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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국가들의 북한에 대한 인식

박상봉 / 2003-10-29 / 조회: 5,272


1. 들어가는 말


이라크 전쟁이 끝난 후 북한이 또 하나의 새로운 국제 사회의 트러블 메이커로 등장하고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NPT(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하고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개발을 강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이미 북한의 이같은 움직임에 공동으로 대처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대 북한 조치인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의 첫 회의가 지난 6월 12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후 지금까지 4차에 걸친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 회의에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적극 동참한 일본 호주 등은 물론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주요 유럽 국가들이 대부분 동참 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대량살상무기의 최대 피해국이 될 남한은 PSI에 무관심한 가운데 회원국으로부터도 아무런 동참권유도 받고 있지 않다. 국제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는 북한은 남한과의 민족공조를 주장하며 반미공동전선을 구축하며 위기를 모면하려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사회는 대북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어 물리적 충돌이 있었고 극단적인 집단이기주의로 IMF 관리체제 이후 또 한차례 심각한 경제 위기를 맞고 있다. 기업의 투자의욕 감소, 소비위축, 대량 실업과 같은 경제적 위기는 물론이고 심각한 도덕적 위기가 도래하고 있다.

한국위기의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그 본질은 북한이라는 변수와 직결 되어 있다. 북한의 핵 개발은 한반도평화를 위협하고 있으며 주변국들의 핵무장을 부추겨 동북아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의 균형을 깨고 있다. 본 글은 북한의 이와 같은 도발에 대한 국제사회 특히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사회의 대응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2 . 유럽이 인식하는 이라크와 북한 문제의 차이점


북한의 존재는 동북아 나아가서는 국제사회에도 골칫거리다. 앞에서 이미 언급 한바처럼 11개국으로 구성된, 강압적 조치인 PSI 가 발족 했으며,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남북한이 참여하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도 시작되었다. 이처럼 북한 문제는 단순히 한반도의 문제, 동북아시아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 문제가 되고 있다.


북한 문제는 이라크 문제와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문제지만 한 가지 점에서 중요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라크 문제를 둘러싸고 강대국들의 이해가 충돌하고 대(對) 이라크 제재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면 북한이 강행하는 핵,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강대국들의 반응은 별다른 차이나 갈등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이라크 전쟁은 초강대국 미국과 더불어 또 하나의 거대한 국제 정치 및 경제 세력인 유럽 통합(EU)이라는 두 세력이 세계패권을 둘러 싼 힘겨루기의 성격이 짙다. 국제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디즈레일리 경의 지적처럼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종식된 이후 등장한 미국의 세계패권(global hegemony) 에 프랑스, 독일, 러시아가 공동으로 연합전선을 형성한 것으로도 불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유럽 국가들은 ‘반전'평화’라는 구호를 앞세워 이라크와의 전쟁을 승인하기 위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에 반대했고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침략전쟁으로 규정했지만 이면에는 국익이라는 보이지 않는 지렛대가 작용했다고 보아야 한다.


이라크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대 원유 매장국이다. 이 양질의 원유는 미국, 유럽 등으로서는 포기할 수 없는 자원이다. 원유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힘 겨루기는 이라크 전쟁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기준이 된다. 이미 이라크 석유 이권에 깊이 개입한 유럽 국가들은 중동의 이단아 이라크의 후세인을 제거하려는 미국의 일방적인 조치에 동조하기 어려웠다. 사실 후세인은 프랑스에게 아주 유리한 조건의 석유 관련 이권을 제공한 바 있었다. 프랑스는 80년대 이후 이라크에 핵시설 및 레이다, 및 기타 군사시설을 판매 해 왔고, 독일 역시 오랫동안 후세인의 벙커 건설등을 포함한 건축 공사에 이권을 가지고 있었다. 러시아는 미국이 이라크를 장악함으로서 국제 석유 가격이 하락하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원유 수출이 러시아 외화 획득의 중요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프랑스의 경우 프랑스 인구 전체의 약 13%가 회교도라는 사실이다. 프랑스는 이미 회교권을 분노시키는 정책을 택할 수 없는 인구학적 상태에 놓여진 나라다.

그러나 이라크와는 달리 북한은 유럽 강대국들이 보기에 스스로 국제사회를 등진 미아에 불과하다. 백성을 볼모로 독재 권력을 유지하는 불쌍한 동방의 조그만 나라일 뿐이다. 독일의 유력 주간신문 '디 차이트(Die Zeit)'의 발행인이었던 테오 좀머는 지난 2월 열흘간의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해 경험했던 것들을 일지로 남겼다. 그는 북한을 한편으로는 ‘어둠, 혹한, 빈곤, 고립’, 다른 한편으로는 ‘핵, 독재’라는 개념들로 묘사하고 있다.


