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최저한세, 증세 경쟁의 시작인가?

김정호 / 2021-06-22 / 조회: 20,463


김정호_2021-21.pdf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xlzOK3rR2YA


G7 회의 참가국들이 글로벌 최저한세를 15%로 하겠다는 데 동의했습니다. 세부 내용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OECD와 IMF도 이미 오래 전부터 글로벌 최저한세를 도입하자고 목소리를 높여 왔는데, 이번에 바이든이 적극 나서면서 G7 7개국이 합의를 보게 된 것입니다.


글로벌 최저한세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 본사를 둔 구글이 아일랜드에 현지법인을 두고 있다고 해보죠. 미국 법인세는 21%이고 아일랜드는 12.5%입니다. 구글은 미국 등지에서 발생한 이익을 미국 본부가 있는 세율이 낮은 아일랜드 현지법인으로 옮겨 12.5%만 낼 수 있습니다. 구글 미국 본사에는 장부상 이익이 없으니 미국 정부는 세금을 거둘 수 없습니다. 15%의 글로벌 최저한세가 시행되면 아일랜드에 납부한 12.5%와 15% 간의 차이, 2.5% 만큼을 미국 정부가 징수할 있게 됩니다.1 본부가 위치한 미국 정부의 세입이 늘어날 뿐 아니라 기업으로서는 굳이 아일랜드처럼 세율이 낮은 곳, 즉 조세회피처로 이익을 옮겨 놓을 이유도 줄어들게 됩니다.


한편 OECD의 제안에서는 기업이 여러 나라에 걸쳐 있는 경우를 다루고 있습니다. 미국에 본부를 둔 기업이 아일랜드와 바하마에 현지법인을 두고 있는 경우를 상정해 보죠. 이 제안에 따르면 미국 국세청이 계열사 이익 합산액에 15%를 곱한 금액을 징수합니다. 여기에서 아일랜드(12.5%)와 바하마(0%)에서 납부한 법인세를 뺍니다. 그 금액을 매출이 발생한 비율에 따라 여러 나라에 배분한다는 것이 OECD 최저한세의 아이디어입니다.2


바이든이 글로벌 최저한세 도입에 적극 나선 이유는 미국의 증세 정책을 성공시키기 위함입니다.3 미국의 법인세는 전임 트럼프 대통령이 21%로 낮춰 놨는데 바이든은 이것을 28%로 높이려고 합니다. 기업 증세, 부자 증세는 미국 민주당의 한결 같은 정강정책입니다. 게다가 바이든 자신이 6조 달러, 한화로 6,700조 원에 달하는 재정지출 계획을 의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입니다. 어떻게든 기업 증세, 부자 증세가 꼭 필요하게 된 겁니다.


문제는 세부담이 커질수록 자본 유출이 심해진다는 겁니다. 세율을 올리면 세수가 느는 대신 오히려 기업 이익만 해외로 나갈 수 있습니다. 글로벌 최저한세는 미국 자본이 저세율 국가로 유출되는 것을 막는 장치가 됩니다.


유럽에서 독일, 프랑스 등 고세율 국가들이 동조하고 나선 것도 비슷한 동기 때문입니다. 자국 자본이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스위스, 몰타 같은 저세율 국가들로 빠져나가 골치가 아프던 중이었는데 바이든이 깃발을 들어주니 '웬 떡이냐’ 하며 같은 줄에 선 것이죠.반면 이들 저세율 국가들은 억울하고 약이 오를 겁니다. 인구 규모가 작다 보니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G7에 끼이질 못해 왔고 자기 나라의 조세 체계를 부정 당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조세의 원리에 충실하자면 법인세는 올릴 게 아니라 오히려 없애야 하는 세금입니다. 경제의 발전은 기업의 혁신활동에서 비롯될 때가 많습니다. 기업의 이윤에 과세하는 법인세는 성공한 혁신활동에 벌을 주는 격입니다. 소득이 있으니 세금을 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계시겠지만 법인인 주식회사는 돈을 가지지 않습니다. 법인의 소득은 결국 자연인인 주주들의 몫입니다. 법인에게 법인세를 매기고 배당을 받은 주주들에게 또 개인소득세를 매기는 것은 이중과세입니다.


