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대책에 대해서

김정호 / 2021-04-06 / 조회: 21,804


김정호_2021-11.pdf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CJJRoS7ORzg


LH 사태가 대한민국을 분노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습니다. 좀처럼 사과 않던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사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부동산 문제의 해결자임을 자처하던 LH 직원이 제 잇속만 챙겼다는 것을 알고는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게 된 거죠.


참여연대와 민변이 폭로한 내용은 소위 알박기였습니다. LH 직원이 신도시 편입 대상 토지를 구입한 후 수용시 보상가를 높이기 위해 묘목을 심은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보상 실무를 잘 알고 있는 LH 직원이 내부자 정보를 사익 채우는 데에 썼으니 분명 잘못입니다. 도덕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정법 상으로도 범죄 행위입니다.


하지만 진짜 큰 문제는 신도시 구역 밖의 토지를 차명으로 사두는 행위일 겁니다. 사실 구역 안의 토지는 공시지가로 보상하기 때문에 큰 돈을 벌기 어렵습니다. 보상 과정에서 쉽사리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지요. 진짜 '꾼’이라면 신도시 구역 밖의 요지를 사두겠지요. 신도시 상세 계획을 알면 미래에 값이 많이 오를 땅의 위치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땅을 타인 명의로 사두고 기다리면 값이 오르게 되죠. 타인 명의로 투자하니까 법에 걸릴 일도 없습니다. 물론 명의를 빌려준 사람이 배신할 위험은 늘 안고 있지만 말입니다.


굉장히 많은 차명 투자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진실은 감춰져 있습니다. 윤석열 전 총장이 말한대로 주변 지역 땅들의 거래를 추적해서 LH 직원이나 정치인이 관여되어 있는지 집요한 수사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사실 이런 일들로 인해서 신도시 사업의 진행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LH 직원이 구역 내 땅을 사들였다고 해서 보상이 안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약간의 보상비가 더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말입니다. 누가 차명으로 구역 주변의 땅을 사들였다는 사실이 신도시 사업을 방해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요. 또 내부자 정보로 돈 버는 일들이 만연해지다 보면 앞으로는 직원, 또는 정치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신도시 계획을 변질시키는 일마저 생겨날 수 있습니다. LH 직원이나 청와대 관계자, 국회의원, 공무원같은 공직자들이 내부자 정보로 돈 버는 일은 최대한 막아 내야 합니다.


대책들이 중구난방식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첫째는 LH 해체입니다. 정세균 총리도 해체 수준으로 LH를 개혁하겠다며 거들고 나섰습니다. 그 밖에도 3기 신도시 사업 철회, 공무원 재산공개 대상 확대, 관련자에 대한 수사 확대 같은 대책이 거론되거나 진행 중에 있습니다.


우선 LH 해체에 대해서 생각해 볼까요? 정세균 총리가 나서서 해체 수준의 조치를 하겠다고 했는데요. 글쎄요. 이건 마치 세월호 사건 났다고 해경을 해체하는 것과 다를 것 없는 조치입니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습니다. 신도시 개발, 택지 개발 사업을 멈춘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신도시 예정지역의 모습을 보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이 사진은 3기 신도시 예정지구 중 하남교산지구인데요. 면적이 190만 평, 가구의 숫자가 3.4만 호, 인구는 8.1만 명입니다. 이 집들을 다 헐어내야 신도시를 추진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면 강력한 수용권한이 필요하고 결국 공공기관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출처: LH주택공사 YOUTUBE


이 지역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 신도시 예정지구의 땅은 농지일 경우가 많은데요. 우리나라 농가당 평균 경지면적은 1.4헥타, 4,200평 정도입니다. 신도시는 하나에 100만 평은 되니까 최소한 250개 농가로부터 땅을 사들여야 합니다. 중간 중간에 끼어 있는 시가지의 가옥들까지 생각하면 토지소유자가 1,000명은 훌쩍 넘게 됩니다.


그 많은 사람들로부터 자발적 거래를 통해 땅을 사들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결국 수용할 수밖에 없는데요. 수용권은 결국 정부 기관이 행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민간 기업 개발업자에게 수용권을 주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그 반발을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택지개발을 LH와 지자체가 독점하게 된 데에는 이런 사정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LH를 해체하더라도 같은 기능을 하는 다른 공기업을 다시 만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신도시를 통한 대량 주택공급을 포기한다면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신도시 사업 자체를 폐기하는 것은 어떨까요? 이것 역시 타당성이 없습니다. 우리 나라는 도시 인구 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습니다. 땅이 좁아서가 아니라 규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신도시는 조금이나마 그 문제를 완화시킬 수 있는 탈출구입니다.


이 그래프는 세계 각국 50개 도시의 1인당 사용면적을 보여줍니다. 월드뱅크에서 오래 근무했던 Alain Bertaud 박사의 연구 결과인데요. 아마 글로벌한 경험이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도시계획 컨설턴트일 겁니다. 이 분이 위성지도를 보면서 계산한 결과가 이 그래프입니다.


