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보험제도 개선 방안

안재욱 / 2002-09-03 / 조회: 6,706
No.019

1. 문제의식

가. 현행 예금보험제도

1997년 새로운 예금보호법에 의해 예금보험공사, 증권감독원, 보험감독원, 신용관리기금, 신협중앙회 등으로 다기화 되어 있는 예금보험기구를 예금보험공사로 통합하였다. 그에 따라 예금자보호법의 적용대상금융기관을 은행에서 증권회사, 보험회사, 종합금융회사, 상호신용금고, 신용협동조합으로 확대 조정하였다.

예금보험공사는 금융권별로 예금평균잔액의 0.1%, 0.2%, 또는 0.3%의 일정한 보험요율을 부과하고 그 상한을 0.5%로 하고 있다. 예금자는 2001년 1월1일 이후 가입금융기관이 보험사고(영업 정지, 인가취소 등) 발생 후 파산할 경우, 원금과 소정의 이자를 포함하여 1인당 최고 5천만원까지만 예금을 보장받는다.

나. 문제점

현행 예금보험제도의 문제는 금융기관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예금보험제도 그 자체가 오히려 금융기관의 부실을 양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현 예금보험제도는 금융기관의 위험행위를 부추기고, 경영자에게 금융기관에 대한 책임의식을 갖지 않게 하며, 투자자의 금융기관에 대한 감시를 소홀하게 하는 유인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도덕적 해이들을 야기하는 현 예금보험제도에 내재되어 있는 원천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금융기관의 영업방법과 자산의 위험도와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동일하게 적용되는 예금보험요율이다. 둘째, 부실은행의 처리방법이다.

위험 행위와 관계없이 일정하게 부과되는 보험요율 체계는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더 큰 위험을 추구하도록 하는 유인을 제공한다. 1997년 12월 IMF 충격 직후 증권사와 종금사의 파산이 잇따르고 서울, 제일은행이 심각한 부실로 존폐위기를 맞게 되자 급기야 이들 부실 금융기관에서 예금이 대거 이탈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에 정부는 1997년 12월 예금자 보호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한시적으로 2000년까지 예금과 이자를 전액 보장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예금자의 무제한 보호는 예금자와 부실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 행동을 부추겼다. 퇴출 위협을 받은 서울은행과 제일은행은 예금 이탈을 막기 위하여 종전보다 6%를 올린 연 17%를 보장하는 신상품을 내놓았다. 이에 맞서 우량 은행들까지 경쟁적으로 금리를 올리자 급기야 두 은행은 1997년 12월 말 20%에 달하는 금융상품을 내 놓게 되었다. 한편 예금자는 예금 원리금이 전액 보상됨에 따라 금융기관의 부실 여부를 불문하고 고금리를 제공하는 금융상품으로 예금을 이동시켰다.

이것은 결국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지연시켰고, 고금리로 인하여 피해를 보는 기업들이 많아졌다. 우선, 고금리 경쟁으로 인한 대출금리의 급격한 인상으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부도에 이르게 되었다. 금융기관이 고금리로 예치한 자금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많은 기업들이 자금확보의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 또한 부실금융기관이 파산할 시 예금의 원리금을 보장하기 위해 투입될 수습비용의 부담은 일반 납세자의 부담으로 전가되었다.

서울은행과 제일은행을 비롯한 부실금융기관을 처리하는 방식을 보면 금융기관이 지불불능상태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기관이 계속 영업을 하도록 허용하거나, 보험되지 않는 예금자와 채권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금융기관의 파산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금융기관을 처리할 경우 금융기관의 경영자들은 경영에 신중을 기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투자자 역시 금융기관을 감시할 아무런 유인을 갖지 못한다. 결국 이러한 방식은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과잉위험을 취하도록 함으로써 금융기관의 파산 가능성을 높인다.

예금보험공사에 의한 예금보험 이후 (1998년 4월 이후) 신용협동조합의 부실이 급증하였다. 1998년 3월 이전 부실화된 신협의 수가 96개에 불과하던 것이 2002년 4월까지 총 194개로 증가하였다. 과거에는 신협이 부실화될 경우 조합원들은 예금뿐만 아니라 출자금도 회수 못하게 되어 경영부실에 대하여 감시를 강화하였으나 예금보호 대상에 출자금까지 포함됨으로써 출자자가 부실경영에 관심을 갖지 않은 결과이다.

