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과학적 믿음에 근거한 집단주의적 공포

배민 / 2021-11-26 / 조회: 5,706

스티븐 존슨이라는 영국 작가가 쓴 <감염도시>라는 논픽션 역사 소설은 19세기 중반 런던에 창궐했던 콜레라 상황과 실존 역사 인물인 존 스노(John Snow, 1813~1858)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존슨은 그 책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공포가 질병의 확산에 기여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도시에서 꾸리는 삶을 규정하는 대표적 정서가 공포였던 것은 사실이었다." 


19세기 중반 영국에서는 독기(miasma)로 인한 전파 이론이 사람들의 공포를 증폭시키는데 한 몫했다. 발병지 근처의 공기를 마시는 것 만으로도 목숨이 위태롭다고 수군대는 상황이었다. 특히 19세기 전반에 영국의 보건 정책을 이끌었던 에드윈 채드윅(Edwin Chadwick, 1800~1890)은 독기 이론의 신봉자였다. 


사실상 1850년대 수천 명의 콜레라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1840년대 채드윅이 내린 여러 결정, 특히 '모든 지독한 악취는 심각한 질병을 야기한다’는 그의 생각에 기인했다. 건물과 거리에서 독기를 제거하는 대가로 템스강은 거대한 하수구로 변모하였다. 1840년대와 1850년대 초 런던의 수많은 오물 구덩이가 폐쇄되고 가정과 거리의 분뇨 및 쓰레기는 모두 강으로 투척되었다. 


연어 떼가 노닐던 어장이었던 템즈강은 순식간에 세계에서 가장 오염된 수로로 변모했다. 강에 투기하는 쓰레기 양이 늘어날수록 콜레라 사망자 수도 늘어났다. 이러한 채드윅의 바보짓과 비교하면 동시대 수많은 독기 이론의 신봉자 중 한 명이었던 나이팅게일은 지나치게 환기를 강조하긴 했지만 그녀의 무지는 애교에 가까왔다. 병실에 상쾌한 공기를 공급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존슨은 자신의 책에서 질문한다. “고귀한 열망에서 비롯한 행위가 어떻게 그토록 처참한 결과를 낳았을까? 채드윅의 경우는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채드윅은 고집스러울 정도로 코에만 의존했던 것이다" 독기 이론은 그릇된 이론이라는 증거가 산처럼 쌓여 갔음에도 불구하고 채드윅을 포함한 당시의 수많은 영국 지식인들은 독기 이론의 허구에서 좀체 헤어나오지 못했다. 많은 의학사 연구자들은 그 원인을 인간의 후각이 뇌 구조 상에서 가지는 근원적인 속성에서 찾기도 했다. 


하지만 21세기 전세계의 코로나19 상황 역시 존슨의 소설 속에 나오는 독기 이론에 함몰된 유럽 지식인 사회와 마찬가지의 모습이다. 심지어 현재까지도 "위드 코로나"라는 모순된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과 백신 패스포트 정책은 여전히 실행되고 있다. 


특히 확진자 수로 대중을 공포에 몰아 넣는 현재의 방역 정책은 그야말로 악랄한, 편향성과 아집이 버무려진 모습에 다름 아니다. 확진자 수로 겁을 주는 것은 확진되면 사망할 확률이 높음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코로나 사망자 수는 그 통계를 잡기 위한 의학적 근거 자체가 영 엉터리에 가깝다. 


내가 '악랄한'과 같은 과격한 단어를 쓴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 중 가장 악질적인 태도는 전문가로서의 소위 '과학적 태도'를 자신들의 편향성에 교묘히 선별적으로 이용해 왔다는 데에 있다. 가령 백신 부작용 사망과 백신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아니 매우 보수적으로 인과성을 인정해왔다. 그래서 한국에서 지금까지 천 명이 넘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사망자 중 질병청이 인과성을 인정한 사례는 단 두 건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소위 코로나 사망자로 불리우는 많은 사망자들에 대해서는 그 인과성에 대해 위의 백신의 사례와 같이 엄밀한 기준을 적용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단지 코로나19 검사 결과 양성 판정 받고 이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안받거나 상관 없이 양성인 상태로 사망했으면 코로나로 인한 사망으로 일반적으로 분류되었다. 엄격한 사인 분석은 필요치 않았다. 엄밀하게 사인을 판단하려면 시체 부검을 해서 폐의 조직 검사를 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코로나 감염 후 사망자에 비하면, 백신 접종 후 사망자들은 면역력도 건강도 원래 아무 이상 없었던 사람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백신과 사망과의 인과성이 훨씬 더 높게 간주되어야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코로나 사망자 수란 질병청에서 사망자의 검체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검출되는 경우 모두 코로나 사망자로 통계를 잡아 온 결과일 뿐이다. 문제는 백신 접종 후 사망의 사례에서처럼 사회적으로 철저한 사인 판단을 해야할 유인도 없었으며 그래야 할 압박도 없었던 점에 있다. 


