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확산’ 뒤만 좇는 미 ‘비확산’ 정책

박용옥 / 2007-02-12 / 조회: 20,814
- 북핵 완전폐기(CVID) 해낼까? -


I. 서언: 북핵 해결 환경,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19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계기로 야기된 '1차 북핵위기’ 이후 지난 10여 년 동안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주요 당사국들 간의 양자 및 다자적 노력은 2002년 10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 시인으로 촉발된 '2차 북핵위기’ 발생, 2006년 10월 9일 북한의 핵실험 강행 등과 함께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특히 2003년부터 북핵 주요 당사국들인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및 남·북한 모두가 참여하는 6자회담을 통해 북핵문제의 외교적·평화적 해결을 시도했으나 결과는 북한의 핵실험 강행이었다.


문제는 앞으로의 해결 전망도 낙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근본적으로는 현 비확산체제, 즉, NPT체제의 구조적 결함이 오히려 핵확산 구실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NPT체제하에서 핵보유국 수는 오히려 계속 늘어난 것이다. 북핵문제 해결을 낙관할 수 없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은 최근 한미관계가 최악의 상태로 악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앞으로 북핵 협상과정에서 한국의 입지가 어렵게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고립될 가능성도 있다. 세 번째 요인으로는 최근 미 부시정부의 대북협상자세가 점점 유화적인 자세로 변해가는 징후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의 대북 핵협상 목표인 '북핵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회복 불가능한 폐기’(CVID)가 끝까지 관철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징후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북핵문제의 해결 전망과 관련한 위의 세 가지 환경요인들이 앞으로 6자회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 필자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 보고, 북한의 핵무장을 결코 방관할 수 없는 한국은 앞으로 어떤 입장에서, 어떤 정책으로 미·북 주도의 6자회담에 임해야 할 것인가를 제언하기 위한 것이다.


II. 현 NPT체제: 오히려 핵확산 구실이 되고 있다.


1. 세계 핵확산 추세


올해로 37년이 되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은 미국·러시아·영국·불란서·중국 5개국만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이들 5개국만의 핵무기 기술독점을 허용하지 않는 추세다.


인도는 NPT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1974년에 이미 평화적 이용 목적의 핵실험을 한 후 1998년에는 핵무기 실험을 했고, 파키스탄도 NPT 비가입국으로서 1998년에 핵무기 실험을 했다. 이 두 나라는 NPT 비가입국으로서 핵무기실험을 통해 핵보유국임을 선언한 경우다. 역시 NPT 비가입국인 이스라엘은 핵실험도 하지 않고 핵보유국임도 선언한 일이 없으나 실제로는 상당량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한편, 1993년 3월과 2003년 1월 두 번씩이나 일방적으로 NPT 탈퇴를 선언한 북한은 2005년 2월 10일 핵보유국이 되었음을 먼저 선언하고 그 다음해인 2006년 10월 9일 핵실험을 했고, 지금 북한과 함께 문제가 되고 있는 이란은 NPT 가입국으로서 핵기술의 평화적 이용 권리를 내세우며 유엔, 유럽연합 등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라늄농축을 강행함으로써 핵무기개발 의도를 의심받고 있다.


또 남아연방과 같은 경우도 있다. NPT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 보유하고 있다가 모두 폐기한 후, 1991년 NPT에 가입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기 시작했으며, 1994년 IAEA는 남아연방에 핵무기가 없음을 공식 확인했다.


