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이후 국제정치 체제의 변화: 개괄

오진용 / 2003-12-19 / 조회: 4,733

I. 9.11과 미국의 전략


9.11사건은 미국을 전혀 새로운 時代로 진입시켰다. 냉전시대는 미-소간의 대치가 치열했던 시대라는 특징이 있다. 소련연방 해산(1991)이후, 미국에 대한 소련의 위협이 사라졌으므로 이 시대를 흔히 탈냉전시대(post cold war)시대라고 정의한다.

9.11사건은 건국 200년 역사상 미 본토가 외부의 테러세력으로부터 기습적 공격을 받은 최초의 사건이었다. 그런 만큼 미국의 반응 또한 강렬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공포주의 세력의 새로운 위협에 직면해 있다는 의미에서 일부 학자들은 이 사건이후를 탈-탈냉전시대(post post cold war)로 정의하기도 한다.


이 사건은 지구적인 측면에서 미국의 중점 전략목표와, 세계 질서에 대한 미국의 시각에 전면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미국의 전략적 초점은 테러리즘을 박멸하고 위협받고 있는 미 본토의 안전을 확보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9.11이후, 짧은 2년 동안 미국은 3단계에 걸쳐서 신속하게 대외전략을 조정했다. 9.11사건 발생이후 2002년 초까지를 '테러에 대한 초기 反應단계’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시기가 첫 단계다. 여기서 미국은 자국이 사실상 무차별 테러리즘의 표적이 돼 있음을 실감하면서 우선 내부적으로 미국에 대한 공격과 기습을 막는데 초점을 두었다. 미국은 서둘러 국토보안부 설치를 구상하고, FBI와 CIA의 조직과 임무를 완전히 새로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체제로 再構築했다.


9.11사건이후, 미국의 안보체계는 즉시 대테러 대응체제로 전환했고, 또 국제여론을 업고 테러집단에 대한 '응징’을 미국외교의 중심과제로 선언했다. 또 이 사건이후 한 달도 안 되는 사이에, 미국은 세계 주요국가를 동원해서 강력한 '반테러연맹’을 결성했으며, 이어서 대아프카니스탄 전쟁에 돌입했다.

일부 학자들은 아프카니스탄 전쟁을 미국의 공세적 전략의 전환점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테러 '전쟁’의 출발점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러나 실제 미국내부의 움직임을 보면, 미국정책의 초점은 테러의 공격으로부터 미 본토를 조직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에 더 많은 노력을 치중한 시기였다.


제 2단계는 2002년 1월 29일 부시의 국정자문 연설이후 2003년 2월 반테러 전략이 발표 된 시기다. 이 1년 기간동안 미국은 지구적인 측면에서 군사전략을 전면 재검토하고 '마약통제전략’, '국토안전전략’, '국가안전전략’, '대량살상무기방어전략’, '전산망안전확보전략’, '국가 중요기초산업기설 안전과 국가자산 보호전략', ’반테러 전략'을 연이어 발표했다.

이 기간동안 미국의 전략중심이 어떻게 '移動’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두 가지 문헌이 있다. 하나는 2002년 1월 부시 대통령이 미 상-하양원 합동회의에서 발표한 국정자문 연설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 연설에서 처음으로 '악의 축’으로 7개국을 거론했다. 여기서 부시대통령은 향후 이들 국가들이 국제질서의 안전에 '장애’가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고, 미국이 직접 이들의 '제거’에 나설 것임을 암시했다.


다른 하나는 2002년 6월 1일 부시대통령이 웨스트 포인트 육군사관학교에서 발표한 '선제공격’전략이다. 선제공격을 통해서 적을 능동적으로 제압해 나가겠다는 부시대통령의 선언은 이미 당시에 이라크 공격 가능성을 직시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의미가 있다.


제 3단계는 미국이 군사안보 전략을 전 지구적인 차원으로 확대한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한 시기이며, 그 이후 전쟁의 수습단계까지다. 이 과정을 주의해 보면, 테러전쟁에 대한 미국의 핵심개념이 차츰 변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선 미국은 테러주의자들의 폭력과 '기습’을 일종의 '전쟁행위’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 이는 과거의 테러에 대한 개념과 해석을 보다 적극적으로 확대해석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테러분자들을 단순히 치안문제나 사법적 차원에 다룰 것이 아니라, 국제안전에 대해 '공포를 수반한 대량 파괴행위자’들로 규정하고, 이들에 대해서는 군사적 수단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테러에 대한 군사적 대응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미국 외교정책 결정과정에서 국방부의 발언과 비중이 크게 증대했고, 국제문제에 대한 군사적 개입과, 그 '해결방식’이 차츰 힘을 얻게 됐다. 이 점은 미국 외교정책의 큰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다.


