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2000년 6월 분단이후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고, 6월 15일 ①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 ②통일방안의 공통성 인정, ③이산가족 교환 및 비전향장기수 문제 해결, ④경제협력과 제반분야의 협력ㆍ교류 활성화, ⑤당국간 대화 개최, ⑥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등을 내용으로 하는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6년이 지나면서 남북간에는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철도ㆍ도로의 연결이라는 3대 경제협력사업이 진행되고 있으며, 총 169회에 달하는 당국간 회담과 6ㆍ15를 기념하는 '민족통일대축전’ 등이 개최되고, 13차례의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는 등 겉으로는 남북화해와 협력이 잘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북한 핵문제는 여전히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우리 내부적으로는 남남갈등의 심화라는 내홍(內訌)과 한ㆍ미 동맹관계의 현저한 약화라는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이중적인 상황의 진전은 6ㆍ15 선언과 이를 활용한 북한의 전략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6ㆍ15 선언에 대한 북한의 관점과 전략은 과연 무엇이며, 그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를 북한이 공식매체를 통해 표출한 내용을 검토하여 분석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을 대내용이라고 애써 그 진의를 덮으려는 우리 전문가들도 상당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사실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
Ⅱ. 6ㆍ15 선언의 규정
북한은 6ㆍ15 선언 2개월부터 6ㆍ15 선언을 조국통일의 이정표이며, 민족자주선언이라는 점에 의의를 부여해 왔다. 1주년에 즈음해서는 '민족자주를 진수로 하는 민족공동의 통일강령’이라고 규정하였고, 2001년부터는 통일 3원칙에 기초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선언으로 정의하였다. 2005년 6월 15일자 "로동신문" 사설은 6ㆍ15 선언을 '민족자주선언, 민족대단결선언, 평화통일선언으로 민족공동의 통일강령이며, 21세기 조국통일의 이정표’라고 명시하였다.
이러한 개념정의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은 6ㆍ15 선언이란 곧 남북이 힘을 합쳐 민족자주, 민족단합의 원칙에 기초하여 남한의 반미연북체제화를 목표로 통일운동을 합법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근거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 북한은 6ㆍ15 선언을 '민족공동의 통일강령’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북한은 6ㆍ15 선언으로 남북이 '합법적’으로 추진해 나가야할 '하나의 강령’을 마련하였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북한은 6ㆍ15 선언 직후부터 '민족자주선언’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반외세, 즉 반미, 주한미군 철수 달성이라는 불변의 목표를 관철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북한은 6ㆍ15 선언에 북한 주도의 통일과 그 실현을 위한 전략등을 구현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북한은 2001년 5월 28일 김정일이 '55년간 이루지 못한 거창한 일을 단신으로 이룩하고,’ 6ㆍ15 선언은 '조국통일3대헌장’의 내용이 그대로 구현한 것으로 평가한 바 있다. 여기서 조국통일3대헌장이라는 것은 1972년 7ㆍ4남북공동성명의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는 통일3원칙, 1980년 10월 제6차 당 대회에서 제시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 1993년 4월 김일성 명의의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 10대강령’을 의미하는 것으로 북한식 통일의 총체를 의미한다.
또한 북한은 작년 6월 15일에는 "로동신문" 사설을 통해 6ㆍ15 선언을 조국통일3대헌장을 구현하고 하나의 조선노선의 진수를 집대성한 것이며, 통일운동의 교훈과 경험을 반영한 것으로 정의하였고, 금년에는 김정일의 '민족자주 사상과 애국애족 의지의 결정체’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6ㆍ15 선언에 대한 북한의 정의에 따르면 남한 김대중 대통령의 역할 또는 '연합제’ 등은 안중에도 없다. 통일방안의 공통성 인정이라는 제2항에 대해 북한은 연방제방식의 민족공동의 통일방안을 확정하고, 그것을 실현해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6ㆍ15 선언에 대한 이러한 북한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6ㆍ15 선언은 북한의 통일전략이 관철된 것이며, 북한은 여전히 사회주의 통일을 지향하고 있다. 둘째, 북한은 6ㆍ15 선언을 통해 남한의 반미연북화를 남한과 함께 합법적ㆍ공개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셋째, 북한의 입장에서 6ㆍ15 선언은 해방이후 북한이 55년간 추진해 온 적화통일운동사가 승리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전환점이다.