동업과 비교해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개인들끼리 동업해서 번 돈은 각자의 몫으로 분배해서 개인소득세를 냅니다. 동업세라는 것을 거둔다면 부당한 이중과세가 됩니다. 주식회사 같은 법인도 주주들이 동업을 하고 있는 셈인데 거기에 법인세를 매기는 것은 이중과세입니다.


원리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초부터 법인세가 생겨났고 한 때는 세율이 50%를 넘어가는 나라가 많았습니다. 미국은 1970년대에 52.8%, 영국도 1980년대 초반 52%였습니다. 현재는 대부분 나라에서 20%대로 떨어졌습니다. 상황이 바뀐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입니다. 자본 시장이 글로벌화되면서 자본이 고세율 국가에서 저세율 국가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라들마다 자본 탈출을 막기 위해서 또 투자유치를 위해서 법인세를 낮추기 시작했습니다. 아래 그래프에서 보시듯이 1981년 41%이던 세계 평균 법인세 최고세율이 2020년에는 23.85%로 낮아졌습니다. 거의 절반 수준입니다.



인구 규모가 작은 나라들 중에 특히 법인세율이 낮은 나라들이 많습니다. 아일랜드는 12.5%, 스위스는 8.5% 등입니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싱가포르, 홍콩 같은 나라들도 세금이 낮습니다. 기업들이 이 나라들로 몰려들다보니 조세회피처라는 오명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세계적 세율 인하 경쟁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나라마다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늘다 보니 어떻게든 세금을 늘리고 싶어합니다. 기후변화니 ESG니 하면서 정부의 힘이 커져왔습니다. 코로나19 사태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글로벌 최저한세는 고세율 국가들이 증세를 위해 담합을 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저세율 국가들은 난감한 상황이 된 겁니다. 고세율의 강대국들이 저세율의 약소국에서 경쟁 수단을 뺏어 버린 셈이기도 합니다.


증세론자들이 들고 나오는 명분은 조세정의입니다. 아마존, 애플, 구글 같은 대기업들이 조세회피처로 옮겨 다니며 세금을 회피하고 있으니 글로벌 세금을 만들어 정당한 세금을 받아 내야 한다는 겁니다. 테크 기업들이 세금을 조금 내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래 그림은 대표적인 미국 기업들의 실효세율입니다.5 전통 업종인 월마트는 34.5%를 세금으로 냈는데 테크 기업인 애플은 14.9%, MS는 14.0%, 아마존은 13.8%입니다. 심지어 반도체 설계 기업인 엔비디아는 2.6%에 불과합니다. 절묘한 글로벌 세테크의 결과라고 봐야 할 겁니다.



세금에 대해서 생각을 바꿔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금을 줄여 생긴 이익은 양질의 저렴한 제품으로 소비자에게 갔고, 높은 임금으로 노동자에게 갔고, 남은 것은 주주에게 배당되었거나 회사에 남아 재투자되었습니다. 오히려 세금을 많이 걷어 정부 돈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을 늘리는 것이 잘못 아닐까요.


물론 세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신중하게 골라야 합니다. 세금 중에서 법인세보다 그나마 덜 나쁜 세금은 부가가치세와 개인소득세입니다. 부가가치세는 생산과 소비가 일어나는 나라에 귀속됩니다. 개인소득세는 사람이 거주하는 나라에 귀속됩니다. 이 세금들은 비교적 왜곡도 적고 세수도 많습니다. 개인소득세는 사람들 간의 소득 격차를 줄이는 데도 좋은 수단입니다. 법인세는 극력 피해야 하는 세금입니다.


