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북 정책 : 상략(上略)과 하략(下略)

이춘근 / 2007-11-12 / 조회: 15,582

2007년 2월 13일 북경에서 북한이 일부 핵시설을 불능화 시키겠다고 합의한 이후 미국의 대북한 전략에 모종의 전술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북한 핵을 강압적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제거 하고야 말겠다는 듯 행동했던 미국의 대북 행태에 일부 변화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의 북한 핵무기에 대한 궁극적인 전략 '목표’가 변한 것은 아니다. 북한 핵에 대한 미국의 최종 목표는 북한 핵이 미국에게 위협이 아닌 것이 되도록 하는데 있다. 북한 핵이 미국에 위협이 아닌 것이 되게 하는 가장 간단한 전략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북한의 핵무기를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북한의 핵을 외교적 수단 혹은 군사적 수단을 사용해서 제거하는 것은 가장 빠르고 분명한 수단 같아 보이지만 이는 낮은 수준의 전략 즉 하략(下略)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북한의 핵을 군사적으로 제거하는 방안은 하략중의 하략이라고 말 할 수 있다. 핵을 강제로 제거 당한 북한은 한 동안 울분을 삭이며 철저한 반미국가로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상태의 북한은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의 북한 핵에 대한 전략 중 상략(上略)은 북한을 미국 편인 나라로 만듦으로서 북한이 비록 핵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미국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북한이 미국과 전략적으로 우호적인 국가가 되는 경우 미국이 생각하는 북한 핵문제는 거의 완벽하게 해결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라크 전쟁을 시작하기 몇 달 전인 2002년 12월 4일 부시 미 대통령은 유대인 지도자들과의 모임에서 '미국이 이스라엘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사담 후세인의 세상을 소멸 시키는 일이라고 말한 후, 악의 축 중에서 2/3 정도는 선의 축으로 바뀔 수 있을 것’ 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의 체제 변환(regime change)을 강조해 왔다. 미국의 대북 전략 중 상략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미국이 최근 집중적으로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역시 바로 이 부분이다. 북한은 미국의 세계 대전략의 여러 측면에서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북한 핵 문제가 상략의 방법을 통해 해결 된다는 것은 미국에게 엄청난 플러스가 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21세기 반 테러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대전략은 우선 두 가지 차원의 전략 목표로 구성 된다. 하나는 미국이 테러 전쟁에서 궁극적으로 승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미국이 패권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테러 전쟁에서의 승리라는 첫 번째 차원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미국은 알 카에다 (Al Quaeda) 와 같은 종류의 테러리스트 집단들을 소탕할 것과 테러리스트들을 지원하는 불량국가들의 독재 정권을 민주주의 정권으로 교체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미국은 이 전략 계획에 의거하여 2001년 10월 7일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 이래 오늘에 이르기 까지 테러리스트 소탕전 및 테러지원국의 정권 교체 작업을 전개해 오고 있다. 북한은 악의 축 3국 중 하나로 지목 되었는데 그 이유는 북한의 현 정권이 미국을 극도로 증오하는 정권이라는 사실과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제조하고 있는 핵무기는 언제라도 테러리스트에게 전달 될 수 있는 것으로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오랫동안 미사일, 화학무기 기타 재래식 무기들을 중동지역에 팔고 있었다는 사실은 미국으로 하여금 북한을 테러전쟁의 표적으로 선정 하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미국 국가 대전략의 또 다른 차원은 보다 전통적인 국제정치학에서 연원하는 것으로서 미국 패권의 지속적인 유지를 도모하는 것이다. 미국은 소련 붕괴 이후 유일 초강국인 패권 국가(Hegemonic Power) 가 되었지만 중국 파워의 급부상은 미국의 패권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간주되고 있다. 중국은 평화적인 방법(和平)이라는 형용사를 달긴 했지만 차후 미국에 도전 할 것(崛起)임을 감추지 않는다. 평화적으로 일어선다는 뜻의 화평굴기 전략은 미국 패권에 대한 도전이다. 결국 미국과 중국 사이에는 앞으로 본격적인 패권 경쟁이 전개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계 수많은 나라들 중에서 미국 국가 대전략의 두 차원(테러전쟁에서의 승리와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려는) 모두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나라는 북한뿐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 문제가 해결되는 날 미국은 테러 전선의 1/3 을 해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북한 문제의 해결은 동시에 중동 문제의 대폭적인 개선을 의미한다. 북한 문제의 해결은 중동의 테러리스트 혹은 테러를 지원하는 이슬람 국가들에게 북한 제 무기가 더 이상 제공 되지 않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의 대 중국 패권 경쟁에서도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북한의 지리적 위치 때문이다. 부시가 원하는 것처럼 북한이 선의 축 국가가 된다면 그것은 미국이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결정적으로 유지한 고지를 하나 장악하는 것과 마찬가지 일이 될 것이다. 중국은 광대한 나라지만 중국의 전략적 핵심 (Center of Gravity)은 북경을 중심으로 한 북부 지방에 놓여 있다. 북한은 중국의 전략적 핵심지역을 겨냥 할 수 있는 최적의 전초 기지가 될 수 있는 곳이다.

그동안 중국은 북한을 자신의 영구적인 동맹처럼 생각하고 북한의 핵무기가 중국에게는 별 위협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는지 모른다. 그래서 북한 핵문제의 해결에 미적 거렸다. 그런 상황이 지금 변하고 있다. 북한은 드디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기 시작했으며 미국은 이 틈새를 이용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을 상략(上略)의 전략목표를 가지고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이춘근 / 자유기업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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