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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일본 정치·외교의 회고와 2004년 전망

배정호 / 2004-01-14 / 조회: 3,683

I. 2003년 일본 정치·외교의 회고


1. 정치 분야의 회고


(1) 고이즈미의 자민당 총재 연임과 제2기 내각 출범


고이즈미 총리는 개혁부진, 경기침체의 장기화 등으로 국민 지지율이 연초 40대%로 하락하였지만, 지방·국회 보궐선거(4.27)에서의 자민당 승리, 유사법제의 중의원(5.15) 및 참의원(6.6)에서의 성립, 미·일정상회담(5.23)에서의 외교적 성과 등에 힘입어 50%대를 회복하게 되었다.


이처럼, 정치적 입지를 다소 회복한 고이즈미 총리는 경기회복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였고, 그 결과 일정한 성과를 거두면서 50%대를 계속 유지해 갔다.


그리고, 고이즈미 총리는 50%대의 지지율을 바탕으로 9·20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총 657표 중 399표(60%)를 획득하여 재선에 성공하였다. 즉, 고이즈미 총재의 임기만료(9.30)에 따른 총재선거에서, 고이즈미 총리는 50%대의 국민지지율을 바탕으로 60%라는 다수의 지지를 얻어 연임하게 되었다.


이어 고이즈미 총리는 9월 22일 대폭적인 개각을 단행하여 집권 제2기 내각을 발족시켰다. 고이즈미 총리는 친정체제의 구축을 위해 정부와 당에 후쿠다 관반장관, 아베 간사장을 포진하면서도 총재선거의 후유증인 당내 불협화음의 조기 봉합을 위해 주요 파벌 및 연립정부 참여 정당(공명당, 보수신당)에 각료직을 골고루 안배하여 거당 협력체제를 추구하였다. 그리고, 고이즈미 총리는 '강한 일본’의 건설 및 세대교체를 지향하여 전후세대의 보수성향이 강한 신진·소장 정치인들을 당·정에 포진시켰다.

(2) 야당의 통합과 새로운 제1야당 민주당의 발족


일본의 야당인 민주당(원내 제2당)과 자유당(원내 제5당)은 고이즈미 정권의 출범이후 소극적인 대정부 비판 등으로 참의원 선거(01.7), 중·참의원(02. 10) 등에서 저조한 실적을 거두면서 한계를 노정하였다.


따라서, 간나오토 민주당 대표와 오자와 이치로 자유당 당수는 7월 23일 당수회담을 갖고, 자유당의 해체와 더불어 소속 의원들의 민주당에 합류하는 흡수합병 형식으로 합당하기로 합의하였다. 


그 결과 10월 5일 '신민주당 합당대회’가 개최되고, 새로운 제1야당 민주당의 발족하게 되었다.


(3) 11·9 총선거와 양대 정당 구도의 형성


앞에서 언급한 바 같이 자민당은 고이즈미 총재의 연임과 더불어 거당협력체제의 지향아래 내부 전열을 정비하기 시작하였고, 민주당은 자유당과의 흡수통합과 더불어 세력 기반의 확대를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정치적 상황속에서 10월 10일 중의원이 해산되었고, 11월 9일 중의원를 향한 선거전이 자민당과 민주당의 대결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전반적으로 자민당은 농촌지역과 70대 이상의 노령층 및 여성 유권자를 중심으로 강세를 보였고, 민주당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30-40대 및 남성 유권자층·무당파층 등에서 선전을 나타내었다.


11·9 중의원 총선거의 투표율은 과거 최저였던 96년의 59.7%에 이어 전후 두 번째 낮은 59.9%를 기록하였고, 선거결과는 자민당 부진(237석), 민주당 약진(177석), 사민당(6석)·공산당(9석) 등 진보정당의 퇴조이었다. 즉, 자민당이 단독 과반수의 획득에 실패하였지만,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연립정부체제가 유지되는 가운데 '자민 대 민주’의 양당대결 구도가 구축되었다.


