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시대에 다시 읽는 `대륙의 딸`

곽은경 / 2019-03-29 / 조회: 17,071       미래한국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헌법에 연임제한 문구를 폐지하고 장기 집권의 틀을 마련했다. 과거 중국의 영광을 되찾는다는 ‘중국몽’을 앞세우며 자신의 강력한 통치력을 과시하듯 헌법에 ‘시진핑 신시대 사상’이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정부기관, 학교 등에서 시진핑 사상 공부의 열풍이 불고 있고, ‘시진핑 어록’도 만들어졌다. 이러한 광경은 문화혁명을 주도했던 마오쩌둥을 연상시킨다. 중국 안팎에서 마오쩌둥 독재시대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우리와 오랜 역사를 함께 나누고 있는 이웃 국가지만 중국의 최근 정치 상황은 주변 국가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시진핑 정부와 중국의 상황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국제관계 측면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의 근현대사는 오늘의 중국을 어떻게 봐야할지 말해준다.


장융의 <대륙의 딸>은 군벌시대,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 문화혁명 시기의 중국을 사실적으로 그린 자전적 소설이다. 군벌 장군의 첩이었던 외할머니, 공산당원이었던 어머니, 그리고 문화혁명 시기 홍위병에 가담했던 저자, 3대에 걸친 여인들의 이야기는 중국 근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다.



철저한 공산당원이었던 부모 밑에서 태어난 저자는 신격화 된 마오쩌둥의 사상에 매료되어 문화혁명에 가담하고, 기꺼이 홍위병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독재권력으로 인해 수 만 명이 목숨을 잃고 희생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충격을 받는다. 독재자 마오쩌둥과 문화혁명 시기의 중국 상황을 생생하게 담은 소설 <대륙의 딸>은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공평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던 마오쩌둥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정치 실험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많은 중국인들은 굶주림과 비참함, 혼란을 겪어야 했다. 저자는 마오쩌둥을 경제에 무지할 뿐 아니라 현실을 무시한 몽상가에 불과했다고 지적한다.

마오쩌둥의 대표적인 실험이 대약진운동이었다. 마오쩌둥은 소련을 넘어서는 중공업 국가가 되겠다며 농민들로 하여금 식기, 농기구를 모두 용광로에 녹여 철을 생산하게 했다. 대약진운동 시절, 6살이었던 저자는 등하교길에 바닥에 떨어진 못, 쇳조각, 금속 물체를 주워야 했다.

교사들은 학교에 설치된 용광로에 불이 꺼지지 않도록 밤낮으로 저어야 했으므로 사실상 제대로 된 수업이 불가능했다. 농민들은 그들에게 할당된 철을 만드느라 농기구와 농사지을 시간을 빼앗겼다. 대약진운동의 결과는 대기근이었다. 수천만 명이 굶어죽었고, 용광로에 투입할 땔감을 마련하느라 수많은 산들이 민둥산이 되어버렸다. 많은 희생을 치르고 생산된 철은 너무 무르고 아무 쓸모가 없어 ‘쇠똥’이라고 불렸다.

마오쩌둥은 그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문화혁명도 시도했다. 낡은 관습과 자본주의 추종자를 제거해 공산주의를 공고히 하겠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제로는 예술가, 작가, 학자들, 공산당원들이 주요 숙청 대상이었다. 평생을 공산당을 위해 살았던 저자의 부모도 문화혁명의 희생양이 되어 학대와 고문을 당했다. 그의 아버지는 이 일로 심리적 충격을 받고 정신병을 얻게 된다. “내가 공산당에 가입한 것은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나의 노력이 인민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을까?”라고 되뇌며 그의 아버지는 절대 공산당을 믿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홍위병에 의한 인민재판 모습. 문화혁명은 중국인들에게 암흑의 시대였다
홍위병에 의한 인민재판 모습. 문화혁명은 중국인들에게 암흑의 시대였다

