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n. 개혁의 쥐들의 이빨들에 제공되는 파일. 그것[빈곤]의 철폐를 위한 계획의 수는 그것으로 고통받는 개혁가의 수, 더하기 그것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철학자의 수와 같다.” 앰브로스 비어스(Ambrose Bierce)는 한 세기 이상 전에 그것을 썼다. 어떤 것들은 바뀌지 않는다.
수 세기에 걸쳐 그 모든 계획을 갖고서도, 빈곤이 왜 여전히 존재하는가? 문제 일부는 정의 문제이다. 내가 수년에 걸쳐 광범위한 청중에게 제기했던, 아래 사고 실험을 고찰해 보라. 모든 사람이 $50,000의 연간 소득을 가진 나라를 상상해 보라. 미래를 위해, 다음 효과들을 끼칠 두 가지 제안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 연간 소득이 $55,000이 될 것이다;
인구의 90퍼센트에게는 연간 소득이 $58,000이 될 것이고, 다른 10퍼센트에게는, 그것은 $580,000이 될 것이다.
당신은 무슨 선택지를 선택하겠는가?
수년 동안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거의 모든 경우, 청중이 그 두 선택지 사이에 아주 균등하게 쪼개진다는 점이다. 사고 실험은 좀체 공공연히 토론되지 않는 근본적인 질문을 드러낸다. 당신이 소득에 관해 생각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절대적인 소득인가 상대적인 소득인가? 만약 당신의 소득이 25퍼센트만큼 오르지만, 당신이 아는 모든 사람의 소득이 50퍼센트만큼 오른다면, 당신은 더 행복할까?
빈곤의 문제에 대한 이 사고 실험의 직접적인 적용이 있다.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식품을 구걸하면서 콜카타에서 보도에 사는 것은 어떤 정의에 의해서든 가난하다. 그러나 미국에서 빈곤선 바로 밑에서 사는 것은 어떤가? [미국 경제 연구소(American Institute for Economic Research)의] ≪매일 경제(The Daily Economy)≫의 대부분 독자와 비교하면, 그러한 사람이 가난하지만, 인도 거지와 비교하면,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은 현저하게 부유하다. 무엇이 올바른 비교인가?
라이너 지텔만(Rainer Zitelmann)의 ≪국가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방법(How Nations Escape Poverty)≫을 읽고서, 나는 가난에 관한 끝없는 논쟁에서 또 하나의 혼란을 드러내는 관련된 사고 실험이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모든 사람 한 명 한 명의 소득이 당신이 가난의 정의로 사용하고 싶은 어떤 숫자에도 미달하는 나라를 상상해 보라. 이제 이런[아래] 효과들을 끼치는 두 제안을 고찰해 보자.
모든 사람 한 명 한 명의 연간 소득이 빈곤선보다 약간 더 높게 상승한다;
인구의 10퍼센트의 연간 소득은 빈곤선의 10배로 오르고, 인구의 70퍼센트에 대해서는 소득은 빈곤선의 5배로 오르며, 인구의 20퍼센트에 대해서는, 그것은 전혀 오르지 않는다.
당신은 어느 선택지를 선택하겠는가? 첫 번째 선택지는 빈곤을 제거한다. 두 번째 선택지는 훨씬 더 높은 부 수준들을 발생시킨다. 이 사고 실험의 중요성은 똑같은 것으로 들리는 두 질문에 그것이 차이점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당신이 가난한 나라들에 관해 생각할 때, 그 목표가 빈곤을 종식하는 것인가, 아니면 부를 증가시키는 것인가? 이 두 목표 사이 차이점은 지텔만의 책 밑에 있는 사고이다.
지난 70년간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들은 빈곤을 제거하는 데 집중했다. 지텔만은 이 정책들의 효과들을 개관한다. 빠른 요약: 그것들은 작동하지 않는다. 프랑크 브레머(Frank Bremer), 담비사 모요(Dambisa Moyo), 윌리엄 이스털리(William Easterly), 그리고 그 밖의 학자들 연구를 순회하면, 이스털리의 부제 중 하나로 말해서, “서양이 나머지 지역을 원조하려는 노력들은 나쁜 일을 아주 많이 했고 좋은 일을 아주 거의 하지 못했다,”는 점이 꽤 명백해진다.