또, 11·9 중의원 총선은 자민당내 파벌구도가 재편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즉, 11·9 총선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소속 파벌인 모리 등 주류파가 의석 수를 확대하여 세력을 신장시킨 반면, 당내 최대 파벌인 하시모토 등 비주류 세력은 의석수가 감소하는 퇴조세를 보였는데, 이는 비주류 파벌의 결속력 이완에 따른 파벌 구도의 재편과 더불어 고이즈미 총리의 정국 주도력이 한층 강화되도록 하였다.


2. 외교·안보 분야의 회고


(1) 고이즈미 총리의 정상외교와 주요국 외교관계


① 고이즈미 총리의 정상외교


고이즈미 총리는 1월 31일의 '시정방침연설’에서 “미일간 협력 및 한·중·러·ASEAN 등 주변국 관계를 강화하며, 이라크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선다”고 언급하였듯이, 적극적인 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예컨대, 고이즈미 총리는 일·러정상회담(1.10), 중·일정상회담(5.31), 미·일정상회담(5.23), 한·일정상회담(6.7) 등 주요 정상회담을 가졌고, 러시아(1.9-12, 5.30-31), 영·프·독·스페인 등 유럽 8개국(4.26-5.2), 미국(5.22-23), 이집트·사우디 등 중동 2개국(5.24-25) 등을 비롯한 12개국을 방문하였다. 아울러, 고이즈미 총리는 G-8(6.1-3, 프랑스), ASEAN(10.7-8, 인도네시아), APEC(10.20-21, 태국) 정상회담 등 국제회의에도 적극적으로 참석하였다. 


그리고, 고이즈미 총리는 블레어 영국 총리(7.18-20), 하워드 오스트레일리아 총리(7.15-17) 등 주요국가의 정상들을 초청하여 우호·협력의 증진을 도모하였으며, 나아가 '일·태평양 諸島 포럼 정상회의’(5.16-17, 오키나와), '아프리카 개발 정상회의’(9.29-10.1, 동경), '일·ASEAN 특별정상회의’(12.11-12, 동경) 등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② 일본과 주요국 외교관계


미·일관계는 부시정권의 출범과 더불어 고이즈미-부시에 의해 가시화되었다. 미·일 동맹의 강화론은 2001년 6월 30일 부시-고이즈미의 캠프데이비드 미·일 정상회담 및 2002년 2월의 부시-고이즈미 東京정상회담에서 확인된 이후, 2003년 5월의 부시-고이즈미 크로포드 미·일정상회담 등에서 더욱더 강조되어 나타났다. 크로포드 목장 회담은 최고의 외교적 예우인데, 이 크로포드 미·일정상회담에서 양국 수뇌는 북한 핵문제, 이라크 전후처리 및 중동평화 정착문제 등 주요 현안에 협의하면서 긴밀한 동맹관계를 과시하였다. 이후, 일본은 국익중시의 실리외교의 틀내에서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전략을 추구해 나갔다. 특히, 일본은 대미관계에서 대테러전에의 자위대 파병 등 안보분야의 협력을 통한 긴밀한 협력관계의 유지를 도모하였다. 예컨대, 일본은 미일군사협력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6월 6일 '일본 유사’ 대비 3개의 법안을 성립시켰고, 7월 26일에는 미·영군의 지원을 위한 '이라크 파병법’을 성립시켰으며, 나아가 MD도입에 전향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한·일관계는 2002년 6월의 월드컵 공동개최 및 '국민교류의 해'를 계기로 한·일 양국 국민간 우호분위기가 고조되고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면서 보다 성숙된 단계로 진전되어 가고 있음을 나타내었다. 즉, 2003년 2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식에 일본측에서 총리를 비롯한 다수의 지도층 인사가 참석하였고, 취임식 직후에는 청와대에서 한·일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이후 한·일간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방일에 따른 동경 정상회담을 비롯하여 ASEAN+3 정상회담, APEC 정상회담 등에서의 정상회담이 개최되었고, 아울러 5차례 이상의 외무장관급 회담이 열렸다. 요컨대, 2003년의 한·일관계는 비록 우익 일본 정치인들의 역사왜곡 발언 등이 있었지만 비교적 성숙된 관계로의 발전을 지향한 우호관계가 지속되었다.