좀머의 북한일지는 한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유럽인들의 북한관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오랜 경륜과 전문성을 갖추고 세계 곳곳을 다니며 다양한 가치와 문화를 경험한 평생 언론인의 시각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시각에서 북한은 두 가지 결정적인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김정일의 권력이 세습된 독재권력이라는 점이다.
유럽은 민주주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이다. 오랜 전쟁과 빈곤의 역사 그리고 20세기 히틀러의 독재를 경험하며 높은 민주의식을 성숙시켜온 지역이다. 독일의 거의 대부분의 언론이 김정일을 호칭할 경우 예외없이 독재자(Diktator)라는 수식어를 앞에 부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럽인들은 북한의 독재권력은 불법이며 민주정권이 수립되어 빈곤과 억압 속에 고통 받는 주민들에게 희망을 주어야할 책임에 공감한다.
둘째, 북한은 최악의 인권침해 국가라는 약점이다.
독재 못지않게 유럽인들이 수용할 수 없는 것은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탈북자의 실상이 드러나고 정치범수용소의 실태가 밝혀지는 가운데 유럽인들은 북한인들에 대한 참상에 더욱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00년 봄 베를린에 나치의 만행을 추모하는 기념관 설립 행사에서 유럽의 지식인들은 과거 나치의 만행을 막지 못한 것이야말로 인류역사에 있어서 가장 치욕스런 일이었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이 엄숙한 자리에서 현재 북한에서 자행되고 있는 과거 나치에 버금가는 만행에 침묵한다고 하는 것은 또 하나의 수치라고 선언했다.
만사를 제쳐두고 북한인권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는 독일인 의사 노베르트 폴러첸(Norbert Vollertsen)과 같은 인물은 우연히 출현한 것이 아니다. 유럽의 전통 속에 인권문제에 평생을 거는 의사가 탄생한 것이며 우리민족은 폴러첸 씨에 깊은 감사함을 표시해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이와 같은 만행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북한은 이라크의 원유와 같은 강대국들의 이익 갈등을 야기할 만한 아무 것도 없다. 이런 의미에서 북한은 이라크와 다르다.


3.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유럽의 노력


인권은 인류 보편적 가치이자 유럽에서는 최대로 존중해야할 가치로 이해된다. 인권침해국가의 원수가 독일이나 프랑스를 방문할 경우 이 국가의 원수가 해당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반드시 거론토록 한 관습도 이와 무관치 않다.


1999년 중국의 장쩌민 주석이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시라크의 핵심 참모을 지냈던 소설가 드니 틸리나크는 “시라크가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다니 말도 안된다”고 흥분했다. 하원의장 로랑 파비우스는 장쩌민 주석을 하원에 초청하기를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권단체인 ‘국경없는 기자회’, ‘국제사면위원회’는 장쩌민의 방문에 맞춰 시위를 벌였고 하원의 자크 랑 외무위원장은 프랑스에 망명한 중국 반체제 인사 웨이징성을 접견했다. 또한 시라크 대통령은 장쩌민에게 탈북자들의 인권침해를 우려했고 장쩌민은 귀국 후 탈북자 실태를 파악해 알려주기로 답변했다고 한다. 이러한 수모를 당하면서도 프랑스 방문한 장쩌민은 프랑스 방문 중 에어버스 28대를 150억 프랑(약 3조원)에 구매했다.


프랑스의 인권의식은 피에르 리굴로의 활동에서도 쉽게 엿볼 수 있다. 그는 탈북자의 인권침해가 언론을 통해 드러나자 1999년 3월 10일 북한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21명의 유럽 지식인선언을 주도하기도 했다. 한국의 지식인들의 탈북자 인권선언은 그 후 10일만의 일이었다.


노베르트 폴레르첸은 99년 7월 독일응급의사회 ‘캅 아나무어(Cap Anamur)’ 소속으로 의료봉사를 위해 북한을 방문했다. 다른 독일인과 마찬가지로 북한에 대해서는 ‘가난한 나라’, ‘열악한 의료시설과 빈곤, 식량난의 나라’라는 정보가 전부였다. 그가 북한을 제대로 알기 시작한 것은 북한에 도착한 후 얼마돼지 않아 있었던 김일성 사망 5주기 추모식 때였다. 추모식에 나타난 수백 대의 메르세데스 벤츠를 보게 되면서부터였다.


