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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물가 이야기입니다. 과일값, 채소값이 많이 올랐습니다. 이것을 전반적인 인플레이션의 조짐으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일부 품목만의 현상인지 알아보려고 합니다. 여기에 보태서 글로벌 물가 동향, 채권 가격에 반영된 장기적인 인플레 전망에 대해서도 살펴보겠습니다.
국내 물가부터 알아보죠. 가장 최근 자료는 통계청이 12월 31일에 발표한 2020년 12월의 소비자물가동향입니다. 2020년 12월의 소비자물가는 1년전인 2019년 12월에 비해서 0.5%가 오른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전반적으로는 물가가 거의 오르지 않은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주 장을 봐야 하는 품목은 사정이 다릅니다. 농수산물 가격은 1년전에 비해 9.7%가 올랐습니다. 특히 사과와 양파가 많이 올랐습니다. 사과는 43%, 양파는 67% 가격이 높아졌습니다.
사과 가격이 오른 이유는 사과 생산량이 줄었기 때문입니다. 2019년 사과생산량이 54만톤이었는데 2020년에는 45만톤으로 17%나 줄었습니다. 공급이 줄어서 가격이 뛴 거죠. 양파의 경우 생산량이 전년보다 26.7% 감소한 데다가1 중국 및 인도로부터의 수입 양파가격이 오른 것2이 겹쳤습니다.
농축수산물과 달리 공산품이나 서비스 가격은 거의 오르지 않았습니다. 코로나로 전반적 수요가 위축된 데다가 공급여력이 충분합니다. 게다가 수입 물가도 낮아졌습니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2020년 12월 수입물가지수를 보면 전년인 2019년 12월에 비해 10.2% 하락했습니다. 국내 물가가 상당히 오른 농수산물조차도 수입 농산물 가격은 2.3% 하락했습니다. 수입 가격 하락에는 원화 강세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2019년 12월 원-달러 평균 환율이 1,175원이었는데 2020년 12월에는 1,094원이 되었으니까 원화 가치가 7.4% 높아진 겁니다. 그만큼 수입 가격은 낮아지게 됩니다.
국내의 상황과는 달리 글로벌 시장에서는 인플레의 조짐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글로벌 경제에서 비중이 큰 품목들의 가격 움직임입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정리한 자료입니다. 철광석, 구리, 석유, 콩 가격인데요. 석유를 제외하면 모두 1년전에 비해서 상당히 올랐습니다. 콩의 경우 코로나 이전인 2020년 1월 15일에 비해서 52% 올랐습니다. 3~4월에 상당히 떨어졌었지만 6월부터 오르기 시작해서 이제는 코로나 전보다 52%나 높아진 것입니다. 같은 기간 옥수수는 38%, 구리는 28% 올랐습니다. 기름값은 내렸습니다. 서부텍사스 중질유의 경우 같은 기간 배럴당 58달러에서 52달러가 되어 10% 낮아졌습니다. 그러나 4월 한 때 마이너스까지 떨어졌던 것에 비하면 기름값도 상당히 오른 셈입니다.
인플레이션율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요? 투자자들이 인플레를 어느 정도로 예상하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지표가 있습니다. BER(Breakeven Inflation Rate)이라는 건데요. 물가연동국채(물가채라고도 함)와 일반 국채 사이의 수익률 차이를 말합니다. 국채는 발행자인 정부가 일정 기간 후에 정해진 금액을 내주는 상품인데요. 정해진 금액을 받기 때문에 그 사이에 물가가 오른다면 그만큼 실질 가치는 줄어들게 되죠. 물가연동채권이란 물가상승으로 인한 실질 가치 하락분을 보전해주는 채권입니다. 당연히 물가연동채권의 수익률은 만기가 같은 일반 국채보도 예상 인플레이션율만큼 높겠지요. 따라서 두 채권 수익률의 차이를 예상 인플레이션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좀 어렵죠? 그냥 투자자들이 예상하는 물가상승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설문조사를 통해서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이렇게 돈을 걸고 베팅을 하는 숫자가 더 정확하다고 봐야 하겠지요.
