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로 세상읽기]미담으로 소개되는 괴담들

임건순 / 2020-02-25 / 조회: 7,141



매해 보는 한국적 살풍경


수능 때마다 봐야하는 풍경이 있다. 시험장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지각생들을 경찰들이 오토바이와 차로 수송하는 모습이다. 올해도 역시 그런 모습들이 속출했고 시간이 빠듯했지만 제시간에 도착하게 도와준 경찰관들의 활약이 미담으로 소개되기까지 했다. 매해 보면서 기가 막히다고 생각을 한다. 공권력이 학생들 수험장까지 운송하기 위해 있는 것인가? 경찰이라는 치안력을 그렇게 낭비해도 되는 것인가? 아울러 왜 관공서 출근 시간을 늦추고 비행기 이착륙도 조심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곧 있으면 성인이 될 학생들의 책임의식을 갖추게 해 사회로 내보내야할 시기에 국가적으로 웃지 못 할 일을 매해 벌이는 게 아닌가 싶다.


사실 매해 수능 고사 날에 수능을 치르지 않은 학생들도 많다. 그 학생들이 잘못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도 전국가적 호들갑과 유난에 열패감과 낙오자 의식을 심어주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실 수능시험 날에 어른들의 배려와 격려는 정작 누구를 향해야하는 것일까? 우리는 수능을 보지 못한 학생들, 실업계 고등학생들을 생각해야할 듯싶은데 어쨌거나 우리 사회는 어른들을 키우려고 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매해 그날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어른을 키우려고 하지 않는 한국 사회, 그런데 어른이 되고 못 되고는 사실 개인이 되고 아니고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개인은 무엇일까? 개인은 어떤 존재일까? 개인은 욕망을 추구하는 주체다. 하지만 무절제하게 추구하지 않는다. 자신의 영역이 소중한 만큼 남의 영역도 중히 여길 줄 알기에 선을 지키는 존재이다. 그리고 서로간의 거리가 끈끈한 정보다 중요함을 아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이 개인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을 지는 주체인데 개인이 되어야 어른이 되는 것이고 역으로 어른이 된 사람은 개인이 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개인이 바로 법치의 전제이자,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른을 키우지 못하는 사회는 개인을 키우지 못하는 사회라 할 수 있고, 결국 법치의 기반이 부족한 사회가 우리 사회라 할 수 있는데 안 그래도 한비자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영예와 치욕은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한비자 대체 편


한비자가 말한다. 영예와 치욕은 자기 개인에게 달려 있다고. 잘되고 못되고, 잘살고 못살고는 남에게 달린 것이 아니다. 나에게 달린 것이다. 처벌을 받거나 상을 받는  문제 역시 남에게 달린 게 아니고 국가에 달린 것도 아니다. 역시나 나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법치란 무엇일까. 더 정확히 질문하자면 법치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무엇일까? 앞서 말한 대로 개인, 개인주의일 것이다. 판단과 선택을 내리고 그 판단과 선택에 책임을 지는 주체로서 개인이 있어야 법치란 것이 굴러갈 수 있을 것인데 그렇기에 한비자는 위와 같이 개인을 말한 것이다.


상앙 같은 경우 진에서 인위적으로 분가정책을 통해 개인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사람이 집단 뒤에, 가족 뒤에, 씨족 뒤에 숨어서는 법치가 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상앙은 강제적 분가 정책으로 통치단위를 최소단위까지 쪼개려고 했는데, 이에 그치지 않고 법리와 법관 등 법 전문 공무원을 군주가 직접 관리하고 파견해 백성들에게 법 전문 교육을 담당케 했다.


상앙이 만들어낸 법 전문, 법 담당 공무원은 다음과 같은 임무를 담당한다. 새로운 법이 만들어지면 홍보하고 교육해야한다. 그리고 언제든 백성들이 와서 법에 대해 궁금한 것에 대해 질문·질의하면 성실하게 응답해야한다. 상앙의 진나라는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법 전문 교육, 상담 공무원을 만들어 파견했고, 알기 쉽게 법을 만들었다. 또 분명히 알 수 있게 최대한 도와주고 배려해준다.


