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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이 말하는 “북한 주권국가론”의 전략적 해석

이춘근 / 2005-05-23 / 조회: 4,584

1. 들어가는 말


최근 미국의 관리들이 몇 차례에 걸쳐 북한을 “주권국가”라고 언급했고 한국 언론들은 이를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보다 유연하고 평화적인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한 것이라는 의미라고 해석, 보도하고 있다. 최근 미국 및 북한에 의해 언급된 북한 주권 국가론은 다음과 같다.

우선 5월 4일 일본의 교도 통신은 '북한이 북미 양자회담과 주권 국가 인정을 6자 회담 복귀 조건으로 요구 했다’고 보도 했다. 며칠 후 5월 9일 미국 국무장관 콘돌리사 라이스는 '북한은 유엔 회원국으로서 주권 국가임이 분명 하다’ 고 말했다. 콘돌리사 라이스 장관은 이전에도 북한은 주권 국가라고 언급 한 적이 있었다. 5월 13일자 일본 아사히 신문은 조지프 디트라니 미 국무부 협상대사가 '북한을 주권 국가라고 인정하고 무력 공격할 의도가 없다’는 뜻을 북한 에 전달했다고 보도 했다. 5월 19일 자 북한 중앙통신은 이상과 같은 북한은 주권 국가라는 미국 측의 언급에 대해 '미국이 최근 떠들고 있는 그 무슨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니 주권국가 인정이니 하는 것은 한갓 빈 나발에 지나지 않는다.’ 고 대꾸 했다.

과연 이 모든 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 언론들이 보도하는 대로 미국이 북한을 주권 국가라고 말하는 것은 미국의 대 북한 정책이 보다 유연하게, 평화적인 해결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미국 국무 장관이 '북한은 유엔 회원국으로서 주권 국가임이 분명하다’고 말한 뒤 며칠 뒤, 미 국무부의 협상 대표가 북한을 대표하여 국제연합(UN) 본부가 있는 뉴욕에 나와 있는 북한 외교관들에게 '북한은 주권 국가’ 라고 말한 것은 분명히 미국 측의 계산 된 언급일 것이다. 그러나 북한 문제에 관한 아무런 진전 상황이 없는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을 주권 국가라고 말한 것이 미국의 대 북한 정책이 평화적인 방향으로 전환 된 것임을 의미한다고 단순하게 판단해도 될 일일까? 미국 측이 '북한을 주권 국가라고 인정하고 무력 공격할 의도가 없다’고 말했다는데 어떤 경우라도 그렇다는 뜻인가 혹은 북한이 미국이 제시한 조건을 만족 시키는 한도 내에서 그렇다는 뜻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제정치를 현실주의의 냉엄한 시각에서 분석하는데 익숙하지 못하다. 미국이 북한을 주권 국가라고 말하는 것은 북한을 괜찮은 나라라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또 어느 경우에도 미국은 (북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전쟁이라는 수단을 배제 한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2. 외교적 언급에 대한 전략적 해석의 필요성


외교관 혹은 정치가들의 언급은 그 말들의 어의만으로 해석을 하면 안 된다. 외교관의 Yes 는 반드시 긍정을 의미하지도 않고, No 라고 말했다고 해서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않된다. 이미 17세기 초반 헨리 와튼 경 (Sir Henry Wotton) 은 “대사(大使)란 자국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라고 해외에 파견된 정직한 사람 (An Ambassador is an honest man sent to lie abroad for the good of his country)" 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대사란 외교관을 상징하는 직책이다. 미국 외교관들의 수장인 콘돌리사 라이스의 언급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안되는 이유가 바로 위에 인용된 와튼 경의 외교관에 대한 정의에 잘 나타나 있다.

외교관의 말 뿐 만 아니라 외교 문서의 경우에도 문자 그대로 해석하기 보다는 그 문자의 의미를 전략적으로 해석해야만 한다. 1943년 11월 한국문제가 수 십 년 만에 처음으로 강대국들의 회의에서 언급 된 바 있었다. 일본과의 전쟁을 논하기 위한 카이로 회담에서 루스벨트, 처칠, 장개석 등 미 영 중 3국의 국가원수들은 회의를 마치고 “상기 3 강대국들은 한국인의 노예상태에 유념하여, 한국을 적당한 절차를 밟아 독립되고 자유로운 국가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The aforesaid three great powers, mindful of the enslavement of the people of Korea, are determined that in due course Korea shall become free and independent.) 고 선언 했었다.

사실 카이로 선언에는 명쾌한 해석이 불가능한 in due course 라는 용어가 삽입됨으로서 한국을 독립 시켜줄 터인데 그것이 언제일지, 어떤 방법을 택할 것인지에 대한 어떠한 해석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in due course 란 용어는 적당한 시간, 적당한 절차, 적당한 방법 등 어떤 말로도 해석 되어도 좋은 지극히 모호한 언급이기 때문이다. 연합국이 한국을 독립 시켜주겠다고 한 것은 전쟁이 끝날 경우 일본은 '그동안 점령했던 식민지들을 모두 내 놓아야 한다.’ 는 말을 다른 말로 표현 한 것에 불과하다. 카이로 선언은 일본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일본의 모든 식민지를 빼앗음으로서) 전략적인 선언이었지 일본의 식민 통치아래 신음하는 식민지 국가들을 독립 시킨다는 인도주의적 선언은 아니었다. 2차대전 전승국 들인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은 자신의 식민지들을 2차 대전 이후에도 한동안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1890년대 중반 조선에서 동학혁명이 발생한 후 이를 빌미로 일본과 중국(청나라)은 소위 청일 전쟁을 일으켰다. 당시 일본이 청나라에게 집요하게 요구한 사항 중 하나는 '청나라는 조선이 완전무결한 독립 자주국임을 확인’ 하라는 것이었다. 청나라와 조공관계, 즉 종속 관계에 놓여 있던 조선의 독립을 일본이 그다지도 강력하게 요구한 이유가 왜 인지는 자세한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청나라로부터 빼앗겠다는 소리를 일본은 '조선은 독립국이다’ 라는 허울 좋은 말로 표현했던 것일 뿐이다.