Ⅲ. 민족공조전략
북한은 6ㆍ15 선언 2개월의 시점에서 6ㆍ15 선언을 우리민족끼리 통일문제를 해결할 것을 핵심으로 하는 것이라고 규정한 이후 2001년 1월부터는 남한에 대해 '민족공조’를 지속적으로 촉구하였다. 특히 2002년 1월 부시 미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과 2002년 10월 핵개발 시인 이후에는 민족공조를 더욱 강조하는 양상을 보였다. 예를 들면 북한은 핵개발 시인 직후인 2002년 10월 28일에는 미국의 핵 압력에 민족공조로 대처하고, 남한도 선군정치를 옹호할 것을 제기한 바 있으며, 2003년 신년공동사설을 통해서는 한반도의 대결구도를 '조선민족 대 미국’으로 규정하였다.
한편 6ㆍ15 선언 2주년에 즈음하여 북한은 “북남공동선언이 밝힌 자주통일의 대명제 <우리 민족끼리>를 통일 위업 수행에서 변함없이 들고 나가는 것은 자주통일시대의 기본요구이다”라고 주장함으로써 '우리민족끼리’라는 이념을 자주통일의 대명제로 규정한 바 있다.
3주년 시에는 “우리민족끼리의 리념은 통일문제 해결에서 만능의 보검이며 필승의 기치이다”라고 함으로써 '우리민족끼리’를 통일의 기본이념으로 확고히 설정하였다. 또한 북한은 민족공조의 구체적인 과제로 ①접촉과 대화, 협력과 교류로 민족공조 폭의 확대, ②외세와의 공조 배격, ③전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미군 철수 및 대중적인 반미자주화투쟁, ④반전평화운동, ⑤온 민족의 선군정치 지지 옹호 등을 제시하였다.
이렇게 체계화된 민족공조전략에 따라 북한은 2005년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민족자주ㆍ반전평화ㆍ통일애국공조라는 '3대공조론’ 제시하고, 2006년 신년공동사설에서는 자주통일ㆍ반전평화ㆍ민족대단합의 '3대 애국운동’을 내걸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민족공조전략’이라는 북한의 대남전략은 6ㆍ15 선언 1항에 명시된 '우리민족끼리’라는 논리를 통일의 공동이념으로 제시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존의 '민족대단결론’을 발전시킨 전략으로 평가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북한은 '우리민족끼리’는 6ㆍ15 선언의 기본정신, 통일의 대명제이며, '민족공조’는 공동선언의 성과적 이행과 자주통일의 담보인 민족대단결을 이룩하기 위한 방도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민족자주, 반전평화, 통일애국의 3대공조를 확고히 이룩할 때 6ㆍ15 공동선언의 고수이행도 자주통일위업도 원만히 실현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 민족공조론의 실체는 무엇인가? 민족공조론이란 6ㆍ15 선언의 공동실천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미국 배제 및 한ㆍ미동맹 와해, 남한으로부터의 경제지원 획득 및 대공체제 와해를 도모하는 전략인 것이다.
한ㆍ미동맹 및 대공체제 와해를 위해 북한은 지속적으로 남한에서의 연북의식 확산 및 반미자주화투쟁을 선동하고 있다. 6ㆍ15 선언 6주년시 북한은 ①온 겨레가 민족주체적 입장을 확고히 견지, ②전민족의 대단결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 특히 통일운동을 다양한 형태와 방법으로 발전하고, 남조선의 친미보수세력을 타도하는 투쟁 전개, ③반미투쟁 지속, ④자주통일, 반전평화, 민족대단합의 3대 애국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와 동시에 북한은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등 공식적인 남북경협 및 인도적 대북지원을 통해 경제지원을 획득하는 동시에 아리랑축전, 민족통일대축전 등 각종 행사 참가, 다양한 민간차원의 방북을 활용하여 김정일의 통치자금 확보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 직속의 당 전문부서인 38호실에서남북경협, 외국과의 합영합작, 투자 유치 등의 사업을 관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Ⅳ. 성과
북한은 6ㆍ15 선언 1년의 성과로 ①민족자주 기운이 거족적 범위에서 전례없이 고조된 점, ②전민족적 범위에서 조국통일 운동이 힘차게 벌어진 점, ③우리 민족의 조국통일 위업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세계적 판도에서 더욱 힘있게 울려나오고 국제적 연대성이 일층 강화된 점 등을 들었다. 그리고 3주년시 북한은 남북관계에서 나타난 '위대한 사변’들로 ①남한주민들의 반북대결의식 해소 및 김정일에 대한 숭배열풍, ②대화와 협력, 내왕과 통일운동의 활발한 전개, ③남한에서의 반미,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투쟁 전개 등을 열거하였다.