그리고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금융기관의 금융사고 역시 현재의 예금보험제도와 무관하지 않다. 1999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금융기관 직원의 고객돈 횡령, 주식계좌 도용 등으로 생긴 금융사고가 총 1,055건으로 그 금액이 8311억원에 달한다. 금융권역별로 은행에서 671건(4283억원), 비은행권 148건(2683억원), 보험 124건(309억원), 증권 90건(906건)이었다. 이처럼 금융사고가 많아진 것은 금융기관들이 내부통부제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결과이다. 내부통제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것은 화재보험이나 자동차 보험을 든 후 화재나 운전에 대한 조심성을 결여하는 것과 같은 도덕적 해이 문제이다.


2. 정책대안

가. 기본적 처방

위험기준보험료: 현재 일정하게 부과하고 있는 보험료를 금융기관의 자산 위험도에 따라 차등 부과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금융기관의 위험 행위 추구를 억제하는 효과를 갖는다.

일정비율보험제도(coinsurance): 일정비율보험제도는 예금종류와 금액에 따라 일정비율만 보호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 하에서는 소액예금자도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예금자에 의해 금융기관의 경영이 보다 면밀히 감시된다.

후순위부채(subordinated debt): 후순위채권자들은 금융기관 파산 시 예금자들과 선순위 채권자들을 변제한 후에야 채권에 대한 권리를 갖기 때문에 금융기관의 안전성에 대한 감시동기가 크다. 또한 후순위채권의 가격은 시장에서 평가되는 금융기관의 신용도를 반영하는 것이므로 이를 금융기관의 위험도에 대한 유용한 정보로 활용될 수 있다.

부실금융기관의 처리방법 개선: 첫째, 금융기관이 지불불능 상태에 직면했을 경우 이를 즉각적으로 처리하거나 자본을 재구성한다. 이 경우 금융기관의 경영상태가 악화된 상황에서 고수익 고위험 투자로 반전을 꾀할 여지가 없어져 도덕적 해이의 유인이 사라진다. 둘째, 금융기관의 파산 시 보험되지 않는 예금자와 채권자들을 보호하지 않는 방법으로 처리되게 한다. 이 경우 보험되지 않는 예금자와 채권자들이 사전에 금융기관의 경영을 잘 감시할 유인으로 인하여 금융기관의 파산이 감소될 것이다.

위의 방법들은 보험제도에서 도덕적 해이를 막는 원론적인 방안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들은 정부가 이것들을 효율적으로 수행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가정 하에서만 효과가 있다.

정부가 예금보험을 제공하면 정부는 예금보험의 독점적 공급자가 된다. 정부가 예금보험의 독점적 공급자인 한, 금융기관의 위험이 정확하게 가격에 반영되지 못한다. 보통 위험에 대한 프리미엄은 사보험자가 정확하게 가격책정을 할 때 이익을 얻고, 잘못했을 때 손해를 보거나 파산하는 경쟁적 과정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정부가 위험프리미엄을 정할 경우 그 프리미엄 책정이 잘못되었을 때 사보험자가 받는 것과 같은 처벌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어떤 위험에 대해서는 그 프리미엄이 과다하게 책정되고 어떤 위험에 대해서는 과소하게 책정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위험이 낮은 금융기관에게 부담이 가는 프리미엄이 책정될 경우 그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높은 위험을 택할 유인을 주게 됨으로써 금융시장의 불안전성을 초래할 수 있다.

설령 규제자가 위험프리미엄을 정확하게 책정한다고 할지라도 동태적인 금융산업에서는 그 프리미엄은 곧 무의미해진다. 새로운 금융상품과 금융기법으로 금융산업은 급속하게 변화하는 반면, 규제집행의 속성상 변화된 금융시장의 환경에 적응하여 새로운 위험프리미엄이 곧바로 책정되지 않는다. 이러한 규제 시차가 금융제도를 더욱 불안하게 하는 요인을 제공한다.