중·일관계는 3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하는 지도체제의 출범을 계기로 고위인사의 왕래 등 관계개선을 위한 노력이 전개되었고, 5월 31일에는 러시아의 페테르부르그시에서 定都 3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양국 정상간의 회담이 개최되기도 하였다. 즉, 고이즈미 총리의 취임후, 과거사문제로 인해 갈등이 심화되었던 중·일관계는 갈등이 다소 완화되고 관계개선을 향해 나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의 遺棄 화학무기 폭발사건 처리 문제, 일본인 매춘관광, 일본 유학생의 음란공연 등으로 인하여 중국내 반일감정이 재차 심화되기 시작하였고, 이는 역으로 일본내 우익보수세력의 反中 감정이 자극되도록 하였다. 즉, 관계개선을 위한 양국 정부차원의 노력은 한계를 나타내게 되었다.

(2) 이라크 파병법의 성립과 기본계획


일본 정부는 이라크전 당시 미국과 영국의 군사행동에 대한 지지를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이어 자위대의 신속한 파병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이라크 부흥지원 특별조치법’의 마련을 추구하였다. 그 결과, '이라크 부흥지원 특별조치법’이 7월 26일 야당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립여당의 단독 강행에 의해 최종적으로 참의원에서 성립되었다. 이로써, 일본은 PKO 협력법과는 달리 당사국의 요청이 없어도 자위대를 다국적군의 일원으로 파병할 수 있는 선례를 갖게 되었다.


이후, 일본 정부는 육·해·공 자위대의 1,000명 정도를 이라크에 파견한다는 방침아래 10여차례에 걸쳐 국회·정부 조사단을 파견하여 자위대의 활동지역 및 임무 등을 조사한 뒤, 12월 9일 각료회의를 개최하여 '이라크 파병 기본계획’을 마련하였다.


'이라크 파병 기본계획’의 기본방침은 이라크 재건에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지원활동은 안전이 충분히 확보된 상태에서 실시한다는 것이다.


(3) 안보개혁과 유사법제의 정비


일본 정부는 전후 논의조차 금기시 되어왔던 유사법제를 비롯한 안보 관련법안들을 안보개혁 차원에서 정비를 단행하였다. 즉, 일본 정부는 정계의 보수화, 국민들의 안보위기 의식 등을 활용하여 '미·일 방위협력지침'의 제정에 따른 미·일동맹의 실효성 확보 및 제고를 위하여 1999년 5월의 '일본 주변지역의 유사시’에 대비하는 법안 정비에 이어, 2003년 6월 6일 국내의 야당 및 주변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 유사시’에 대비하는 '무력공격사태법안’ '자위대 개정안’ '안전보장회의 설치법 개정안’ 등 3개의 법안을 마련하였다.


이로써 일본은 일본과 주변지역 유사시 모두에 대응할 수 있는 법률적 토대를 갖추게 되었는데, 이는 전후 안보논의가 새로운 단계로 가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II. 2004년 일본 정치·외교의 전망


1. 정치 분야의 전망


11·9 총선을 계기로 전후 최대야당의 등장과 군소정당의 몰락으로 일본의 정치지형이 '자민당 대 민주당’으로 양대 대결구도로 형성되었는데, 이 양당대결구도체제는 2004년 7월의 參議院 선거를 겨냥하여 치열한 선거전을 전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즉, 7월 參議院 선거를 향한 선거전 과정에서 전후 최대 야당으로 부상한 민주당의 대정부 비판 및 공세의 강화와 더불어 일본의 정치지형은 자민·민주 양당체제로의 재편 틀이 한층 명확하게 구축될 것이다.


