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18_[인물그루] 15. 로널드 레이건, 냉전을 무너뜨리다.mp3
⑮ 인물그루 시리즈 ❗ 로널드 레이건 ❗
1980년대 자유주의 세계와 공산주의 세계는 핵무기 경쟁을 하며 전쟁의 위협만 높여갔어요. 그 때, #냉전 을 종식시키고 공산주의를 무너뜨린 #로널드레이건 을 만나볼까요?
1911년 미국,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레이건은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아버지와 신앙심이 깊고 마음이 따뜻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경제 대공황기에 청년기를 보낸 레이건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민주당을 지지했어요. 하지만 어머니를 닮아 인간의 본성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았죠. 대학 졸업 후 스포츠 기자를 하다가 레이건은 배우 제의를 받게 됩니다. 영화에 출연하면서 스타가 되진 못했지만, 그는 인생을 바꾼 두 가지를 만나죠. 바로 정치 인생의 반려자인 낸시와 자본주의 및 자유주의의 필요성을 실감케 한 노조 간부로서의 경험입니다.
레이건은 배우 시절, 노조 간부로서 할리우드에 침투한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일반 사람들이 환상을 갖고 있던 공산주의의 실체, 음모, 거짓, 술책을 꿰뚫어 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미국의 가장 큰 위협은 공산주의임을 자각하게 됐어요. 한편, 배우의 수입 중 94%를 세금으로 내면서 미국의 세법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요. 노동자들이 추가근무 수당의 60%를 세금으로 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비대한 정부의 문제점을 정확히 깨달았습니다. 레이건은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자가, 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자가 되었죠.
뒤늦게 55세에 정계에 입문한 레이건은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내면서 자유주의 및 자본주의에 충실한 정책으로 주재정을 흑자로 돌려 놓았어요. 1980년, 그는 개인의 자유가 부의 원천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40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민주당 후보 카터는 국방비 삭감과 국가적 경제 계획을, 이에 맞서 레이건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따르는 경제와 개인의 선택의 자유 보장을 약속했어요. 또한, 카터는 전쟁과 평화라는 이분법으로 레이건을 전쟁광으로 몰고 갔지만, 레이건은 평화는 힘으로만 지켜진다고 믿었죠.
미국 제 40대 대통령이 된 레이건은 “공급자 측면의 경제학”인 “레이거믹스”를 추진했는데요. 세금을 대폭 축소하고 모든 정부 업무를 간소화했습니다. 기업가와 시민의 경제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정책을 일관적으로 실행했죠. 복지국가는 사회주의의 변형이며, 국민을 구제하려는 관료주의는 한번 만들어지면 폐쇄가 불가능한 괴물이라고 단언했어요. 정부는 복지라는 명목으로 세금만 낭비할 뿐, 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공짜에 중독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안보만큼은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 강력하게 추진했습니다.
레이건은 인간 본성에 부합한 자유로운 사회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지식층조차 공산주의와 소련에 대한 환상에 빠져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했죠. 하지만, 이미 노조를 통해 실전을 겪은 레이건은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 부르며 압도적인 군사력 증강으로 소련을 군축협상에 이끌어 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과 동구권이 차례로 무너졌죠. 복지와 사회주의 환상에 젖어있던 1980년대, 레이건은 자유주의 및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확신하며 자유를 향한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글 : 전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