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대 사회민주당 정권 아래서 노동시장 경직화, 복지 확대 등으로 '유럽의 病者’로 전락 ⊙ 슈뢰더, 부자 증세와 부채 증액 등 요구하는 勞組에 “이런 멍청한 소리는 내 평생 처음 들어봤네!”라고 일갈 ⊙ 폴크스바겐 이사 출신 하르츠 기용해 노동시장 유연화, 복지혜택 축소 등 개혁 감행 ⊙ 슈뢰더의 사민당은 정권 잃었지만 일자리 수 史上 최대로 늘어나… 독일은 다시 '유럽의 리더’로 浮上 權赫喆 1961년생. 성균관대 행정학과 졸업. 독일 쾰른대학 대학원 경제학 석사·박사 / 자유기업원 법경제실장, 자유경제원 전략실장, 同 자유기업센터 소장,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자유민주연구학회장 역임. 現 자유기업원 부원장 |
정권의 명운을 걸고 사회개혁을 단행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前 독일 총리.
"실업자 500만명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Schröder)가 총리 재직 시절 신음처럼 내뱉은 말이다. 이 말은 깊은 병(病)이 들어 숨이 끊어지고 있던 독일 경제의 실상을 대변함과 동시에 이 병을 치유하기 위한 개혁을 더 이상 미뤄서도 안 되고 또 미룰 수도 없다는 절박감과 단호함의 표현이었다.
슈뢰더 총리가 개혁에 시동을 걸기 시작한 2003년 당시 8250만명의 독일 인구 중 실업자 수는 400만명을 넘어 500만명에 육박하고 있었다. 개혁이 막 시작되는 2005년 2월 실업자 수는 사상(史上)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그 수는 거의 530만명에 달했다. 실업률은 11.3%로 유럽연합 회원국 중 폴란드와 슬로바키아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러한 것들이 어제오늘 빚어진 일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즉 단순한 경기침체로 인한 일시적인 불황의 결과가 아니라, 그동안 켜켜이 쌓여온 '포퓰리즘에 따른 적폐(積弊)’가 드디어 수면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구조적인 문제였다. 고도성장을 통해 '라인강의 기적’을 이룩했던 독일 경제는 1990년 이후 2003년까지 기간에 동서독 통일로 인한 2000년의 '반짝 경기’를 제외하면 2% 이하의 아주 낮은 성장률을 보였다. 급기야 2003년에는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그림1〉 참조)
슈뢰더, 정치적 自殺 결심
당연한 결과로 실업률은 1990년대 내내 10%를 넘나들었고, 결코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실업자 수는 350만명을 넘어 400만명, 그리고 500만명에 육박했으며, 급기야 2005년에는 실업자 530만명, 실업률 11% 이상이라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것이다. '유럽 경제의 기관차’ '유럽 경제의 심장’이라고 일컬어지던 독일 경제가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여 이제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誌)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독일을 '유럽의 병자(病者)’라고 부를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가 되었다.
한편, 정치인으로서 슈뢰더 총리는 자신이 구상하는 개혁이 자신은 물론 소속 정당인 사회민주당(사민당・SPD)에도 엄청난 정치적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개혁이 그렇지만, 특히 포퓰리즘적 시혜성(施惠性) 복지 지출을 삭감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국민들의 자기 책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의 개혁, 온갖 규제와 특혜를 폐지하고 경제 주체들의 자유를 신장하고 시장경제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의 개혁은 수많은 기득권자(旣得權者)의 비판과 반대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특히 사민당은 전통적으로 노동조합의 전폭적인 지지를 기반으로 하는 당이다. 그런 사민당 정부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提高)하고,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키며, 시혜성 복지 지출을 감축하는 개혁에 나선다는 것은 당의 지지 기반을 스스로 허무는 일종의 '자살(自殺)행위’와도 같았다. 슈뢰더 총리가 내뱉었던 “실업자 500만명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말은 그런 정치적・파당적(派黨的) 유혹을 떠나 개혁을 절대 포기할 수 없으며, 기필코 단행하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독일과 독일 경제의 회생을 위해서 본인과 소속 정당에 커다란 정치적 위해가 될 수도 있는 개혁을 단행했다는 것은 슈뢰더가 정치꾼이 아닌 존경받을 가치가 충분한 정치가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경쟁이야말로 시장경제의 원동력”(에르하르트)
독일이 본래 '유럽의 병자’였던 것은 아니다. 잘 알다시피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를 딛고 일어나 '라인강의 기적’을 이룩한 유럽과 세계의 모범국이었다. 고도 경제성장과 완전고용을 달성하고 아울러 탄탄한 복지까지 갖춘 선진국 중의 선진국으로 세계 중심에 있던 나라였다.
