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이 간지의 소설 <데블 인 헤븐>에는 국민연금 수급을 앞두고 있는 노인들이 잇따라 의문의 사고사를 당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 다른 소설 박형서의 <당신의 노후>에도 건강보험공단과 국민연금공단의 재정에 부담을 주는 노인들이 잇따라 살해당한다. 이 노인들은 누가 죽였을까?
살인사건의 범인은 바로 국가이다. 두 소설은 각각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미래의 일본과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생산가능인구보다 노인인구가 더 많아져 막대한 복지비용과 사회보험비용이 사회문제가 된 미래사회에서 노인 세대를 부양해야 하는 청년층은 연금 고갈에 분노하고, 재정부담에 직면한 정부가 노인들을 은밀히 살해한다는 것이 두 소설의 공통된 줄거리다.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흥미진진한 이야기지만 초고령사회를 목전에 두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소설 속의 상상으로만 치부하기엔 그 무게가 만만치만은 않다.
미래세대에 과도한 부담 지우는 제도
우리나라도 저출산·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인구는 급감하고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급증하고 있다. 이 추세대로라면 2026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지금은 성인 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고 있지만, 50년 후에는 성인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 미래세대가 막대한 세금과 보험료를 지불해야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 사회가 세대 갈등을 빚지 않고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주는 제도들을 합리적인 선에서 개선할 필요가 있다. 가장 시급한 것이 국민연금 개혁이다. 국민연금은 1988년 도입될 당시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지금의 ‘덜 내고 더 받는’ 구조로 설계됐다. 아직까지는 연금을 받는 사람이 연금을 내는 사람의 숫자보다 적기 때문에 기금이 쌓이고 있지만, 2060년경이면 생산가능인구가 줄면서 기금 고갈이 예상된다.
현재의 국민연금 제도가 그대로 유지될 경우 미래세대는 소득의 3분의 1 이상을 연금보험료로 내야 하지만, 현재의 연금수급자보다 덜 받게 된다. 쌓여 있는 기금이 없기 때문에 그해 지급해야 할 연금을 그해 근로자로부터 걷어야 한다. 과연 미래세대가 ‘더 내고 덜 받는’ 상황에서 계속해 국민연금을 내며 노인들을 부양하는 것에 수긍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제도적 개혁을 해두지 않으면 소설 이야기가 현실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셈이다.
국민연금 개혁은 쉽지 않은 문제다. 정치적 부담 때문에 누구도 ‘덜 내고 더 받는’ 지금의 시스템을 변경하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나눠주겠다고 약속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공약으로 세금이나 보험료 인상 없이 국민연금 지급비율을 높이겠다고 한 바 있다. 국민과의 약속 때문인지 그는 최근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보험료를 ‘더 내는’ 개혁안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다며 반대했다. 현재 소득의 9%를 보험료로 내고 있는데 이를 12∼15%로 올리겠다는 계획이었다.
보건복지부가 추가로 4가지 방안을 내놓았다. 1안은 현행 제도를 그대로 유지, 2안은 기초연금 수령액을 40만 원으로 인상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3안과 4안은 보험료를 일부 올리면서 지급액을 일부 인상하는 방안이다.
4가지 중 어떤 방안을 택하더라도 미래세대가 부담해야 할 국민연금 부담 수준은 소득의 30% 이상이 된다. 안타깝게도 국민연금은 금 나와라 뚝딱! 하면 금이 나오는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제도 개선을 하지 않고서는 기금 고갈을 막을 방법이 없다. 정치권은 어렵더라도 국민들을 설득해 미래세대에게 과도한 짐을 지우는 것을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치적 독립성 확보와 수익률 제고 필요
국민연금 수익률도 제고되어 한다. 연금 수익률이 올라갈수록 기금 고갈 시기를 늦추고 국민들의 보험료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수익률을 1% 포인트 올리면 기금 고갈을 5년 이상 늦출 수 있다고 한다. 2018년 기금운용 수익률은 -0.92%로 5조 8000억 원 이상의 손실을 기록했다. 2014~2018년 5년 수익률 성과도 4.18%에 그친다. 같은 시기 캐나다 공적연기금 10.98%, 스웨덴 공적연금 6.78%, 네덜란드 공적연금의 6.4%보다 낮다. 장기적으로는 기금운용을 민간에게 맡기고 경쟁을 통해 수익률을 제고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기금운용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정치적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현재 국민연금 내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으며, 위원장이 복지부 장관이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역시 복지부 장관이 임명하게 되어 있다.
정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 효율적인 기금 운용이 어렵다. 독립성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국민연금이 정부의 쌈짓돈처럼 사용될 여지가 높다. 국민연금으로 대기업 대주주의 탈법과 위법을 처단하겠다는 대통령의 발상이나, 여성 임원 비율이 높은 기업에 국민연금 투자를 늘리겠다는 여성가족부 장관의 발언은 정부가 국민연금의 운용 방안을 좌지우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2018년 7월부터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라는 이름으로 사기업에 대한 주주권 행사가 가능하게 됐다. 도입 취지는 국민연금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투자기업의 경영에 개입하겠다는 것이지만, 현실은 그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입맛대로 기업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 오히려 기업의 수익률은 하락할 수 있다. 실제 스튜어드십 코드를 활용하는 외국의 기금들은 모두 정치적으로 독립된 상태에서 운영된다. 국민연금 기금을 공공임대주택이나 국공립어린이집 등 정부 사업에 활용하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그들은 기금 수익률을 높여 가입자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만 고려할 뿐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우리 국민의 신뢰도는 낮다. 지금 국민연금을 납부하고 있는 사람들 중 노후에 제대로 돌려받을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기금 고갈을 막기 위한 개혁을 서두르고, 수익률을 높여 국민의 신뢰를 높이는 일에 힘쓸 필요가 있다.
내가 납입한 연금이 잘 저축되어 노후에 돌려받을 수 있으며, 수익률이 낮을 경우 다른 운영기관의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게 선택권을 주는 방안도 필요하다. 그래야 국민들 스스로가 편안한 노후를 위해 국민연금에 가입할 수 있는 충분한 유인이 생긴다.
곽은경 자유기업원 기업문화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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