이처럼 지난 30 여 년 동안 NPT체제 하에서 핵확산은 계속되어 왔고, 현 NPT체제 하에서는 앞으로 호주, 이집트,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아르헨티나 등 20-30개 국가로 핵확산이 계속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2. NPT의 구조적 문제점


현 비확산체제는 크게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주로 NPT조약에 정의되어 있는 '핵보유국' (nuclear weapon states)과 '비핵보유국' (non-nuclear weapon states) 간의 입장 대립에서 비롯되는 것들이다. 하나는 NPT조약상의 5개 '핵보유국들’이 조약이 지향하는 '핵군축’을 가속화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핵기술의 평화적 이용 권리’도 NPT에 가입한 '비핵보유국들’에게 공평하게 보장되어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요 핵보유국들이 이 근본문제와 관련하여 비핵보유국들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않는 한 핵확산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 불만 해소 방안은 NPT조약상의 '핵보유국’과 '비핵보유국’ 모두가 조약상의 권리와 의무를 철저히 준수, 이행하는 가운데, 조약 을 위반하거나 위협하거나 파기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조치를 권위 있게 가하는 길 밖에 다른 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국제적 현실이다. 주요 핵보유국이며 동시에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러시아·중국·영국·불란서 5개 핵강국들이 핵확산 방지문제와 관련하여 이해관계를 서로 달리하고,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지난해에 유엔안보리는 북한의 미사일발사와 핵실험, 그리고 이란의 우리늄농축계획 추진과 관련하여 이들 나라에 대해 각각 '유엔안보리 제재결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으나, 실제로 제재를 가하는 것에 대해서는 중국, 러시아 등 그들과 우호관계에 있는 나라들이 반대하는 것이다.


3. 미 '비확산정책’의 이중성


NPT의 이런 구조적 문제점에 더하여, 미 부시정부의 비확산정책은 9. 11 테러사태 이후 크게 세 가지 전제위에 추진되고 있다. 첫째, 핵무기는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테러리스트의 수중으로 들어갈 때가 문제며; 둘째, 핵확산 방지를 위해서는 민주주의 국가들이 단합하고 필요시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셋째, 미국과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의 안보상 필요한 핵전력을 제한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미 부시정부는 비확산정책 기준을 선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작년 12. 9일 미 의회는 부시정부가 전략적 차원에서 적극 추진한 '미국·인도 민간 핵협력 협정’을 비준하여 NPT 비가입국인 인도에 대해서는 핵연료와 기술을 제공하고 핵보유국지위도 인정하는 반면, NPT 가입국인 이란의 우라늄농축계획에 대해서는 작년 12월 23일 유엔안보리의 이란제재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는 등 우라늄농축시설 보유 자체를 금지하는 2중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중 기준은 현실적으로는 타당한 조치이나, 명분상으로는 일부 국가들의 핵무기 추구 구실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저명한 전직 국무장관, 국방장관, 상원군사위원장인 헨리 키신저, 조지 슐츠, 윌리엄 페리, 샘 넌 4명이 공동명의로 1. 4일자 '월 스트리트 저널’ 기고문을 통해 “미국은 다른 핵보유국들과 함께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폐기하는 실질적인 조치를 취함으로써 20년 전 로날드 레이건 전 미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에서 추구했던 '핵무기 없는 세계’(a world free of nuclear weapons)를 선도 해나갈 것을 제창한 것도 현 NPT체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과 미국 비확산 정책의 이중성에 대한 경고이자 그 근본적 개선방안에 대한 제언이라 할 수 있다.


III. 한미동맹 악화와 북핵 6자회담


1. 최근 동향: 북핵 실험 이후 더 나빠져


지난 해 10월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하여 한국정부가 보인 미온적 반응은 한미동맹관계가 되돌리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 같다. 미국은 한국정부가 북한의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현금 줄인 금강산관광 및 개성공단 사업을 계속하는 등 마치 별 일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고,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안 된다는 이유로 미국의 대북제재를 반대하는 등 북한 편을 드는 행태에 크게 실망하고 있다.


최근 한 언론보도에 의하면,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현재 한미관계의 개선 가능성은 매우 낮고, 한국은 사실상 한미동맹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중에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한미동맹관계의 악화는 필연적으로 한국이 미국의 대북 핵협상 과정에서 소외되거나 외교적으로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또 미국이 한국의 입장이나 한반도 비핵화 문제와 무관하게 '북핵 완전폐기’ 대신 '북핵 확산방지’ 수준으로 대북 핵협상을 추진하면서 미·북관계 정상화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구축 문제를 북한과 직접 협상하는 현상마저 나타날지도 모른다. 이는 '북한 핵보유’가 국제적으로 기정사실화 되는 최악의 안보상황이 조성되는 것을 의미한다.


