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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총리의 제2차 평양방문: 의의와 평가

배정호 / 2004-05-31 / 조회: 4,531

I. 고이즈미 총리의 제1차 평양 방문이후의 북·일관계


고이즈미 총리는 2002년 9월 17일 전후 최초의 북일 정상회담을 갖고 <표 1>과 같이 의제별 합의를 이룬 뒤 평양선언을 발표하였다. 즉, 4개항으로 이루어진 9·17 평양 공동선언은 2002년 10월 중 국교정상화회담 재개, 일본의 식민지 지배 반성과 대북 경협 제공, 북한의 피랍 일본인 문제 사과와 재발 방지, 북한의 미사일 발사의 보류를 2003년 이후에도 유지, 등을 골자로 하는 것이었다. 


일본정부는 이와 같은 평양선언을 성과로서 중시·강조하였지만, 피랍 일본인 11명 중 5명만이 생존하고 있다는 소식이 일본 국내에 전해지면서 일본 국민들은 김정일-고이즈미 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언론의 북한에 대한 격렬한 비판이 전개되었다.


따라서, 북한은 일본 국내의 비판적인 분위기를 완화하고 제12차 북,일 국교정상화회담을 위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김정일-고이즈미 정상회담의 합의에 따른 납북 일본인 생존자 5명의 일본 방문을 허용하였다. 


그러나, 제12차 북,일 국교정상화회담은 납치,경협,핵문제 등 주요현안에 대해 상호간의 입장 차이만을 재확인한 채 차기회담의 일정도 결정하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이후, 국교정상화를 지향한 북·일 관계는 전혀 개선되지 못하고 납치자 문제를 둘러싼 갈등·대립에 의해 냉각상태로 빠져들었다. 특히, 일본을 일시 방문한 생존자 5명이 잔류의향의 표명과 더불어 정부 보조금을 받아 고향에 안착하고, 일본 정부가 비공식 접촉에서 북한 거주 가족(8명)의 영주귀국과 사망 및 행방불명자 8명에 대한 진상 재조사를 요구하게 되면서 북·일간에는 갈등이 한층 심화되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북한 핵문제로 북·미간의 갈등이 증폭되는 가운데, 고이즈미 총리와 부시대통령이 2003년 5월 23일의 크로포드 미·일정상회담에서 북한 핵문제의 해법과 관련하여 '강경조치(tougher measures)'를 취할 것에 합의하고, 일본정부의 압박에 비중을 둔 대북정책이 추진하게 되면서 북·일관계는 한층 더 악화되어 갔다. 


일본정부는 대북한 '대화와 압박’의 병용정책을 전개하면서도, 핵·미사일 및 납치문제의 포괄적 해결을 주장하며 계속해서 북한을 압박하였다. 일본정부는 2003년 8월 27-29일 베이징 제1차 6자회담에서도 대표연설을 통하여 북한 핵의 개발·보유·이전 불용, 국제적 합의 준수, 검증 가능한 방식에 의한 신속한 페기 등을 언급하면서, 핵·미사일 문제와 납치문제를 북·일 국교정상화 이전에 포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아울러 납치문제의 해결을 가장 중시하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어, 가와구치 외무장관은 동년 9월 20일 UN 총회 기조연설을 통하여 “납치문제는 북·일 평양선언에 기초해 핵·미사일 문제와 함께 포괄적으로 해결할 방침”이라고 언급하면서 UN무대에서 최초로 일본인 납치문제를 거론하였다. 고이즈미 총리도 동년 10월 7-8일의 인도네시아 ASEAN+3정상회담과 10월 20-21일 방콕의 APEC 정상회담 기간중에 “납치문제는 북핵문제와 함께 해결해 간다는 방침에 변화가 없으며, 차기 6자회담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해 나갈 것”임을 강조하였다. 


이처럼, 일본정부는 국제적으로는 납치문제의 국제공론화를 전략적으로 추구하면서 제2차 6자회담시의 주요의제로 상정하고자 노력하였고, 국내에서는 아베 자민당 간사장, 나카가와 경제산업장관 등 대북 강경파이 중심이 되어 북한 압박을 위한 대북 제재조치 등을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2004년 2월 정기국회에서는 대북 송금 중지 및 무역규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외환 및 무역관리법 개정안”이 성립되었다.