또 아프카니스탄 전쟁 완료이후, 알 카에다와 같은 테러조직이 사실상 완전히 붕괴되고 나서, 미국은 공개적으로는 더 이상 '테러의 標的’을 찾을 수 없게 됐다. 이런 현실적인 상황변화 때문에, 미국의 안전전략은 대규모 '다량살상무기’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불량국가’와 테러수단으로서 '대량살상무기’를 하나의 위험요인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치명적인 대량살상무기가 위험한 '불량국가’의 수중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미국의 세계안전전략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은 경제적으로 실패한 국가,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국가, 경제개발 수준이 낮고 사회불안이 계속되고 있는 국가들이 있는 중동, 중앙아시아, 동남아, 동북아 일대의 '불량국가’들에게 대량 파괴무기가 이전되는 것을 막아야 하며, 이들 지역에 테러분자들의 根據地가 형성되는 것을 저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런 논리가 미국이 이들 불량국가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이유이며, 또 새로운 상황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미군의 해외군사기지와 배치를 전면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군 해외군사배치 개혁의 배경이다.


결국, 반테러-불량국가-대량살상무기에 대한 군사적 응징-통제-억제와 같은 행동이 미국의 세계안전 전략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II. 單極체제와 新 保守主義


테러전쟁 시대의 미국의 군사행동을 이해하려면 '냉전체제 붕괴’이후, 超强國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새로운 국제질서(unipolar system)의 형성과정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1991년 걸프전쟁은 초강국으로서 미국의 위협적인 군사력과, 對美협력국들의 군사동원 능력을 여지없이 발휘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또 이 전쟁을 통해서 미국은 초강국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그 후, 미국의 역할은 한층 강화됐다. 예를 들면 코소보 전쟁이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전쟁은 전형적인 유럽식 분쟁이었다. 민족문제와 종교문제가 복잡하게 깔려있는 이 유럽특유의 전쟁에서 아이러니컬하게도 유럽의 지도력은 전혀 분쟁해결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이 개입함으로서 이 치열한 전쟁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는데, 여기서 세계의 안전과 질서유지를 위해서는 미국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刻印시켰다.


지구적인 측면에서 미국 중심의 강력한 單極체제의 출현은 상대적으로 유럽과 러시아의 지위를 격하시켰다. 낡은 유럽과 이미 힘을 상실하고 있는 러시아와, 이제 浮上을 시도하고 있는 중국의 존재가 외견상 지구상의 '세력균형’ 형태를 갖추고 있었으나, 강력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한 초강국 미국을 견제하기에는 전혀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2001년 1월 초, 미국내 保守派지도자들이 부시대통령에게 연명으로 서한을 보냈다. 이 서한에서 보수파들은 “냉전시대에는 '안정’을 중시하고, 또 국가이익을 우선했었으나 이제는 이런 낡은 사고방식을 버리고, 초강국 미국의 시대에 걸맞는 개념, 즉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전地球를 향해 '미국식 價値觀’을 전파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들의 주장은 “지금은 평화'공존’의 시대가 아니라, (미국의 뜻에 맞게)정권을 교체해 나가야 할 시대”라는 것이다. 이들 보수파들은 매년 1000억 달러의 군비증가를 통해서 최첨단의 군사력을 전진 배치해야 하며, 이를 통해 미국의 패권적 지위(Hegemons)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부시대통령은 이들 보수파들이 점차 미국 각계의 전면에 부상하면서 “각기 다른 미국식 국제주의가 태동(Distinctly American Internationalism)하게 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런 보수파들의 주장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들 보수파의 代父나 다름없는 윌리엄 크리톨(William Kristol)과 로버트 카간(Robert Kagan)은「오늘의 국제체계는 세력균형을 축으로 형성된 것이니라 미국의 패권을 중심으로 구축된 세계다. 국제금융체계도 구조적으로 미국의 국가이익에 도움이 되도록 움직이고 있다. 국제적인 안전문제도 미국의 지도력에 의지하는 동맹관계에 의존해 있다. 상대적으로 평온한 오늘의 국제환경 역시 우리의 패권의 영향에서 얻어진 결과다.」라고 주장하고 있다(The National Interest, 2000, Spring)


