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자에게는 복이 넘치나니_월드뷰 2021년 12월호.pdf
한 사회에서 누구나 평등한 부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생들에게 어느 대학 교수가 이런 제안을 했다. 수강생 전원이 수업 평가를 평균 점수로 똑같이 받으면 어떻겠냐고. 학생들은 모두 교수의 제안에 동의했고 얼마 후 첫 번째 시험을 보았는데, 전체 평균이 B 학점이었다. 학생들은 모두 첫 시험 점수로 B를 받았다. 공부를 열심히 했던 학생들은 불만을 토로했고, 놀기만 했던 학생들은 좋아했다. 그리고 얼마 후 두 번째 시험을 쳤다. 공부를 안 하던 학생들은 계속하지 않았고, 전에 열심히 하던 학생들도 이제는 무임승차할 생각으로 시험공부를 하지 않았다. 결국, 전체 평균 D 학점이 나왔고, 모든 학생은 이 점수를 받았다. 이번에는 모든 학생이 학점에 대해 불평했지만,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하려는 학생은 없었다. 그 결과 다음 세 번째 시험은 모두 F를 받았으며, 그 후 학기 말까지 모든 시험에서 F 학점을 받았다. 학생들은 서로를 비난하고 욕하기까지 했지만, 아무도 공부를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결국, 모든 학생이 학기 말 성적표에 F를 받았다.
위 내용은 복지정책의 허구성을 꼬집기 위해 미국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모두가 평등하게 나누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자기가 노력해서 얻은 것을 대가없이 남에게 나눠주겠다는데 누가 열심히 일하려 하겠는가.
게으른 자의 욕망이 자기를 죽이나니 이는 자기의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잠언 21:25).
자신의 손으로 부를 일궈나가라
지금은 아르헨티나를 부자 나라라고 인식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오래전에 아르헨티나는 번영을 누리던 나라였다. 기회의 땅이었고 사람들은 여유가 넘쳤다. 그러던 아르헨티나가 평등을 앞세우고 복지를 늘리면서 점차 활력을 잃었다. 지금도 아르헨티나의 국민은 어마어마한 복지 혜택을 누리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국민은 하루가 멀다고 시위를 벌인다. 근로자, 교사, 저소득층, 농민, 노인 등 다양한 계층이 저마다 임금 인상과 생활보조금 확대, 연금액 지급 증액 등 더 많은 복지 혜택을 요구하며 시위한다. 그들이 끊임없이 혜택을 요구하는 것은 마치 바닷물을 마시면서 계속 목마름을 호소하는 것과 같다. 바로 과도한 선심성 복지정책 때문이다. 사실 아르헨티나는 1940년대만 해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부국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넓고 비옥한 토지에서 생산되는 1등급 농산물과 풍부한 천연자원, 노동력을 밑천으로 세계 5위에 빛나는 경제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현재는 빈곤층과 실업자가 넘쳐날 뿐만 아니라, 고질적인 인플레이션이 계속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물가 폭등을 견디지 못하고, 사회질서는 무너지고 범죄율도 증가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언 6:6).
불평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최근 들어 국가가 국민 복지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자주 등장한다. 주요 언론은 연일 이제 더는 젊은 세대들이 계층이동을 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기사를 쏟아낸다. 참으로 걱정스러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젊은 세대들이 스스로 자수성가할 수 없는 시대로 규정해 버리기 시작하는 순간, 불행과 불만이 쌓이기 시작한다. 이러한 생각은 정말 위험하다. 스스로 가능성을 제한하고, 그 틀 안에 갇힌 삶을 살게 되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들이 성공할 기회는 전혀 없을까? 단언컨대, 기회는 여전히 존재한다. 예전 세대나 지금 세대나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불안감과 불확실성은 똑같이 따라다닌다. 매월 월급으로 생활을 꾸려야 하는 직장인들은 여전히 ‘쥐꼬리만 한 월급’과 씨름하고 있다. 불안감과 불확실성은 결코 지금의 젊은 세대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그런데 젊은 세대 중 일부는 오로지 자신들만이 불안정한 위치에 놓여있다고 착각한다. 풍요롭게 자란 세대인 만큼 양질의 교육과 사회적 혜택을 받은 사실은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풍족했던 만큼 가난함에 고통받았던 경험은 없다. 밥을 굶거나,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적지 않은가. 이처럼 과거 한국의 젊은이들보다 훨씬 많은 혜택을 누리며 살아온 요즘 젊은 세대의 경우, 자기 생각이 뚜렷하게 정립되지 않아 문제의 원인을 자신의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나타날 수도 있다.
실제 한 청년은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지금 상황은 사회 시스템에 문제가 있어요. 자기 혼자 잘 되겠다고 열심히 해봐야 법이나 시스템이 뒤를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에 자수성가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보세요, 지금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쥐어짜서 수익을 내는 세상에 혼자서 뭘 하겠어요?
이 글에는 이미 ‘희망은 없다’라는 내용이 저변에 깔려 있다. 과연 우리는 현재 사회 시스템이 잘못되었기에 자수성가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을까? 그러나 섣불리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까닭은 실제 우리 주변에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꽤 많이 있고 방송과 언론에도 자주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리라.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잠언 26:13).
자수성가 역시 마찬가지다. 자수성가는 결국 개개인의 문제이므로 자수성가의 가능성을 탓할 이유가 없다. 이미 과거 보다 훨씬 높은 질의 삶을 더 많은 사람이 누리고 있다. 지금도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발전하고 있으며, 과거에 비해 촘촘해지고 있다. 그 촘촘한 틈 사이로 새로운 기회는 계속해 생겨나고 있다. 누군가 이미 찾아낸 틈은 모두가 알고 있는 기회다. 지금의 젊은 세대는 지금 시대에 맞는 자신만의 새로운 틈을 찾아야 한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언 10:4).
