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2005년 10월 6일부터 7일 양일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연례 한ㆍ미 안보 연구 학술회의 (Annual Conference on Korea-US Security Studies)에 다녀왔다. 이 학술회의는 한ㆍ미 안보 연구 위원회(The Council of US-Korean Security Studies)가 1986년 이래 한해는 서울에서 그리고 다음해에는 워싱턴에서 개최하는 회의로서 금년에 20번째를 맞이하였다. 애초 한ㆍ미 양국의 예비역 장성들이 주요한 회원으로 출범한 한ㆍ미 안보 연구 위원회는 현재 군인들은 물론 학자, 언론인, 전직 외교관 등 다양한 전문가들을 포괄 하고 있다.
금년도 한ㆍ미 안보 학술회의의 대 주제는 한반도의 변동하는 역학관계 (Changing Dynamics of the Korean Peninsula)로서 9. 11 이후 국제 반테러 전쟁의 맥락에서 북한 핵의 문제 및 한ㆍ미 동맹 관계에 관해 최근 부각 되는 이슈들을 다루었다. 이번 학술회의의 미국 측 파트너는 헤리티지 재단(Heritage Foundation) 이었으며 한국 측은 한ㆍ미안보연구 위원회 와 한ㆍ미 우호 협회, 한국 해양 전략 연구소 등이 지원하였다. 그동안 이 학술회의에 주한 미군 사령관을 역임했던 역대 예비역 대장들이 대거 참석 했었는데 금년에는 틸럴리 대장, 세네월드 대장 등이 회의장을 지켰다.
필자는 한ㆍ미 안보 학술회의에 여러 차례 논문 발표자, 토론자로서 참가 했으며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토론자의 역할을 담당 했다. 이번 회의의 대 주제는 다음과 같은 세부적인 소주제들로 나뉘어져 이틀 동안 진행되었다. 소주제들은 북한의 미래, 남한의 변동하는 정치 동태, 남북한 관계와 미국의 대북한 정책, 한ㆍ미 관계의 미래와 전략 비전 등으로 구성 되었다. 특히 동 학술회의가 열리는 기간 동안 미국 하원에서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차관보가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 증언 을 하는 등 한국 문제가 워싱턴의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여러 차례 이 회의를 참석한 필자의 개인적 경험에 의하면 이번 회의는 가장 규모가 작은 회의였다. 워싱턴에서 회의가 열리는 경우 150명 이상의 미국 국방부 및 국무부 관련 학자 및 관리들이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던데 비해 금년도 회의는 어떻게 보면 그야말로 썰렁한 회의였다는 느낌조차 든다. 과거 이 회의는 한국 측은 물론 미국의 고위급 인사들이 대거 참석, 단순한 학술 세미나의 차원을 넘어 한ㆍ미동맹 강화를 위한 교류 및 파티의 장으로서의 역할도 담당했다. 한국 측 및 미국 측 참석자들은 '한ㆍ미 관계의 냉랭한 분위기가 이번 학술회의에 반영되었다’ 고 잠정적이기는 하지만, 심각한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 측 참석자들이 예상보다 적었던 반면 미국 측 참석자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회의였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 측 참석자들 중에는 '현재 한ㆍ미 양국의 관리들이 한ㆍ미 관계가 양호하다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 이라는 사실을 거침없이 내 뱉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미국 측 참석자 한 사람은 '맥아더 장군 동상이 후세인이나 레닌처럼 취급되는 것에 불만을 표시하고, 맥아더 동상이 끌어내려질 경우 그것은 미국 사람들을 즐겁게 하지는 않을 것(not be pleased)’이라고 완곡한 표현을 사용해서 말했다. 한국의 반미감정에 대한 미국의 반응이 점차 미국인들의 '반한감정’으로 비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회의를 통해 필자는 그동안 생각하고 있던 것 보다 한ㆍ미 관계가 더 좋지 않은 상태라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 여당의 책임자가 한ㆍ미 관계가 좋은데 일부 사람들이 그것을 오히려 더 나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회의에서 미국 측 발표자 한사람은 '북한과 미국이 전쟁을 하면 북한 편을 들겠다는 젊은이가 더 많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나오는 판국이다. 한국의 젊은이 들이 미군 뒤에서 총을 들고 서 있는 상황을 (미국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지)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미국 사람들은 이처럼 생각하고 있는데 한국 정치 지도자들은 무슨 근거로 한ㆍ미 관계가 양호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2. 미국이 생각하는 북한 문제
북한은 답답한 나라이며 북한 문제가 해결 되는 상황도 더디고 답답하다고 미국 사람들은 인식하고 있다. 지난 9월 19일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북경에서의 공동선언문이 발표된 이후 마치 북한 핵문제가 다 해결 된 것처럼 생각하는 한국의 분위기와, 미국이 인식하는 북한 문제 사이에는 심각한 온도차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미국 측 발표자 한 사람은 북한이 미국이 제시한 완벽하고 검증가능 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시설의 폐기(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즉 CVID) 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북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낙관적이지 않다.