이 그래프가 10년 만기 미국 국채의 BER을 보여줍니다.3 3월 19일, 즉 코로나의 공포가 극에 달했을 때 BER은 0.5%로 거의 0에 접근했습니다. 그 때만 해도 투자자들은 앞으로 인플레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예상을 했던 겁니다. 하지만 다음날부터 BER은 급격히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날 미국 연준이 적극적으로 돈을 풀겠다고 선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도 이날 발표가 되었습니다. 연준이 미국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 전체에 달러를 풀겠다고 선언을 한 것이죠. 돈이 많이 풀릴 것이라는 기대가 인플레 기대 심리를 자극했습니다. 12월 화이자 백신에 관한 희망적 소식이 나왔을 때도 올랐습니다. 코로나가 줄고 전반적인 수요가 증가할 것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최근 데이터인 1월 15일자 BER은 2.1%까지 높아졌습니다. 2020년 12월 현재 미국의 전년 동기 대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4%이니까 앞으로 10년간 물가상승률은 2020년보다 평균 50% 정도 상승률이 높을 것으로 예상들을 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나라에서도 물가연동채권이 발행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아직 시장 규모가 작아서 기대인플레이션율을 제대로 반영하는지 논란의 여지가 큽니다. 그래서 사실 한국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치를 얼마로 해야 하는지 믿을 만한 숫자는 아직 없습니다.
다시 미국의 인플레이션으로 가볼까요.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2.1%라고 하는 예상 인플레이션율이 10년 만기 채권에 반영되어 있다는 겁니다. 즉 10년 평균 2.1%를 예상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사실 아주 막연한 숫자인 셈입니다. BER만 가지고는 물가가 구체적으로 언제 얼마나 오를지는 사실 알 수가 없지요. 다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물가를 올리는 힘과 내리는 힘의 종류에 대한 것입니다. 인플레 요인, 디플레 요인 말입니다. 각각에 대해서 중요한 것 두 가지씩만 생각해 보죠.
코로나 상황에서 물가 인상을 불러올 요인 두가지를 꼽으라면 첫째는 통화량 증가입니다. 원화뿐 아니라 미국 달러, 일본 엔화, 유로화 등 거의 모든 나라의 돈들이 브레이크 없이 풀려 나가고 있습니다. 이것만큼 인플레를 자극하는 요인이 없습니다.
둘째는 수요 정상화입니다. 백신 보급으로 집단 면역이 생기거나 또는 다른 어떤 요인에 의해서 경제가 정상화된다면 그동안 억눌렸던 수요가 살아나겠죠. 그럴수록 물가도 올라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통화량 증가와 수요 증가가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인플레 요인입니다.
반면 값을 억누르는 요인도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돈이 돌지 않는다는 겁니다. 경제학 용어로는 화폐의 유통속도가 떨어진다고 합니다. 미래가 불안하다 보니 소비자들이 돈을 쓰는 대신 저축을 늘립니다. 기업들도 투자 대신 비상시에 대비해서 현금 보유를 늘립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내도 돈이 돌지 않습니다. 따라서 수요 증가로 이어지지 않고 물가도 오르지 않는 거죠.
두 번째는 유휴 자원의 존재입니다. 가장 큰 자원은 사람과 공장 같은 것이죠. 노는 시설이 많다 보니 수요가 좀 늘면 금방 공급이 늘어서 가격이 올라갈 새가 없습니다. 실업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서비스업 같은 데 수요가 늘더라도 일자리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바로 취업을 하게 되니까 임금이 오를 새가 없습니다. 물가도 안 오르게 되죠. 화폐 유통속도의 저하와 유휴 자원의 존재가 이 시기에 가장 큰 디플레 요인입니다.
현실에서의 물가가 어떻게 움직일지는 이 같은 인플레 요인과 디플레 요인의 상호 작용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그런만큼 언제 얼마나 가격이 오를지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앞에서 보셨듯이 투자자들의 기대 인플레이션율, BER이라는 것이 계속 변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도 전혀 모르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알아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의 설명이 여러분들의 삶과 투자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정호 / 김정호의 경제TV 크리에이터, 서강대학교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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