아울러, 고이즈미 총리는 총재 재선·총선을 통하여 확보된 지지기반과 정국 주도력의 강화를 參議院 선거전의 과정에서 한층 더 강하게 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이즈미 총리는 11·9 총선이후의 자민당내 비주류의 결속력 이완·약화 등을 틈타 당내 주도권 및 세력기반의 강화를 도모할 것이고, 국민지지율을 바탕으로 한 거대야당과의 대결을 통하여 정국 주도권의 장악을 한층 더 강하게 추구할 것이다. 


따라서, 고이즈미 총리는 '강한 일본’의 건설을 지향한 개혁정치의 기치를 더욱 더 높이면서 정치·경제사회 제 분야의 개혁을 추구해 갈 것이고, 아울러 국내 정치사회의 보수화 및 진보정당의 몰락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면서 헌법 개정의 논의를 비롯한 안보개혁 등 소프트 파워의 증강을 위한 개혁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2004년 1월 1일 고이즈미 총리의 기습적인 야스쿠니神社 참배도 '강한 일본’을 추구하는 자신의 의지를 표출하는 전략적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총재 재선직후 '강한 일본’의 건설 및 세대교체를 지향하여 전후 세대의 보수성향이 강한 신진·소장 정치인들을 당·정에 포진시켰는데, 이들 전후세대의 신진 신보수세력은 21세기 국제지도국 일본을 지향한 국내차원의 개혁을 한층 강하게 추구할 것이다. 다시 말해, 전후 신보수세력의 신진·소장 정치인들은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을 지향한 국제사회에서의 역할 증대 및 미·일동맹강화 속에서의 독자적 활동영역의 확대 등을 추구하며, 이를 위한 국내적 차원의 개혁을 강하게 도모코자 할 것이다. 요컨대, 2004년 일본 정치사회는 고이즈미 총리의 기습적인 야스쿠니 신사참배에서 시사되었듯이 보수·우경화 성향이 더욱더 가속될 것이며, 아울러 21세기 국제지도국을 지향한 개혁은 '자민 대 민주’의 양당 대결 속에서 한층 활성화되어 구체적으로 전개될 것이다.

2. 외교·안보 분야의 전망


2004년에도 일본은 21세기 국제지도국을 지향한 국제사회에서의 역할 확대와 이를 위한 외교·안보정책을 계속 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즉, 일본은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을 지향한 국제사회에서의 역할 증대 및 미·일동맹강화 속에서의 독자적 활동영역의 확대 등을 추구할 것이고, 이를 위해 정상외교를 비롯한 전략적 외교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것이며, 나아가 군사력의 질적 증강 등 하드 파워의 증강은 물론 후속 유사법제의 정비, 방위청의 방위성()으로의 승격, 자위대의 폐지 및 국방군의 신설, 집단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개정 등 안보개혁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라크문제에 대해서 일본은 자위대 파견 및 정부개발원조(ODA) 등 부흥 지원자금의 전략적 제공 등을 통해 中東질서 재편에 대응하면서 자위대 파견에 대한 이슬람諸國의 반발을 무마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미·일관계는 일본의 미·일동맹의 강화정책이 계속해서 추구될 것으로 전망된다. 즉, 일본은 이라크·북한핵 문제 등에 있어 미국과 긴밀한 공조를 취해 갈 것이며, 아울러 MD 협력 등 미·일 군사협력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안보분야의 협력 강화를 추구해 갈 것이다. 


한·일관계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神社 방문·우익단체의 역사왜곡 교과서 검정 등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재연될 가능성이 내포된 가운데, 한일 월드컵 공동주최를 계기로 양국 국민 차원에서 구축된 우호·협력 분위기를 바탕으로 6자회담 등 대북 공조, 2005년 FTA타결 및 비자면제 협정 체결 등의 현안 해결을 위해 긴밀한 협력을 추구해 갈 것으로 전망된다. 


중·일관계는 고위층의 상호 방문을 통한 관계개선이 도모될 것이지만,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神社 방문 등 과거사 문제, ODA지원 문제 및 상호 군비확대 문제 등을 둘러싸고 갈등이 야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ASEAN관계는 東京선언을 기반으로 아세안 각국과의 FTA 체결교섭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협력증진이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배정호 /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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