2. 미 대북자세 변화와 6자회담 전망: 북핵 완전폐기 불투명하다.


한미관계의 악화 추세와는 대조적으로 최근 미국의 대북협상자세는 상당히 유연해 지고 있다. 지난 해 11월 미 부시대통령은 하노이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을 폐기하면 한국전쟁 종료를 북한과 함께 공동선언”할 용의까지 표명한 바 있고, 이를 계기로 미 부시정부는 금년 1월 16-18일 3일간의 베를린 미·북 양자협상을 통해 6자회담 재개에 합의하는 등 적극적인 대북협상 및 타협을 추구하는 자세로 돌변했다. 2월 8일 베이징에서 다시 열린 제5차 3단계 6자회담도 그 연장선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최근 들어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북한 핵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행동 가능성은 생각할 수 없고, 유엔의 대북제재도 북한의 핵무기 추구를 제재하지 못 할 것이기 때문에, 북한은 결국 핵보유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전망은 유럽이나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작년 말 발간 된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지의 '북핵 2007년 전망’에서도 미국은 금년에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확산방지에 만족할 것으로 평가했고, 지난 1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주최 초청강연에서 왕지서(王緝思) 베이징대 국제관계대학원 원장도 “미국은 북핵문제의 마지노선을 핵을 확산하지 않는 데까지 후퇴시켰다”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계속되는 북핵 6자회담의 종착역이 '북핵 완전폐기’인지 아니면 단지 '북핵 확산방지’로 만족할 것인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지만, 미국의 대북협상 자세가 '한국전 종료 선언’ 까지 고려할 정도라면, '북핵 완전폐기’ 목표를 확고히 견지할 것인지에 대해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IV. 결언: 한미공조 없이 북핵해결 못한다.


지난 18일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은 하원 외교위원회의 북한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북한이 핵시설을 확대해 핵무기 대량생산을 추구할 경우, 군사행동을 통해서라도 이를 사전에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중국과 한국이 미국의 대북 외교적 압력과 제재에 협력하지 않는 경우에 유일의 대안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지금부터라도 미국과의 공조관계를 긴밀히 하여 어떤 경우에도 6자회담이 '북핵 완전폐기’가 아니라 '북핵 확산방지’ 수준에서 매듭지어 지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기본적 조치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첫째,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참가 5개국은 북한의 '핵보유국지위’ 주장을 단호히 거부한다는 공동입장을 공식적으로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둘째, 6자회담 참가국들은 9. 19 공동선언에 명시된 핵폐기 관련 초기조치사항들에 대한 북한의 성실한 이행을 촉구하되, 불이행하거나 이행을 지연시키는 경우에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유엔안보리 대북제대 결의안 1718호를 단호히 집행할 것임을 경고해야 한다. 셋째, 중국과 러시아가 계속해서 어떤 형태의 대북제재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경우, 미국, 일본 및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인식하고 북한 핵무장에 대한 대응조치계획 등 적극적인 대책강구 용의를 표명할 필요가 있다.


이런 조치를 취할 수 없는 6자회담은 무의미하다. 북핵폐기의 실패는 필연적으로 이란 핵보유를 초래하고, 결국 세계 비확산 체제도 무실화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핵무기보유 국가 수는 계속 늘어날 것이며, 핵기술이전 또한 촉진될 것이다. 국제테러단체들의 핵보유도 가능해 질 것이며, 국제안보질서의 붕괴 현상은 것 잡지 못할 정도가 될 것이다.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국제질서의 혼돈과 불안정을 원하지 않는다면 우선 세계 비확산 체제의 붕괴를 막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눈앞의 북핵문제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박용옥 /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전 국방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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