지텔만의 결론:
만약 그렇게 많은 과학적 연구의 결과들이 그렇게 명백하다면, 개발 원조가 국가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최선의 길이라는 믿음이 왜 그렇게 끈질기게 지속하는가? 나는 그것이 내가 영합(零合; zero-sum) 신념들이라고 부르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은 가난한 나라들이 가난한 것이 그저 부유한 나라들이 그들에게서 어떤 것을 빼앗았기 때문일 뿐이라고 믿는다. 그 함의는 부유한 나라들이 자기들의 부 일부를 포기해야 하고 그러면 가난한 나라들이 더 잘살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일이 간단한 것처럼 정말 보인다. 만약 목표가 그저 빈곤을 제거하는 것만이면, 왜 부유한 나라들의 사람들로부터 가난한 나라들의 사람들로 부를 약간 그저 이전하기만 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 제안은 부와 소득의 심각한 혼동을 경험한다. 가난한 나라에 댐을 건설하기 위해 자금들을 제공하는 것은 부의 이전을 정말 수반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미래 소득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빈곤을 제거하는 방법을 묻는 대신에, 지텔만은 부를 증가시키는 방법으로 질문을 바꾸기를 원한다. 그의 공식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사유 재산과 시장 경제는 성장의 기초들이고, 만약 국가가 경제에 너무 많이 간섭하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의 삶이,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향상할 것이다.” 게다가, 지텔만은 주장한다,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와 달리, 국가 명령으로 포고될 수 없다; 그것은 아래로부터 자생적인 과정에서 성장하고, 정치 지도자들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것들은 이 과정을 잡아 찢거나 막는 것이 아니다.”
자유 시장들이 경제 성장의 비책이라는 이 생각은 명백히 지텔만이 최초가 아니다. 그는 애덤 스미스가 250년 전에 기본적인 주장의 틀을 잡았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자기 책을 시작한다. 제텔만은 또한 국부를 증가시키는 데 시장들에 의지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이득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기도 하다. 앵거스 디턴의 저작을 참고로 하여, 지텔만은 국가들이 가난에서 벗어남에 따라 불평등이 항상 증가한다고 언급한다.
지텔만의 책을 같은 주제의 수많은 다른 것과 구별하는 것은 그가 주장하는 양식이다. 본문 182페이지에서, 그것들 중 150페이지는 두 나라, 즉 베트남과 폴란드의 사례 연구들에 바쳐진다. 이 두 나라를 결합하는 것은 무엇인가? 3,000만을 넘는 인구를 가진 나라 중에서, 이 두 나라는 헤리티지 재단의 지수에 따르면 1995년 이래로 경제적 자유가 가장 크게 증가했다. 둘 다 자기들의 공산주의 전성기에서 상대적으로 가난했다; 둘 다 지난 몇십 년간 매우 빠른 성장을 경험했다. 경제적 자유에서의 변화들을 경제 성장률에 연결하는 것이 지텔만 책의 목표이다.
베트남에 관한 장은 더 강력한 예이다. 1980년대 중엽, 전쟁 종식 10년 후, 베트남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그것은 또한 큰 인구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지텔만은 대부분 사람이 그것이[베트남이] 어떤 유럽 국가보다 더 큰 인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찾아내고 놀란다고 언급한다. 수십 년 지속된, 프랑스인들과 미국인들이 연루된, 전쟁들을 고려하면, 베트남의 빈곤은 예상 밖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1986년 12월에 정권을 잡은 제6차 당 대회는 그 결론에 동의하지 않았다. 지텔만이 설명하듯이:
베트남인들이 자기들의 나라가 처한 비참한 상황에 대한 책임을, 미국과 치른 긴 전쟁과 그것과 관련된 파괴, 중국 및 캄보디아와의 군사 분쟁들, 자연재해들, 기타 등등과 같은 외부 요인들에 돌리려 하지 않았다는 점은 베트남인들을 칭찬한다. 오히려, 당 대회의 최종 결의는 단호히 자기 비판적이었다: '객관적인 어려움들을 저평가하지 않고, 당 대회는 현재 상황에 대한 주관적인 이유들을 무엇보다도 당과 국가의 지도력과 방향의 실수들과 오류들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문제에 관한 그 평가로 시작하여, 정부는 (“재생(Renewal)”으로 번역되는) 도이 모이(Doi Moi)라고 불리는 경제 개혁들의 광범위한 집합을 시작했다. 근로자들을 고용하는 능력을 포함해서, 사기업에 대한 제한들이 축소되었고, 국유화된 기업들을 그것들의 전(前) 소유자들에게 돌려주었으며, 중앙 계획과 가격 관료제들이 해체되었고, 보조금들과 가격 통제들 양쪽 다를 제거했다. 존 밀티모어(Jon Miltimore)가 최근에 더 깊이 논했듯이, 베트남 경제는 큰 소리를 내며 잘 기능하기 시작했다(roared to life). 베트남은 세계은행 정의들을 사용하면 더는 저소득 국가가 아니다. 1993년과 2020년 사이, 빈곤은 인구의 80퍼센트에서 5퍼센트로 떨어졌다.
