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속의 별천지: 평양의 은덕촌(恩德村)과 동 베를린 발트지들룽(Waldsiedlung)

박상봉 / 2007-06-26 / 조회: 83,663
1. 들어가는 말


"Jeder nach seinen Faehigkeiten, jedem nach seinen Beduerfnissen 능력껏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는 구호는 공산주의 천국을 꿈꾸는 사람들의 행동양식이었다. 공산당 의 간부들은 내일이라도 언제든지 생산 현장의 노동자로 돌아갈 수 있다고 고백했다. 이런 도덕적이고 평등한 사회에 특권층을 위한 초호화 빌라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동구권 국가들의 몰락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났다. 경관과 운치가 빼어난 곳에는 어김없이 당 간부들의 별장이나 휴양시설이 지어져 있었다.


특히 동베를린에서 40km 떨어진 반들리츠(Wandlitz) 지역 숲 속에 위치하고 있던 '숲속 요새(Waldsiedlung)'는 호네커 총서기, 슈토프 총리, 밀케 슈타지 총수 등 핵심 간부들이 가족과 함께 거주하던 곳이었다. 이곳의 방들은 180㎡(대략 55평) 크기에 서방세계의 고급 가구와 장식들로 치장되어 있었다. 혁명의 주역인 프로레타리아 계급인 노동자와 농민이 보면 심한 배신감으로 구역질이 나는 현장이다. 그러기에 이중 삼중의 경비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숲과 호수로 둘러싸여 있는 비밀요새로서 당 간부가 아니면 절대로 출입할 수가 없던 지옥속의 별천지였다. 이런 천혜의 자연경관으로 인해 '숲속 요새’는 통일 후 일반에게 개방돼 노약자들의 휴양지로 활용되고 있다.


이같은 요새가 평양 근교에도 어김없이 존재하고 있음이 한 언론의 보도로 드러나고 있다(동아일보 인터넷 판 6.11). 소위 '은덕촌(恩德村)’이라고 하는 곳으로 '김정일 위원장님이 은덕을 베풀어준 주거촌’이다. 하지만 더욱 가관인 것은 사회주의 국가 중에는 그래도 부국에 속했던 동독의 숲속요새의 주거 평수가 55평 정도인 것에 비해 은덕촌의 가구 크기는 100평(약 330㎡)이다. 세계 최빈국인 북한이 동독 간부들이 누리는 거주공간의 거의 2배를 차지하는 셈이다. 권력의 독재적 성향이 진할수록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대가가 커지기 마련이다.


2. 김정일의 은덕으로 지어진 '은덕촌(恩德村)’


평양 대동강 근처에 김정일의 지시로 지어진 은덕촌은 5층짜리 6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100평에 이르는 주거공간은 방 6개, 화장실 2개를 비롯해 목욕탕, 거실, 식당, 창고 등으로 호화롭게 꾸며져 있다. 은덕촌은 당초 김 위원장의 지시로 1992년 핵 및 미사일 연구원들을 위해 건설됐으나 지금은 현철해, 김명국, 이명수, 박재경 대장 등 군부 실세와 오극렬 노동당 작전부장,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 등 노동당 및 내각 내 김 위원장의 최측근 30여 명과 그 가족이 거주하고 있다고 보도되고 있다.


은덕촌 내 호화 빌라는 엘리베이터를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하며, 인민무력부의 청사 경무부 소속 1개 중대가 요새를 방불하게 할 정도로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다. 얼마 전 김계관 부상이 은덕촌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김계관은 북미 베를린 회동과 2.13 합의를 이루어내 마카오 방코 델타 아시아(BDA)은행에 동결된 북한 계좌를 해제토록 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인물로 평가되어 김정일의 각별한 신임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일의 은덕으로 만들어진 은덕촌은 과거 동독 동베를린 북쪽 40km에 위치한 반들릿츠(Wandlitz) 지역의 발트지들룽(Waldsiedlung)을 연상시킨다. 발트(Wald)는 숲이라는 뜻이고 지들룽(Siedlung)은 마을을 의미한다. 즉 발트지들룽(Waldsiedlung)은 '숲속 요새’인 셈이다. 동독 공산당 특권층의 사치와 안락의 대명사였던 '숲속요새’는 외부 세계와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었다. 마을 안쪽에 에리히 호네커(Erich Honecker) 총서기, 슈토프(Stoph) 총리, 밀케(Mielke) 슈타지 총수 등 20여 명의 당 핵심간부들이 거주했던 반면 그 바깥 쪽에는 이들 귀족들을 도와주는 관리자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차량기사, 요리사, 정원사, 세탁원, 수영장관리인 등 600여명의 관리자들이 20 여명의 특권층 가족들을 돌보고 시설을 관리하며 편안하게 살았다. 요새 전체에 감시 카메라가 설치되어 쥐 새끼 한 마리도 얼씬 거릴 수 없었다.


