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 피해자를 지원하는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특별법이 발의된 지 불과 25일만 이다. 대규모 전세 사기와 피해자들의 극단적 선택이 연이어 발생하자 국회가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뒤늦게라도 전세 사기 피해자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어 다행이지만, 전세제도 자체가 가지는 위험은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전세제도는 한국만의 독특한 제도다. 금융이 선진화되어 있는 나라에서 전세제도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개인 간 사금융인 전세가 그동안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임차인과 임대인 모두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임대인은 월세에 비해 저렴한 비용으로 거주가 가능하다. 한국은 가처분 소득의 14.7%를 주거비에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OECD 평균(20.5%)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실제 OECD의 '더 나은 삶(Better Life Index·BLI)' 지수에서 한국의 주거비 항목은 42개 국가 중 1위를 차지해 가장 임대료 부담이 낮은 나라이다.
각종 세금과 유지-관리비 등을 고려하면 전세금은 오히려 매매가 보다 높아야 한다. 그럼에도 낮은 전세가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임대인은 당장의 임대수익률보다는 향후 부동산 가격상승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재개발 가능성이 높은 아파트의 전세가율은 낮은 반면, 가격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운 빌라나 도시형 생활주택, 오피스텔 등의 전세가율이 높은 것도 이런 이유이다.
반면, 전세제도는 임대인의 보증금 미반환이라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 이런 역전세 문제는 주택가격 하락기에는 나타날 수밖에 없다. 특히 전세가율이 높은 빌라, 오피스텔 등 서민주택일수록 더 심각하다. 전세 사기가 아닌 일반적인 전세시장에서도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전세 문제가 지금처럼 커진 이유 중 하나는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다. 대출 규제를 통해 주택구매를 어렵게 하면서 동시에 전세대출 요건은 완화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48조 6000억(2017년)이던 전세금 대출은 170조 5000억(2021년)까지 급증했다. 소득과 상관없이 전세자금의 80%를 대출해주면서 매매가 보다 높은 전세금을 받으면 임차인은 자본금 없이도 다수의 주택을 보유하는 게 가능해졌다.
부동산 상승기에 갭투자가 유행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전세가격이 상승하는 상황임에도 문재인 정부가 강행한 임대차 3법은 원인으로 지목된다. 임대료 인상 폭을 5%로 제한하고, 전세 계약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면서 전세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이 부메랑은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역전세라는 형태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임대인을 대신해 임차인에게 전세보증금 반환금액은 2018년 583억원에서 2022년에는 9241억원까지 급증했다. 구상권 청구와 경매를 통해 회수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주택가격이 급락한 상황에서는 회수가 쉽지 않다. 민간기업이라면, 이 정도 손실이 발생할 경우 관련 상품 판매를 중단했을 것이다. 물론 부동산 가격 하락이 주요 원인이기는 하지만, 정부가 밀어붙인 전세자금 대출 확대가 뒤늦게 청구서를 내밀고 있는 상황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세제도는 이제 수명을 다했다’며 전세 제도 개편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바 있다. 논란이 확산되자 무제한 갭투자를 금지 또는 제어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전세제도 개편 방향을 다시 밝혔다. 시장에서 다양한 임대 상황이 경쟁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정부가 전세임대를 목표로 쏟아낸 정책들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현재 전세시장 규모를 고려한다면 전세가 소멸하고 월세로 모두 전환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월세-전세-자가로 이어지는 주거사다리가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보다는 그동안 정부가 전세시장을 왜곡시켜온 만큼 정부의 역할을 축소해 전세시장 규모를 줄여나가는 연착륙이 필요하다.
순차적으로 전세자금대출 비율을 줄이는 동시에 청약제도 개편도 병행되어야 한다. 현재 청약을 위해서는 무주택 자격이 유지되어야 한다. 가격을 기준으로 빌라나 오피스텔등을 매입하고 다시 청약을 통해 아파트로 이동할 수 있는 기존과는 다른 주거사다리를 마련하는 것도 고민해보아야한다. 동시에 이미 드러난 문제들을 중심으로 임차인에게 보다 다양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김영훈 경제지식네트워크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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