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낭송] 강위석 - 사진

강위석 / 2020-02-13 / 조회: 5,577

강위석 시집 <유모레스크>중 두 번째로 소개해드릴 시 '사진'입니다.



사진


1. 

사진을 찍고 싶었다


특별한 소실점 없이 전 화면이 통째로 사라져가는

굵은 비 오는 골목을 찍고 싶었다


어제와 내일 사이에서 

지붕도 벽도 허물어진 

도시계획 언저리 빈집도 찍고 싶었다


없어진 것, 없어지고 있는 것 

없어질 것을 찍고 싶었다


2. 

좋은, 낡은, 남은 것, 

합천 해인사를 

아주 여러 장 찍고 싶었다


두물머리 세미원서 연꽃 구경하는 

가야금 동호회 내 친구 노인들도 찍고 싶었다


맑은 날엔 사람 말고 그 연꽃을 

직접 찍고 싶었다


“8월이 가기 전에, 가기 전에,”라고 잉잉거리며 

날아든 목숨 짧은 벌레들이 

연꽃 꿀을 훔치는 사이, 그 편에 

수술들이 암술에게 

바삐 바삐 수분을 행위 하는 사이 


8월을 찍고 싶었다 

물욕과 색욕의 이 선행을 

허무해서 눈 밝아진 카메라로 찍고 싶었다


3. 

사랑이여 

성불도 우화등선도 부럽지 않게 된 뒤 

그래도 남는 것을 찍거나 


그 벌레들과 함께 

떠돌 때까지 떠돌다가 


졸리움 같은 남은 시간 남으면 

그 연꽃 근처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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