폴란드도 급진적 경제 변화의 비슷한 순간을 가졌다. 1980년대 후기까지, 폴란드는 심지어 다른 공산주의 동유럽 나라들에 비교해서도 가난했다. 지텔만은 누구든 기업가가 될 수 있게 한 내무 장관의 개혁 집합, 1988년의 빌체크 법(Wilczek’s Act)을 지적한다. 그 결과들은 극적이었다; 한 해 안에 2백만 기업과 6백만 일자리가 창출되었다. (1989년에 폴란드 인구는 3,800만 명이었다.) 이것에 다음 세 해 동안 부총리 레셰크 발체로비치(Leszek Balcerowicz)가 정교하게 만든 민영화, 탈규제, 그리고 조세 개혁을 포함하는 시장 지향 개혁들의 추가적인 집합이 또 추가되었다. 1989년 이래로, 폴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나라가 되었다.
시장 경제를 도입한 전(前) 공산주의 나라들이라는 유사점을 넘어, 베트남과 폴란드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닮은 점을 가지고 있다. 지텔만은 사람들이 부자들에 관해 생각하는 것을 묻는 설문 조사들을 해 오고 있다. 설문 조사들은 여러 방식으로 그 질문을 파악한다. 사람들은 “자기들 자신의 노력을 통해 성공한 부유한 사람들은 나에게 동기를 주는 역할 모델들이다,”에서 “부유한 사람들은 그저 우리 사회에 불의가 있기 때문만으로 부자가 되었다,”에 이르는 진술문들에 그들이 동의하는지를 질문받았다. 사람들은 또한 어느 성격 특성들(상상력이 풍부한, 부지런한, 정직한, 냉담한, 탐욕스러운)이 부유한 사람들에게 가장 적용될 것 같은지도 질문받았다. 이런 종류들의 설문 조사에서, 지텔만은 “부자 감정 지수(Rich Sentiment Index)”를 구성한다. 부자들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들의 면에서 최상위 두 나라는? 폴란드와 베트남이다.
지텔만이 자기의 사례 연구들에서 얻는 교훈은 간단하고 명백하다. 만약 당신이 빈곤을 걱정한다면, 당신은 높은 부 수준들에 관해 긍정적인 견해들을 장려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부자들에 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가진 나라는 사람들이 부를 발생시키는 것을 더 쉽게 할 시장 개혁들을 더 집행할 것 같다. 국가가 더 부유해짐에 따라, 빈곤은 감소할 것이다. 결국, 지텔만이 언급하듯이, “시장 경제가 필요한 사람들은 주로 강자들이 아닌데, 왜냐하면 그들은 어떤 체제에서건 하여간 그럭저럭 잘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들의 생활 조건을 향상할 유일한 기회가 자유 시장 경제에 있는 사람들은 약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이다.”
제임스 하틀리(James Hartley)는 마운트 홀리요크 대학(Mount Holyoke College) 경제학 교수이다. 캘리포니아 토박이로서, 그는 자기의 경제학 학사, 석사, 그리고 박사를 데이비스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받았다. 그의 출판물들은 ≪거시경제학에서 대표적 대리인(The Representative Agent in Macroeconomics)≫, ≪실물 경기 순환: 독본(Real Business Cycles: A Reader)≫(케빈 후버(Kevin Hoover) 및 케빈 샐리어(Kevin Salyer)와 공편), 그리고 ≪메리 라이언: 기록들과 저작들(Mary Lyon: Documents and Writings)≫을 포함한다.
이 글은 라이너 지텔만(Rainer Zitelmann)의 책 ≪국가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방법(How Nations Escape Poverty)≫에 대한 제임스 하틀리의 서평으로서 2024년 7월 2일 AIER(American Institute for Economic Research) 홈페이지에 실렸다:
https://www.aier.org/article/hate-poverty-admire-the-rich/
번역: 황수연(전 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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