제도를 도입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는 망각한 채 제도 자체의 존속을 중시하는 것이며, 둘째, 자원의 희소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마치 그런 희소성이 없는 세상인 것처럼 착각하는 문제점을 보여준다. 이런 식의 '연금 지속성’ 논점은 논의의 대상조차도 안 된다.
대부분이 알고 있듯이, 지금 같은 '덜 내고 더 받아가는’ 구조로 되어 있는 한, 모든 연금 개혁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에 지나지 않는다. 또 몇 년 후에는 다시 연금 개혁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땜질식 처방이 아닌 근본적 치료법을 생각해야 한다.
개혁 방안은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연금이라는 것을 유지한다고 하면, 현재의 '덜 내고 더 받는’ 식이 아니라 '낸 만큼 받는’ 식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만성적인 기금 고갈의 문제가 사라진다. 다른 하나는, 연금 제도 자체를 폐지하고, 노후 소득 보장을 기초생활보장법에 통합시켜 버리는 것이다. 어차피 현재 국민연금으로 받는 연금 수령액은 평균 60만 원 정도에 불과한 반면,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른 지급액이 현재 1인 가구 기준 최대 70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노후 소득 보장에 득이 되면 되었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리고, 이런 방향으로의 개혁을 해서 성공한 국가들의 경험도 있다.
현재 구조의 연금은 이미 썩은 살이다. 잉태 순간부터 그렇다. 썩은 살은 도려내는 것이 옳다. 그러지 않으면, 다른 성한 살까지 썩게 만든다. 썩은 살은 도려내고 새살이 돋도록 해야 한다. 그런 것이 개혁이다.
권혁철(자유시장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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