이처럼 우리는 외교 문서와 외교관들의 언급을 전략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미국이 최근 말하는 '북한은 주권 국가’ 라는 언급도 예외일 수 없다.


3. 미국이 말하는 북한 주권 국가론의 전략적 의미


미국이 북한을 주권 국가라고 말 한 것을 미국이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무력 사용을 배제 한다고 말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난센스다. 미국은 이라크를 결코 주권 국가가 아니라고 말한 적이 없다. 당연히 주권 국가이어야 할 유엔회원국인 북한을 주권국이라고 재차 확인 해 주는 것을 북한 측은 오히려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북한 핵에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받을, 그래서 북한 핵문제 해결에 가장 적극적이어야 할 당사국인 한국은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전쟁이란 주권 국가들 간의 무력충돌이다. 국가라고 인정 되지도 못 할 상대방과 전쟁을 한다는 것은 현대 국가에게 있어서 오히려 쑥스러운 일이다. 당대의 강대국이 그 어느 나라와 전쟁이라도 벌여야 할 상황이라면 특히 그럴 것이다.


앵글로 색슨 적 전략 전통을 가진 미국은 물론 이거니와 국제정치에 기본적인 감각을 가진 나라라면 국제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말을 할 경우, 당연히 한 마디 한 마디 신중하게 생각해서 말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미국이 북한을 주권 국가라고 말한 것은 물론 미국의 대 북한 전략, 더 크게는 미국의 대 한반도 전략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언급일 것이다.

미국의 '북한 주권 국가론’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해석 될 수 있다고 생각 된다.


우선 북한을 주권 국가라고 말하는 것은 한국에 대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즉 미국은 북한을 한국의 일부가 아닌 나라로 간주한다는 뜻이다. 미국은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한국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북한 문제를 주권국 대 주권국의 문제로 접근 할 수 있다는 의미가 내포 되어 있다. 사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급변 사태에 한미가 공동 대응한다는 작전 계획 5029 의 논의 자체를 중지 시킨 적이 있었다. 미국 측이 말하는 북한 주권국가론은 북한 문제에 대한 미국의 독자적인(한국과 함께 가 아니라) 접근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북한을 사실상(de facto)의 주권국으로 인정해 왔지만 미국 측의 북한 주권 국가론은 북한 전역을 대한민국의 영토로 규정하고 있는 우리 헌법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미국이 말하는 북한 주권 국가론이 북한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한미 양국이 현재 얼마나 견해를 달리하고 있느냐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두 번째로 미국이 북한을 '주권국가’ 라고 계속 강조하는 것은 미국이 적대시하는 대상이 북한이라는 '나라’가 아니라 북한의 '정권’ 이라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 2기 출범 직후부터 미국은 미국이 수행 하고 있는 반 테러전쟁의 전략적 표적국 들을 '악의 축’ 이라는 이름으로부터 '폭정의 전초기지’(Outpost of Tyranny)라고 바꾸어 부르기 시작했다.


이라크의 경우에서 극명하게 보여 진 것처럼 미국은 국가가 아니라 정권을 상대로 전략을 펼쳐 나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행하는 테러전쟁 제 2단계의 목표는 이라크, 북한, 이란 등에 미국에 반대하지 않는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다.


물론 미국은 민주 정부의 수립을 말하고 있지만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미국이 명명 한 나라들에 새로이 수립 될 정부는 미국에 반대하지 않는 한, 그 정권의 성질이 독재이든 민주이든, 자본주의이든 사회주의이든, 기독교이든 이슬람이든 그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미국은 이라크, 이란, 북한 등에 테러리스트를 더 이상 지원하지 않을, 테러리스트들에게 대량파괴 무기를 건네줄 가능성이 없는 정권의 수립을 당장의 전략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로 미국이 북한을 주권 국가라고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이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북한 문제가 미국이 선호하는 방법으로 해결 될 경우 그것이 즉각적인 한반도 통일이 아닐 것 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북한이 이미 한국과는 별개의 독립적인 주권 국가인 이상 북한의 정권 변화가 한반도의 자동적인 통일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4. 국면이 전환되고 있는 북한 문제


북한 문제가 한고비를 넘기고 있다. 이미 북한 문제는 단순한 핵문제 이상이 되었다. 미국은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지칭함으로서 미국의 대 북한 전략은 국가와 정권을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북한 정권은 핵 포기의 경제적 결과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초래할 정치적 결과를 불안 해 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북한 문제 해결의 궁극적 난관이 있는 것이다.


북한 문제의 해결과정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소망이다. 그러나 북한 정권이 평화적으로 핵을 포기하고,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포기한 후, 지금처럼 압도적 권력을 유지 할 수 있다고 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대응 방안의 대원칙은 북한 문제의 해결이 평화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점과 더불어 북한 문제의 해결은 통일 대장정의 시작이어야 하리라는 점이다. 미국이 최근 북한은 주권국가라는 말을 반복하는 것은 그나마 한반도 통일에 본질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한반도 주변의 유일 강대국이었던 미국마저도 북한 문제의 해결과 한반도 통일을 별개의 것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인 것 같아 답답하다. 이 문제의 해결은 당연히 이 나라 안보와 통일문제를 책임지고 있는 현 정부가 담당 해야만 할 몫이다.


이춘근 / 政博, 자유기업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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