이런 주장들은 단지 한가지 예일 뿐이다. 오늘 날 미국 행정부에는 최근 100년 동안 볼 수 없었던 초강대국다운 '패권의식’이 감돌고 있다. 그 원인 또한 매우 복잡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1999년부터 미국 지식인 사회에서는 조직적으로 '초강국 미국의 浮上’에 대비하기 위한 '思考의 틀’을 정리해 왔다는 점이다. 지식인들은 單極체제의 형성을 기정사실화하면서, '패권’추구를 위한 이념적 構想을 준비해 왔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우드로 윌슨 센타(Woodrow Wilson Center)의 '패권작업 소조’(Working Group on Hegemony)를 들 수 있다. 여기서 單極체제는 어느 날 우연히 미국이 초강국이 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윌슨 센타는 미국이 지구적 측면에서 미국이 패권적 지위를 확고히 누리기 위한 방안을 생각했고, 이를 위해 각 분야의 뛰어난 엘리트 15명으로 '패권작업 소조’를 조직했다. 이들은 죠지타운대학의 존 아이켄베리John Ikenberry), 버지니아대학의 제프리 레그로(Jeffrey Legro), 다트머스대학의 윌리엄 울포스(William Wohlforth)같은 엘리트 교수들이었고, 초강국 미국의 神話와, '제국의 공론’(Imperial consensus)이 이들의 손에 의해서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부시대통령 당선이후, 이들 막후에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帝國公論’을 부시정부의 이념적 중심체계로 차츰 대외정책의 전면에 등장시켰다.


미국의 역사학자 브랜디스(H.W.Brands)는 그의 책 「미국은 세계에 무엇을 주어야 할 것인가」(1998)에서 미국내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념적 主流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미국이 세계에서 하나뿐인 가장 '선량한 국가’임으로 미국적 가치를 세계에 확산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소개하고, 또 세계가 미국식 생활방식과 미국적인 가치를 '모방’하도록 선전하고 학습하도록 해야 한다는 '模倣派’의 주장도 예로 들었다.

그러나 브랜디스는 역시 미국사회의 强硬派들의 의식의 흐름을 주목했다. 미국내 강경파들이 주장은「인류는 본성이 고분고분하게 '미국적 가치’를 순종하려 하지 않을 것임으로 군사력을 가지고 간섭하고 개입함으로서 미국이 인류에 지고 있는 '독특한 의무’를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브랜디스는 결국 이들 强硬派들이 득세하게 되면, 인류문명을 미국적 가치와 행동양식으로 '통일된 하나의 세계’를 건설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브랜디스의 예측은 거의 근사하게 적중했다. 부시정부에 强硬派들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군사력을 동원한 강압적 방식으로 세계문제에 개입하는 事例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자유주의적 성향의 칼럼니스트로 알려진 윌리엄 파프(William pfaff)는 이런 미국내 사상적 흐름을 '윌슨주의’(New Wilsonianism)이란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의 진단에 의하면,「국제간섭주의적 自由派의 주장이나, 片面主義的 新保守派의 주장을 결국은 모두 패권주의라는 개념으로 밖에 규정할 수밖에 없고, 모두 같은 뿌리에서 나온 사상적 '支流’라는 것」이다.


그는 윌슨주의의 특성을 다양하게 해석한 다음, 미국의 패권주의는 반드시 적지 않은 도전에 직면할 것이며, 심지어 그 내부에서 또 다른 형태의 사상적 변혁이 일어나 패권주의를 대체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았다.

파프는 역사적 관점에서 미국은 이미 전환기에 있다는 것을 예시했다. 나포레온의 유럽독점이 영국중심의 '나포레온 연맹’을 탄생시켰고, 워터루 일전에서 프랑스 제국은 무너졌다. 또 19세기 영국의 패권에 대한 독일의 치명적인 도전을 예로 들었다. 역사의 교훈은「크게 앞선 문명이 후진문명을 통제할 수 있을 때, 패권은 오랜 동안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 예로 로마제국을 들었다. 따라서「미국에 대한 도전은 미국처럼 문명적으로 크게 앞선 진보된 사회로부터 올 것이라고 보았다. 아니면 로마, 비잔틴, 오토만 제국이 '내부의 衰落’이 몰락의 원인이었던 것처럼, 미국은 그 내부로부터 일어나는 '覇權自己解體’과정을 격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Foreign Affairs, 2001, Jan.-Feb.)