당 간부들은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데 반해 주민들의 삶은 고통 그 자체였다. 탈북자들이 끊이지 않고, 병원에는 링거 병이 없어 사이더 병을 대신 사용하고 있었다. 평양을 벗어난 외곽에는 피곤하고 삶에 찌들린 사람들로 가득했고 굶주림에 지친 어린아이들의 눈망울에는 초점이 없다.

이런 모순된 사회, 병상의 어린아이들이 눈에 밟혀 뜬눈으로 밤을 새운 적도 많았다. 이것이 그를 인권운동가로 만들었고 한국에 머물도록 했다.
폴러첸 씨는 화상환자에게 자신의 허벅지 살을 기증한 것이 계기가 되어 외국인에게 주어지는 북한 최고의 훈장을 받았다. 그의 수상소식과 헌신적 봉사는 전국에 중계되었고 이 덕분에 그는 자신이 직접 운전하며 별다른 제약없이 북한의 구석구석을 다닐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그는 북한의 현실을 정확히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후 그는 북한 내 비판세력으로 김정일 정권의 만행을 규탄하기 시작한 것이다.

폴러첸 씨는 북한의 실상을 국제사회에 폭로하는 것이 북한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판단하고 방북 중이던 메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수행기자들을 모았다. 호텔 앞에 차를 대놓고 북한 감시원의 눈을 따돌려 10여명의 수행기자들을 태우고 통제구역 밖으로 안내했다.


이 사건 때문에 그는 북한을 떠나라는 추방명령을 받았다. 그는 추방명령에 맞섰고 2000년 말 비자만기까지 북한을 떠날 수 없다고 버텼다. 북한은 그를 강제로 추방하려 했으나 당시 한국을 방문중이었던 피셔 외무장관의 개입으로 비자 만기 전 추방을 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비자 유효기간이 끝난 2000년 12월 31일 북한을 떠났다. 체류 18개월만의 일이었다. 추방된 후 폴러첸 씨는 곧바로 한국에 왔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북한인권을 위해 외로운 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북한의 인권에 대한 독일사회의 관심은 한 회사의 주주총회 장면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회사인 메르세데스 벤츠의 주주총회에서 대북판매의 비도덕성을 규탄하기에 이르렀다. 벤츠사가 독재국가 북한에 자사의 차량을 판매하지 않아도 경영에 큰 문제가 아니냐며 판매중단을 제안한 것이었다.
이렇듯 북한에 대한 유럽사회의 인식은 냉정하다.


4. 결론


지구상 마지막 스탈린체제 북한의 존재는 한반도에 남남갈등을 유발시키고 국가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한미 동맹을 이간해 반미감정을 조장하고 미국 내 반한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더욱이 북한의 무모한 핵'미사일'생화확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개발 및 밀수출은 국제평화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러한 무모한 행각이 김정일 체제의 붕괴를 막기 위한 ‘벼랑끝 전략’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벼랑끝 외교를 통해 몇 차례 대규모 경제지원을 얻어내는 등 적지않은 성과를 얻어왔다. 핵 개발을 중단하는 대가로 중유와 경수로를 제공받기로 했고 ‘서울 불바다’와 같은 전쟁위협으로 대규모 식량지원과 경제적 지원을 받아왔다.
하지만 북한은 비밀리에 핵 개발을 재개해 제네바 합의를 폐기시키고 또 다시 핵을 빌미로 ‘벼랑끝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북한이 또 다시 총체적인 붕괴위기에 직면했다는 증거인 셈이다.
이런 북한에 대해 미국 등 국제사회는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을 비롯한 6자 회담으로 공동대응을 선언하고 있다. 핵 문제를 미국과 단독으로 해결하려던 북한의 편법이 무산된 것이다.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대체로 일치한다. 이라크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가 달라 갈등을 보였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PSI에는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폴란드, 호주 등 주요 유럽국가들이 참가하고 있고 6자 회담에 참가하고 있는 모든 국가들도 북한의 핵 개발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결국 민족공조를 내세우며 한미동맹을 약화시키고 미국의 패권주의와 이라크 공격의 부당성을 알려 미국을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시키려는 북한의 의도는 성공할 수 없다. 이어지는 탈북자의 행렬, 드러나는 정치범 수용소의 실태, 북한산 마약과 위조달러가 전 세계 언론을 끊임없이 장식하고 있는 한 김정일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더욱이 북한은 이라크의 원유와 같이 한나라의 국익을 좌우할 미끼도 없다. 이제 북한의 선택은 불가피하다. 핵과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고 북한의 민주화와 함께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나서든지, 핵 개발을 강행해 국가붕괴를 자처 하든지의 선택이다.


박상봉(미래한국신문 이사 겸 편집위원/독일통일정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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