이와 같은 일본의 대북 압박정책이 전개되는 것에 대해, 북한은 납치문제는 2002년 9월의 북·일 정상회담을 통해 이미 해결된 사안이므로 6자회담에서 논의할 문제가 아니라고 강력히 반발하였고, 연일 외교부 대변인 및 관영매체 등을 통해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기간 중 인권 유린 및 피해자·유족에 대한 사죄·보상을 주장하였으며, 조총련에 대한 테러행위의 중단 요구를 강력하게 표명하였다.


요컨대, 북·일관계는 2002년 9월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방문에 의한 정상회담을 통하여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지만, 북핵문제와 납치문제로 인하여 냉각상태를 벗어나지 못하였고, 따라서 국교정상화를 위한 회담도 재개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북·일 양국은 양자간의 주요현안인 납치문제의 해결을 위해 6자회담 등 다자간회담의 틀 내에서 접촉을 갖거나, 수면아래의 양자 협상을 전개하였다. 



II. 고이즈미 총리의 제2차 평양 방문의 배경과 합의사항


(1) 배경


일본의 대북정책은 국내 상황, 한국 및 미국과의 관계 등의 영향을 받으며 전개되어 왔다. 고이즈미 총리의 제2차 평양 방문도 일본 국내 상황, 한국의 대북정책과 남북관계, 북핵문제에 대한미국의 입장 등을 고려하면서 이루어졌다. 


먼저, 일본 국내 상황을 살펴보면,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둔 상태에서 국민연금 미납 문제가 일본정계의 '뜨거운 감자’가 되어 후쿠다 관방장관의 사임, 제1야당 민주당의 간 나오토 대표의 사임 등을 초래하면서 고이즈미 총리의 정치적 입지를 매우 어렵게 하였다. 게다가, 납치자 가족 및 시민단체들의 불만이 고조되어 가는 가운데 일본 언론들은 북한에 대해 계속해서 따가운 비판을 가하면서 납치피해 가족 8명의 무조건 귀국 문제 및 '사망’ 또는 '입국 사실이 없음’이라고 발표한 납치피해자 10명의 재조사 문제 등의 해결을 촉구하였다. 이와 같은 국내적 상황에서 고이즈미 총리는 국내의 정치적 공세를 상쇄시키면서 7월 참의원 선거의 승리를 위한 국민지지율의 제고를 지향하여 전략적 승부수로서 평양방문을 단행하였다고 지적할 수 있다.


동북아 국제정치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최근 중국이 6자회담의 성사 등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적지 않은 역할을 전개하고 있으므로, 동북아지역에서 중국과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일본으로서도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일정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방문도 그와 같은 전략적 맥락에서 이루어졌다고 지적할 수 있다. 즉, 미국이 이라크 문제 및 대통령 선거 등으로 북한문제에 깊게 간여할 여유가 적은 상태에서 북·미간의 중재 역할을 수행하고, 아울러 북핵문제로 남북관계의 진전에 한계를 부딪친 한국 정부의 입장을 고려하여 일정 부분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방문이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국내 정치적 상황, 동북아 국제정치 상항 등을 고려하여 평양방문을 전략적으로 기획한 고이즈미 총리는 대체로 2004년 4월에 접어들면서 제2차 방북을 위한 구체적인 사전 정지작업을 전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예컨대, 2004년 4월 1일 야마자키 다쿠 前자민당 부총재 등이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하여 대련(大連)에서 북한의 정태화 북일교섭담당대사, 송일호 외무성 부국장 등과 접촉하였고, 아울러 북한의 용천역 열차폭파 사고 직후인 동년 4월 25일에 일본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10억 달러 상당의 의료품 지원을 결정함과 더불어 대북접촉을 전개하였으며, 외무성의 다나카 총괄심의관이 중심이 된 5월 4-5일 북경 정부간협의에서는 납치문제와 관련하여 일정부분의 합의가 도출되도록 노력하였다.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방문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시점, 즉 5월 12일에 일본에 온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원내대표, 유인태 국회의원 당선자, 이목희 국회의원 당선자, 이인영 국회의원 당선자 등은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방문을 발표하기 하루 전날인 13일에 고이즈미 총리를 방문하여 평양방문의 결행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고이즈미 총리는 5월 14일 평양방문 발표 직후, 일본 외교상 매우 이례적으로 먼저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화로 방북의 취지를 설명한 뒤, 그 다음날 부시 대통령에게 방북에 관해 설명하였다고 한다.