그러나 브랜디스나 파프의 주장을 '현실적인 해석’으로 인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역사적 관점은 '역사적 해석’ 그 자체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우선 필자는「국제정치적으로 單極의 출현과, 미국내 新保守主義의 사상적 潮流를 인과관계로 보거나, 같은 根源으로부터 나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單極체제의 등장이 역사적 필연이라고 보지 않는 것이다.


單極이 출현할 수 있는 국제적 '與件’이 형성되면서 新保守主義的인 성향이 하나의 커다란 潮流를 형성했다고도 볼 수도 있으나, 單極체제는 냉전체제 붕괴이후 어느 날 갑자기 형성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세계 제2차 대전이후, 미-소간 '힘의 均衡’이 계속되는 반세기 동안 미국의 '支配力’은 이미 세계적이었다. 당시 미-소간의 '균형’은 매우 취약했고, 실제로는 매우 不均衡했다. 미국에 대해서 소련은 사실상 '비대칭적인 적’이었다. 이 점을 간파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 사실은 '소련연방의 붕괴가 세계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미-소의 양극체제가 세계를 '共分’했다고 가정한다면, 소련의 붕괴가 세계에 미친 영향이 극히 미미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독일의 통일과, 일부 동구권 국가들의 국경'조정’이 있었을 뿐이다.


더 깊이 있는 연구가 계속돼야 하지만, 미-소 '兩極’체제는 다분히 '미국이 세계지배의 한 수단’으로서 소련이라는 파트너를 과대 포장해 왔다는 점, 특히 이 '과대 포장된 적’을 미국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支配力을 한층 강화하는 道具로 이용해 왔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세계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필자는 히틀러 체제와 일본 제국주의의 멸망을 이미 單極체제의 支配力이 가져온 커다란 성과라고 본다.


필자는 사실상 오늘 날 우리가 '單極의 출현’이라고 표현하는 현실과, 신보수주의의 등장과는 연관이 없다고 본다. 신보수주의는 미국의 힘의 지배가 旺盛해지면서, 미국이 힘과 군사력과 외교적인 역할에 버금가는 '지위’를 찾아야 한다는 '사상적 反動’이 그 뿌리라고 본다.


럼즈펠드(Donald Rumsfeld)의 말처럼, “기왕의 세력균형을 전제로 체결된 모든 '반탄도탄 조약’은 무효다. 그것이 우리에게 방해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이를 증명한다. 특히 '先制攻擊’論은 이런 사상적 低流의 절정을 반영하고 있다. 미국의 판단에 따라서 '적을 공격해야 할 시점’이라면, 미국은 언제든지 먼저 군사적으로 적을 제압한다는 것이다. 적의 공격여부를 판단하는 객관적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는 판단과, 적의 위협에 대한 인식이 '선제공격’의 기준이라는 것이다.


單極체제는 장기간 계속될 것이다. 單極체제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强國의 등장 가능성이 거의 보이지 않고 있고, 또 상대적으로 미국의 힘이 약화되면서 유럽, 러시아, 중국이 대립적인 을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單極체제는 지속적으로 支配力을 강화할 수 있게 될 것이다.


單極체제가 계속되는 배경을 다음 몇 가지 이유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 군사력의 절대적 우위가 향후 20년 간 계속될 것이라는 평가.
-세계지배에 필요한 정보수집능력과 국제기구에 대한 지휘-운용능력
-미국경제의 지속적인 성장, 세계경제의 상대적인 안정 지속
-미국의 경제기반의 견실성, 교육-인적자원-기초과학-첨단기술의 우위 유지
-單極체제하의 세계의 기존질서의 안정, 强國출현의 가능성을 기대할 수 없음.
-單極체제가 지속되는 한, '군사력에 의한 세계질서 개편’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이유로 單極체제의 '세계지배력이 강화’되는 가운데, 향후 미국 정부의 보수주의적 성향은 더욱 강한 색채를 띄게 될 것이며, 세계는 점차 '미국의 價値와, 미국중심의 세계관’을 수용하는 쪽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III. 이라크 전쟁과 미-중관계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처럼 다양한 의미와 해석이 가능한 '戰爭 事例’는 드물다. 그만큼 전쟁의 목표와 초점이 흐려져 있고, 당사국간의 이해가 복잡하게 엇갈리고 있다. 이라크 전쟁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사담 후세인이 이끄는 이라크정부와, 미국 사이의 가장 첨예한 이해관계의 충돌요인은 무엇인가’하는 점이다.


