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정책이 한국 사회 전반에서 국민들로부터 심각한 비판을 받고 있다. 1998년 4월부터 (1998년 북한 잠수함 침투 사건이 있은 후부터는 포용정책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했다) 거의 8년 이상 시행된 햇볕정책은 기대했던 만큼 북한의 행동을 변화시키지도 못했고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 오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7월 5일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포함 7발의 미사일을 마구 발사 한 이후 한반도 주변의 국제안보 상황은 악화 일로에 있다. 이미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는 7월 16일 한국 전쟁이후 가장 심각한 대북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끊임없이 북한을 달랜 결과가 미사일로 되돌아 온 꼴이다. 북한은 작년 2월 10일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선언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햇볕을 계속해서 쬐어 주었다. 그런데 결국 지난 7월 5일 북한은 일본, 미국을 표적으로 삼는 미사일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미사일 발사 사건 이후 한국에 회담차 방문한 북한 대표는 북한의 선군정치가 한국도 지켜주고 있느니 고마워하라는 투의 말을 했다. 그렇게 행동 하면 쌀을 줄 수 없다는 한국에게 북한 측은 앞으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 후 이산가족 상봉 계획이 일방적으로 파기 되었다.
1998년 이래 지금까지 줄기차게 햇볕정책을 밀고 나간 한국 정부는 이제 햇볕정책의 성과가 무엇인가 심각하게 반문하고, 새로운 대북 정책을 강구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그동안 햇볕정책을 지지했던 사회 지도급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햇볕정책의 실패를 지적하고 대북정책의 재고를 요청하고 있으며 일반 국민들 역시 기왕의 대북 정책은 실패 했으니 새로운 대북 정책을 수립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통일원 장관은 7월 25일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해 언급하며 미국이 가장 많이 실패 했다고 말하는 가운데 한국의 대북 정책도 (조금은) 실패 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실패한 정책은 고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무려 8년 이상 줄기차게 진행 되었지만, 북한의 변화를 초래하지도 못했고, 한반도에 안정적인 평화도 가져 오지 못한 정책을 더 이상 고집해서도 안 된다. 현 한국 정부는 대북 햇볕 정책 이외의 대안은 없다며 고집을 부리고 있지만 한 여론 조사에 의하면 (문화일보 7월 27일) 한국 국민의 72.6 %는 안보 외교 담당자들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
필자는 햇볕정책이 처음 나왔을 무렵부터 햇볕정책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지극히 회의적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 한국 정부는 북한을 우화 속의 행인 정도로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북한은 정교한 전략적 대응 능력을 보유하고 있고, 그 결과 북한은 한국의 햇볕정책을 훨씬 효과적으로 이용, 오히려 한국을 더 어려운 처지로 몰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둘째, 햇볕정책이 제시한 남북한 관계에 관한 낙관적인 가설들은 국제정치학적 이론 근거가 빈약하거나 혹은 틀리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2. 북한은 이솝우화의 나그네와 같은 존재가 아니다
길을 걸어가고 있는 나그네의 옷을 벗기기 위해 바람과 태양이 내기를 걸었다. 바람은 강풍을 세게 불어서 행인의 옷을 벗기려 했고 태양은 빛을 더욱 강하게 내려 쪼임으로 행인의 옷을 벗기려 했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다만 이 이야기속의 행인은 갑자기 바람이 불었다가 또 갑자기 햇볕이 내리 쪼이는 이유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으로 상정되었다. 햇볕정책 최대의 문제는 북한을 마치 이솝우화의 행인으로 가정하고 있다는데 있다. 손자병법은 자신을 알고 남을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가르쳐 준다. 솔직히 한국 정부 보다 북한 정부가 국제정치적 전략 전술에는 훨씬 더 능란한 편이라고 보아야 한다. 아무튼 햇볕정책이 근거하고 있는 이솝 우화는 상대방의 전술 전략을 파악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국가적 업무의 하나로 간주하는 국제정치의 영역에는 애초부터 적용되기 곤란한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이야기다.
