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낭송] 복거일 - 그리운 해왕성

복거일 / 2020-05-26 / 조회: 5,021



그리운 해왕성


느닷없이 비둘기들이 날아오른다.

매서운 골바람을 헤치고 솟구친다.

무엇이 신호였는지 문득 돌아서

편대기들처럼 날아온다.

부딪칠까 몸을 움츠린 나를

살짝 비껴 지나간다.

어이없어 돌아본다.


동지 가까운 저녁

이 추위에 더욱 신나는 저 날갯짓들 –

삶의 힘이 묵직하게 전해온다.

그러고 보면, 이 황량한 겨울 시내에도

삶은 분주하다.

귀 기울이면 들린다

꼭꼭 접힌 봄철의 모습을 품고

어둑한 겨울잠을 자는 씨앗들의 이야기

갈대 뿌리들과 붓꽃 뿌리들이 준비하는

잎새들과 꽃들의 이야기.


저만치 물장난하다 바지 적신 꼬마 녀석

무엇이 신나는지 소리 지르며 뛰어가고

철 만난 청둥오리들은 기름기 흐르고 –

사십억 년 동안 다듬어진 삶의 힘이

가득가득하다 여기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어깨들 부딪치는 도심의 시내에.


사십억 년 – 짧은 목숨들은 상상할 수도 없이

긴 그 세월

우주 나이의 삼분의 일이나 되는 그 세월

그 긴 시간에 한번도 끊기지 않고

제각기 이어온 질긴 목숨

그 벌건 살 덩어리 거기 뻗치는 힘 –

감탄하라. 무엇보다도 고마워하라.


냉혹한 우주의 법칙을 거슬러

이렇게 솟구치는 힘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으리라.

이 세상 밖 멀리 뻗어나가리라 –

꿈속 바다처럼 그리운 해왕성

고개 너머 마을처럼 마음 끄는 알파 센타우리

붉은 등대 베텔규스

너머 기다리는 마젤란 구름.

우리는 이 작은 세상에서 태어난 우리 모두는,

삶의 즙을 밀어 올리는 힘으로

저 하늘 속 깊이 뻗어나가리라.


와산교 넘은 비둘기 편대가

비잉 돌아서 날아온다.

공습하듯 스쳐 지나간다.


저 힘찬 날갯짓

무거운 몸을 하늘로 끌어올리는 삶의 몸짓 –

내 늙은 몸에도 문득

어느 잊힌 봄철의 파릇한 수액이 돈다.

발꿈치에 탄력이 붙는다.


지은이: 복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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