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이션(deflation)"은 "통화수축"이란 의미로서,"통화팽창"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과 반대의 개념이다. '통화수축’은 시장에서 돈이 사라지는 것이다. "디플레이션"의 상황이 되면, 심리적으로 위축된 개개인이 지출을 줄이기 때문에, 소비가 급격히 감소하고, 그로 인하여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한다. 또한 소비생활이 급격히 위축됨으로 인하여 생산이 감소되고, 그 여파로 고용이 따라서 감소한다. 다시 말해 소비생활이 활성화되어야 생산도 늘어나고, 고용도 증가한다는 것인데, '디플레이션’은 그 반대의 상황이기 때문에 기업이 구조조정을 하거나 도산하게 되고, 실업률이 높아져서, 결국에는 경기가 급속히 위축되고, 소비생활이 더욱 더 악화되는 악순환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대표적인 사례가 1929년에 발생해서 1930년대 내내 지속되었던 '세계 경제 대공황’(Great Depression)이다. '공황’(depression)은 말 그대로 우울함 또는 우울증 같은 것인데, 경제가 바로 이러한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공황’의 전조단계가 바로 '디플레이션’이다. 다시 말해 '인플레이션’의 상황에서는 그래도 소비와 생산 그리고 고용이 이루어지지만, '디플레이션’의 상황에서는 이 모든 것이 급격히 감소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디플레이션’ 상태에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탱해주는 이러한 기본적인 구조가 붕괴되어 간다. 1957년에 제작된 '에덴의 동쪽’(East of Eden)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 영화는 '제임스 딘’(James Dean)이라는 배우의 작품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바로 '경제공황’을 배경으로 다루었다. 독자들이 기억할지 모르지만, 영화 속 제임스 딘의 아버지는 양배추 농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이 농장의 수확물은 대부분 유럽으로 수출되었다. 1919년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이 전후 복구기간에 생필품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수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당시를 서양에서는 “황금의 20년대”라고 지칭한다. 그런데 1920년대 말에 이르러 유럽의 전후복구가 거의 이루어졌고, 미국 산 물품들의 유럽으로의 수출이 급격히 감소되었다. 특히 농산물에서의 수출 감소가 두드러졌다. 그런데 영화 속 '제임스 딘’의 아버지가 그 여파로 자살을 하였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의 아버지는 은행에 대출을 받아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는데, 그 은행 빚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은행(금융)은 “황금의 20년대”시기에 저리 대출로 사업확장을 유도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판매에 차질을 빚게 되면서 막대한 빚으로 고스란히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양배추 농장과 연계되어 있었던, 얼음공장, 운송회사 등이 동반 도산으로 이어졌을 것이고, 또 다시 그것들과 연계된 산업들이 도미노식으로 연쇄부도사태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하지만 어느 한 산업분야(sector)가 붕괴되면, 그것과 연관된 다른 산업분야들이 연쇄적으로 붕괴되고, 그로 인해 대량 실업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또한 자금을 대출해 준 금융권도 대출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고 파산하게 되면서, 경제가 완전히 붕괴되는 '공황’으로 이어진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고착되어 왔던 “저금리”기조로 인하여 대한민국에서도 금융(은행)이 모두를 채무자로 전락시키고 있다. 특히 시장에 풀린 자금이 대부분 부동산에 투자되면서, 기업과 가계부채의 급속한 증가는 부동산 가격의 상승과 정비례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시장에 막대한 자금이 풀렸지만 시장에서 돈이 유통되지 않는다는 것이 대한민국 경제에서 “디플레이션” 현상의 특징이다.
그런데 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시장에 유통시켰던 미국은 경기가 회복되는 조짐을 보이자 인플레이션을 우려하여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이명박 정부시절 미국, 중국, 일본과 “통화스와프”까지 체결해가며 막대한 자금을 시장에 풀어놓았다. 하지만 그 자금이 시장에서 활발하게 유통되지 못하고, 소수의 부동산 자본가와 은행의 이자수익으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오히려 디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18년 현재 우리 경제에는 4가지 뇌관이 있다. 그것은 ▲ 금리인상: 미국의 금리인상은 국내 금리인상과 외국자본의 이탈을 초래하게 되고, 이어서 국내 증시와 부동산 시장도 큰 타격을 받게 된다. ▲ 미국과 중국 EU의 보호관세: 미-중, 미-EU 무역전쟁의 와중에 우리 기업들의 수출이 타격을 받게 되면, 기업들의 구조조정과 연쇄적인 “디폴트”와 대규모 도산과 실업이 발생하게 된다. ▲ 미-중 환율전쟁: 미국이 오는 10월에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면, 중국은 투자유치와 수출에 치명타를 입게 되고, 중국과의 무역에 큰 비중을 갖고 있는 우리 한국도 예상할 수 없을 정도의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 국제유가: 최근 미국의 이란과 터키에 대한 경제제재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 등으로 야기된 중동 불안은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 특히 중국의 원유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미국은 이 상황을 지속시키면서, 국제유가의 열쇠를 쥐고 있다.
이 모든 뇌관이 2018년 연말에 한꺼번에 폭발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2008년 이후 지속적인 통화량 확대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이 아닌 디플레이션 현상이 지속되는 이상한 상황이다. 시장에는 유통되는 돈이 부족하고, 어디론가 다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경기가 매우 악화되었다. 현재는 한국은행이 금리인상을 하기도 어려운 처지이다. 왜냐하면 금리인상은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인데, 지금 우리 경제는 디플레이션 상황이기 때문이다. 금리인상을 통해서 기업과 개인의 부채의 확대를 막았어야 했는데, 지금은 그 타이밍을 놓쳤다고 보여 진다. 2018년 8월 현재도 저금리로 인하여 서울의 부동산 가격이 다시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그런데 미국의 금리인상이 갑자기 시작된다면 해외자본의 이탈과 중시폭락 그리고 원화가치 하락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부채를 떠 앉고 사는 기업들과 사람들의 몫이 되고 만다.
만약 2018년 겨울 대한민국의 경제를 포위하고 있는 4개의 뇌관이 동시에 폭발한다면, 디플레이션은 더욱 심각해지고, 소비가 위축되면서, 생산이 감소하고, 또 다시 고용이 감소하는 악순환이 지속되어 경제는 붕괴되고 공황 상태로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권오중 / 외교국방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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