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성의 시대에 자유와 이성을

정회훈 / 2024-08-27 / 조회: 258

바야흐로 반지성의 시대다. 시민들은 국가와 법치를 신뢰하지 않고, 지식인들을 권력의 부역자요 하수인이라 칭한다. 기업은 어느새 악의 축으로 묘사되고, 재벌을 비롯한 기업인들은 연일 미디어를 통해서 악마화된다. 개인의 성취에 대해서는 한없이 가혹하고 각자의 배경에 대해서 끊임없이 평가하는 순간들의 연속이다.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저서인 <미국의 반지성주의>가 쓰이던 시기, 매카시즘 광풍이 불어닥쳐 온 미국이 증오와 마녀사냥에 열광했던 모습과 많은 부분이 겹쳐 보인다. 理性(이성)에 대한 반감과 불신이 하늘을 찌르면, 반지성을 등에 업고 대중을 현혹하고 기망하는 사기꾼들이 고개를 치켜세우고 연단에 올라선다.


우리는 그들을 '포퓰리스트’라고 칭한다. 포퓰리스트들은 분노에 찬 시민들에게 약속한다. 내가 당신들을 대변하겠노라고, 지금의 국가는 잘못됐다고. 때때로 그들은 대중들에게 경제적인 보상을 약속하며, 무분별한 선심성 복지를 남발한다. 자유와 공정, 시장의 균형을 모두 무시하는 일들을 '시민의 뜻’이라며 자행한다. 그렇게 국가와 사회, 시장이 그렇게 망가지는 시대가 됐다.


그래서 오늘날 신자유주의에 대한 악에 받친 비판과, 헌정 질서를 위협하는 속칭 '뗏법’ 식의 민주주의가 테이블 위의 아젠다라고 할 것이다. 복지는 타인과 나누어 쓰는 우산과도 같은데, 첫째로 공동체의 유지와 구성원의 안녕을 위한다는 점에서 공동체적 배려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이미 우산을 나누어 쓴 순간부터는 함께 젖어간다는 점이다. 언제나 사회적 자원은 한정적이며, 우산의 크기가 마음대로 늘어나고 줄어드는 일은 쉽지 않다. 셋째로, 한번 우산을 씌워준 순간부터는 단순히 마음이 변했다고 우산을 접거나 씌워주지 않을 수가 없다. 이미 실행된 복지와 정책은 쉽게 되돌릴 수 없다. 정말 특수한 사정변경이 있는 게 아니라면 끝까지 우산을 나누어 쓰는 것이다.


그 때문에 사회공동체와 국가는 한정된 자원 속에서 최대의 효율을 고심하며 절대다수의 빈자들을 돕기 위해 고심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런 고민을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렇게 한정된 자원은 고갈되고, 정부는 날이 갈수록 더 비대한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렇게 복지에 예속되고, 정부에 예속되며, 식물과도 같은 시민들을 마주하게 된다. 여전히 배는 고프고,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포퓰리스트들은 '오직 시민’을 외치며 그들을 현혹한다.


그렇다, 결국 시민들은 자유인이나 동시에 예속민이 되며 현실에 안주하고 비대해진 국가에 의존하며 실질적인 자유를 상실하는 것과 다름없다. 하이에크는 케인즈의 시대를 살았고, 케인즈식 세계관이 왜 잘못된 것인지 알리기 위해 끝없이 소리쳤던 시대의 지성이다. 하이에크는 상기된 정부의 문제점, 자유로운 개인의 소멸, 사유재산에 대한 악마화, 민주적 절차의 허술함에 대해서 모두 지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유헌정론>이 출간된 시기 미국 사회는 그를 철저히 배격했다. 그가 9년에 걸쳐 써 내려간 책은 1960년 2월 출간됐지만 케인스식의 정책이 무너지는 70년대 이전까지도 주목받지 못했다. 이때 하이에크는 심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한계에 달했지만, 자신의 신념과 지성을 포기하지 않았다. 케인스식 정책이 스태그플레이션과 미국의 재정 위기를 통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순간에야, 하늘을 가리던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197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며 세상의 인정을 받았다.


신자유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하이에크의 문장들은 오늘날에도 날카롭게 파고든다. 특히 <자유헌정론>은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탐색을 시작으로 그 '자유와 자유들’이 표상된 국가와 법치, 헌정에 대해서 다각적인 사료와 사색을 바탕으로 분석하고 성토한다. 마지막 3장은 '복지국가에서의 자유’란 어떻게 다르며, 사회주의식 정책을 표방하는 국가의 테제를 현실을 지적하며 이상적인 것들이 현실을 대체할 순 없음을 준엄하게 꾸짖는다.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는 누진세나, 비슷한 맥락의 재분배를 위한 장치들이 어떤 논의에서 시작됐는지 톺아보고 몰이해를 지적하는 모습들은 현대 사회에 비추어보아도 일목요연한 비판이다.


하이에크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1974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더욱 진화하면서도 동시에 일면에서는 쇠퇴했다. 하이에크는 퇴조하는 자유세계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바꿔내야 할지 끝없이 고민했다.


하이에크가 남겼던 말이 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은 언제나 소수이다. 이를 통해 다수도 새로운 방식을 배워나갈 수 있다”는 그의 말에는 지금의 시대가 본받아야 할 '지성의 역할’이며 '자유에 대한 사색’이 담겨있다. 온전히 개인이 되기 위하여, 온전히 자유롭기 위하여 우리는 현실의 문제를 직면해야 할 순간이다. 그래서 지금 시민들에게, 이성을 찾는 개인들에게 하이에크가 필요한 순간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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