최하 150만 명 최대 300만 명이 아사했는데 (그것은 북한 인구의 7 % 라고 미국 발표자는 지적했다. 특히 아사한 사람들은 곧이곧대로 사는 선량한 북한 주민, 아이들과 여인들 그리고 늙은이들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2002년 7월 행한 조치는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그것은 북한이 실제로 시장 경제를 추구하는 초기 단계이기 보다는 오히려 이미 형성 되었던 시장을 마지못해 승인한 수준이라고 본다. 최근 북한은 다시 배급제를 강화 시키고 시장의 기능을 축소 및 제하는 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승계 문제로 인해 위험한 상황이라고 본다. 아직도 후계자가 확정 되지 않았고 후계자 선정을 둘러싼 정치적 갈등 상황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에는 돈을 가진 새로운 계급이 형성 되고 있는데 이는 김정일 정권의 딜레마라고 본다. 김정일 정권은 이런 딜레마에 대처하기 위해 군을 잘 대접해 주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미국인들의 견해는 대체로 일치한다. 그러나 북한 문제가 잘 해결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서, 그리고 북한 문제가 언제 쯤 해결 될런지에 대해서는 미국인들 사이에 견해 차이가 많다. 한국의 분위기는 북한 문제가 곧 해결 될 것 같은 낙관적인 쪽으로 가고 있는데 반해 미국 측 분위기는 북한 문제는 해결에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미국은 물론 북한 문제가 대화를 통한 평화로운 방안으로 해결되는 것을 가장 바라고 있지만 미국의 북한에 대한 기대는 낮고 인내심도 점점 희박해져 가고 있다는 말도 부연하였다.
북한 핵문제에 대해 미국 NSC의 한 관리는 미국은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할 의도가 없고, 신포에 건설 중 이었던 경수로 공사를 재개할 의사도 전혀 없으며(그곳을 스케이트장으로 쓰면 좋을 것이라고 말 할 정도였다), 미국 과 북한 사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나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고 있다.
3. 한ㆍ미 동맹의 현주소
미국은 북한 문제의 해결은 물론 미국의 대전략에 (동맹국인)한국이 동조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단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 미군 예비역 장성 한명은 험담꾼(detractor) 혹은 훼방꾼(distractor) 이라면 그때는 (동맹은)끝이다 고 말하기도 했다. 원래 미국 사람들은 영국인들처럼 앵글로 색슨적인 국제정치 감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아니다. 과거 미국 외교정책은 철저한 현실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기 보다는 이상주의, 법률주의, 도덕주의 등으로 특징 되었었다. 그러던 것이 9.11 이후 돌변하고 만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역사학자 존 루이스 개디스 교수는 최근 저서에서 “마치 우리 모두가 2001년 9월11일 아침에 방사능이라도 쬔 것처럼 우리의 심리구조- 우리 마음의 DNA-가 뒤틀려 그 결과는 앞으로 한동안 확실치 않을 것이다” 고 기술한 바 있다.
미국은 확실히 달라졌다. 세계화를 이룬 상태에서 건국된 미국이 9.11 이후 대단히 민족주의적인 국가로 변모 하고 있다. 미국이 생각하는 한국은 9.11 이후 미국인들의 변화된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미국 사람들은 국제정치를 냉엄한 현실로서 인식하기 시작 했다. 미국 사람들은 더 이상 동맹 관계를 “우호관계”라고 보지 않는다. 한국이 미국과 동맹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21세기 전략 비전을 공유하기 위해서 우선 한국은 미국이 인식하는 적국을 한국도 함께 적국이라고 인식해야 한다. 동맹이란 적이 같은 나라를 의미하지 우호 국가를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사람들은 한국 정부와 한국 사람들이 북한을 더 이상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한 한ㆍ미동맹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미국 사람들은 한국의 정치 현상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고 한국의 상황을 세부적으로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과시했다. 특히 각종 여론 조사에서 나타난 수치들을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자료로세 제시하는 데 능통 했다. 한국의 각종 언론을 상세히 추적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측 발표자 중 한사람은 전교조 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며 한국정치를 무척 상세하고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하기도 했다.