그럼 내가 법을 지키면 될 뿐이다. 법에 규정한 의무를 내가 다하면 되는 것이다.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고 모든 개인이 동등한 존재로 법 앞에 환원되며 법을 아는 주체가 되는데 신분이 한미해도 배경이 미미해도 나의 노력과 능력으로 돌파할 수 있다. 부모 때문에 출세가 제한되는 일이 없고 어느 지방 사람이라고 어느 민족 출신이라고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거나 엉뚱하게 처벌 받는 일이 없다. 한비자와 상앙의 법치가 기획한 바가 그러 했다. 사람들을 개인들로 만들어놓고 그 개인들을 법 앞에 차별받지 않는 동등한 존재로 세우려했다. 특히 상앙은 일()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일교(壹敎)!, 일형(壹刑)!!, 일상(壹償)!!! 교화를 똑같이, 벌을 똑같이, 상도 똑같이 내리려고 했다. 모든 백성들에게,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개인들에게.


개인만이 희망이다


법은 개인만 바라본다. 개인만을 향하게 해야 진정한 법치다. 한비자와 상앙 모두 법치주의의 기본이 개인, 개인주의라는 것을 알았는데 단순히 동등한 의무와 권리를 부과하고 동등하게 법치를 적용해 법적 보호를 하고 법적 책임을 묻는 게 아니다. 철저히 법 앞에 하나의 개인과 사람으로 세우려고 했다. 단순히 평등하게만 세우는 게 아니라 개인들 각자가 법 앞에 평등하게 서야한다고 보았는데 그것이 진정한 법치가 아닐까? 법가는 그것을 지향했다. 단순한 평등주의, 단순한 법 앞에 평등이 아니라 평등한 개인, 평등한 단독의 개체로 백성들을 법 앞에 세우려고 노력했다.


“만일 공 있는 자가 반드시 상을 받는다면 상 받는 자는 군주의 덕이라 하지 않을 것이다. 노력이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죄 지은 자가 반드시 처벌을 당한다면 처벌당한 자는 군주를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죄가 낳은 것이기 때문이다. 민은 처벌이나 상이 모두 자신에게서 기인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에 있어 공의 성과에 힘쓰며 군주에게서 은사를 받으려하지 않는다. 최상의 군주는 그 밑에 있는 민의 존재를 알 뿐이다.” 한비자 난삼 편


상을 받는다면 나라님 덕분이 아니다. 그 개인의 공일뿐이다. 개인이 노력하고 애썼고 의무와 책임을 다해 얻은 것일 뿐이다. 벌을 받았다면 역시 누구의 탓도 아니다. 부모의 탓도 스승의 탓도 임금의 탓도 아니다. 그 개인 자신의 책임일 뿐이다. 이렇게 한비자는 법치를 말하며 개인의 책임 영역을 분명히 하려고 했는데 법가가 서구의 성취가 만들어낸 근대적 자아를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상당히 서구의 개인에 가까운 개인을 발견하고 만들어내려고 애를 썼던 것은 사실이다. 


다시 수능 이야기 해보자. 우리는 학생들에게 이걸 가르쳐야지 않을까. ‘솔직하게’가 아니라 ‘정직하게’. 그리고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라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을. 폐쇄적인 집단 내에서나 통하는 제한된 정직이 아니라 모두에게 투명한 개인의 자세. 그리고 안 되는 것은 분명히 안 되는 것이니 법과 룰에서 명확히 규정한 선은 개인의 확실한 책임 영역이다라는 것을 알게끔 말이다. 그렇게 해서 성인으로 개인으로 만들어야한다고 보는데 그래야 한국사회의 근대화가 제대로 달성이 되고 우리 대한민국이 법치국가로 제대로 거듭날 것이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덧붙이고 싶다. 사람이 먼저다? 아니다, 개인이 먼저다. 사람 사는 세상? 아니다, 개인이 사는 세상이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아니다, 개인만이 희망이다.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하고 법적 책임과 결과를 모두 자신의 것으로 떠안는 사람, 절대 집단 뒤에 숨지 않고 개인으로서 세상을 마주하고 법 앞에 설 줄 아는 주체, 그런 개인만이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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