이런 '기적’의 밑바탕에는 개인의 자유와 책임에 대한 강조, 그리고 자유로운 시장경제가 있었다. 한마디로 '작은 정부, 큰 시장, 큰 개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추동(推動)한 인물은 초대 경제부 장관을 거쳐 총리까지 역임한 루트비히 에르하르트(Ludwig Erhard)였다.
독일의 경제체제는 '사회적 시장경제’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은 '사회적 시장경제=국가 주도의 적극적인 복지국가’를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왜곡되고 변질된 사회적 시장경제이다.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말이 가리키듯이, 본래 의미의 사회적 시장경제에서는 '시장경제’가 주(主)이며, '사회적’이라는 것은 시장경제를 보완하는 역할에 머무르는 것이었다. 사회적 시장경제에서의 정부 개입의 한계는 독점(獨占) 등 이른바 '경제권력’을 방지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하기 위한 것까지이다. 다시 말하면, 본래적 의미의 사회적 시장경제에서 정부의 개입은 공정한 경쟁질서를 확립하고 유지하는 일에 한정되어야 하며, 시장경제 과정 및 민간의 자유로운 경제활동 그 자체에는 개입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분명했다.
에르하르트는 자유시장경제의 경쟁을 통한 역동성을 결코 억제해서는 안 된다면서 “경쟁이야말로 시장경제의 원동력이며, 이 시장경제를 조정하는 것은 자유롭게 형성되는 가격이다. 역동성, 계속성, 그리고 자유에 대한 확고한 의지, 이것이야말로 건강하고 안정된, 동시에 사회복지를 위해서도 유용한 국민경제의 근간이 되는 것들”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독일의 번영은 자유로운 기업가들이 우리나라 기업의 운명을 선도해나갈 때에만 충족될 수 있다”면서 “우리가 서 있는 땅은 '자유’라고 하는 땅이다. 이는 특히 기업인 여러분에게 해당되는 말이다”라면서 기업의 자유와 기업하기 좋은 조건의 형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최선의 사회보장은 경제발전”
한편 이익집단들, 특히 그중에서도 노동조합과 파업에 대해 그는 “의회의 다수결(多數決)로 추진되는 경제정책이 사회적, 경제적 또는 이념적 이익집단들의 독재로 인해 무력화(無力化)된다면 민주주의란 한낱 우스꽝스러운 코미디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파업은 우리 국민들의 아픔을 완화시켜주고 감싸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단호히 반대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불법파업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처했다. 나아가 “아무리 원자폭탄이 가능한 세상이라도 생산하는 것 이상으로 소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성장보다 분배를 앞세우는 것은 '참으로 유치한 사고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에르하르트는 시장경제에서의 복지와 관련해서는 “시장경제에서 나타나는 폐해는 시장경제적인 정책을 통해서 제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에 의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복지정책이 과도해진 복지국가는 '계급이 없는, 그러나 혼(魂)이 없는 기계화된 사회’를 만든다며 강력하게 반대했다. 그리고 “경제가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경제정책이야말로 가장 좋은 사회보장정책이며, 경제정책이 성공할수록 사회보장정책은 필요가 없어진다”고 역설했다. 즉 빈곤퇴치가 최선의 복지정책이며, 최선의 복지정책은 자유시장경제를 통한 번영에 있다는 것이다.