세금을 잘 고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세금의 징수 주체인 국가를 경쟁에 노출시키는 것입니다. 사람도 기업도 경쟁에 노출되었을 때 게으름을 덜 부리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됩니다. 국가도 다르지 않습니다. 경쟁이 없으면 지출은 방만해지고 세금은 늘어납니다.6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글로벌 최저한세 자체는 큰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도 다른 입장인 수많은 나라들의 동의를 받기가 어렵습니다. 이번에 합의를 본 것은 강대국인 G7 국가들입니다. EU만 하더라도 다른 나라들, 특히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같은 나라들이 동의할지는 의문입니다. 이미 전례가 있습니다. 2018년에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 빅테크 기업에 디지털 택스를 매기는 안이 EU 의회에 상정되었는데 스웨덴, 덴마크, 아일랜드의 반대로 부결되었습니다.7 글로벌 최저한세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장 잘 사는 유럽 국가들도 적극적으로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 개발도상국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기후변화 행동, ESG 열풍과 더불어 재정지출, 그에 따른 증세는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큽니다.


김정호 / 김정호의 경제TV 크리에이터, 서강대학교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1 Plans for a Global Minimum Tax Revolution, Explained, Bloomberg, 2021.4.9.

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21-04-08/plans-for-a-bigger-pie-of-global-taxes-sliced-fairly-quicktake?sref=9fHdl3GV

2 What could a new system for taxing multinationals look like? Economist, 2021.5.15. https://www.economist.com/finance-and-economics/2021/05/13/what-could-a-new-system-for-taxing-multinationals-look-like?itm_source=parsely-api

3 Why is the United States promoting a global minimum tax? AEI, 2021.6.4. https://www.aei.org/articles/why-is-the-united-states-promoting-a-global-minimum-tax/

4 https://www.aei.org/articles/why-is-the-united-states-promoting-a-global-minimum-tax/

5 Think the Global Minimum Tax Will Bite? Watch the Stock Market, Bloomberg, 2021.6.6. https://www.bloomberg.com/opinion/articles/2021-06-07/think-the-global-minimum-tax-will-bite-watch-the-stock-market?sref=9fHdl3GV

6 Janet Yellen Is Wrong on Tax Competition, Cato Institute, 2021.4.7. https://www.cato.org/blog/janet-yellen-wrong-tax-competition

7 EU states fail to agree plans for digital tax on tech giants, https://www.ft.com/content/75eb840a-e1bc-11e8-a6e5-792428919cee


       

▲ TOP

NO. 제 목 글쓴이 등록일자
68 중국 공산당, 기업 장악을 위해 미국 돈도 버리다! 디디추싱 사태를 보는 시각
김정호 / 2021-07-20
김정호 2021-07-20
67 수소경제, 신의 한 수 또는 악수?
김정호 / 2021-07-13
김정호 2021-07-13
66 신안 해상풍력발전 투자 48조 원, 어떻게 볼 것인가?
김정호 / 2021-07-06
김정호 2021-07-06
65 중국 고립은 심화되는데, 위안화는 왜 강세인가?
김정호 / 2021-06-29
김정호 2021-06-29
글로벌 최저한세, 증세 경쟁의 시작인가?
김정호 / 2021-06-22
김정호 2021-06-22
63 엘살바도르는 왜 비트코인에 승부를 걸었나?
김정호 / 2021-06-15
김정호 2021-06-15
62 미-중 사이에 끼인 한국 배터리 산업, 괜찮을까?
김정호 / 2021-06-08
김정호 2021-06-08
61 탈원전으로 위험 고조되는 한국 전기 사정
김정호 / 2021-05-25
김정호 2021-05-25
60 이미 시작된 인플레이션, 내 투자는 어쩌나?
김정호 / 2021-05-18
김정호 2021-05-18
59 에너지 혁명: 과거, 현재, 미래
김정호 / 2021-05-11
김정호 2021-05-11
58 이건희 상속세 한국은 12조, 영국은 4조, 스웨덴은 0원
김정호 / 2021-05-04
김정호 2021-05-04
57 전문경영의 민낯: 미국형은 비정, 일본형은 무능, 한국형은 부패
김정호 / 2021-04-27
김정호 2021-04-27
56 ESG 거품론, 왜 나오나?
김정호 / 2021-04-20
김정호 2021-04-20
55 오세훈의 재건축 정상화가 넘어야 할 산
김정호 / 2021-04-13
김정호 2021-04-13
54 LH 대책에 대해서
김정호 / 2021-04-06
김정호 2021-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