우리는 북한을 서서히 설득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북한은 한국의 햇볕정책이 의도하는 바를 애초부터 정확히 알고 있었다. 북한은 햇볕정책으로부터 이득을 취하되 북한이 지키려는 것(사회주의 체제) 은 더욱 강고히 만들려고 노력 했다. 북한은 햇볕정책에서 나오는 경제적 이득은 빠짐없이 취하는 동시에 북한 체제의 이완을 막기 위해 강성대국 및 선군정치라는 정책목표와 방법을 고안 해 내었다. 군사 및 사상의 강국을 모토로 삼는 “강성대국론” 그리고 이를 위한 정책 방안으로 “선군정치” 라는 북한체제의 안전장치가 고안 되었다. 즉 강성대국과 선군정치는 햇볕정책에 대한 북한판 대응 전략이다. 한국의 기대와는 달리 북한 사회는 오히려 더욱 완고한 군사 체제로 변하고 말았다. 햇볕정책의시행과 더불어 북한은 모든 것에 군이 우선하는 선군주의 사회가 된 것이다.
자신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는 미사일을 발사한 북한을 이해 할 수 없다고 말하는 한국내의 식자들은, 북한 군부의 입김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 했다고 해설하고 있다. 북한 그 자체가 군사 국가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해설이다. 강성대국, 선군정치의 결과 북한은 거의완벽한 병영국가가 되었고 북한의 행동은 모두가 다 군사적 행동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햇볕정책의 상대방 북한정권이 대한민국이 의도하는 대로 호락호락 변할 상대는 아니었던 것이다.
3. 햇볕정책의 가설들과 국제정치학 이론
국제정치의 복잡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학자와 정치가들은 국제정치학 이론을 필요로 한다. 오랫동안 국제정치를 연구한 학자들이 현상을 설명하는데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개념들의 관계를 정리해 놓은 것이 국제정치학 이론이다. 심오한 이론에 근거해서 정책을 수립 할 경우 그 정책의 성공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불행하게도 햇볕정책의 가설들은 심오한 국제정치학 이론에 의해 지지를 받고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햇볕정책이 근거로 삼고 있는 국제정치 현상과 남북한 관계에 관한 가설들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1) 한 나라의 행동은 다른 나라의 선의(善意)에 의해 변화 된다는 가정
(2) 한국가의 적대감과 행동은 다른 나라의 경제적 지원 및 교류확대를 통해 평화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가정
(3) 국가 간 경제적 상호의존성의 증가는 국제평화의 관건 이라는 가정, 마찬가지로 남북한 교류 협력이 많아지면 전쟁의 가능성은 줄어든다는 가정
(4) 강경 정책은 전쟁발발 가능성을 높인다는 가정
(5) 일방적 화해정책은 적의 전쟁의지를 약화 시킬 것 이라는 가정
(6) 북한의 경제 및 정치사상이 우리의 선의(노력)에 의해 변할 수 있다는 가정
(7) 북한과 한국의 갈등은 상호 이해가 부족한 결과라는 가정
(8) 한국이 북한에 비해 국력 및 도덕적 측면에서 압도적 우위에 있다는 가정, 그래서 남북한 간에는 상호주의원칙이 지켜지지 않아도 된다는 가정
(9) 햇볕정책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가정
햇볕정책이 추론하는 국제정치학적 가설들은 압도적으로 이상주의적인 것이다. 그러나 국제 정치의 현실 세계에서 이상주의적 가설들은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현실주의 국제정치 이론은 햇볕정책이 가정하는 가설들을 거의 대부분 부정하고 있다. 위에서 제시한 가설들을 현실주의 국제정치론으로 다시 분석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1) 평화적인 수단만으로는 다른 나라의 정책을 바꾸는 것이 거의 불가능 하다. 햇볕 정책지지자들은 돈으로 평화를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제정치학자들의 다수설은 경제원조라는 수단은 다른 나라의 행동을 바꾸거나 제약하는데 그다지 효율적인 수단은 아니라는 것이다.
(2) 교류와 협력의 증대는 국가 간 이해(理解) 증진, 우호증진에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교류 협력의 증진은 국가 간의 갈등 요인, 즉 利害 관계도 밀접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전쟁은 가까운 나라들, 서로 상대방을 잘 理解하는 나라들, 동시에 利害관계가 많아진 나라들 사이에서 빈발하는 것이다.