문화혁명의 반 인륜성 체험적으로 증언

문화혁명 시기는 중국인들에게 공포와 비참함의 연속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농촌으로 가서 육체노동을 통해 혁명을 배우자는 하방운동을 강요받았다. 저자는 하방운동 시절 하루 일당을 받기 위해 5시간에 끝낼 수 있는 일을 들판에서 10시간씩 했다고 기술한다. 또 아침식사 전 2시간 동안의 작업시간에 땔나무를 모았는데, 대약진운동 이후 야산의 나무들이 다 사라졌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접하게 된다. 영광스러운 성공으로 포장되었던 마오쩌둥의 정책들은 실제로 재앙에 가까웠으며 이때부터 그에 대한 반감을 갖기 시작한다.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으로 혼란에 빠진 중국을 구한 것은 덩샤오핑이었다. 그는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를 잡기만 하면 좋은 고양이다”라며 개방적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다. <대륙의 딸>은 공산당 지시에 의해 이뤄지는 철강생산, 경제정책 목표를 중단하고 농업, 상업 전 분야에 시장경제 원리를 도입하자 대기근의 굶주림이 2년 만에 기적적으로 해결됐다.

덩샤오핑은 불필요한 정치운동을 중단하고 시장원리에 충실한 정책을 펼친다. 실제 중국은 1998년 개인의 재산권을 인정하고 기업할 자유를 허용했고, 40년 만에 GDP가 200배 급증했으며, G2의 반열에 올랐다. 중국인들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공산당의 계획도, 마오쩌둥의 ‘공평한 분배’도 아니었으며 자신이 일한만큼 가져갈 수 있는 사유재산의 인정이었던 것이다.

<대륙이 딸>은 마오쩌둥의 공산당, 독재정권 하에서 인간의 자유가 어떻게 말살되는지도 담담히 그리고 있다. 공산당은 평등한 사회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모든 정보를 국가가 통제하고 직급에 따라 특권을 달리 부여했다. 한때 계급이 낮은 사람들은 더운 물로 샤워를 하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집의 크기와 화장실의 여부도 직급에 따라 차별적으로 제공됐다. 당연히 개인의 자유로운 시간, 사적인 영역은 금지되었다.

저자는 마오쩌둥이 국민들을 독재를 위한 최후의 무기로 취급했다고 표현한다. 계급의 적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면서 정치싸움을 조장하고, 사람들이 서로를 미워하게 만들어 이를 통치에 활용했다는 것이다. 추수가 끝나면 생산된 곡물 중 세금을 제하고 나머지를 분배했는데, 농부들은 자신이 속거나 이용당하지 않도록 다른 농부의 작업 동태를 예의 주시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려는 사람들은 없었으며 사람들 간의 다툼은 끊이지 않았다. ‘평등한 사회’라는 실험이 실제로는 인간성 말살을 가져왔던 것이다.

저자 장융은 공산당 간부의 딸로 태어나 14살에 홍위병으로 문화혁명에 참여했다. 하방되어 농촌생활을 경험했으며, 의사, 주조공, 전기공을 거쳐 쓰촨대학의 영문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대학 강사로 일하던 중 1978년 국비유학생 자격으로 영국 유학길에 올랐고, 중국인 최초로 영국 박사학위를 받게 된다. 영국에서 비로소 중국에서 느끼지 못했던 자유를 경험하게 되었으며, 자신과 가족들의 이야기를 회고한 <대륙의 딸>을 집필했다.

이 책은 1991년 출간된 이래 전 세계 37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13억 권이상이 팔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대약진운동, 문화혁명 시기의 중국인들의 삶이 어땠는지 잘 보여주는 자료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국내에는 두 편으로 나뉘어 까치출판사에서 출간되었는데, 1편에는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이야기, 2편에는 자신의 삶을 주제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을 이해하고 나면 지금의 중국이 그리 낯설지 않다. 우리가 사회 혼란을 이유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금지하고, 언론과 방송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시진핑 정부의 모습을 우려하는 것은 그러한 시도가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역사를 통해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시진핑 시대에 <대륙의 딸>이 주는 경고를 다시 되새겨 볼 만하다.

곽은경 자유기업원 기업문화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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