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에크가 사회 초년생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강선행 / 2024-08-27 / 조회: 297

자네가 아직 청년이어서 이 땅에 막 발을 딛기 시작한, 경륜도 지식도 부족한 사람이라면, 자유가 무엇인지, 왜 자유를 추구하고 소중히 여겨야만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네. 무엇보다 자유란,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네. 뭐든지 할 수 있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권력일세. 자유는 내가 무엇을 하지 못하는지 인식했을 때 비로소 드러나지. 자유는 사회 속에서의 적응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한 것이니까. 사실, 내 사상은 보수주의와 선택적 친화성을 가지고 있어. 나는 결단코 보수주의자가 아니네만, 자유로운 인간이란 언제나 자기 규율 속에서 행동 규칙(rule of conduct)을 지키는 자라고 믿어. 여기서 말하는 규율은 곧 사회적인 관행과 관습이고, 넓게 얘기하면 하나의 전통이지. 즉, 내가 2차 대전 이후 미국에서 광야의 세월 동안 그렇게나 부르짖었던 자유의 문명을 위한 전통인데, 강제의 반대인 자유는 그렇듯 전통에 대한 사회적 순응을 어느 정도는 전제로 한다는 것을 자네가 유념해야 해. 내가 여기서 젊은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자네가 이 땅에서 독립 자존하는 사회인이 되고자 한다면, 우선 가까운 주위를 둘러보라는 말을 하고 싶네. 분명 자네는 세상과 타인을 향해 자신의 주도권을 발휘하기 쉽지 않을 것이야. 말하자면 넌 이제 막 낯선 공간에 들어온 셈인데, 말로 내놓기 어려운 암묵적 지식에서부터 단순한 습관과 도덕, 예의범절, 그리고 사법私法으로 명문화되어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법규범과 존재 이유를 합리적으로 알기 어려운 제도까지 층층이 쌓여 있는 환경 조건에 적응해야 하기에 그렇네.


이 질서는 보수주의자들이 말하는 초월적인 권위에 입각해 있지 않고 고정된 위계질서와 고상하다고 여겨지는 가치를 부여받은 엘리트를 보호하지 않아. 내가 말하는 건 자유 사회가, 특정 목적을 지시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규정한 추상적 규칙의 작동에 생존이 달려 있고, 이 전체 '시스템’에서 개인은 언제나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복잡한 상호작용에 영향을 받으며, 또 그에 의존한다는 사실이지. 자유가 중요한 가치인 근본적인 이유는 오늘날의 이 거대한 사회에서 자신의 용도와 재능이 제대로 사용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행동의 결과에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하기 때문이야. 데카르트로부터 시작하는 잘못된 계몽주의 전통이 인간의 구조적 무지를 없는 듯 감추었지만, 인간은 순전한 이성의 인도로도 구체적인 모든 결과를 알 수 없네.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규칙에 따라 돌아가는 전체 질서의 개별 사례가 일시적으로 해로운 결과를 보여준다고 해도, 일반 규칙의 전복은 체계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짧은 지성, 또는 원시 부족적 감정을 나타낼 뿐이지. 이런 자유 사회에서 일반 이익이란, 개별 이익이 특수 집단의 구성원에게 얼마나 이로운가가 아니라 전체 질서에 얼마나 중요한가에 따라 드러날 뿐임을 명심해야 하네.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나 집단의 '공적(merit)’을 사실상 측정할 수 없고, 오직 가치는 시장에서 지식과 재능을 확인하는 부단한 탐색 과정 중 타인에게 유익한 재화와 서비스의 공급에 성공하느냐에 달려 있네.


자유주의 철학은 원칙의 고수를 말하며, 이 원칙의 비인격적 작동이 특수 이익의 목소리나 제어되지 않는 강권을 포함한 민주적 조치를 극복해 낼 때, 수억 명에 달하는 익명의 구성원이 번영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다고 주장하네. 하지만, 소규모 집단 사회로부터 추상적 규칙이 지배하는 문명으로 점진적으로 진화한 과정의 결과로 등장했던, 복잡한 현상을 수반하는 확장된 질서가 동시에 이 진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지체된 집단을 창출하고 만 것도 사실이네. 그 결과는 모두가 잘 알겠지! 원칙, 특히나 자유주의적 원칙의 발견은 지성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지성을 지니지 못해 자유주의를 오해하는 것 같아. 전全 시스템의 유지가 달린 문제임을 알지 못하고, 감히 그에 배치되는 자신의 권리를 함부로 청구하는 이들은 어쩌면 스스로 삶을 개척해야 한다는, “자유 사회가 우리에게 부과하는 매우 엄한 규율”을 받아들이기 싫어하는지도 모르지. 자네는 그러지 말게. 비록 이런 규율이 사람을 압박 속으로 밀어 넣는다는 사실이 가혹하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자유로운 인간은 그런 압박을 해쳐나가는 기업가적 인간과 상응하네. 시장에서 적합한 용도를 발견하고자 테스트를 겪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기업가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지. 그러니 사회에 나가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없는지 신중함을 기하고, 제도를 존중하며, 다른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살펴보게나. 이게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자유의 윤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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