물론 미국 사람들이 한국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모두 정확히 이해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 정치의 심층동인(深層動因)까지 그들이 이해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정확하게 알고 있는 한국의 정치 상황은 본질적인 부분이기 보다는 형식적인 측면인 것 같아 보였다. 미국인들은 절반 이상의 한국 젊은이들이 미국 보다는 북한 편을 든다는 여론 조사 결과에 경악하고 있지만 상당수의 한국 젊은이들이 애초에 군대에 가는 것조차 싫어한다는 사실도 동시에 고려할 능력은 없는 것이다. 지금 당장 철수하라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한국군의 능력이 증강 되는데 맞추어 철수해야 한다는 보수적인 한국 사람들조차 미군 철수론자의 범주에 속하는 조사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나오는 통계 자료들이 미국의 학자들에 의해 사용되는 경우 주의할 상황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4. 한ㆍ미 양국의 미래
한ㆍ미 양국은 서로 동맹으로 남아 있음으로서 양국 모두가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미국 측의 보편적 견해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원하면 미국은 언제라도 주한 미군 철수 등을 포함 한국의 요구를 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기도 하다. 미국은 한국이 민주선거에 의해 선출된(democratically elected) 정부를 가진 나라라는 사실을 중시하며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 원하면 미국은 철군 한다는 것은 미국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얘기다. '한국은 미국과 동맹국으로 남을 것이냐 옛날처럼 중국의 속국(vassal state)이 될 것이냐를 결정해야 할 시점’ 이라고 상당히 감정적인 언급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미국의 속마음은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으로 남아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음은 물론이다.
미국 사람들은 그동안 미국이 한국 사람들의 마음을 잡는데 소홀 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평양의 심리전이 남한의 마음을 잡았는데 미국은 그러지 못했다는 후회의 목소리도 있다. 미국의 정치 제도 중 현재 북한 및 한국에 대해 대단히 적대적인 것이 미국하원이다. 그러나 하원의 대표적인 매파 의원인 헨리 하이드 씨도 한국의 중요성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한국에 대해 새로운 PR 정책을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5년 7월 말 미국 헤리티지 재단의 Backgrounder 라는 이름의 유명한 보고서는 한국인의 반미 감정을 유발하는 중요한 원인중 하나가 비자 문제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한국도 미국 입국 시 비자면제 의 나라로 승격시킬 것을 주장 했다. 미국사람들은 한ㆍ미 동맹의 미래가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의성공적 수행해 중요한 것임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을 필요로 하는 것과 한국이 미국을 필요로 하는 것이 같은 크기라고 오해해서는 않된다. 미국은 이미 일방주의를 추구 할 수 있을 정도의 패권국이 되어 있다는 것이 작금의 국제정치 현실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5. 결 론
미국 측 발표자 중 한사람은 한국 외교관들 혹은 정책결정자들이 '미국은 동맹국이고 북한은 동생’ 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 당혹스럽지만 한국인들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유념해야 할 것이라고 말 한다. (카인이 친 동생인 아벨을 죽임으로서 최초의 살인자가 된 이야기) 국가들의 국제정치 행위는 사실(fact) 보다는 인식(perception) 에 의해 결정된다. 한국은 북한을 형제라고 보는 반면 미국은 북한을 깡패라고 본다. 과연 누구의 인식이 사실에 더 가까운 것일까? 미국 사람들은 수백만을 굶어 죽인 지도자가 핵폭탄을 개발한다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하기 곤란 할 것이다.
이번 워싱턴 방문은 한ㆍ미 관계에 문제가 있음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문제는 어느 한쪽만의 잘못은 아니다. 필자와 며칠 동안 같은 방을 쓴 동료 정치학자는 한국에서 나온 각종 여론 조사를 미국 사람들이 제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를 시작해야겠다고 말했다. 미국이 한국을 인식하는데 불필요한 왜곡을 교정 시켜주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또 다른 한국 학자도 미국인들의 반한 감정이 서서히 가시화 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려하며 보다 적극적인 조치와 연구가 있어야 하겠다고 말했다. 필자도 동감하는 생각들이다. 다차원에서 한ㆍ미 관계의 복원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 핵 문제는 반드시 해결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한국은 반드시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 발전 시켜야 한다. 미국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나라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다. 한ㆍ미 동맹이 확고하게 유지 된다면 북한 문제의 해결은 한국 주도의 통일을 의미할 수 있다. 통일을 이룩한 후에도 한ㆍ미동맹은 유지 되어야 한다. 한ㆍ미동맹이란 인위적인 장치는 지정학 때문에 한국이 영원히 당면해야할 고통을 제거해 주는 안전판이 된다.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에 영원히 둘러싸인 한국이 미국과 동맹을 맺을 경우 주변 강대국들은 결코 우리를 가볍게 보고 업신여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춘근/ 政博. 자유기업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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