그 결과 백신 접종 후 사망에 비하면 코로나 감염 후 사망은 그 코로나 감염과 사망과의 인과성을 매우 후하게 인정해 왔다. 사실상 둘 사이의 상관 관계를 인과 관계로 취급해 온 셈이다. 가령 미국의 경우 무려 올 한 해만 75만명 가까이의 '코로나 사망자'를 기록하였는데, 과연 이 많은 코로나 양성 판정 후 사망한 사람 중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사망했다고 엄밀하게 의학적으로 판단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작년 전세계적으로 많이 읽혔던 코로나 관련 서적인 슈샤리트 박티(Sucharit Bhakdi)와 카리나 레이스(Karina Reiss)의 책 에서 저자들이 인용한 자료를 보면 코로나 사망자로 분류된 사람들의 사인 중 거의 절반은 심혈관 질환이고 1/3은 암, 10%는 호흡기 감염으로 보았다. 이 호흡기 감염 조차도 항상 코로나 바이러스 계열을 포함한 다수의 병원균에 의해 발생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지병으로 사망하는 일반적 노인 사망 패턴 그대로, 단지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숟가락만 얹혀져서 재현된 셈이다. 


한국의 경우도 애초에 2020년 4월 질병청에서 코로나 사망자 165명 중 164명이 기저 질환자였다고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 후 2020년 6월부터는 어찌된 일인지 코로나 사망자의 기저질환조차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백신 접종 후 사망과 코로나 감염 후 사망에 대한 정부의 이중적 태도는 무책임한 눈가림 정책 혹은 과학적 태도의 선택적 악용이라고 할 수 있는 대표적인 모습이다. 즉 코로나 사망이라는 개념 자체가 불투명하고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확진자 수 발표가 무슨 의미를 가지며, 그러한 확진자 수를 기반으로 하는 방역 정책이라고 하는 것이 어떠한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인가? 


코비드-19 바이러스 감염은 기존의 코로나 계열 바이러스, 즉 감기 바이러스의 한 변종에 결국 불과할 뿐이며, 그 위험성을 높이 쳐준다 해도 독감이나 폐렴과 비슷한 호흡기 감염일 뿐 (우리가 현재까지도 믿어 의심치 않는) 위험 천만한 죽을병은 결코 아니라는 증거가 산처럼 쌓여가고 있다. 가령 코로나에 가장 쓰디쓴 타격을 입었다고 소문이 난, 그래서 중국에 피해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엄살을 떨었던 미국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미국의 경우 매년 140만 정도가 폐렴과 독감으로 사망한다. 어찌됐든 이 정도가 매년 호흡기 감염으로 사망하는 것이다. 


2021년 올 한해 미국에서 폐렴, 독감, 코로나 등 호흡기 감염으로 사망한 사람은 100만이다. 그중 앞에서도 언급했듯 코로나로 인한 사망이 75만명이라고 주장되고 있다. 즉 코로나로 인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가득 메우고 폭증하는 코로나 사망자로 전 사회가 마비되고 있다고 아우성 치던 미국의 사례 역시 전체적으로 볼 때는 호흡기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대폭 늘어나기는커녕 대폭 줄어들었음을 보여준다. 이런 모습은 호들갑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전 세계가 이전보다 더 위험해 진 것은 결코 아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포는 조장 되었다가 결론이며 진실이다. 우리가 왜 고작 감기와 비슷한 증세에 걸려서 겪게 될 불편을 피하기 위해 2년간 매일 마스크를 쓰고 회사와 학교와 모든 사회적 활동에 제약을 감수해야만 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방역 정책을 주도했었던 전문가 권위자 집단 중 어느 누구도 대중 앞에 공개된 자리에서 다른 의견을 가진 전문가 집단과 토론을 가졌던 적이 없다. 그들은 미국도, 다른 유럽 국가들도 다 하는 정책을 자신들도 따랐을 뿐이라는 무책임하고 비이성적인 태도 만을 계속해서 고집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 사회의 대중은 그다지 여기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지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각한 기본권의 제한을 당하면서도 무엇이 진실인지 찾아보려는 최소한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그만큼 높아서일까? 


가령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코로나19 방역 정책의 일환인 마스크 강제 착용에 대한 사회적 반발이 심했는데, 한국에서는 그러한 모습이 왜 나타나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한국인들이 개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고 공동체의 목적을 위해 자신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는 모습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시각에 동의할 수 없다. 내가 본 그 근본 원인은 개인의 권리에 대한 본질적인 인식이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전근대적, 물질적 차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최근에 와서 행복 추구권 등은 그 개념적 애매모호성에도 불구하고 보편 복지정책의 확대를 위한 명분으로 부단히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개인이 (인간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자유롭게 숨쉴 수 있는 권리를 침해 당하면서도, 경제적 손해와 같은 물질적 권리의 침해가 일어나지 않으니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자동차에 기스를 낸 상대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손해 배상을 받아내면서도, 전체주의적 지시와 명령에 일상적으로 따르며 살아야 하는 인격성의 침해를 겪고 있는데, 자신에 대한 피해가 금전적으로 보이지 않으니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이다. 그저 물질 중심적인 사회이며 철학이 결여된 사회일 뿐이다. 한국 사회는 한번도 개인주의의 문제를 극복한 적이 없다. 오히려 개인주의에 대해 한참 배우고 공부해야 하는 사회가 맞다. 


숭의여고 역사교사 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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