또한 4주년에 즈음해서는 ①통일운동단체들의 연대연합하여 거족적인 통일운동 전개, ②다방면의 대화와 접촉, ③ 철도ㆍ도로 연결, 해로ㆍ공로 개통 및 북한 체육인ㆍ예술인의 통일열풍, ④남한과 해외의 통일애국역량 장성 강화, ⑤남한에서 반미자주화투쟁 확산 등을 성과로 지적하였다. 이와 함께 남한 인민들의 의식구조 변화에 따라 한반도의 대결구도는 '전체 조선민족 대 미국’으로 되는 '역사적 전환’이 일어났다고 표명하였다.
5주년에 와서는 남한에서 '반미자주, 연북통일이 대세로 되고 있다’고 평가하는가 하면, 통일운동이 전민족운동으로 확고히 전환되고 민족공조가 대세로 되어 전체 조선민족과 미국의 대결구도가 형성되었다고 자평하였다. 그리고 6ㆍ15 선언 6년을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고 통일운동을 벌여나가는데 통일위업 완성의 비결이 있다”고 '총화’하였다.
이와 같이 북한은 6ㆍ15 선언의 성과에 대해 남한 내부의 반미연북과 관련된 동향 및 추세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결국은 남한에서 반미자주와 연북통일이 대세화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북한은 남한의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을 민족자주세력, 통일애국세력의 승리로 평가하고 있는 바, 이는 남한 정권과의 연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북한은 6ㆍ15 선언 6개월의 시점부터 남한의 보수세력이 공동선언 이행을 저해하고 있다고 비난한 이후, 2006년에 들어서는 '반보수대연합’을 촉구하고 있다. 이는 남한의 정권교체를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Ⅴ. 맺음말
6ㆍ15 선언의 내용은 그 자체만으로도 북한의 입장이 충실히 반영된 것이었다. 북한은 6ㆍ15 선언 제1항에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것과 제2항에 연방제안, 제3항에 비전향장기수 해결을 명시함으로써 김정일 정권의 정통성 제고와 남한 내부는 물론 한ㆍ미관계를 흔들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북한은 6ㆍ15 선언에 입각하여 남한으로부터 경제지원을 도출하는 동시에 당국간 대화, 김정일의 서울 방문 등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6ㆍ15 선언이후 6년에 걸쳐 전개된 남한내부 상황, 한ㆍ미관계 및 남북관계의 제반 현황을 고려할 때 북한의 전략은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북한의 전략은 '우리민족끼리’를 내세운 '민족공조전략’이다. 북한은 6ㆍ15 선언의 공동실천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면서 남한사회를 자의적으로 조정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우리 사회내에서 6ㆍ15 선언이후 6년에 걸쳐 남남갈등이 심화되고 안보태세가 느슨해진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북한의 대남전략 구도에 부합하는 양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북한은 6ㆍ15 선언이후 6년의 결실에 따라 주한미군이 철수하고 남한의 친북자주정권과 더불어 연방제 형식의 통일이라는 '선 남조선혁명 후 조국통일전략’을 머지 않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자유민주주의체제의 다양성과 동태성을 고려할 때 북한이 추구하고 있는 목표가 쉽사리 달성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6ㆍ15 선언 6주년의 시점에서 북한의 입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가 지향하는 통일국가는 자유민주주의체제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할 것이다.
정규섭 / 관동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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