(3) 경제적으로 거래가 많아지면 전쟁의 가능성이 줄어들고 평화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상주의자들의 이론이며 햇볕정책의 근거다. 이 이론은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이 선호하는 이론이며 부시행정부의 이론이기도 하다. 세계가 자유무역지대가 되면 평화가 온다는 바로 그 이론, FTA 지지자들이 좋아하는 이론 이다. 그러나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은 이 세상 모든 전쟁은 경제적 상호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 사이에서 오히려 더욱 빈번히 발생 했다고 주장한다. 1차 대전, 2차 대전 등 치열한 전쟁은 모두 경제적 상호 의존도가 대단히 높은 나라들이 벌인 전쟁들이다. 중국과 대만은 최근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높아졌지만 그것이 중국 대만 사이의 전쟁 발발 가능성을 낮추지는 않았다. 일본 역시 미국과의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상당히 높았던 1941년 결국 전쟁을 일으키고 말았었다. 전쟁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국가 간 전쟁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4) 강경정책은 전쟁 발발 가능성을 높인다는 가정은 햇볕정책의 기본 가정이다.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정부 당국자들은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그러면 전쟁하자는 것이냐” 며 윽박질렀다. 국제정치에서 평화를 보장하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강력한 군사력에 의거한 안보정책이다. 레이건의 강경정책은 소련과의 전쟁을 초래할 것이라고 비난 받았다. 그러나 레이건의 강경정책은 탈냉전 평화를 초래했고, 3차 대전의 가능성을 현저하게 낮추는데 기여했다.
(5) 화해정책은 적의 전쟁의지를 약화 시킨다는 가설 역시 역사적으로는 부정된 가설이다. 챔벌레인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히틀러를 설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히틀러는 설득당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욱 더 전쟁의 야망에 불타게 되었다. 쳄벌레인이 우습게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챔벌레인의 유화정책은 사전에 막을 수도 있었던 2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했다.
(6) 북한의 사상이 우리의 선의로 변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이야기다. 소련과 중국이 사상을 바꾸게 된 것은 누구의 설득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끝까지 버티다가 망한 경우가 소련이며, 중국은 국내정치의 대변혁(모택동이 사망한 후)을 통해 체제와 사상의 변환을 이룩했다.
(7) 북한과 한국간의 갈등은 상호 이해 부족의 결과니까 서로 교류 협력함으로서 이해를 증진하고 평화를 증진시키자는 주장 역시 햇볕정책의 기초가설이다. 이 가설 역시 부분적으로 옳고 부분적으로는 그르다. 우리와 갈등 관계에 있는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인데 그것이 우리가 일본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일까? 차라리 모르는 나라들 사이에서는 전쟁이 거의 발발하지 않는 것이 국제정치의 현상이다. 개인의 경우 서로 잘 아는 사람끼리 싸우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싸우지 않는다. 국제정치도 마찬가지다.
(8) 햇볕정책은 상호주의를 강조하지 않았다. 한국이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다고 가정했다. 그래서 약한 상대방인 북한을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것은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역설적인 일은 햇볕정책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일방주의와 햇볕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그럼 '북한의 막강한 군사력 과 맞설 수 있냐?’ 며 겁을 주었다. 햇볕정책 지지자들의 논리는 필요에 따라 우리가 우위에 있기도 하고 북한이 우위에 있기도 했다. 햇볕정책은 우리가 북한에게 경제 지원을 하는 대가로 군사적 위협을 낮추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는 상호주의적인 것 이어야 했다.
(9) '햇볕정책 이외에 대안은 없다’ 라는 주장 역시 그동안 한국 정책결정자들의 독선을 반영한다. 국제정치는 전쟁과 평화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평화는 '정의로운 경우에만’ 평화로서 지킬 가치가 있다. 우리가 일본에게 아무 저항도 못한 채 나라를 내 준 이완용을 비판하는 이유는 그가 생각한 평화에는 '정의’가 빠졌었기 때문이다. 모든 평화가 다 옳은 것은 아니며, 정상적인 국가라면 최고의 국가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언제라도 '수단’으로서 '전쟁’을 각오할 수 있어야 한다. 전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평화 파괴 행위를 단호하게 응징하겠다는 강경정책과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북한은 미사일을 마구 발사 한 후 그것이 한국의 안보를 지켜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 15개 이사국이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북한을 비난하는 결의안이 한국전쟁이후 최초로 통과 되었다. 이것이 한반도 안보의 현실이다. 한반도의 안보는 남북한 양자관계에 한정 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 일본, 중국이 관여되는 일이다. 이미 북한은 햇볕에 녹을 체제가 아님이 증명 되었다. 더욱이 햇볕정책이 근거한 가설들은 국제정치학의 폭넓은 지지를 받지도 못하는 것이다.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고, 북한의 행동을 무조건적으로 두둔한 결과, 북한으로 하여금 한국을 외교의 대상으로조차 생각하지 않게 만든 햇볕정책은 이제 심각하게 그 폐기를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이춘근 / 政博, 자유기업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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