3. 메이드인 저머니(Made in Germany)


숲속요새의 대부분의 설비는 '메이드인 저머니(made in germany)’였고 거대한 소비에트 연방의 작은 모델을 이곳에 만들어놓은 것 같이 호화스러웠다. 특권층은 외제승용차는 물론이고 서방세계에서 수입한 물품이 가득한 특수상점을 이용했고 고위직일수록 서방 제품에 대한 의존도가 컸다. 호네커의 양복은 서독 최고급 백화점 카데베(KaDeWe)에서 구입한 것이었고 속옷은 명품 베아테우제의 것이었다. 사냥용 차량은 메르체데스 벤츠와 로버 사 제품이었다.


숲속요새에서의 생활은 '사치’와 '안락’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었다. 서방 자본주의의 호화제품들이 즐비했고 사회주의적 가치는 이름 뿐 이었다. 재야인사 볼프 비어만(Wolf Biermann)은 “동독이 '썩은 노병’들에 의해 통치되고 있다”며 공산당 특권층의 표리부동한 행태를 비꼬기도 했다. 그들이 자랑처럼 여겼던 '오늘은 당 간부, 내일은 다시 생산현장으로’라는 이상도 구호에 지나지 않았다. 동독의 핵심지도층은 생산노동자 출신들이 많았다. 권력서열 1위 호네커는 기와공이었고 슈토프 총리는 미장공이었다. 당의 창과 방패로 실질적 권력을 휘두르던 밀케는 화물기사 출신이고 당 외화벌이꾼 슐라크 골로드코프스키는 제과공이었다. 동독 공산당 사통당(SED) 후신인 민사당(PDS)을 창당하고 동독 공산당을 가까스로 건져냈던 그레고르 기지(Gregor Gysi)는 소 사육사였다. 호네커 몰락 후 동독을 지켜내려 했던 작센 지방의 존경받던 개혁공산주의자 모드로브(Modrow) 총리도 열쇠공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과거 노동자의 삶을 등진 채 권력이 제공하는 사치와 안락에 탐닉했다. 특히 이들 권력층의 호화로운 생활은 물질적 차원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위에 군림했던 모습 속에서 더 잘 드러났다. 발트지들룽에 거주하며 특권층을 돌보던 640여명은 오직 이들의 수족과도 같이 충성을 맹세하며 상관들을 섬겼다. 정원을 다듬고 별난 요리들을 제공했고 자동차와 수영장을 관리했다. 외곽에 거주하며 경비를 담당하기도 하며 특권층만의 별천지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나름대로 호화생활을 즐기기도 했다.


메이드인 저머니로 상징되는 별천지는 은덕촌에도 그대로다. 김정일 측근들이 메르체데스 벤츠를 하사받고 서방세계의 명품에 푹 빠져 있다. 김정일의 요리를 전담하던 후지모토 겐지 씨도 메르체데스 벤츠에 온갖 특권을 누리며 살았다고 그의 저서 '김정일의 요리사’에서 밝히고 있다. 북한이 핵 실험을 단행 한 후 채택된 유엔의 대북 결의안 1718호는 사치품에 대한 대 북한 금수(禁輸, 수출 금지) 조치가 들어있다. 세계 최악의 빈곤국가의 지배 권력이 얼마나 서방세계의 명품 - 철갑상어알, 와인, 보석, 모피, 카메라, 오디오, 고급시계, 침구류, 골동품 등 - 에 중독되어 있었기에 제재안에 조차 사치품에 대한 수출 금지조항이 삽입 되었는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4. 맺음말


입으로는 사회주의 행동을 손과 발로는 자본주의의 명품들에 중독된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자들은 현실에 무감각하다는 특징이 있다.


동독의 경우 평균 64세로 권력에 중독된 핵심권력층은 라이프치히를 중심으로 월요데모가 일어나고 연일 탈출자들이 국경을 넘어도 그런 현실에 무감각했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호네커의 권력이 풍전등화의 상황에 빠져들어도 고급관료들에게는 금시계가 무려 213개나 상납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동독의 최고 권력자 호네커가 권력을 잃고 '발트지들룽’을 떠나 세상 밖을 거닐면서 최초로 목격한 동독의 현실에 호네커 부부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호네커는 자신이 권력에서 축출된 후 후임자였던 에곤 크렌츠(Egon Krenz)에 대해 “크렌츠가 권좌에 오른 지 3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나라를 파멸로 이끌었다“는 웃지 못 할 명언을 남겼다.


이렇듯 동독 공산주의 권력은 이론과 실제,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다. 은덕촌과 발트지들룽은 공산 권력의 실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회주의 내 명품관이다.


김정일의 마지막 발악이 지속되고 있다. 미사일과 핵실험을 강행한 김정일의 눈에는 굶어 죽어가고 있는 인민들의 삶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아마 그의 눈에는 인공기가 펄럭이는 광화문 네거리가 어른거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동독 호네커의 권좌에서 물러난 후 동독 현실을 보고 충격을 받았듯이 김정일의 권력도 꺾이지 않고는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앞선다.


박상봉 / 독일통일정보 연구소장, 장신대, 강원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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