(2) 제2차 평양회담의 합의 사항


일본 국내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답방하지 않은 상태에서 총리가 재방문하는 것에 대해 다소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1) 9·17 평양공동선언을 바탕으로 일본인 납치문제를 포함한 양국간 주요현안 및 핵문제를 포함한 안전보장상의 문제 등의 포괄적 해결을 추구하고, 나아가 (2) 북·일 국교정상화의 재개를 위한 계기 마련을 위해 방북을 결단하였음을 강조하면서, 5월 22일 약 1년 8개월 만에 평양 재방문을 단행하였다. 


일본과 북한은 핵심현안인 핵·미사일문제 및 납치문제를 둘러싸고 적지 않은 입장의 차이를 보여 왔는데, 제2차 김정일-고이즈미 평양회담의 결과 <표 2>와 같은 합의사항이 도출되었다. 즉, 북한은 납치문제는 이미 해결되었다는 입장을 나타내 왔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사망 또는 행방불명 10인의 재조사 합의를 받아냄과 동시에 납치피해자 가족 5명을 데리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또, 핵·미사일 문제와 관련해서는 평양공동선언의 준수와 더불어 북한의 제4차 6자회담 참가 및 미사일 발사 동결 등의 재확인이 이루어졌다. 


고이즈미 총리는 제2차 평양회담을 끝내고 동경에 도착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1)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핵개발을 완전히 포기하여 북한이 재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꼭 잡을 것을 역설하였음을 강조하였고, (2) 사망 또는 행방불명의 10인에 대해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조기 재조사의 실시 약속을 받아내었다고 밝혔으며, (3) 소가 히도미씨의 가족인 남편(미군 탈주병)과 2명의 딸 문제에 대해서는 고이즈미 총리가 직접 만나 1시간 정도 대화를 하며 설득하였지만 함께 귀국이 어려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의로 제3국에서 면회를 하게 될 것이다고 설명하였다.



III. 고이즈미 총리의 제2차 평양 방문 및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한 평가


고이즈미 총리의 제2차 평양방문 및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해 일본 국내에서는 북한의 주도권에 의한 1시간 30분의 짧은 회담, 사망 또는 행방불명 10인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조치 미흡 등을 이유로 비판이 제기되었고, 특히 요코다 메구미의 부모를 비롯한 사망 또는 행방불명 10인의 가족들은 사망 또는 행방불명 10인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25만톤의 식량과 1,000만 달러의 의료품 지원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였다.


그러나, 일본 국민들은 대체로 고이즈미 총리의 제2차 평양방문 및 정상회담의 결과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즉, 아시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등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일본국민들은 약 62-67%가 (1) 국교정상화 교섭 재개의 계기를 만들고 (2) 납치 피해자 5명과 함께 귀국한 고이즈미 총리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고, 40%대로 하락하였던 내각지지율은 54-58%까지 상승하였다.


그러나, 일본 국내상황을 보면, 국교정상화를 지향한 북·일관계가 순탄하게만 진전될 것이라고는 예상되지 않는다.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방문 직후의 여론은 조기 국교정상화에 신중을 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자민·공명·민주 3당은 5월 26일 회의를 갖고 북한 선박 등의 일본 입항을 거부할 수 있는 '특정 선박 입항금지 특별조치법’을 수정·합의함과 더불어 곧 국회에서 통과시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일본 정치권이 '대화와 압박’을 대북정책의 기조로 변함없이 유지할 것임을 가시적으로 표명한 것인데, 제4회 6자회담이후에 북·일 국교정상화회담이 재개되더라도, 교섭과정에서 일본은 미국의 입장을 반영하여 평양선언의 준수에 따른 핵·미사일 문제의 해결을 주장하면서, 사망 또는 행방불명 10인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강력하게 제기할 것으로 예상된다. 


요컨대,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이 재개된다 해도 다소의 진통을 겪을 것이고, 납치문제 및 핵·미사일 문제의 해결 없이는 일본의 대북경제지원도 어려울 것이며, 국교정상화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배정호 /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동경대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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