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현실적인 대북 정책의 수립을 위하여

이춘근 / 2002-09-30 / 조회: 5,049
No.030

I. 서론

북한은 지난 7월 1일의 경제개혁을 비롯 최근 신의주 경제특구를 건설하겠다고 나서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경제적인 개방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지난 9월 중순 고이즈미 일본 수상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북일 정상 회담에서 표명된 바처럼 군사안보의 측면에서도 모종의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즉 북한은 2003년 이후에도 미사일 발사 실험을 유예할 것이라고 언급했고 대량파괴무기에 관한 국제적인 사찰도 받을 것임을 암시했다. 이는 한반도에 안정적 분위기가 도래할 것 같은 예감을 주는 사태의 진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한반도의 장래에 예측하기 곤란한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냉전 종식이래 지난 10년 이상 대량파괴무기의 확산금지를 국가전략의 제 1 로 삼고있던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공격을 당한 이후 아예 대량파괴무기를 확산하는 국가들을 사전에 선제 공격, 이를 파괴할 것이라는 새로운 국가안보 전략을 천명하고 있다. 2002년 9월 20일자로 발표된 미국의 신 국가 안보 전략은 북한을 최대의 미사일 확산국으로 지목하고 이라크, 이란 등과 더불어 미국의 선제 공격 대상국이 될 수 있다고 언급 할 정도다.

이같은 엄중한 국제기류가 한반도 상공에 형성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의 현정부는 긍정적인 측면만을 확대 부각시키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북한에 대한 4년여의 햇볕정책이 북한의 경제적인 개혁의지를 확대시킨 것이라 볼 수 있고 국가간 경제 교류의 활성화는 남북한간의 교류와 화해를 촉진시키는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북한에 대한 지난 4년 이상의 햇볕 정책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을 정책의 대상으로 삼지 않은 결과 현정권이 종료되는 이 시점에서 결국 2003년의 위기설과 같은 한반도의 불안을 다시 초래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정치에 경제적인 요인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안보라는 전통적 진실이 제 확인되고 있는 것이 9.11이후 국제정치의 변화된 모습이다. 남북한 관계 역시 경제 이외에 정치, 군사의 문제를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몇 달 후 면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다. 새 정부 역시 대북한 정책에 유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국제정세의 변동은 낙관적이기 보다 긴장이 고조된 2003년을 맞이하게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앞으로 들어서게 될 어떤 정부라도 햇볕정책을 그대로 답습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정치의 역사를 볼 때 현 집권당이 다시 집권한다 할 지라도 기왕의 대북한 정책을 그대로 답습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본 에세이는 새로운 정부가 어떤 모습의 대북한 정책을 수행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정책 제안으로 작성하였다.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기보다 정책의 원칙을 제시하는데 중점을 두고자 한다. 현 김대중 정부의 대북한 정책의 문제점은 그 정책의 기본가설이 '이상주의적 국제정치 이론'에 근거한 것이었고 그 결과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차기 한국 정부의 대 북한 정책은 보다 '현실주의적 국제정치 이론'에 기반을 둔 것이야 한다. 치기 한국정부의 대북한 정책 목표는 우선 현재 한반도 주변에 형성되고 있는 국제적인 긴장 분위기를 회피하는 일-즉 한반도의 평화유지-이며 다음으로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일, 즉 -북한의 변화 유도-이다.
이 같은 두 가지 목표가 다음 정부의 대북한 정책의 목표가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보다 체계적이고 준비된 정책을 대북 정책을 사전에 수립해 두어야 할 것이다.

II. 목표가 분명한 대북 정책이어야 한다

김대중 정권의 대북 정책은 햇볕정책이란 용어로 상징된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사실상 체계적으로, 면밀히 연구된 대북 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예로서 1998년 1월 12일 취임을 한달 앞둔 김대중 당선자는 미셀 깡드시 IMF 총재와 만난 자리에서 ‘북한이 남한의 금융위기와 경제난에 고무되어 노동자를 선동할 것이므로 98년에는 경제 살리기, 행정개혁, 국정개혁, 국제신인도 제고에 전념해야 하므로 남북 문제를 크게 벌려갈 여력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북한이 나서면 나서고 나서지 않으면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하였다. 며칠 후 김대중 대통령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김 차기 대통령의 뜻에 따라 1백대 국정 과제 중에서 '남북정상회담 추진'을 제외하기로 했다는 사실도 발표했다.