기존의 국제정치는 '자원을 포함한 地-經學的 요인’과, '강대국의 힘과 영향력 유지에 필요한 전략적 기득권’확보를 위한 '경쟁’이란 양상을 빚어왔다. 불행히도 이라크는 이 두 가지 강대국들의 경쟁유발 요인를 모두 겸비하고 있는데, 사담 후세인은 현실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單極의 지배’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방향으로 대내외 정책을 추구해 왔다.


특히 부시정부 등장이후 單極체제가 극단적으로 세계지배를 강화해 나가고 있는 시점, 보수주의가 횡행하는 국제정세하에서 사담은 계속해서 미국에 대해 도전적인 입장을 감추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더욱이 사담은 미국이 지목하고 있는 '불량국가’라는 평가와, 미국이 가장 싫어하는 '대량살상무기’의 개발의혹을 갖고 있다.

이런 사담의 불리한 요소들이 오히려 이 지역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미국의 이익에 맞게 再編’하고, 또 이 지역을 전략거점으로 '확보’해 가나려는 미국의 이해와는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이 점이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치뤄야 하는 본질적인 이유다. 


이런 역사는 과거 영국과 이라크 사이에서도 있었으므로 史學者들은 이 점을 들어 '역사는 再演된다’는 점을 주장하기도 하고, 또 單極의 세계지배라는 거대한 시대적 潮流앞에 맹목적으로 거칠게 대항하고 있는 사담의 우직스러움을 비웃기도 한다.


9.11테러 발생이후, 가장 먼저 미국에 대해 적극적인 협력태도를 드러낸 나라는 중국이었다. 우선 '테러관련’정보책임자들을 미국에 보내 '반테러전략’에 대해 미-중의 공동보조를 강조했다. 중국은 單極체제하에서 중국이 고도성장을 지속하려면, 미국과의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1990년대 이후, 중국의 외교정책은 '안정적인 對美관계 유지’를 최상 목표로 간주하고 있다. 미국과의 원만한 관계유지가 중국외교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셈이다.


이 점은 중국이 單極체제를 철저히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며, 또 중공 당의 실용주의 노선의 본질을 설명하는 것이다. 중국은 이처럼 單極체제에 완전히 '순응’하는 입장을 견지했고, 그렇게 행동함으로서 미국으로부터 받고 있는 '잠재적인 경쟁국’이라는 의구심을 피하려 했다.


미국이 아프카니스탄 전쟁에 나서자 중국은 즉각 국경을 봉쇄하고 알 카에다 조직의 동태와,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정보를 미국과 공유했다. 중국은 오사마 빈 라덴의 중국 쪽의 탈출구를 봉쇄하고,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침공이 중국의 주변 정세에 미칠 영향을 면밀하게 검토했다.


중국은 미국의 대아프카니스탄 전쟁과, 대이라크 전쟁을 각기 다른 입장에서 본다. 중국은 미국의 대아프카니스탄 전쟁은 비교적 목표가 분명하다고 판단한다. 알 카에다 基地와,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하고, 텔레반정권을 붕괴시킨다는 것은 아프칸 사회의 전통가치와, 전통적 사회구조를 회복시킨다는 의미에서 '合目的’的이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의 목표는 아프칸에 비해 너무 크다고 본다. 미국의 목표는 사담을 몰락시킨 다음, 전통적인 이스람 체제를 대신할 민주사회를 건설하고, 아랍권에서는 대표적인 미국적인 '민주국가’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이런 미국의 목표가 이라크의 다양한 민족-종파지도자들에게 그대로 받아들여질 것인지 의문을 갖고 있다. 이라크에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인물들은 대부분 부족이나 종파적 배경을 갖고 있다. 그들은 사담도 반대하지만, 미국도 반대하는 양면성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사담정권 몰락이후, 새로 설치된 임시위원회의 대표성에 강력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이라크 전쟁은 군사적 시각에서는 비교적 성공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전후 처리는 아직도 많은 난관을 해결해야 한다. 중국은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이 남긴 '후유증’이 중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서 큰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은 전략적으로 사고한다. 우선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과정에서 미-중의 협조체제가 긴밀하게 가동됐다는 점은 중국의 국익에 크게 도움이 된다. 또 이 전쟁을 통해 미국과 프랑스-독일간의 불협화음이 높아진다면, 중국은 그 가운데서 어느 정도 '漁父之利’를 얻을 수도 있다.


