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근로시간 강요는 또 다른 규제다

자유경제원 / 2014-04-11 / 조회: 1,301       문화일보
<시론>
근로시간 강요는 또 다른 규제다
김회평기자 khp809@munhwa.com
김회평/논설위원

정년연장, 통상임금에 이어 근로시간 단축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노사정 소위’가 9∼10일 연 공청회에서는 노총·경총·정부·정치권 등 4자가 뒤얽혀 치열한 논전을 벌였다. 현행 주당 최장 68시간을 일할 수 있는 근로시간을 52시간까지로 줄이자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 다만 시행 시기, 예외 인정 한도, 임금 보전 여부 등 구체적인 사안으로 들어가면 입장이 극명하게 갈린다. 소위 활동 시한인 15일까지 논란을 정리하고 근로기준법 개정 입법에 나서겠다는 게 환노위 생각이다. 이 문제와 관련한 대법원 판결이 이달 말로 예정돼 있는 것도 합의를 서두르는 현실적 이유다. 노동 현안이 공식기구인 대통령 소속 노사정위원회는 빠진 채 입법·사법부 일정에 끌려다니는 것부터가 정상은 아니다.

근로시간 단축 취지는 크게 두 가지다. 과로(過勞)사회에서 벗어나는 한편으로, 줄어든 시간만큼 새 일자리를 만들자는 것이다. 여기엔 불편한 진실도 있다. 한국 근로자는 연간 2092시간을 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장 그룹에 속한다. 그런 한국 근로자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OECD에서 꼴찌권으로, 미국·독일의 절반 수준이다.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에서 차 1대 만드는 데 28.4시간이 걸리지만, 미 앨라배마공장에선 14.4시간이다. 장시간 근로와 낮은 생산성의 악성 조합이다. 과거 주 5일 근무제 도입 등으로 법정 근로시간을 주 44시간, 또 40시간으로 줄였지만 고용률 상승 효과는 1%를 밑돌았다. 프랑스도 일자리 창출을 위해 2002년 근로시간을 강제로 단축했으나 청년 고용 효과가 없자 3년 만에 되돌렸다. 두 경우 모두 시간이 줄었어도 임금 수준은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이번에도 현 임금 유지를 요구한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대다수가 근로시간 단축을 규제로 보지 않거나, ‘착한 규제’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규제의 특징은 시장의 비효율과 경직성을 키운다는 데 있다. 근로시간을 양적으로 제한하면 그런 속성이 불거질 수 있다.

우선 ‘수혜자’처럼 얘기되는 근로자부터 월급봉투가 줄어드는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휴일을 합쳐 주 68시간을 일하다 52시간으로 묶이면 최저임금으로 계산해도 월 48만 원이 깎인다. 150만 원을 받던 사람은 100만 원 남짓, 300만 원 봉급자는 210만 원까지 줄어들 수 있다고 한다. 가장의 수입이 줄면 가정은 흔들린다.

노동계 요구대로 어찌어찌해서 임금 수준을 유지한다고 치자. 덜 일하는 만큼 기업으로선 이미 손실을 입은 셈인데 추가 고용 여력이나 의욕이 생기겠는가. 설령 뽑는다 해도 양질의 일자리가 되긴 어려울 것이다. 결국 기존 취업자들만 이득을 얻는 구도가 된다. 노동시장의 경직성, 양극화는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직격탄을 맞는 쪽은 중소기업이다. 1년에 신규 인력 한둘 구하기도 힘들어 기존 인력으로 간신히 주문 물량을 대는 처지다. 시간 규제까지 받으면 버틸 재간이 없다. 불법 작업도 불사하겠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 푼이라도 더 벌고 싶은 외국인 근로자들은 일거리를 더 주는 불법 사업장으로 이동할 유혹을 느낄 것이다. 현실을 무시한 정책은 불법까지 부추긴다.

화이트칼라 변수도 있다. 사실 문제가 된 근로시간은 과거 제조업 중심 시절에 생산직을 염두에 두고 만든 기준이다. 근로시간을 주 52시간 내로 강요하면 연구·개발(R&D)직은 묘한 입장이 된다. 직무 특성상 휴일·밤낮도 없이 몰두해야 할 시기가 있지만, 불법이 되는 것이다. 삼성전자 국내 임직원의 45.9%가 R&D 쪽이다. 과거 문법을 추종하는 것 또한 규제의 속성이다.

자유경제원 분석으론 한국의 노동규제 수준은 152개국 중 133위로 바닥권이다. 기업으로선 가장 속앓이를 하는 규제 분야다. 노사 자율로 풀 수 있는, 아니 풀어야 할 문제를 자꾸 법으로 강제하려는 게 바로 규제다.

주 52시간으로 명문화하는 건 대세로 보인다. 대신 그것 말고는 이해관계자에 선택권을 줘야 한다. 일본은 노동기준법에 노사가 합의하면 법정 기준 이상의 연장·휴일 근로가 가능하도록 해놓았다. 독일은 바쁠 때와 한가할 때 서로 차감하는 근로시간 계좌제를 운용중이다. 뭐든 좋다. 규제 혁파가 시대정신이 되고 있는 마당에 또 다른 규제까지 덧붙이지는 말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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