특히 전임 대통령들과는 달리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초기 대북 제의에 있어서 반드시 조건을 제시하는 신중함을 보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각종 대북한 협상 제의시 '북한이 원한다면', '필요하다면', '서두르지 않겠다','구걸하지 않는다' 는 등의 조건부 용어를 포함시킴으로서 대북 정책을 서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천명하였다. 그러던 김대중 정부는 취임 2개월이 채 못된 시점인 1998년 4월초부터 본격적으로, 그리고 역대 어느 정권보다 적극적으로 대북정책을 개시했고 햇볕정책이라 불려지는 대북한 정책은 결국 김대중 정부가 가장 집착해온 정책이 되었다. 잘 준비된 정책인지 의구스럽다.

또한 많은 국민들은 햇볕정책의 구체적 정책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햇볕정책의 전략목표가 무엇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야당 총재시절 중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이 소련을 무너뜨린 정책을 햇볕정책이라 묘사한바 있고 이는 손자병법에도 없는 승리라 말한바 있었는데 미국(레이건, 부시대통령 당시)의 대소 정책과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그 전략적 목표가 같은 것인가 ' 햇볕정책은 미국의 대소 정책처럼 상대방의 궁극적 붕괴를 그 전략적 목표로 했던 것인가 ' 특히 수단의 측면에서 미국의 대소 정책과 김대중 정부의 대북한 정책을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는가' 지난 4년여의 햇볕정책은 미국의 대 소련 정책과 같은 차원에서 보기 어렵다. 미국의 대소 정책은 철저한 현실주의가 그 기본이 되었던 반면 김대중 정권의 대북한 정책은 이상주의적 기대에 근거하고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이상의 문제점에 비추어 볼 때 차기 정권의 대북한 정책은 우선 그 전략적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북한의 현 체제를 그냥 둔 채로 경제발전, 한반도 안보의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소시킬 수 없다. 그렇다면 차기 정부의 대북한 정책은 우선 '북한의 진정한 변화'를 정책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북한의 변화란 정치 군사 및 경제적인 두 가지 측면의 변화를 말한다. 정치 군사의 측면에서는 민주화 와 북한 군사력의 통제 및 축소, 경제의 측면에서는 시장경제화를 의미한다.
요약한다면 차기 정부의 대북한 정책은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는 한도에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 이다.

III. 대북한 정책목표를 추구하는 데에는 다양한 수단이 있다

북한의 변화라는 전략목표를 수행하는데 다양한 수단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어떤 변화에 대해서도 선행되어야 할 것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다. 북한의 변화를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해 도출해 내는 것은 정책적 수단으로서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는 한도 내에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여기서 한국은 북한문제를 다루는데 홀로 민족주의에 호소 할 것이 아니라 미국, 일본 등과 협력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현실에 부딪히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특히 9.11 이후 북한의 대량 파괴무기를 자신에게 직접 위협이 된다고 인식하고 있는 미국의 대북한 정책을 우리가 어떻게 조율해야 할지 심사 숙고 해야 만 한다.

평화적 수단만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없을 경우, 김대중 정부처럼 안달할 것이 아니라 소위 무관심 정책(benign neglect)을 쓸 수도 있을 것이며 강압 정책(coercive diplomacy)도 쓸 수 있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북한과 협상 할 경우 받는 측이 더 오만하고 주는 측이 더 쩔쩔매는 국제정치의 이변을 노정했다. 이 같은 비정상을 현실화, 정상화 시켜야 한다. 9월 12일 고이즈미 수상이 북한에 가서 벌인 협상이 바로 정상적인 외교 협상의 전형일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북한에 대한 정책 수단을 스스로 제한하는 우를 범했지만 차기 정부는 국제정치의 모든 가용한 수단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국제정치에서 가용한 수단이 '엿과 채찍' 임은 교과서적 상식이다. 양자를 적당히 배합하는 것이 정책의 달성에 보다 효과적인 일이다. 햇볕정책의 문제점은 엿 이외의 다른 수단을 사용하려 하지 않은데 있다.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햇볕정책을 조금이라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그러면 전쟁하자는 말이냐며 윽박 질렀다’ 그렇게 4년 동안 ‘오로지 평화’만을 외쳤는데 이제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지도 모를 상황까지 이르게 방치한 것은 무슨 연유 때문인가'

물론 어떤 수단이 보다 더 효과적인 것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기준은 없다. 특히 대외 정책인 경우 그러하다. 대외 정책이란 자국의 이익에 의거하여 행동하는 주권국가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대내 정책처럼 용이하게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최근 나타나는 피상적인 수준에서의 남북관계의 好轉을 햇볕정책의 업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행동 변화가 그동안 줄기차게 시행된 한국의 햇볕정책 때문인가 혹은 작년 가을 이후 심각해지기 시작한 미국의 대 북한 강경 정책 때문인가, 혹은 북한 자체내의 필요 때문인지를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일본의 북한 전문가 이즈미 하지메 교수는 고이즈미 수상이 이룬 업적을 북한에 대한 미국의 압력의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일 예로서 북한이 2003년까지 유예한 미사일 발사 실험을 2003년 이후에도 계속 유예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것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의 결과인가 ' 혹은 북한이 일본의 경제지원을 노리고 결정 한 것일까 ' 혹은 미국의 강경 정책과 보복 가능성을 두려해서 였을까'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겠다고 착착 준비를 진행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유예 결정은 미국이라는 변수가 가장 큰 것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