노동은 다방면으로 우리 삶에 유익이 된다
복지정책이 필요한 이들이 있다. 소년·소녀 가장, 장애인, 독거노인 등 스스로 삶을 책임지기 어려운 이들이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어려운 이들을 도우려 한다. 정부의 복지정책은 그런 사람들의 자발적 복지지출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하는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고 일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이들에게까지 이루어지는 복지지출은 오히려 그들의 삶을 해친다.
일하는 것은 자신의 삶을 개선하려는 것이기도 하지만 보람 있고 삶에 활기를 주기도 한다. 노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성취감, 보람, 자아실현의 긍정적 효과는 아무런 생산적 활동을 하지 않는 연금 생활자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얘기다. 60대에 은퇴해서 무력하게 노년을 보내는 것보다는 일을 통해 오랜 세월 쌓은 연륜과 지혜로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개인이나 사회에 더욱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노인들이 일자리를 갖게 되면 규칙적인 운동과 늘어난 활동량으로 건강이 증진되고, 자연스레 병원 출입도 줄게 된다. 정부가 직업을 가진 노인들 1,22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일자리를 갖게 된 뒤 6%가 빈곤에서 빠져나오고 건강도 좋아져 의료비도 1인당 19만 원가량 덜 소요됐다고 한다. 건강하니까 일하는 게 아니라, 일하니까 건강하다는 말은 인생의 숨은 진리다.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잠언 13:4).
미래의 모습은 지금의 행동에 따라 달라진다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는 자신의 인생을 명품 브랜드로 만들었다. 그 결과 그녀는 가난한 흑인 미혼모의 딸에서 현재 보유 자산이 30억 달러에 이르는 세계적인 부호가 됐다. 그녀의 삶은 ‘인생의 성공 여부는 온전히 개인에게 달려 있다’는 이른바 ‘오프라이즘’을 낳았다. 당신의 삶도 어떻게 꾸려 가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명품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에베소서2:10).
누군가가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다. 불평하지 말고 받아들여라”라는 말을 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더구나 전 세계 최고의 억만장자인 빌 게이츠(Bill Gates)의 말이라면 머릿속이 복잡해질지 모르겠다. 짐작하건대 공감하기보단 분개하는 이들이 더 많을 것 같다. 어떤 이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는데 다른 이는 그렇지 못한 게 과연 옳은 일이냐며 따질 것이다. 견해의 차이는 있겠으나,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엄연한 현실은 변함이 없다.
빌 게이츠의 말이 아니더라도 세상은 불공평하다. 같은 시기, 같은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끼리는 비교되기 쉬워 불공평함이 더 눈에 띌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시선을 돌려 나라 밖을 보자. 선진국에서 태어나 사는 것과 제3세계에서 태어나 사는 것도 사실 불공평한 일이다. 전 세계를 100명이 사는 마을로 가정한다면 은행에 예금이 있고 지갑에 돈이 있고 집 안 어딘가에 잔돈이 굴러다니는 사람은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여덟 명 안에 든다고 한다. 이 글을 읽는 각자가 얼마나 행복을 느끼는지 모르겠으나 아마 대부분이 여덟 명 안에 들 것이다.
우리가 사는 시대도 생각해 보자. 우리는 나름대로 평화로운 자유민주주의 시대에서 살고 있다. 식민지 시대나 봉건 왕조시대, 설상가상으로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태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제 명대로 살기도 힘들었을지 모른다. 직접 비교하기에는 시공간의 차이가 너무 크기에 불공평을 실감하지 못할 뿐이다. 우린 그나마 행복하니까 이대로 살자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현실은 현실대로 인정하는 게 올바른 생각이라는 얘기다. 그래야 다음 단계의 문을 열 수 있다. 마음속에 불평, 불만을 가득 안고 산다면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분개하긴 쉽지만 있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개선의 길을 도모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한다.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크고 작은 어려움을 극복하다 보면 그게 무엇이든 자산이 된다. 위기라는 단어에는 위험과 기회가 함께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시련은 성공의 디딤돌이다.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노력에 노력을 더한다면 언젠가 지금의 처지를 웃으며 이야기할 날이 올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로새서 3:23-24).
세상은 불공평하지만 거기서 끝은 아니다. 세상은 시련에 주저앉는 이에게 더욱 가혹하지만, 노력하는 이에게 보이지 않는 도움을 선사한다. 헨렌 켈러(Helen A. Keller)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들이 있다. 바로 헬렌의 가정 교사였던 앤 설리번(Anne Sullivan)과 그녀의 뒤를 이은 보조자였던 폴리 톰슨(Polly Thompson)이다. 앤과 폴리는 반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헬렌의 눈과 귀가 되어 주었고, 이 둘은 헬렌에게 있어 부모 이상으로 빼놓을 수 없는 은인이다. 하지만 앤과 폴리의 희생과 헌신은, 만약 헬렌이 불공평한 운명에 절망하고 좌절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헬렌의 성공적인 삶은 그녀가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밀고 나갔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헬렌이 스스로를 도왔기에 운명의 여신이 그녀에게 앤과 폴리 같은 헌신적인 조력자들을 보낸 게 아닐까?
당신이 불평 속에 주저앉지 않는다면 하늘은 스스로 돕는 당신을 도울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주변에도 부모님과 선생님, 친구 등 당신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노력과 기도가 헛되게 하지 말자. 불평만 하고 살기에 우리의 인생은 너무나도 소중하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라디아서 6:9-10).
choi363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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