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Ultimate Legacy

이규종 / 2022-08-24 / 조회: 4,511

수많은 상품들이 가지런히 진열된 편의점의 모습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사장이 시켜서 알바가 했겠지.”


맞는 말이다. 그럼 편의점까지는 어떻게 왔지. 그것도 사장이 시켜서 직원이 배달했다. 그럼 그 상품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역시 사장이 시켜서 직원이 만들었다. 이렇게만 보면 결국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시켜서 다른 말로는 명령해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인다. 명령이 사회를 이끄는 힘이라면 행사 주체가 바뀐다고 특별히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선한 의도가 확실한 사람이나 정부가 이기적인 개인을 대신하는 것이 더 좋아 보인다.


상품 정리가 결코 단순하기만 한 작업은 아니지만 그렇게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 단순해 보이는 일은 명령하면 실현되는 걸까. 한번 지나가는 사람에게 자신이 원하는 간단한 일을 시켜보자. 보통 무시를 당하겠지만 나쁘지 않은 반응이다. 계속 강요하다 보면 왜 명령만으로 사람을 움직일 수 없는지를 상대방이 온몸으로 말해줄 것이다. 복잡하고 많은 인원이 필요한 일은 반응 속도가 더 빠르다.


폭력을 제외하고 누군가에게 명령하려면 우리는 언제나 적절한 대가를 제시해야 한다. 명령은 일방적인 것인데 적절한 대가를 전제로 하는 명령이란 말은 모순이다. 우리 사회를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사실 명령이 아닌 협력의 힘으로 움직이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한 지시조차 그것이 실현되길 기대하고 실현되는 것은 상대방의 동의가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이기적인 동기'에 의해 생기는 “내가 원하는 것을 주면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하겠다.”는 거래가 명령의 자리를 대신한다. 거래로 이루어진 일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협력이다. 내가 편의점에서 편하게 물건을 고르는 것은 사장과 종업원이 자발적으로 협력해서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것들을 이런 원리를 통해 만들어진다. 이기심의 작동원리는 거래의 영역이 아니라고 해도 힘을 발휘한다. 선행은 스스로에게 만족감이라는 보상이 주어질 때 일어나며 보상이라는 이기적 동기가 없으면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과정이 거래라면 결과는 가격이다. 가격에는 각기 다른 사람들의 상이한 이기심이 결과적으로 반영된다. 누가 무엇을 원하는지 한 사람씩 조사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가격만 보면 사람들이 무엇에 가치를 두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가격이 주는 이런 정보는 사람들을 거래에 참여시키는 유인을 제공하고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거래를 통해 소득이 각자의 능력에 따라 자연스럽게 분배된다.


능력에 따라 소득이 분배된다는 것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지만 시장에서 말하는 능력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비해서 얼마나 우월한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시장에서 그리고 거래에서의 능력은 상대를 만족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능력이 좋다는 것은 보다 많은 사람을 만족시킨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만족을 얻는 사람에는 나 자신도 포함된다.


시장에서 말하는 능력에 따른 분배를 오해하고 정부가 나서서 공정하게 재분배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정부의 재분배 정책은 간단하게 말하면 A가 D를 위해서 할 일을 B와 C가 정해 준다는 것이다. 타인을 돕는 것은 분명 보람되고 칭찬받을 일이지만 강제가 되면 보람도 칭찬도 사라진다. 혜택을 받는 사람도 더 이상 상대의 친절에 고마워하지 않는 도덕적 해이에 빠지게 된다. 사회의 통합과 안정을 위해 복지정책은 필요한 일이지만 그 목적이 공정한 소득분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정부는 규제라는 이름으로 힘을 행사하길 선호한다. 규제가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간접적이고 선한 힘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선한 겉모습과는 달리 규제는 언제나 누군가에겐 손해를 다른 이에겐 이익을 발생시킨다. 소수를 보호하거나 다수를 보호하는 규제는 있지만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규제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의 규제가 위험한 이유는 시장 참여자들을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익과 손해를 동반하는 규제는 가격에 영향을 준다. 시장에서 가격이 정보를 전달하고 유인을 제공하며 소득을 분배한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정부의 자의적 규제를 무제한 적으로 허용할 수는 없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개인의 자유와 경제적 자유라는 미국의 두 전통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진단과 함께 당시의 상황을 조심스럽게 낙관하고 있다. 정부의 힘을 축소하려는 조류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 국가로 건국되었지만 아직 이상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시장의 자유는 있었으나 정치적 자유가 없었던 권위주의 시대. 정치적 자유가 생겼지만 시장의 자유는 점차 축소되고 있는 민주화 이후. 현재는 시장의 자유가 위협받고 정치적 자유는 혐오로 변질되고 있는 중이다. 자유의 역사가 길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미 올바른 선택을 한 경험이 있고 그것이 옳다는 것을 전 세계에 증명했다. 지금이 다시 한번 건국의 영웅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유산을 사용할 순간이다. 바로 “선택할 자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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