IV. 대 북한 정책은 국제적 협력이 병행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한 정책은 말로는 대폭적인 국제적 지지를 받는 정책이라고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한국정부의 독자적 정책이라는 성격이 강한 것이었다. 특히 정책의 '수단'이란 측면에서 햇볕정책은 주변국의 전적인 지지를 받는 정책은 아니었고 특히 미국과 일본의 지지를 받는 정책은 아니었다. 고이즈미의 방북에서 나타나듯이 일본의 대북 정책은 철저한 조건부였고 미국의 대북 정책은 엿과 채찍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일본은 북한이 만족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에만 수교 회담을 재개할 것이고, 대북 경제 협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분명한 조건을 제시했던 것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은 북한을 노골적으로 압살하려는 나라로 보고 있지만 미국은 북한에 대해 가장 많은 식량을 제공한 나라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대량파괴 무기 확산 금지를 동시에 요구하고 있으며 9.11 이후 이 문제는 보다 노골적인 양상을 띄고 있는 것일 뿐이다. 9.11이 초래한 변화 중 가장 극적인 국제정치상의 변화는 미국이 스스로 자신만의 안보를 해결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점이다. 즉 미국은 지금 누구를 도와 주려고 전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위가 직접 위협 당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전쟁하는 것이다. 미국은 또한 어느 나라도 미국의 안보를 위해 발벗고 나서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반도의 안보를 위해 한미간의 안보 협력은 더욱 중요하다. 미국이 한국을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으로 인정할 때 비로소 한국은 미국의 대북한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문제는 그 기원부터 국제적인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불행이지만 아직도 한반도 문제는 국제 문제다. 이 같은 기본적인 사실에 배치되는 한국정부의 어떤 대북 정책도 성공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V. 결론 :보다 현실주의적인 대북 정책을 위하여

햇볕정책은 목표와 수단의 도덕성에도 불구하고 겨우 절반의 성공도 거두지 못했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변했는지 아직 알기 어려운 반면 북한의 군사력과 대량파괴 무기는 감축되지 않았고 이제 미국의 선제 공격 대상조차 되기에 이르렀다. 새 정부가 들어서는 2003년과 새 정부 초기 1-2년 간 한반도는 북한의 대량파괴 무기와 이를 제거하려는 미국의 전략이 충돌, 또 다시 국제적 긴장의 핵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같은 상황아래 차기 정부는:

우선; 미국의 대북한 대량파괴무기 제거 계획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은 한반 도의 긴장을 회피 혹은 관리(Crisis Management) 하기 위한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과 대북한 정책 공조 및 협력관계 구축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북한의 경제 개혁 및 개방이 북한 체제의 본질적인 변화와 연계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구상, 시행하여야 한다. 즉 북한 체제의 유지가 아니라 북한 체제의 변화를 목표로 하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이상의 큰 원칙 아래 차기 정부가 다루어야 할 대 북한 정책 이슈들은;

탈북한 주민문제; 현재 몇 명인지도 파악하지 못하는(최대 30만명이상이라 는) 동포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문제; 수십년 만에 만났다가 곧 헤어지는 그런 만남이 아니라 보다 실질적인 만남을 제도화하는 방안의 강구
북한의 군사력 통제 및 축소문제; 북한 빈곤의 원인 중 하나가 비대한 군사력 때문이며 한반도 불안의 최대 원인이 북한의 군사력이다. 이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어떤 경제 협력과 교류도 무의미하다. 대만과 중국의 경우가 좋은 예가 된다. 양국 사이에 아무리 경제교류가 빈번해도 두 나라의 정치 군사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양국사이에 전쟁 가능성은 상존하는 것이다.

현실주의적 대북 정책: 남북한 관계는 실질적인 것이라야 한다. 보여주기 위한, 업적을 과시하기 위한 그런 정책들은 지양해야 한다. 쇼가 아니라 진 정으로 통일을 향해 나가는 현실적 남북간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아무리
민족과 통일을 부르짖어도 통일후의 한국에 대한 꿈이 다른 한 그런 행사 들은 통일 접근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한반도는 한민족인 통일을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떻게 통일해야 할 지에 대해 견해가 전혀 다르 기 때문에 통일이 되지 않았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 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자유기업원 국제문제연구실
연구위원 이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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