반면, 사담체포이후, 이라크에서 점령군으로서 미군의 기반이 빠르게 확고해진다면, 중동에서 미국의 '패권적 지위’가 강화되는 것이며, 중국의 변방과 주변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중국의 전략가들은 미국의 대이라크 전후처리가 신속하게 마무리된다면, 곧 미국의 주의력이 동북아 쪽으로 이동할 것으로 보고 있다.(CNN,2003.3.26) 중국은 이라크전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이라크, 북한, 대만문제를 가지고 미국과 끊임없는 접촉을 가졌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중국이 대만 문제에 대해서 온건한 입장을 유지하기를 바랐다. 부시는 胡錦濤에게 대만독립을 지지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는데, 이는 중국의 대만에 대한 군사행동 방지를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SCMP, 2003.3.20)


이라크 전쟁을 통해서 중국은 미국이 지도하는 '單極체제의 궤도’를 벗어나거나, 저항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이후 미국의 중동, 중앙 아시아, 동남아, 동북아에 대한 '지배체제’강화와, 이와 함께 나타날 중국에 대한 불리한 영향을 경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라크 전쟁이 중국에게 준 교육은 兩面性이 있다. 하나는 중국은 어떤 경우에도 對美협조관계를 전면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중국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에너지 자원을 확보와, '주변의 안전’강화를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여기서 이라크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중국이 북한 핵문제를 가지고 부지런히 '셔틀외교’를 추진한 배경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라크 전쟁이 추진되는 동안, 미-중관계는 한층 긴밀해졌다. 그러나 동시에 이라크 전쟁은 중국의 군사력현대화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CNN,2003.26) 중국은 최악의 경우, 單極체제에 대항할 수 있는 군사력 확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중국은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추진하는 동안, 미군의 바그다드 공략전법을 치밀하게 연구하고 '군사참고자료’로 발간했다. 중국은 미국의 페트리어트-3 미사일이 샘 미사일을 격추하는 과정을 연구했고, 그 경험이 이후 중국의 동남해 연안 지역에 대한 미사일 배치과정에서 중점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중앙사(대만), 2003.3.21)


IV. 테러전쟁시대의 국제관계


9.11사건이 일어난 직후, 미국사회과학연구회(Social Science Research Council)는 세계적인 석학들을 초청해서 이 사건이 세계에 미칠 심대한 영향에 대해 논의를 가졌다. 그 후, 여기서 발표한 논문들을 묶어서 두 권의 책으로 발간했는데, 하나는 「Understanding September 11」이고, 다른 하나가「Critical Views of September 11」이다. 모두 합쳐서 800페이지에 이르는 이 책 속에서 우리는 9.11이 갖는 심각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예일대학 정치학과 세일라 벤하비브(Seyla Benhabib)교수는 재미있는 사실을 지적한다. “알 카에다로 대표되는 테러집단은 서방이 일찍이 만나본 적이 없는 적”이라면서,「이 조직은 서방문명의 생활방식을 모두 파괴하려는 것 이외에 별 다른 '정치강령’(목표)이 없다. 행동적인 면에서도 어떤 구체적인 의도는 물론, 형식적인 면에서도 어떻게 '인민’들에게 책임을 지겠다는 의식이 전혀 없다. 어떤 국제관계법규의 구속도 받지 않겠다는 태도이며, 또 어느 정부와도 협상을 진행할 의사도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벤하비브 교수는「지금 서방은 '聖戰對 聖戰’이란 태도로 이들을 대적하고 있지만, 최후에는 우리를 모두 그들이 이끄는 '破滅의 로직’으로 끌어드리고 있으며, 끝없는 慘殺의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벤하비브 교수는 '끝내 인류는 테러를 종식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진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국내에서는「9.11사건이 일체를 변화시켰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이 사건을 통해 세계는 이미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에 돌입했으며, 이 전쟁은「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거대한 군사력으로도 미국 본토의 안전을 지킬 수 없을 만큼」치열한 적과의 전쟁이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은 간과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先制攻擊’론과 미국식 一方主義가 이런 '적과 아군이 분명치 않은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오진용 / 포스코경영연구소 연구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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