사실 문제은행에 대한 조기개입과 적시퇴출의 방안이 도입되어 있다. 자본금의 등급을 나누어 등급이 낮아질수록 정부가 개입의 강도를 높이고, 자본금이 각 기준 이하로 떨어질 경우 금융기관의 자산이 재편성되거나 청산된다. 그러나 이 방안들은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정치적 압력에 의해 개입이 이루어질 공산이 크다. 금융기관의 문제가 심각한데도 일반 대중이 알지 못하고 있는 경우에는 금융기관들은 규제자들에게 자신들의 문제가 일시적이며 시스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적으므로 규정적용을 완화해 줄 것을 설득할 것이다. 실제로는 문제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은데도 여론화되어 일반 대중이 인식하고 있는 경우에는 정책자들은 개입하여 그 금융기관을 퇴출시킴으로써 자신들이 대중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 보이려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개입과 조기퇴출 정책의 정치적 과정에 의해 이 집행은 매우 불확실하고 변동적이 된다. 어느 때는 과잉 규제를 하고 어느 때는 과소 규제를 하는 문제점을 낳는 것이다.

또한 자본금이 낮은 등급으로 떨어질수록 감독당국은 금융기관을 처리하는 문제에 더욱 망설이게 될 것이다. 특히 퇴출결정을 내리는데 가장 망설이게 될 것이다. 이런 식의 드러나지 않는 규제관용(regulatory forbearance)의 형태가 많다. 1998년 6월 금융감독위원회가 대동, 동남, 동화, 경기, 충청 등 5개 은행에 대해 퇴출초치를 단행할 때, 가장 부실금융기관으로 평가를 받고 있던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을 퇴출시키지 않고 존립시켰던 점은 정부의 조기개입과 적시퇴출정책이 정치적 결정과 규제관용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또한 1999년에 금융감독위원회가 노사정위원회 금융발전대책위원회의 퇴출은행관련 대정부건의문을 접수하고 건의내용을 존중해 업무를 수행하겠다고 밝혔던 것에서 이점을 확인할 수 있다.

나. 근본적인 방안

첫째, 예금보험공사를 민영화한다.
보험공사가 민영화되어 예금보험이 민간에 의해 운영되면 위험행위를 하는 은행이나 신협 등과 같은 금융기관에 결코 동일한 낮은 보험요율을 적용하지 않을 것이다. 금융기관의 위험도를 적정하게 산정하여 위험이 높은 금융기관에게는 높은 보험요율을, 위험도가 낮고 건전하게 운영되는 금융기관에게는 낮은 보험요율을 적용할 것이다. 이것은 현재 자동차보험, 손해보험 등의 일반 보험회사들의 활동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둘째, 금융규제 완화로 금융산업을 경쟁적으로 만든다.
금융산업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어 금융기관이 경영 및 자산을 다각화(diversification)할 경우 금융기관의 위험은 감소하게 된다. 그리고 경쟁적인 금융산업에서 금융기관들이 건실하게 운영하지 않으면 파산위험이 높아지게 된다. 금융기관이 파산되면 자신들의 재산을 잃게되므로 투자자와 예금자들이 잘 감시하게 된다. 따라서 금융산업이 경쟁적이 될 때 금융제도가 더 안정적이 된다.

예금보험제도가 금융기관의 파산을 막아 금융제도를 안정적으로 만든다는 견해는 외국의 역사적인 사실과도 배치되고 있다. Selgin(1994)은 미국에서 FDIC와 FSLIC가 설립되기 이전에 도산했던 은행들의 대부분은 소형 단일점 은행들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지점설치 금지와 같은 규제로 인해 단일 영업점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은행들이 지역적 위험에 대한 분산을 하지 못한 결과였다. 이에 대한 증거로 그는 지점 설치가 자유로웠던 캐나다에서는 대공황의 기간 동안에 파산된 은행이 하나도 없었던 사실을 들고 있다. 최근 뉴질랜드는 예금보험제도가 안정적인 금융제도를 구축하는데 있어서 열등한 제도임을 인식하고 예금보험제도 대신 금융산업을 완전 자유화하여 외국은행들과 경쟁하도록 만들었다.

참고문헌

안재욱, 「금융정책」, 『바람직한 한국의 정책대안』바른사회 시민회의, 2002 (근간)
An, Jaewook, Regulations on Financial Institutions, CFE Paper 7, 1999.
Selgin, George, "Are Banking Crises Free-Market Phenomena?" Critical Review, Fall
1994, pp. 591-608.

(안재욱, 경희대학교 교수, 경제학, jwa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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