자유시장경제의 성과는 놀라웠다. 1950년대 전반과 후반의 평균성장률은 각각 9.56%와 6.96%였다. 그리고 1960년대 전반과 후반의 평균성장률도 각각 4.84%와 4.04%였다. 이에 따라 전쟁 직후 높았던 실업률은 급격히 낮아져 1960년대 내내 완전고용 수준인 1% 내외를 유지했다(〈그림 2〉 참조)
노동시장의 경직화
그런데 1970년대가 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반전(反轉)된다. 1972년 총선에서 정권을 잡은 사민당은 자유시장경제, 개인의 자유와 책임, 자유경쟁 대신에 분배와 복지, 결과적 평등, 경제 민주화 등을 앞세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경제에 대한 규제는 점점 더 촘촘해지고, 복지정책은 과도하게 팽창했다. 이러한 사정은 1980년 이후 18년간 정권을 차지했던 기독민주당(기민당) 집권 시기에도 계속되었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산업별 단체협상에서 잘 나타난다. 노동자와 사용자 간 힘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명분의 노동관련법에 의해 도입된 산업별 단체협약은 강제규정으로서 한 산업 내의 모든 기업과 노동자들을 구속했다. 단체협약에서 명시적으로 허용한 것만이 기업 단위의 노사(勞使)협상 대상이 될 수 있을 뿐, 각각의 기업이 갖고 있는 특수한 경제적 사정이나 지역별 구분, 그리고 노동자 개인들의 사정은 일절 고려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이 산업별 단체교섭의 강제성은 특히 수익성이 낮은 중소기업에는 치명적이었다. 일례로 산업별 단체협약에서 정해진 근로시간을 준수하게 되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게 된 기업이 종사자 95%의 동의를 얻어 주(週)당 두 시간의 연장근로를 실시했다. 사용자와 근로자 모두가 동의해서 실시되었고, 게다가 찬성한 근로자들만 참여한 연장근로였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기업은 단체협약 위반으로 제소되었고, 법원에서 패소(敗訴)했다.
해고금지법에 따라 해고가 엄격하게 금지된 것은 물론이다. '사회적으로 부당한’ 해고는 불법이며, 그것이 부당한 것인지 아닌지는 사용자가 입증(立證)해야만 한다. 설령 해고할 수 있게 되었다 해도 과중한 해고수당이 큰 부담으로 남는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자연스럽게 노동비용의 터무니없는 상승으로 이어졌다. 2000년 독일(서독)의 제조업 분야 노동비용은 시간당 25.81유로로 미국의 22.81유로, 프랑스의 18.26유로, 영국의 18.8유로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줄줄이 이전해버렸다.
방만해진 복지
노동시장의 경직화와 더불어 독일 경제를 병들게 만든 것은 1970년대 이래 확장일로를 걸어왔던 복지제도였다. 노령연금, 건강보험 및 실업보험 제도가 있고, 실업보험은 실업급여(Arbeitslosengeld), 실업부조(Arbeitslosenhilfe), 그리고 사회부조(Sozialhilfe)로 세분되어 있다.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어 실업자가 되면 1차적으로 실업보험에서 지급되는 실업급여를 받는데, 종전 임금의 67%를 32개월 동안 받게 된다. 그 후에는 실업부조금을 받고(종전 임금의 57%), 또 그 이후에는 사회부조로 넘어가 기초생활보호대상자로서 보호를 받는 시스템이다. 몸이 아파 일을 못 하는 경우에는 질병수당을 받는다. 첫 6주 동안에는 종전 소득 전액을 받으며, 이후에는 80%를 받는다. 질병수당은 3년 동안 78주 한도 내에서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었다. 독일에서 유명한 질병으로 이른바 '월요병(月曜病)’이란 것이 있는데, 월요일에 유독 질병으로 인한 결근 비율이 높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실업을 증가시키고, 관대한 복지제도는 실직자들로 하여금 노동시장 재진입보다 사회보장 수혜자로 남는 것이 더 매력적이게 만들었다. 실직 근로자들이 구직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실직 근로자의 절반 가까이가 1년 이상 장기실업 상태에 머물렀다.
연금보험의 경우 1970년대 초반 65세로 되어 있는 연금지급 연령을 60세 또는 63세부터 조기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방만하게 운영되었다. 인구의 고령화와 인구구조의 역삼각형으로의 변화는 연금보험 재정을 더욱 악화시켰다. 이로 인해 악화된 재정을 안정화시킨다는 명분으로 1990년대 초반 연금수급 개시 연령을 다시 65세로 높이고 보험료율도 18.7%에서 20.3%로 높이는 조치를 취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의료보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개인들이 의료비용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의료보험에 들어가는 비용은 급속하게 증가했다. 급속한 노령화가 더해지면서 의료보험의 지출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었다.