서울은 1인당 31제곱미터로 가장 작은 편에 속합니다. 27제곱미터인 홍콩과 비슷합니다. 홍콩 면적은 한국의 1/100입니다. 한국의 인구는 홍콩의 7배이지만 면적은 100배 넓습니다. 그런데도 홍콩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비좁게 살고 있습니다. 규제 때문입니다. 한국의 비좁음이 스스로 자초한 것임은 싱가포르와 비교해 보면 바로 드러납니다. 싱가포르의 인구는 우리의 1/9, 면적은 1/140입니다. 그런데 1인당 사용 토지면적은 93제곱미터로 서울보다 무려 3배나 더 넓습니다. 우리가 좁게 사는 것은 국토가 좁기 때문이 아닙니다.



가장 큰 원인은 그린벨트와 농지 규제입니다. 특히 그린벨트가 치명적입니다. 1972~1974년 박정희 대통령 때에 생긴 규제인데요. 6개 대도시를 당시 시가화 구역 끝에서 묶어 버렸습니다. 그후로 거의 손을 댈 수 없었으니까 우리나라의 대도시들은 지리적으로 1974년에서 동결되어 버린 겁니다. 그 때문에 주택 수요가 폭증해도 공급으로 흡수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1인당 소득이 1974년 560달러였는데 지금 3만 달러를 넘었습니다. 주택 수요도 폭증하는 것이 당연하죠. 하지만 새로 택지화 할 만한 땅들은 모두 그린벨트로 묶였고 그린벨트 밖은 다시 절대농지 같은 것으로 묶였습니다. 지금은 농업진흥지역으로 이름이 바뀌었죠.


그러다 보니 집들은 모두 공중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아파트 공화국이 된 거죠. 그 아파트들로도 수요가 흡수되지 않아서 값이 폭등했습니다. 그나마 숨통을 틔운 것이 1990년대초부터 시작된 분당, 일산 등 수도권 5개 신도시 입주입니다. 그린벨트를 뛰어 넘어서 경기도에 서울 위성 도시를 만들어낸 거죠. 문제가 되고 있는 3기 신도시는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신도시를 만들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주택난을 도저히 해소할 수 없습니다. 재건축이나 재개발이 필요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박원순 시장 이후로는 그나마도 틀어 막고 있지만 말입니다. 3시 신도시를 철회하더라도 어차피 신도시는 다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도시 철회는 LH 사태에 대한 대책이 될 수 없습니다.


공무원 재산 공개 확대도 거론되고 있더군요. 저는 LH공사의 내부자 정보를 다루는 직원은 그럴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공무원이라고 아무에게나 요구할 일은 아닙니다. 우리 헌법의 중요 내용인 과잉금지 원칙 위배라고 생각합니다. 이 원칙은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를 판단할 때 중요하게 쓰이는데요. 어떤 조치로 인해 침해되는 국민의 기본권에 비해 얻을 수 있는 공익의 크기가 작다면 위헌이라는 내용입니다. LH공사의 내부자 정보와 아무 관계없는 교사들의 재산을 공개해서 얻는 공익은 거의 없습니다. 쓸데없이 사생활만 침해하는 거죠. 신도시 계획과 직접 연관된 직원들, 또 정치인들에 대해서 적용할 조치입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수사 확대입니다. 윤석열 전 총장이 말했듯이 신도시 예정지구 안팎의 토지 거래 상황을 조사해서 내부자와의 연관성을 밝혀 내야 합니다. 이 정부도 엄정한 수사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이 정부말은 이제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못 믿겠습니다. 검찰 수사권을 무력화시켜 놓고 무슨 수사를 얼마나 철저히 한다는 것인지 믿음이 안 갑니다. 정권이 바뀌어야 비로소 LH 사태의 전말이 제대로 밝혀질 것 같습니다.


문제는 공무원 사회의 전체적인 분위기입니다. 마치 자기들이 나라의 주인인 듯 기고만장해졌습니다. 벼슬아치가 나라의 주인인 시대로 회귀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국민이 정부에 너무 많은 것을 바란 탓도 있습니다. 이 정권은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면서 마구 돈을 퍼주고 있죠. 국가부채를 늘려가면서 말이죠. 국민이 그 돈맛에 홀려 정신을 못 차리니까 이들이 기고만장 해진 것이죠. 자기들이 나라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조국, 윤미향, 김어준 등의 행태를 보면 뻔뻔하기가 그지없습니다. 자기들이 나라를 점령했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특히 코로나 이후에 더욱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제 국민이 공무원들의 고삐를 다시 죄어야 합니다. '네가 뭔데 주제 넘게 내 삶을 책임 진다 만다 하느냐.’, '네 돈이냐?’, '네가 뭔데 국민인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느냐.’ 이렇게 대통령과 국회의원과 공무원들을 몰아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국민이 공짜 돈에 취하면 정권의 노예로 전락합니다. 국민의 각성이 필요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LH 사태 같은 것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습니다. 국민의 전반적인 도덕 수준이 올라가야 해결될 문제죠. 하지만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 겁니다.


김정호 / 김정호의 경제TV 크리에이터, 서강대학교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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