창업에 대한 규제도 강했다. 창업을 위해 소요되는 기간이 영국 11일, 미국 7일에 비해 독일은 90일이나 걸렸다. 그리고 기능공업(Handwerk)의 경우에는 장인(匠人)자격증(Meisterbrief)이 있어야만 창업이 가능했다.
'사회적 시장경제’에서 '시장경제적 사회주의’로
한편으로는 실업자가 증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복지 지출이 팽창한 결과 사회보장체계와 국가재정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각종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지출은 2002년 현재 독일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40.7%로 미국의 28.9%, 영국의 37.7%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국민들의 세금 부담을 가중시켰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의 재정적자를 지속적으로 늘렸다. 1950년부터 1960년대 말까지 독일의 채무비율은 국내총생산의 20%를 꾸준히 유지했다. 그런데 이 비율이 1970년대부터 급증하기 시작하여 1990년대 말 60%에 이르렀고, 이후 70%까지 치솟았다.
1970년대 이후 독일의 경제질서는 더 이상 '사회적 시장경제’가 아니었다. 포퓰리즘적인 정책들로 인해 '사회적 시장경제’에서 보조였던 '사회적’이 주(主)인 '시장경제’를 잡아먹어 버린 결과, 독일의 경제질서는 '사회적 시장경제’가 아닌 '시장경제적 사회주의’가 되어버렸다. 그 결과는 성장의 정체(停滯)와 대량 실업으로 나타났다. 1970년대 이래 성장률은 2%대를 벗어나지 못했고, 급기야 2000년대 초반에는 1% 이하로 주저앉았다. 실업률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1980년대 8%,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11% 이상으로까지 치솟았다.(〈그림2〉 참조)
1990년대 말 총선에서 승리하여 집권하게 된 사민당의 슈뢰더 총리는 개인과 기업의 세금 부담을 완화하는 등 몇 가지 개혁 조치를 취했지만, 이미 심각한 상태에 빠진 경제를 치유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00년대 초반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 취임 당시 350만명 정도였던 실업자 수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 500만명을 향해가고 있었다.
마침내 독일 중앙은행은 〈위기로부터의 탈출(Wege aus der Krise)〉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독일 경제의 위기가 구조적인 위기라고 진단하면서, 그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했다. ▲강력한 재분배 지향적인 사회보장제도 ▲노동시장의 경직성 ▲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그것이다.
〈어젠다 2010〉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슈뢰더 총리는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설득하기 위해 경영계와 노조 대표자들과의 '노변담화(爐邊談話)’를 진행하였다.
하지만 노조(勞組)는 '부자 증세와 부채 증액, 수십 억 유로 규모의 투자 프로그램’ 등 더 큰 국가 개입을 주문했다. 이에 대해 슈뢰더는 “이런 멍청한 소리는 내 평생 처음 들어봤네!”라며 폭발했다. 며칠 후 슈뢰더 총리는 유명한 〈어젠다 2010〉을 발표하면서 개혁 드라이브에 시동을 걸었다. 개혁의 방향은 과도하게 팽창한 사회복지국가 체계를 수정하는 것이고, 개혁의 핵심은 '작은 정부, 큰 시장과 큰 개인’이었다. 즉 정부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시장의 역할과 작용을 확대하고 활성화하며, 개인의 자기 책임을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노동시장의 유연화, 사회보장제도의 개혁, 규제의 철폐가 개혁의 주요 골자였다. 이것은 '시장경제적 사회주의’로 변질된 '사회적 시장경제’를 본래의 의미인 '자유로운 시장경제’ 방향으로 되돌리는 것을 의미했다.
개혁의 방향을 정한 슈뢰더 총리는 구체적 방안을 논의할 '노동시장현대화위원회’를 구성했다. 슈뢰더 총리는 이 위원회의 위원장에 하르츠(Peter Hartz)를 임명했다. 하르츠는 독일 자동차 회사인 폴크스바겐(VW)사의 이사 출신이었다. 노동시장 개혁 위원장에 경영자 출신의 인사를 임명한 것만 보더라도 슈뢰더의 개혁 의지기 얼마나 확고한지, 그리고 그 개혁의 방향이 어떠할 것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하르츠위원회는 4단계 개혁방안을 제시하였고, 각각 입법화 단계를 거쳐 시행되었다. 다양한 개혁 조치가 취해졌는데, 주요한 것만 보면 다음과 같다.
하르츠의 개혁
우선 노동시장 경직화의 주원인으로 지목받아왔던 산업별 단체협약 이외에 기업별 단체협약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바꿈으로써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완화시켰다. 또한 해고방지법을 개혁하여 소기업과 기능공업에 대해서는 해고방지법이 적용되지 않도록 하였다. 나아가 신규 설립 기업에 대해서도 초기 4년간 해고방지법의 적용이 배제되도록 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신규채용이 좀 더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경제활성화를 위해 장인자격증이 있어야만 창업할 수 있는 기능공업 분야를 92개에서 30개로 축소했다. 일반인도 장인을 고용하면 창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로써 기능공업 분야에서의 신규 창업이 활성화되고 이는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도록 했다. 또 사회보험의무의 특례가 인정되는 저소득 취업(400유로 이하의 Minijob 및 400~800유로의 Midijob)의 요건이 완화되고, 그 종류 또한 다양화시켰다.
실업보험 체제도 크게 수정되었다. 우선 실업급여 지급 기간을 32개월에서 12~18개월로 대폭 단축시켰다. 실업부조와 사회부조를 통합하여 '실업급여 II’를 신설하고 그 액수를 사회부조 급여 수준으로 낮추었다. 또 실직자가 소개된 직장을 수용하지 않는 경우 급여 지급을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써 실업자들이 실업급여나 실업부조에 안주하는 폐단을 없애고 구직활동에 적극 나서도록 유도했다.
연금과 관련해서는 65세인 연금수령 개시 연령을 2011년부터 점진적으로 67세로 올리기로 하였고, 경제성장 및 소득수준에 연동시키는 연금연동률을 축소시켜 연금수령액을 실질적으로 감소시켰다. 연금수급권을 축소하고 조기은퇴의 가능성을 제한시켜 고령 근로자들이 노동시장에서 더 적극적인 활동을 하도록 촉구한 것이다. 의료보험의 경우에는 환자의 자기 부담을 높여 도덕적 해이 발생 가능성을 줄였다.
'유럽의 病者’에서 '유럽의 리더’로
슈뢰더 총리의 〈어젠다 2010〉 및 그에 따른 '하르츠 개혁’의 목표는 노동시장의 유연화, 실업자의 취업 촉구, 그리고 기업의 일자리 창출 장려였다. 이러한 목표를 갖고 추진된 개혁의 결과는 놀라웠다.
2005년 500만명을 넘나들던 실업자 수는 2013년에는 300만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11%를 넘겼던 실업률도 5.3%로 대폭 감소했다. 만 25세 미만 청년실업률도 2005년 15.8%에서 2013년 7.8%까지 떨어져 유럽에서 가장 낮은 청년실업률을 기록했다. 2000년 이후 고용률은 71%에서 77%로 높아졌고, 특히 고령 인구의 고용률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60~64세 인구의 고용률은 2000~2011년 21%에서 47%로 2배 이상 증가했다. 55~59세 인구의 고용률도 66%에서 79%로 증가했다.
개혁 이후 일자리가 크게 늘어나 2008년에는 고용인구가 4000만명을 달성하면서 독일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2008~2009년 심각한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일자리가 줄어들지 않았다. 2011년 고용인구는 4100만명을 돌파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보고서를 통해 '독일에서 일자리 기적이 일어났다’고 표현했다. 독일은 '유럽의 병자’에서 다시 '유럽의 리더’가 되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개혁, 특히 노동시장을 개혁하고 시혜성 복지 지출을 감축하는 반(反)포퓰리즘 성격의 개혁은 '정치적 자살행위’와도 같다. 개혁을 통해 독일은 다시금 '유럽의 리더’로 부상했지만, 정작 개혁을 추진했던 슈뢰더 총리는 2005년 총선에서 패배했다. 개혁은 그만큼 어렵고 힘든 결단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로 인한 과실(果實)은 슈뢰더의 정적(政敵)이던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 현 총리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정치꾼이 아닌 한 나라의 진정한 지도자라면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슈뢰더는 2017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대중은 작은 손해에도 개혁을 반대합니다. 그러나 리더(leader)라면 국익(國益)에 직책을 걸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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